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파이트=강민성 칼럼니스트] 마지막 한 방이 부족했다.

지난 1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 SAP 센터에서 개최된 벨라토르 165의 메인이벤트에서 벤 헨더슨(33, 미국)은 라이트급 챔피언 마이클 챈들러(30, 미국)를 지옥 문턱까지 끌고 갔다. 하지만 그 지옥문으로 챈들러를 들여보내기에는 시간이 살짝 모자랐다.

4라운드까지 1개의 완벽한 라운드와 2개의 근소한 라운드를 내준 핸더슨은 마지막 5분 내에 극적인 피니시를 노려야 했다. 5라운드에 접어들자 체력이 바닥난 챔피언을 향해 핸더슨의 묵직한 타격이 계속해서 적중됐다. 집요한 서브미션 시도도 이어졌다. 그러나 빈사 직전의 챈들러를 극적으로 살리는 경기 종료 벨이 울렸고, 결국 챔피언은 2대 1 스플릿 판정으로 타이틀을 방어했다.

비록 결과는 판정패였다. MMA 메이저 3개 단체 챔피언 등극에는 실패했지만, 이 경기는 의의가 컸다. 오랜만에 핸더슨 다운 경기를 펼치면서 현장 관객들의 지지와 함성을 이끌어냈고, 내용 자체도 실보다 득이 많았던 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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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한 육체와 성실성···변함없는 헨더슨의 카디오

한때 종합격투기 라이트급의 정점이었던 핸더슨은 최근 납득하기 힘든 하락 일로에 있었다. 앤서니 페티스와 하파엘도스 안요스에게 피니시 패배를 당했고, 도널드 세로니와의 3차전에서 의문의 판정패로 총 3패를 떠안았다. 체급을 올려 웰터급 경쟁에 뛰어들었지만, UFC에서의 마지막 경기였던 호르헤 마스비달과의 대결은 많은 팬들의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들었다.

이후 헨더슨은 UFC를 벗어나 FA를 선언한 첫 번째 MMA 파이터가 됐다. 결국 헨더슨은 벨라토르로 이적했고, 이후 웰터급 타이틀 경기에 나섰다. 하지만 챔피언 안드레이 코레시코프에게 압도적인 판정패를 당했고, 지난 8월 다시 라이트급으로 내려왔지만 파트리시오 ‘핏불’ 프레이리에게 거둔 TKO 승도 내용 면에서 시원치 못했다. 헨더슨의 문제가 심화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헨더슨은 코레시코프에게 패배하면서도 모든 라운드를 악착같이 소화했다. 또한 여전히 체력과 위기관리 능력 등에서 발군의 정점을 보여줬다. 적어도 신체의 노화나 건강, 혹은 부족한 훈련량 등의 문제는 아니라는 점에 있어서는 다행이다.

현재 ‘MMA 랩’에 합류해 전지훈련을 소화하고 있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전해온 바에 따르면 헨더슨은 ‘미친 사람’이다. 감량 과정에서 동료 선수들과 돌아가며 100% 전력으로 주짓수 스파링을 했다. 심지어 점수도 매기고, 진 선수에게는 잔소리도 해가며 마치 시합을 방불케 할 만큼 진지하게 미쳤다는 것이다.

감량에는 다양한 스타일이 있다. 하지만 그 누구도 부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실전 수준의 운동을 감행하진 않는다. 운동을 하더라도 스트레스를 가중시키는 상황을 가능하면 억제한다. 하지만 헨더슨처럼 시합을 방불케 하는 주짓수 스파링은 그 어디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헨더슨은 “감량을 한다는 생각 자체를 하기 싫어서” 그런 방법을 활용한다고 한다. “이렇게 하다보면 체중도 어느새 빠져있다”라는 말도 덧붙였다. 

어느 종목에서나 시합만큼 기량을 빨리 향상시키는 훈련은 없다. 100%의 스파링은 시합을 제외하면 기량 향상에 가장 긍정적인 영향을 끼친다. 이처럼 헨더슨은 감량 중에도 기량 향상을 추구하며 정신력의 한계를 테스트하고 있다. 그리고 그 세션에 참가한 파트너들에게도 좋은 교육이 될 것이다. 즉 그의 성실함과 훈련이라는 측면은 여전하다는 것이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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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 황소고집을 꺾어라

당초 헨더슨의 문제는 하드웨어가 아닌 소프트웨어에 있었다. 즉 공격의 실종이다. 한창때에 비해 선공의 비율이 현저히 낮아졌고, 패턴도 단순해졌다. 카운터의 타이밍도 무뎌졌고, 테이크다운 시도와 성공률 또한 마찬가지였다.

공격이 약화되면 상대방은 자연히 스트레스를 덜 받는다. 체력을 아낄 수 있게 되면 5라운드를 3라운드처럼 소화할 수 있다. 이는 챔피언십 라운드인 4~5라운드로 갈수록 극강의 모습을 보여주는 헨더슨의 이점을 거세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상대 코치진 입장에선 후반으로 갈수록 예측하기 까다롭고 대응이 쉽지 않았던 헨더슨이 어느덧 상대하기 편한 선수로 변해버린 것이다.

