yoshiko0.jpg

[몬스터짐=조형규 기자] 국내 종합격투기 단체 로드FC가 최근 한 차례 이목을 끄는 행보로 논란의 여지를 남겼다.

로드FC는 지난 24일 보도자료를 통해 일본 출신의 여성 프로레슬러 요시코 히라노(24, 일본)를 영입했다고 알렸다. 그리고 하루가 지난 25일, 로드FC 036에서 여성부 무제한급 경기로 요시코와 천선유(28, 팀파이터)의 대결을 확정 짓고 이 같은 소식을 공식 발표했다.

이미 보도자료를 통해 알려진 대로 요시코는 지난 2015년 2월 일본 여성 프로레슬링 단체인 스타덤에서 열린 야스카와 아쿠토(30, 일본)와의 타이틀전에서 시멘트(경기의 승부와 기술 과정의 합이 정해져 있는 프로레슬링에서 각본을 무시하고 실제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을 일컫는 용어) 사태를 촉발시켜 프로레슬링 팬들을 경악시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 내에서 엄중한 징계는 이뤄지지 않았다. 설상가상으로 요시코는 해당 사건이 터진 지 불과 1년 만에 다시 복귀하여 논란을 가중시켰다.

그리고 그런 그녀가 이제는 종목을 확장시켜 프로레슬링에서 종합격투기로의 진출까지 확정 지었다. 과연 요시코를 영입한 로드FC의 선택은 이슈 메이킹을 위한 마케팅의 일환으로 볼 수 있을까.


yoshiko22.jpg

■ 프로레슬링 경기의 핵심은 상대에 대한 ‘배려와 신뢰’

일단 이 문제를 살펴보기 위해선 실전 승부의 경합이 이뤄지는 격투기와는 달리, 승패라는 결과와 그 과정에서 오가는 기술의 합이 정해져 있는 프로레슬링의 생리를 이해하는 것이 필요하다.

앞서 설명한 대로 프로레슬링은 기본적으로 승자와 패자가 정해져 있는 장르다. 그렇기 때문에 미리 정해져 있는 승부를 극적으로 연출하려면 더욱 화려한 액션과 과감한 스턴트가 필수적으로 수반된다. 하지만 이렇게 과격한 기술이 오가는 도중에도 선수들이 큰 부상을 입지 않고 안전할 수 있는 까닭은 경기의 공방이 모두 고도의 훈련을 통해 선수들끼리 기술을 시전하고 접수하는 합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프로레슬링 경기에서 선수들에게 가장 중요시되는 덕목은 바로 동업자 정신이다. 즉 시전자는 상대가 큰 부상을 입지 않도록 기술을 세심하게 배려하여 사용해야 하고, 접수자는 상대 공격의 임팩트가 커 보일 수 있도록 시전자를 믿고 몸을 맡긴 상태에서 낙법을 구사한다.

그렇게 합을 맞추고 경기를 진행함에도 불구하고 예기치 못한 사고는 빈번하게 속출한다. 심지어 경기 중 사망 사고까지 일어나는 종목이 바로 프로레슬링이다. 지난 2015년에도 멕시코 프로레슬링 단체인 '더 크래쉬'의 흥행에 나선 프로레슬러 엘 이호 델 페로 아과요가 레이 미스테리오 주니어의 마무리 기술인 '619'의 접수 과정을 연출하는 도중 예기치 못한 사고로 경기 중 숨을 거둔 비극적인 사고가 있었다.

프로레슬링은 결국 어느 한쪽만 잘 해서는 성립될 수 없는 종목이며, 두 선수가 모두 완벽하게 동작을 구사해도 한순간의 실수가 사망으로 직결되는 위험한 장르다. 시전자를 믿지 못하면 좋은 그림이 나올 수 없고, 접수자를 생각하지 않는다면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그렇기 때문에 서로에 대한 ‘배려’와 ‘신뢰’는 바로 프로레슬링 경기의 핵심이자 프로레슬러들의 가장 기본적인 소양이다.


yoshiko3.jpg

■ 합의를 깨고 폭행 일삼던 뉴잭, 프로레슬링 역사상 최악의 선수로 기억되다

이처럼 상대에 대한 신뢰와 배려를 가장 기본적인 전제로 두고 있는 프로레슬링에서 ‘시멘트’라는 것은 최소한의 도의적 책임을 져버리는 행위이다. 실수나 불의의 사고로 부상을 입는 것 아닌, 상대의 고의적인 공격으로 위해를 가하는 폭력 행위이기 때문이다.

이전에도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정해진 각본을 무시한 채 상대를 일방적으로 구타하는 사건사고는 종종 있었다. ECW 출신의 뉴 잭(54, 미국)이라는 프로레슬러가 이 영역에서 독보적으로 악명이 높았다.

그의 기행은 가히 엽기적이었다. 70세에 가까운 고령의 프로레슬러를 경기 중 실제로 구타하고 의자로 내리쳐 부상을 입힌다던가, 6미터 높이의 특수 구조물 위에서 각본을 무시하고 상대를 밀어 바닥으로 떨어뜨리는 끔찍한 행위를 자행했다. 심지어 무기를 사용하는 하드코어 경기에서는 사전에 합의되어 있지 않은 칼을 자신의 품에서 꺼내 상대 선수를 무려 14차례나 찔렀다. 당시 뉴잭은 현장에서 경악을 금치 못한 관중들의 신고로 출동한 경찰에 연행되기도 했다.

