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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트=조형규 기자] 번듯한 대학교와 경찰행정학이라는 미래가 뚜렷한 학과. 그렇게 대학을 졸업한 아들을 보며 부모님은 당연히 ‘경찰 공무원의 길을 걷겠거니’ 생각했다. 그렇게 말 잘 듣는 아들이 갑자기 어느 날 격투기를 하겠다고 선언했다. 당연히 부모님의 입에선 “절대 안 된다”라는 말이 떨어졌다.
 
하지만 지금까지 운동한 모든 것이 그대로 물거품이 된다는 사실에 차마 포기할 순 없었다. 부모님께는 순순히 운동을 관두겠다고 선언했다. 경찰 시험을 준비하러 서울로 올라간다는 말을 남기고 홀로 훌쩍 상경한 청년은 부모님 몰래 다시 글러브를 쥐었다. ‘코리안 좀비 MMA’ 소속의 페더급 파이터 홍준영(25. 코리안 좀비 MMA)의 이야기다.
 
홍준영은 정찬성(29, 코리안 좀비 MMA)의 제자로도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직접 만난 홍준영은 단순히 ‘정찬성 제자’라는 타이틀로만 수식할 수 없는, 그 이상의 총천연색 매력을 가진 선수였다. 킥복서 출신의 파이터로서 보여줄 수 있는 화려한 타격 본능, 강렬한 외모 뒤에 숨겨진 순둥이 같은 성격, 하지만 운동 외 시간에는 책을 읽고 일기를 쓴다며 멋쩍게 웃는 그의 대답에서 마치 팔색조 같은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그 누구보다도 강인한 파이터이면서 동시에 가슴 한편을 따뜻하게 만드는 감성을 지닌 홍준영 선수를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리안 좀비 MMA 체육관에서 만났다.


 
■ 만화 ‘더 파이팅’에서 시작한 복싱, 미식축구와 킥복싱을 거쳐 종합격투기로

왕따를 당하던 소년 일보가 복싱에 입문해 성장하는 과정을 그린 모리카와 조지의 ‘더 파이팅’은 1989년에 연재를 시작해 현재까지도 발간 중인 작품이다. 물론 만화적인 상상력과 ‘근성’을 주제로 한 클리셰가 존재하지만, 지금도 투기 종목 선수들에게는 일종의 로망이자 바이블과도 같은 작품이다. 현재 UFC 페더급에서 맹활약을 펼치고 있는 ‘코리안 슈퍼보이’ 최두호 역시 ‘더 파이팅’을 보면서 파이터의 꿈을 키웠다고 밝힌 바 있다.

홍준영도 그랬다. 실제로 복싱을 시작한 건 고등학교 3학년 무렵이었다. 하지만 어린 시절부터 본 ‘더 파이팅’을 통해 격투가의 꿈을 키워왔다고 말했다.

“어릴 때 ‘더 파이팅’이라는 만화를 보면서 격투기에 대한 꿈을 키웠어요. 그러다가 뒤늦게 고3 때 복싱에 입문했죠. 그런데 그때도 격투기를 본격적으로 시작한 건 아니었어요. 대학에 진학하고 나서는 미식축구를 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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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양한 운동을 즐기던 홍준영이 본격적으로 격투기를 시작하게 된 건 해난구조대 시절의 영향이 컸다. 

“군대를 빨리 가고 싶었는데, 그 당시 지원해서 최대한 빨리 갈 수 있는 곳이 해난구조대뿐이었어요. 그래서 멋도 모르고 지원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운동을 잘 하는 지원자들로 가득한 데다가 엄청 힘든 곳이더라고요. 그래도 거기까지 왔는데 떨어질 수 없어서 꼴찌에 가까운 성적으로 간신히 붙었습니다. 하지만 해난구조대가 그런 사람들이 모인 곳이다 보니 운동도 굉장히 많이 배웠어요.”