몸에 문제가 없다면 원인은 심리적인 부분에 있는데, 헨더슨의 그 심리에는 하나의 큰 벽이 있다. 바로 황소고집 뺨치는 헨더슨의 성격이다. 이미 그의 아내를 비롯해 여러 주변 인물들을 통해 비공식 확인(?)된 사실이다.

헨더슨의 모친인 김성화 씨는 주한미군이었던 남편만을 믿고 미국 땅으로 갔다가 하루아침에 싱글맘이 된 케이스다. 영어도 서툴고 경제적 기반도 없는 동양인 여자가 아이 둘을 키우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자칫 잘못하면 아이들이 삐딱선을 타기 쉬운 환경에서 다행히 헨더슨은 올곧게 자랐다. 성장 과정 중에 그는 주변 친구들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단 한 번도 술과 담배를 입에 대본 적이 없다고 한다. 또한 이성과의 즉흥적인 접촉이 이뤄지는 클럽 문화도 즐기지 않는다.

그가 옆길로 새지 않을 수 있었던 이유는 헨더슨이 가진 강한 고집에 기인한다. “모범이 된다는 것은 말을 하는 게 아니라 직접 행동으로 보여주는 것”을 강조하는 헨더슨의 태도는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얻은 확신과 어머니께 물려받은 영향이 크며, 그러한 것을 지키고자 하는 자세는 그만의 고집으로 발전했다. 다만 문제는 그 고집의 방어기제가 긍정적인 조언에서도 작용한다는 점이다.

만약 껄렁한 친구들이 불량스러운 것을 권할 때 단호하게 거절하는 사람이, 현명한 사람의 적절한 조언을 쉽게 받아들인다면 참 좋을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둘 다 쉽게 받아들인다거나, 혹은 유혹에는 쉽게 빠지면서도 조언은 한 귀로 듣고 흘리는 경우가 많다. 반대로 유혹은 단호히 거부하고 조언에 충실한 케이스는 극히 드물다. 그리고 헨더슨은 둘 다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그 고집이 꽤 센 사람이다.

이러한 경우 헨더슨은 수백 마디의 조언보다 본인이 직접 느끼는 것이 제일 빠르다. 하지만 어떤 것을 어떻게 보여주어야 헨더슨이 문제를 인식하고 예전처럼 공세를 강화해 경기력을 끌어올릴 수 있을 것인지에 대한 해법은 막막했다. 그런데 헨더슨은 챈들러와의 경기를 통해 그러한 점을 깨닫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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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더슨의 봉인을 해제한 챈들러의 후두부 가격과 저먼 스플렉스

11월 20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산 호세 SAP 센터에서 챈들러는 한창 거침없이 전진하며 헨더슨을 케이지 구석으로 몰아붙이고 있었다. 좌우 연타를 앞세워 치고 들어오는 챈들러를 향해 헨더슨은 카운터 훅과 로킥, 미들킥으로 대응했다. 하지만 챈들러는 1라운드 중반 헨더슨에게 서서히 접근하다가 상승하는 궤적의 어퍼성 라이트 훅을 적중시켜 헨더슨의 무릎을 꿇게 만들었다.

상대를 확실히 제압할 수 있는 기회를 붙잡은 챈들러는 이후 풀 스윙으로 헨더슨을 두드려대기 시작했다. 헨더슨은 이를 벗어나기 위해 퇴로를 확보하며 움직였으나, 챈들러는 금세 추격하여 다시 백을 잡았다. 중심을 잃고 넘어진 헨더슨에게 챈들러는 파운딩을 섞었는데 이 과정에서 후두부를 한 차례 가격했다. 당시 이 장면은 고의성이 매우 짙은 것으로 판단된다. 현장에서 주심을 보고 있던 존 맥카시도 그 자리에서 즉시 챈들러에게 주의를 줬다. 그리고 그 직후 챈들러는 헨더슨의 허리를 감싸 안고 저먼 스플렉스로 굴욕을 선사했다.

큼직한 어퍼컷 두 방과 후두부 가격, 저먼스플렉스까지 결정적인 공격이 이어졌다. 그런데 이 공격으로도 헨더슨을 끝내지 못했고, 챈들러의 폭력은 오히려 헨더슨의 내면에서 잠자고 있던 챔피언 스무드(Smooth, 헨더슨의 별명)의 본성을 일깨우게 된다.

