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 헨더슨(32, 미국)은 2016년 초 UFC에서 벨라토르로 이적했다. 2009년 출범한 벨라토르는 매년 꾸준한 성장세를 보이며 어느새 UFC를 잇는 종합격투기 2위 단체가 됐다. 그런 벨라토르는 FA가 된 헨더슨에게 적극적으로 구애를 펼쳤다. 헨더슨 본인도 “도저히 거절할 수 없는 조건을 제시했다”고 말할 정도로 벨라토르는 UFC 라이트급 전 챔피언의 영입에 심혈을 기울였다.


벨라토르는 헨더슨의 영입과 동시에 대대적인 프로모션에 나섰다. 헨더슨은 UFC와 벨라토르의 계약서를 모두 받아든 상태에서 벨라토르를 선택한 첫 번째 파이터다. 그를 따라 맷 미트리온, 로리 맥도날드 등 다른 UFC 정상급 파이터들도 망설임 없이 벨라토르행을 결정지었다. 이를 두고 벨라토르는 헨더슨을 가리켜 현재 MLB의 FA(Free Agent, 자유계약 선수)의 토대를 만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소속의 외야수 커트 플러드와 비교하며 환영했다.


벨라토르의 비유대로 헨더슨은 MMA 역사상 FA의 토대를 마련한 첫 번째 선수로 볼 수 있다. 벨라토르는 세계 최고의 대회에서 챔피언을 지냈던 그에게 2개의 체급 중 하나를 골라 타이틀전을 치를 수 있는 파격적 선택권을 줬다. 헨더슨의 첫 번째 선택은 웰터급이고, 상대는 챔피언 안드레이 코레시코프였다. 24세에 18승 1패, 10 KO 3서브미션의 전적을 가진 러시아산 스트라이커다. 181cm라는 제법 큰 신장, 188cm의 리치를 가진 코레시코프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헨더슨과의 대전을 수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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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만만치 않은 새 무대, 고전한 헨더슨

올 4월 'A new era begins(새로운 시대가 개막되었다)'이라는 다소 상투적이지만 친숙한 어구로 헨더슨의 영입을 자축한 벨라토르 해설진은 계체에서 감탄을 쏟아냈다. 코레시코프의 탄탄한 모습에서 처음 놀랐고, 더욱 놀란 것은 그의 퍼포먼스였다.


당초 언더독으로 평가받았던 코레시코프는 첫 라운드부터 체격의 우위를 살려 강타를 쏟아냈다. 물론 헨더슨도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코레시코프는 헨더슨의 예상보다 더 뛰어난 경기력으로 완벽한 우세를 점했다. 결과는 만장일치 판정패. KO를 당하지 않은 것이 다행일 정도로 헨더슨에게는 뼈아픈 패배였다.


아쉬운 벨라토르 데뷔전을 치르고 난 이후 두 번째 경기는 지난 8월 열린 ‘벨라토르 160‘의 메인이벤트였다. 상대는 전 페더급 챔피언이자 벨라토르 최다승(13승) 보유자인 패트리시오 ’핏불‘ 프레이리였다. 폭발적인 움직임이 있고 강력한 펀치 콤비네이션, 그리고 킥과 니킥을 활용해 KO를 노리는 스타일이다. 타격에서 태클로 이어지는 연계도 좋다. 주짓수 블랙벨트이면서도 훌륭한 펀치 스킬을 가진 선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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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선 경기에서 본인보다 훨씬 큰 선수와 사투를 벌였던 헨더슨은 이번에는 반대로 굉장히 작은 파이터와 싸우게 됐다. 그런데 1라운드에서 높은 페이스로 적극적인 공방을 벌이며 그 속에서 답을 찾는 헨더슨 특유의 스타일이 나오지 않았다. 케이지까지 밀어붙이는 건 좋았지만, 거기서 파생되는 공격을 전혀 내지 못했다. 심지어 간간이 터지는 핏불의 기습적인 공격까지 허용하며 주도권을 내줬다. 관중석에서는 야유가 나오기 시작했다.


2라운드에서 헨더슨은 서서히 공세를 올리기 시작했다. 헨더슨의 킥이 서서히 예열되고 있었는데, 핏불의 테이크다운 시도를 막아낸 다음 이어진 클린치 공방에서 갑작스럽게 경기가 끝났다. 이유는 핏불의 정강이 골절이었다.