악행을 거듭한 뉴 잭은 결국 북미 프로레슬링 업계에서 굉장히 마이너한 소수의 인디 단체만을 전전하는 신세가 됐다. 간혹 준 메이저 단체인 TNA의 이벤트에 일회성으로 출연하기도 했으나, 그의 모습은 이후 메이저 프로레슬링에서 결코 볼 수 없었다.

뉴 잭에 대한 프로레슬링 업계의 격렬한 비판은 현재까지도 종종 언급되고 있다. 대부분의 프로레슬링 팬들 또한 뉴 잭의 폭행 행위를 규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출전을 허용했던 단체들이 있었는데, 대부분은 비판의 목소리를 피해 갈 수 없었다.

뉴 잭은 현재 은퇴한 상태다. 하지만 이미 프로레슬링 업계에서는 수차례 폭행과 살인미수를 저지른 범죄자이자 역사상 최악의 선수로 인식되고 있다.


yoshiko1.jpg

■ 시멘트 폭행 사태에도 불구하고 반성 전무···오히려 피해자 비난한 요시코 

앞서 예시로 든 뉴 잭의 기행이 워낙 극단적인 수준이긴 하나, 요시코의 시멘트 또한 근본적인 맥락에서는 크게 다르지 않다. 선수 간의 신뢰를 배반하는 행위이자 약속을 깨고 상대에게 실제 폭력을 자행한다는 점에서, 이는 범죄로까지 규정지어질 수 있는 위험한 행동이기 때문이다.

요시코의 시멘트 사태 당시 폭행을 당한 야스카와는 결국 안면 함몰이라는 큰 부상을 당했다. 코 뼈와 광대뼈, 안와가 골절됐고, 망막에도 문제가 생겼다. 다행히 수술은 성공적으로 끝났지만, 한번 잃은 시력만큼은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결국 시력을 회복하지 못한 야스카와는 지난 2015년을 끝으로 프로레슬링 무대에서 은퇴했다.

문제는 이후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 내의 처분과 가해자의 행동이었다. 경기 직후 스타덤 측과 요시코는 2015년 2월 공식 기자회견을 통해 “면목이 없다. 이번 일로 부상을 입게 된 야스카와 선수와 관계자분들께 사과한다”며 용서를 구했다. 그러나 정작 큰 처벌은 없었다. 업계에서의 영구 퇴출이 아닌, 스타덤 무기한 출장 정지라는 처분이 내려졌다.

해당 사건이 벌어진지 3개월 뒤인 2015년 5월, 요시코는 은퇴를 발표했다. 그러나 그녀는 채 1년도 채 않은 시점인 지난해 3월 이를 번복하고 다시 프로레슬링 복귀를 선언했다.

요시코는 2016년 3월 타카하시 나나에가 이끄는 일본 내 신생 프로레슬링 프로모션인 ‘시들링(SEAdLINNNG)’에 데뷔, 복귀전을 치렀다. 국내의저명한 일본 프로레슬링 전문 블로그인 '공국진의 이것저것(kkjzato.egloos.com/)'은 당시 경기를 앞두고 ‘도쿄 스포츠’를 통해 공개된 요시코의 인터뷰를 소개했다.

그런데 요시코는 인터뷰에서 “연습을 하지 않는 선수에겐 패하고 싶지 않다. 어차피 경기 전부터 (야스카와가) 은퇴할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그게 마지막 경기가 될 거라고 예상했다”고 발언했다. 사과와 반성은커녕, 자신이 폭행을 가한 피해자에게 오히려 비난을 쏟아낸 것이다.


yoshiko4.jpg

■ 대부분의 프로모터가 선수 출신인 일본···화제의 선수에 대한 흥행 의존도 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시코가 다시 당당하게 활동할 수 있었던 것은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가 가진 독특한 구조에 기인한다.

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큰 프로레슬링 시장을 구축하고 있는 북미 지역 단체들의 프로모터 대부분은 전문 경영인이다. 선수와의 경계도 뚜렷하다. 단체가 갖는 브랜드 가치가 선수 개인보다 더 높고, 따라서 단체의 명운이 유명한 특정 스타에 의해 좌지우지되지 않는다. 현재 WWE를 이끄는 빈스 맥마흔 회장 역시 전문 경영인 출신이다.(다만 그의 WWE 출연은 1990년대부터 단체의 흥행을 위해 스스로 악덕 사장 역할로 출연, 부가적인 역할을 자처한 것에 가깝다.)