2라운드에 돌입하자 헨더슨의 선제타 비중이 높아졌다. 챈들러의 왼손에 대한 카운터가 제대로 된 타이밍에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또한 그 카운터도 단발로 끝나지 않고 후속타로 연결됐다. 이후 2라운드 1분 6초경부터 헨더슨의 카운터 옵션은 레프트 니킥도 섞이기 시작했다. 오른손 어퍼에서 레프트 크로스로 연결되는 전진 콤비네이션, 레프트 라이트 수평 연타, 펀치 흘리면서 라이트 크로스 카운터 시도, 앞차기 페인트에 이은 프론트 킥 세트 등은 절정기 헨더슨이 구사하던 기술들이었다.

되살아난 카운터 타이밍, 그리고 가능한 최대의 피해를 입히며 다양한 테크닉으로 상대의 머릿속을 복잡하게 만든 2라운드의 그 모습은 오랫동안 팬들이 기억하고 있던 스무드의 본모습이었다. 그리고 팬들이 그 본 모습을 잊어갈 때쯤, 챈들러가 고맙게도 본성을 이끌어낸 것이다. 

3라운드에도 헨더슨의 공세는 계속됐다. 막판에 그라운드에서 백을 잡으며 잠시 파운딩을 꽂은 것이 해당 라운드 전반을 챈들러의 강세로 보이게 만들었다. 하지만 냉정하게 채점하면 이 라운드 또한 헨더슨이 가져갔다 해도 할 말이 없다. 스탠딩에서 타격을 섞은 시간이 훨씬 길었고, 이는 채점기준에서 우선적 고려 사항이 된다. 헨더슨은 후반에 백을 잡히긴 했어도 전혀 위기가 없었고, 종반에는 탈출하기까지 했다. 챈들러가 그라운드에서 가져간 건 2분이지만, 헨더슨이 스탠딩에서 빼앗은 시간은 3분이다. 3라운드에서 가장 강력한 공격도 바로 헨더슨이 적중시킨 중단 니킥 카운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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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격을 선호하지 않는 헨더슨의 해법··· ‘공격 본능 일깨워야’

이후의 과정은 딱히 언급하지 않아도 익숙할 것이다. 4라운드는 상위 포지션을 오래 유지한 챈들러가 가져갔지만, 라운드 종료 직후 챈들러는 이미 모든 것을 다 쏟아낸 상태였다. 5라운드에 돌입한 그는 그저 헨더슨의 한쪽 다리만을 처절하게 붙잡고 있을 뿐, 아무것도 시도하지 못했다. 그 사이 헨더슨은 특유의 스탠딩과 그라운드를 오가는 다이나믹한 퍼포먼스를 선보이며 챈들러의 체력에 빨대를 꽂았다.

5라운드의 헨더슨을 맞닥뜨린 챈들러는 이미 40대 중반을 훌쩍 넘긴 노장과도 같았다. 그런 챈들러를 향해 헨더슨은 무수한 파운딩과 엘보를 난사하며 얼굴을 핏빛으로 만들었다. 아쉽게도 피니시를 내지 못했고, 3라운드의 인상 때문에 판정이 엇갈렸다. 헨더슨은 스플릿 판정으로 돌아섰고, 아쉽게도 세 번째 메이저 벨트 수집에는 실패했다.

하지만 현장의 관중들은 모두 헨더슨의 편에 섰다. 얼굴이 만신창이가 된 챔피언에게 일방적인 야유가 쏟아졌다. 비록 패배했지만 헨더슨은 이번 경기를 통해 본래의 모습을 끄집어냈다는 큰 소득을 얻었다.

현지에서 정찬성과 동행했던 한 관계자는 “헨더슨은 타격을 선호하지 않는다”고 전해왔다. 지도에 있어서도 레슬링과 주짓수는 즐겁지만, 타격은 배우는 것도, 가르치는 것도 부담을 느낀다고 했다. 은퇴 후 지도자로 전향한다 하더라도 MMA가 아닌 주짓수나 레슬링 등의 그래플링 계열이 될 것이라고 한다.

이처럼 만약 헨더슨이 상대를 타격으로 두들기는 것에 대한 부담감이 있고, 그것이 문제의 중심이라면? 그동안 부진했던 원인도 충분히 설명이 된다.

물론 이 경기에서 챈들러는 스피드도 우수했고, 테크닉 활용도 좋고, 헨더슨에 대한 연구까지 철저히 마쳤다. 그런데 후두부 가격 직후 이어진 저먼 스플렉스와 연속된 길로틴 초크 시도라는 폭력성이 오히려 고맙게도 잠자고 있던 헨더슨의 본성을 일깨워준 셈이다. 바로 여기서 이 경기의 특별했던 의미를 찾을 수 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챈들러에게는 일종의 감사한 마음마저 든다. 그리고 혹시라도 2차전이 벌어진다면 챈들러에게는 꽤 많은 행운이 뒤따라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반대로 헨더슨은 상대에게 과도하게 당하지 않고도 내면에 잠재된 공격 본능을 불러낼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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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벨라토르 MMA 제공(ⓒViacom)
[기사] 강민성 칼럼니스트(press@monstergroups.com)
[편집]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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