해난구조대에서의 경험은 홍준영에게 많은 도움이 됐다. 실제로 홍준영은 제대 후 안전요원이 없는 해수욕장에서 파도에 떠내려가던 사람을 구조한 적도 있다. 또한 군 복무 시절 다양한 운동 경험 때문에 제대 후 곧바로 킥복싱 체육관을 다니며 본격적으로 격투기에 입문하게 됐다. 이후 입식격투에서 11전 9승 2패의 준수한 성적을 거둔 그는 2014년 3월 서울로 상경해 코리안 좀비 MMA에 합류하며 종합격투기로 전향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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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배는 연승의 어머니···난관을 극복하며 성장하는 파이터

그러나 격투기를 시작한 순간부터 홍준영은 항상 집안의 반대에 부딪혔다. 종합격투기뿐 아니라 복싱을 시작할 때부터 꾸준히 들어온 이야기였다. 하지만 중도에 포기하는 것이 너무 아까웠던 홍준영은 부모님께 ‘경찰 시험공부를 하겠다’며 거짓말을 하고 서울로 올라왔다.

“입식 격투는 큰 무대가 없어서 종합격투기로 선회하기로 마음을 먹었어요. 처음에는 다들 코리안탑팀이나 팀매드를 권했죠. 그때까지만 하더라도 저는 종합격투기도 그렇고 정찬성 선수에 대해서도 잘 몰랐어요. 게다가 당시 코리안좀비MMA는 신생팀이었죠. 그런데 지금은 여기서 이렇게 뛰는 걸 보면 인연이라는 게 참 신기해요.”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모르겠어요. 어쩌다 보니 우연히 체육관을 한 번 구경 올 기회가 있었는데, 그때 상담하시던 분이 ‘여기 운동 정말 힘들다, 여기서 하다 보면 다시 대구로 내려갈 수도 있다’라고 겁을 주셨거든요. 지금은 오히려 잘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홍준영은 코리안좀비 MMA의 선수가 됐다. 2014년 12월 ACF라는 무대를 통해 종합격투기 프로 데뷔전을 치렀다. 하지만 입식 격투기에서 활동했던 그가 종합격투기에서 처음 만난 상대는 30전이 넘는 주짓수 기반의 베테랑 파이터 히로 라이더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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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충분히 이길 수 있는 상대였어요. 첫 그라운드 경험이었고, 비록 마운트를 뺏기고 파운딩을 맞고 있었지만 데미지가 거의 없었거든요. 찬성이 형이랑 눈빛으로 신호를 주고받고 있었는데 심판이 바로 말리더라고요.”

하지만 데뷔전의 패배가 홍준영에게는 좋은 약이 됐다. 종합격투기에서 그래플링의 중요성을 깨달았다는 점이 가장 컸다고 했다. 첫 패배 후 홍준영은 폭풍처럼 4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딥(DEEP)에서는 경기 한 달 전 안와골절 부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한 체급 높은 라이트급에서 코바야시 타카유키(33, 일본)를 2라운드 TKO로 꺾었다. TFC 12에서는 ‘독종’ 정한국(24, 부산팀매드)을 상대로 영리한 아웃파이팅을 펼치며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다.

아쉽게도 그 연승 행진은 지난 22일 러시아 사할린에서 열린 MFP에선 3라운드 판정패를 당하며 잠시 멈추게 됐다. 하지만 처음으로 타격전이 아닌 테이크다운을 통해 상대를 그라운드로 끌어내렸다. 리어네이키드 초크 그립까지 잡았으나 탭을 받지 못해 아쉬움은 더 남는다. 비록 시합 직후 홍준영은 SNS에 “바보같이 싸워서 판정패했습니다. 면목 없습니다”라는 말을 남겼지만, 이 패배는 홍준영에게 새로운 경험의 자산이자 또 한 차례 성장하는 계기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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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몸이 쉬면 머리로 훈련하는 학구파···“취미는 독서와 일기 쓰기”

홍준영은 훈련에 있어서도 학구파에 가깝다. 몸이 쉬는 날이면 매시간 동영상을 통해 이론적인 부분을 반복적으로 학습하며 보완한다. 이는 코리안좀비 MMA의 수장인 정찬성의 특징이기도 하다.