경기 당시 헨더슨은 핏불의 레그킥을 수차례 체크했다. 그 과정에서 핏불의 정강이가 부러진 것이다. 앤더슨 실바의 경우와 달리, 그의 골절은 관중과 시청자들이 눈으로 확인하기 어려웠다. 진짜인지 아닌지에 대해 설왕설래가 오가기도 했지만, 핏불이 다리의 X레이 사진을 공개하고 나서야 논란은 일단락됐다.


최근 들어 헨더슨은 불안정한 리듬에 갇혀있다. UFC에서의 지난 경기들을 보더라도 알 수 있다. 챔피언 방어전에서 숙적 페티스에게 패하며 벨트를 내줬다. 이후 조쉬 톰슨과 루스탐 카빌로프를 연파했지만, 하파엘 도스 안요스에게 니킥으로 생애 첫 KO 패를 당하는 충격적인 경험을 맞았다. 도널드 세로니전에서는 다소 편파로 보이는 판정패까지 당하며 생애 첫 연패의 수렁에 빠졌다. 웰터급으로 옮긴 후 브랜든 태치와 호르헤 마스비달을 상대로 2연승을 거뒀다곤 하지만, 마스비달 전에서는 과거의 경기력이 나오지 않아 많은 격투팬들이 우려를 나타냈다.


벨라토르 이적 후 코레시코프, 핏불과 치른 두 경기를 통해 헨더슨은 아직 예전의 기세를 회복하지 못한 모습을 보여줬다. 많은 팬들 또한 안타까움을 자아내고 있다. 5라운드를 문제없이 소화하는 컨디셔닝과 절대 포기하지 않는 근성은 그대로지만, 공격의 적극성이 감소했다. 그를 상대하는 파이터들의 부담도 확 줄었다. 전체 경기력이 썩 좋지 않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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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헨더슨에게 찾아온 세 번째 관문, 벨라토르의 왕자 마이클 챈들러

헨더슨의 상대로 예정된 마이클 챈들러는 현 벨라토르 라이트급 챔피언이다. 2011년까지 9전 전승을 달리면서 당시 벨라토르 라이트급 챔피언이었던 에디 알바레즈에게 도전했다. 두 선수의 1차전은 그해 최고의 경기 중 하나로 꼽혔다. 2년 뒤 펼쳐진 2차전은 비록 알바레즈의 판정승 논란이 있었지만, 이 경기 역시 1차전 못지않은 명승부였다. 벨라토르 역사상 가장 흥미진진한 라이벌 구도를 만든 두 선수를 향해 많은 MMA 팬들은 UFC 챔피언 못지않은 존경과 사랑을 보냈다.


그런데 2014년 5월, 3차전을 앞둔 상황에서 알바레즈가 뇌진탕을 이유로 전열을 이탈했다. 그리고 얼마 되지 않아 곧 UFC로 이적했다. 챈들러는 라이벌을 잃었지만, 오히려 그 라이벌보다 더 큰 산을 만났다. 알바레즈의 대타로 올라온 윌 브룩스에게 생애 첫 TKO 패를 포함해 두 차례나 덜미를 잡히며 체면을 구겼다. 하지만 2015년 6월 복귀해 데릭 캄포스를 2분 17초 만에 초크로 잠재웠고, 5개월 후 데이비드 릭켈스에게 2라운드 TKO승을 거두었다.


지난 6월 윌 브룩스마저 벨트를 반납하고 UFC 행을 선택하자 벨라토르의 라이트급 타이틀은 다시 공석이 됐다. 그 왕좌를 두고 챈들러는 패트리시오 핏불의 친형인 패트리키와 대전했다. 1라운드 2분 17초, 챈들러의 풀스윙 라이트가 프레이라의 안면을 강타했고, 챈들러가 벨트를 다시 손에 넣는데 더 이상의 액션은 필요하지 않았다.


마이클 챈들러의 기량에 대해서는 설명이 필요 없다. 학창시절부터 세인트루이스에서 알아주는 레슬링 선수였다. 대학에서는 ‘NCAA 디비전 I 올 아메리칸‘ 즉, 국가대표 수준의 레슬러였다. 대학 레슬링 전적은 100승 40패를 기록했다.



챈들러는 굉장히 힘이 좋고 폭발적인 스피드까지 갖췄다. 그의 레슬링을 경계하며 많은 선수들이 태클을 대비할 때, 정작 챈들러는 묵직한 강타를 통해 승리를 챙겼다.