그러나 일본은 다르다. 대부분의 프로모터들이 모두 선수 출신이다. 과거 일본의 3대 메이저 프로레슬링 단체는 모두 프로레슬러들이 직접 설립했다.(신일본 프로레슬링-안토니오 이노키/전일본 프로레슬링-자이언트 바바/프로레슬링 NOAH-미사와 미츠하루) 프로모터가 선수고, 선수가 곧 단체다. 빈스 맥마흔 시니어가 단체의 경영권을 아들인 빈스 맥마흔 주니어에게 넘겨도 WWE는 건재했다. 하지만 미사와가 사망한 이후 프로레슬링 NOAH는 크게 흔들렸고, 현재는 그 위상 또한 신일본이나 전일본에 미치지 못하는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러한 일본 프로레슬링 업계의 풍토는 스타 개인의 영향력과 그에 대한 의존도를 크게 키웠다. 여기에 대회 티켓 판매량이 단체의 수입에 큰 부분을 차지하는 아날로그적인 수익 구조도 한몫 거들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일본에서 프로레슬링 단체들의 흥행 여부는 티켓 파워가 있고 이슈 몰이가 가능한 선수 개인에 기대는 경향이 크다. 자연히 큰 사고를 치거나 물의를 일으킨 선수에 대한 인식도 관대한 편이다. 논란을 일으켜도 그만큼 이목을 집중시킬 수 있기에 다시 곧 중용되곤 한다. 요시코 역시 시멘트 사건을 통해 오히려 흥행력이 높아진 케이스다.
(여담이지만 부시로드라는 기업이 지난 2012년 신일본 프로레슬링을 인수했는데, 이후 신일본이 선수 개인보다 단체의 브랜드 가치를 높여 세계 2위 단체로 성장한 사실은 일본 내수시장의 굴레를 탈피한 성공적인 글로벌 전략으로 평가받고 있다.)


yoshiko5.jpg

■ 팔라레스 영구 퇴출시킨 UFC···종합격투기에서 스포츠맨십과 도의적 책임이란 무엇인가

하지만 일본 시장 자체가 이러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요시코의 시멘트 폭행 사태 자체에 면죄부를 부여할 순 없다. 영구 퇴출까지 언급됐고, 이후에도 피해자를 비난하는 발언으로 인성에 문제가 있음이 만천하에 드러난 선수를 영입하는 행태가 과연 마케팅의 차원에서 용인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구심이 든다.

이러한 상황에서 전 세계 종합격투기 업계 부동의 1위 대회사를 고수하고 있는 UFC의 과거 사례, 그리고 이를 통한 단체의 운영 정책은 분명 참고할 필요가 있다.

UFC는 지난 2013년 당시 소속 선수인 후지마르 팔라레스를 영구 퇴출 시켰다고 발표했다. 사유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였다. 그해 10월 열린 UFC 파이트 나이트 29에서 팔라레스가 상대인 마이크 피어스에게 힐훅을 걸었는데, 피어스가 탭을 쳤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풀지 않았기 때문이다.

서브미션 기술이 고통의 임계점을 넘어 지속적으로 가해질 경우 이는 큰 부상으로 이어진다. 특히 하체 관절기는 선수 생명을 좌지우지할 정도로 위험성이 높다. 그런데 상대가 항복 의사를 밝혔음에도 불구하고 기술을 풀지 않았던 팔라레스의 행동에 대해 UFC는 동업자 정신을 강조했다. 탭을 치면 기술을 풀어야 하는 가장 기본적인 룰을 위반한 그에게 UFC는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행위’라며 강하게 비판했고, 곧 영구 퇴출이라는 엄중한 철퇴를 내렸다.

물론 흥행을 위한 엔터테인먼트 측면이 강조되는 현 종합격투기 업계에서 자극적인 이슈 메이킹의 마케팅 전략은 분명 중요한 요소다. 그동안 로드FC는 이러한 전략을 적절히 구사하며 단체의 흥행에 큰 효과를 냈다.

이번에도 로드FC 측은 요시코의 영입 발표와 동시에 자사의 SNS 계정을 통해 2015년 시멘트 사태 당시 요시코의 야스카와 폭행 영상을 여과 없이 내보냈다. 또한 각 언론에 배포하는 보도자료 말머리에는 해당 영상을 첨부하며 "보내드린 영상 링크는 기사에 활용하셔도 됩니다"라는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합격투기는 결국 ‘격투 스포츠’라는 영역에 속해 있는 장르다. 따라서 공정한 스포츠맨십을 기반으로 한 선수 개인의 도덕성 또한 엄정한 잣대가 적용되어야 한다. 그러한 측면에서 합의를 깨고 상대를 일방적으로 폭행한 논란의 인물, 요시코의 영입은 과연 단순 마케팅 차원에서 용납될 수 있는가. 만약 폭행이라는 행위로 이슈를 모은다고 해서 모든 도덕적 책임과 양심을 묻은 채 영입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로드FC에는 제2의, 제3의 요시코가 지속적으로 나올 것이다.

2017년 현재 로드FC는 국내 격투 스포츠를 이끌며, 동시에 학교폭력예방을 위한 '스타칼리지'라는 프로그램까지 제공하고 있는 단체다. 그러한 위치에서 과연 도의적 책임은 없는지, 한번 진지하게 생각해 볼 문제다. 

[사진] 타카하시 나나에 인스타그램/ⓒWWE/ⓒZuffa, LLC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몬스터그룹 몬스터짐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제품 랭킹 TOP 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