실제로 정찬성은 과거 한 격투 커뮤니티에서 주짓수의 장인 에디 브라보가 창안한 기술 ‘트위스터’ 동영상을 보고 “연습해서 나중에 시합에서 써먹어봐야겠다”라고 댓글을 남긴 적이 있다. 그리고 그는 거짓말처럼 UFC 데뷔전이자 레너드 가르시아(37, 미국)와의 2차전에서 이 트위스터를 성공시키며 단숨에 화제의 주인공이 됐다. 자연히 코리안좀비 MMA의 선수들도 정찬성처럼 영상을 통한 연구에도 힘을 쏟는다.

“특히 그라운드 훈련은 찬성이 형의 방법을 그대로 사용합니다. 모든 그래플링은 노기로 진행하고, 가끔 TNT의 최명훈 사범님께 배울 때도 노기 하는 날만 참석하고 있어요. 그 외의 시간에는 동영상을 보면서 공부를 많이 해요. 찬성이 형과 같이 영상을 보면서 제가 안 되는 부분을 찾아 연구하곤 하죠.”

육체가 쉴 때면 계속 두뇌를 가동한다는 그의 대답에 필자는 ‘허허’ 웃으며, “도대체 그럼 언제 쉬나”라고 물었다. 하지만 홍준영은 운동을 하지 않을 때에도 학구파에 가까웠다. “책을 자주 읽는 편은 아니에요”라고 했지만, 인터뷰를 하기 직전에도 그의 손에는 책이 들려있었다.

“스스로도 감성적인 편이라고 생각해요. 주로 소설을 많이 읽는데, 최근에는 박민규 작가의 ‘더블’을 인상 깊게 읽었죠. 밖에서 무언가를 하는 것보다는 이렇게 음악을 들으면서 주로 책을 읽거나 일기를 쓰는데 시간을 보내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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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비는 모두 끝났다···남은 건 경기를 통한 증명

어느덧 홍준영은 종합격투기 6전 4승 2패의 전적을 가진 파이터가 됐다. 자연히 부모님께도 더 이상 숨길 수가 없게 됐다. 경찰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던 아들이 결국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 중인 것을 처음 알게 됐을 때 부모님은 크게 한숨부터 쉬셨다고.

“뭐, 부모님은 이제 거의 포기 상태죠. 처음에 사실대로 이야기했을 때 한숨을 푹 쉬시면서 ‘네가 알아서 해라’라고 말씀하시더라고요. 말은 그렇게 하셨지만 그래도 이제는 승리한 시합 보여주고 하시면 부모님이 주변 분들께 종종 자랑도 하세요.”

하지만 홍준영의 부모님은 아직까지 종합격투기 선수로 활동하는 아들의 모습을 100% 좋아하시는 건 아니라고. 홍준영은 그런 부모님의 마음을 돌리려면 더욱 발전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이라고 말했다. 물론 그만큼 돈까지 벌어다 드릴 수 있다면 금상첨화라고 했다.

부모님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시작한 운동인 만큼 홍준영은 매 경기 배수의 진을 치며 케이지에 오를 수밖에 없다. 그만큼 자신도 있다고 강조했다. 보다 더 많은 시합을 뛰어 자신을 증명하고자 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전 이미 준비는 모두 끝났다고 생각합니다. 케이지에 올라서 계속 보여줘야죠. 내년에는 분기마다 한 경기씩 총 네 경기를 뛰어서 4연승을 거두고 싶어요.(웃음)”

곧 가까운 미래에 그의 부모님 또한 ‘자랑스러운 종합격투기 파이터 아들’로 홍준영을 소개할 날이 오리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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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촬영 및 보정] 최웅재 작가
[기사]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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