사실 챈들러의 복싱 자체는 기술적으로 정상권 레벨은 아니다. 스윙이 너무 크고 움직임도 너무 과격해서 카운터에 당하기 쉽다는 것이 그 이유다. 하지만 큰 스윙에서 나오는 파괴력은 치명적인 대미지를 선사한다. 한 방에 상대를 끝낼 정도로 강력한 펀치 파워를 지녔다. 게다가 챈들러는 알바레즈처럼 강한 맷집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 오른쪽 뺨을 맞으면 상대의 양쪽 뺨을 후려치는 것으로 보답한다. 경기를 흥미진진하게 끌고 갈 줄 아는 파이터다.


최대의 라이벌이었던 알바레즈가 UFC 챔피언으로 등극한 것을 볼 때 그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본인에게도 기회만 주어진다면 UFC 정복도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을 수 있다. 오는 11월 20일(한국 시간) 챈들러는 전 UFC 챔피언을 상대로 본인의 가능성을 최대한 어필하기 위해, 그리고 연패 이후 추락했던 본인의 위상을 끌어올리기 위해 최고의 상태로 나올 것이다. 각종 미디어에서 보여주고 있는 챈들러의 훈련 모습이 이를 명확히 보여주고 있다.


반면 헨더슨은 벨라토르 이적 후 첫 두 경기에서 혹독한 결과를 받아야만 했다. 한 번은 일방적으로, 두 번째 경기에서도 밀리는 싸움을 하다 상대의 어이없는 다리 골절상으로 얼떨결에 승리했다. 절대적으로 반등이 필요한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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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불우한 기억과 강한 책임감은 헨더슨의 원동력이자 동시에 리스크

헨더슨의 장기는 높은 페이스다. 타격, 레슬링, 주짓수 등 모든 영역에 걸쳐 공격을 해 나간다. 라운드가 거듭될수록 상대의 체력은 떨어지고 머릿속은 복잡해닌다. 헨더슨은 이러한 상황을 유도하며 주로 3, 4, 5라운드에서 차이를 만들어냈다.


문제는 헨더슨의 선제공격 시도 비율이 절정기에 비해 낮아졌다는 것이다. 특히 핏불과의 경기에서는 상대를 케이지로 몰아놓고 거의 아무것도 못한 채 시간만 흘려보냈다. 그가 높은 페이스로 압박하며 기술을 쉴 틈 없이 구사했을 때 상대는 힘들어했다. 헨더슨은 1라운드보다 오히려 4~5라운드에서 더 빠르고 강했다. 상대가 느려지고 수비도 많이 흐트러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특징은 본인과 팬들이 모두 알고 있다. 


그가 보여준 타이트한 압박과 공격적인 모습은 어디로 간 것일까. 기술도 발전했고 약점도 보완했는데, 특유의 장기가 아직까지도 나오지 못하고 있는 것이라면 문제는 그의 내면에 있을 가능성이 있다.


주한미군이었던 헨더슨의 아버지는 가장 역할을 하지 못했다. 이런저런 사고로 교도소를 제집 드나들 듯했다. 이혼 후 그의 한국인 어머니가 지극정성으로 2남 1녀 남매들을 키워냈다. 특히 하루 16시간을 일할 정도로 억척스럽게 가정을 지켰고, 아이들에게 한국인으로서의 자긍심을 잃지 않도록 가르쳤다.


헨더슨은 예수 다음으로 어머니를 존경한다고 말한다. 영어도 못하고 경제적 기반도 없는 동양인 여성이 오직 남편만 믿고 미국에 갔다가 아이 둘을 혼자 키워내야 하는 싱글맘이 됐다. 비록 지금에야 두 아들은 "어머니께서 열심히 일해서 저희를 키워주셨다"고 추억하지만, 이들에게 아무런 상처가 없었을 것이라는 보장은 없다.


한 어머니와 세 자녀의 기억 속에는 차마 두 번 다시 떠올리고 싶지 않은 처참한 순간이 곳곳에 상흔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헨더슨 본인은 절대 자식에게 그런 삶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고, 어머니가 견뎌야만 했던 무거운 짐을 아내에게 남긴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싫었을 것이다. 아픔을 반복하지 않기 위해서라면? 결국 본인이 건강해야 한다. 헨더슨에게는 끝까지 가족을 책임져야 하는 필사적인 책임감이 있다.


본인의 아픈 기억, 어머니에 대한 애정과 연민은 아마도 강한 성취욕의 배경이 되었을 것이다. 목숨을 전당포에 맡긴 사람처럼 미친 듯이 훈련하고 치열하게 싸워 UFC의 벨트를 차지하게 된 원동력이자, 자신의 파이팅 스타일을 끌어올려 주는 에너지였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경제적으로 안정이 되었고, 결혼을 하고, 아이까지 태어났다. 그 과정에서 공교롭게도 헨더슨의 공격력은 크게 하락했다.


무의식의 깊은 영역에서 ‘만일 내가 잘못된다면 아내와 아이는 어떻게 될 것인가’와 같은 걱정이 헨더슨의 귓전을 계속 울릴 것이다. 만약 헨더슨이 이 울림에 잠식된다면, 공격을 내야 하는 타이밍에서 브레이크로 작용할 공산이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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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동료 선수들이 보는 벤 헨더슨

하지만 헨더슨은 그러한 걱정에 개의치 않는다. 이미 많은 선수들이 헨더슨을 믿고 따흔다. 헨더슨은 체육관 내에서 항상 솔선수범하는 파이터다. 겸손하며 친절하기로도 유명하다.


자기관리에서도 그는 철저하다. WEC 시절 헨더슨은 한 인터뷰를 통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저는 술을 마시지 않습니다. 한 모금도 입에 대본 적이 없어요. 담배나 대마나 그런 비슷한 것들을 피워본 적도 없습니다. 타코마에서 제 라이프 스타일은 영 인기가 없어요. 하지만 전 그렇게 결심했습니다. 여럿이 모인 자리면 으레 뭔가(대마)가 돌아가고 그러잖아요. 제 차례가 오면 전 조용히 다음 사람에게 패스했습니다. 사람들이 그런 것을 봤습니다. 제가 클럽에 가지 않는다는 것, 사람들이 봤죠. 그렇게 보이는 것이 그러라고 말하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주짓수에서 그랜드슬램급의 무시무시한 업적을 쌓아 올린 후 최근 MMA로 전향한 여전사 맥킨지 던도 헨더슨의 이러한 모습에 대해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현재 헨더슨의 체육관인 'MMA 랩'에서 구슬땀을 흘리고 있는 던은 인터뷰에서 “헨더슨은 정말 좋은 교사다. 우선 잘 가르쳐 주고, 그걸 잘 하고 있는지 지켜보다가 핀 포인트를 끄집어낸다. 그렇게 허물 없이 배우다 보면 어느 순간 그가 UFC 챔피언 출신의 파이터라는 사실을 잊곤 한다. 겸손 그 자체다”라고 이야기하며 헨더슨의 겸손함을 칭찬했다.


헨더슨은 트레이닝 세션에서도 시범 조교가 되어주고 있다. 소속 선수에게 훈련 파트너가 필요하면 몇 시간이라도 도와준다. UFC의 신성 세이지 노스컷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브라이언 바베레나는 헨더슨과 MMA 랩에 대해 “헨더슨은 시간만 맞으면 언제든 내 코너를 봐준다. 그런 사람이 나의 세컨드라는 것은 정말 좋은 사실이다. 우리는 단지 체육관에서만 동료가 아니다. 체육관 밖에서도 서로 돕는다”며 헨더슨을 존경했다.


그는 너무나 모범적이고, 너무나 교과서적이며, 누구보다도 책임감이 강하다. 운명이 그에게 근성을 선물했고, 헨더슨은 이를 활용해 챔피언이 되었다. 하지만 여러 가지 요인으로 드러나는 그의 박애적 본성은 파이터로 살아가는데 있어 큰 어려움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성직자 같은 선수에게 부디 행운이 함께 하기를. 그리고 혹시 그가 진다고 하더라도 너무 가혹한 질책이 따르지 않기를 바란다.


 

P.S 현재 헨더슨의 캠프에는 코리안 좀비 정찬성이 합류했다. 그가 전하는 헨더슨의 체중 감량법을 소개한다.

“네, 여기는 현장에 나와있는 정기자입니다, 헨더슨이 미쳤습니다. 내일 모레가 시합인데 이렇게 운동하는 선수는 처음 봤습니다. 땀복을 입지 않고 100% 주짓수 스파링을 10라운드나 뛰고 있습니다. 주짓수 포인트을 매기면서 돌아가며 하는데, 선수들이 지면 막 성질내고, 정말 미쳤습니다. 자기말로는 체중을 감량한다고 생각하는 것이 싫다고 합니다, 이렇게 하면 체중 맞춰져 있다고. 진짜 미친 것으로 보입니다.”

[사진] 몬스터짐 DB/벨라토르 제공

[영상] 황채원 PD

[기사] 강민성 칼럼니스트(press@monstergroups.com)

[편집] 조형규,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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