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스터짐=조형규 기자] "코리안 좀비가 라이트 오버핸드를 날리는 순간 어깨가 빠졌습니다. 챔피언은 이 상황을 놓치지 않았어요. 하지만 도전자는 그걸 경기 중에 다시 끼워 맞추려고 했군요. 무시무시합니다."

지난 2013년 열린 UFC 163에서 조제 알도(30, 브라질)를 상대로 페더급 타이틀에 도전한 정찬성(29, 코리안좀비MMA)은 운명의 4라운드에서 회심의 라이트 오버핸드를 날렸다. 알도와 펀치가 교차하던 그 순간, 코리안 좀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고질적인 어깨 문제가 하필이면 중요한 순간에 터진 것이다. 하지만 펀치를 날린 직후 어깨 탈구를 느낀 정찬성은 경기 중 스스로 어깨를 끼워 맞추려고 했다. 당시 현지 해설진도 이 장면의 리플레이 영상을 보며 감탄과 탄식이 뒤섞인 목소리를 쏟아냈다.

하지만 챔피언의 예리한 눈은 그 순간을 놓치지 않았다. 도전자의 부상을 눈치챈 알도는 킥으로 어깨를 공략했고, 다시 한 번 챔피언 방어에 성공했다. 최후의 문턱을 넘지 못한 정찬성은 케이지 바닥에 쓰러져 펑펑 울었다. 차라리 '아쉬움 없이 치고받은 끝에 쓰러졌다면 후회도 없었을 텐데' 하는 마음이 컸다.


이 장면을 끝으로 우리는 옥타곤에서 한동안 정찬성의 모습을 볼 수 없었다. 경기 후 그는 고질적인 습관성 어깨 탈구를 치료하기 위한 수술과 재활, 그리고 그리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병역의무를 이행하며 도합 3년 2개월의 공백기를 가졌다.

3년이란 공백은 분명 짧지 않은 시간이다. 하지만 정찬성은 UFC에서 네 경기를 치르는 동안 역대 아시아 파이터 중 가장 강한 인상을 남겼다. 아직도 많은 국내외 팬들이 긴 공백기에도 그가 남긴 진한 여운을 잊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그 오랜 기다림이 드디어 끝났다. 2016년 10월 19일 자로 소집해제가 되어 종합격투기 복귀가 가능해진 정찬성은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라며 파이터 인생의 두 번째 장을 열겠다고 다짐했다.

UFC 복귀 초읽기에 들어간 '코리안 좀비' 정찬성을 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코리안좀비MMA' 체육관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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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공백기의 핵심은 기술 습득과 튼튼한 어깨의 재활

대한민국에서 태어난 이상 수많은 스포츠 스타들도 피해 갈 수 없는 관문이 하나 있다. 바로 '병역 의무'다. 특히 운동선수들은 육체를 관리하며 실전을 통해 경기력을 유지해야 하는 만큼, 병역의무 이행 기간은 큰 리스크가 될 수밖에 없다. 하지만 고질적인 어깨 부상 때문에 현역 복무 불가 판정을 받고 사회복무요원으로 배치된 정찬성은 다행히 퇴근 후 남는 시간을 활용해 재활과 운동에 매진할 수 있었다.

"조제 알도와의 타이틀전을 끝으로 어깨 수술과 재활 때문에 1년을 쉬었어요. 그리고 2년 동안 사회복무요원으로 있었기 때문에 3년의 공백이 있었던 셈이죠. 그래서 많은 분들이 유독 제 공백기를 더 길게 느끼신 것 같아요. 하지만 그렇다고 그 사이 기량이 떨어졌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건재한 기량을 확신한 정찬성은 그 이유 또한 공백기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역설했다. 특히 지난 3년 동안 기술의 습득 측면에서 많은 공을 들였다. 이미 수많은 비장의 무기들을 장착했다며 그는 "하루 빨리 옥타곤에 올라 이 기술들을 모두 실험해보고 싶어요"라고 말했다. 그렇기 때문에 지난 3년이 길게 느껴졌지만, 동시에 막상 지나고 나니 아쉬운 느낌도 든다고. 아직도 배울 것이 너무 많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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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찬성은 어깨 상태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보였다. 지난 3년간 자신에게 있어서 최고의 화두는 바로 양쪽 어깨를 복구시키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어깨 수술을 한 만큼) 아무래도 수술하기 전보다는 살짝 부족하긴 하죠. 나이도 20대에서 30대로 접어들면서 관절이나 회복 측면에서 조금 더뎌진 것 같긴 합니다. 하지만 공백 기간 동안 가장 신경을 쓴 부분이 바로 재활이에요. '빨리빨리'가 아닌, 오랜 기간에 걸쳐 제대로 상태를 끌어올리는 것에 재활의 기치를 뒀어요. 2년 넘게 트레이너 선생님들의 체계적인 지도 하에 어깨를 복구해왔습니다. 지금은 보강을 하는 시기죠. 그래서 이젠 어깨가 꽤 튼튼해진 것을 느껴요. 지금도 얼마든지 자신 있습니다."

■ 흥행 파이터와 싸우기보단 스스로가 흥행을 선도하는 파이터가 돼야

정찬성이 자리를 비운 사이 UFC의 많은 것이 변했다. 특히 그가 속해있는 페더급은 역대 최고의 격동기를 맞고 있다. UFC를 넘어 종합격투기 역사상 최고의 흥행 메이커가 되어버린 코너 맥그리거(28, 아일랜드)가 바로 현재 UFC 페더급 챔피언으로 군림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찬성은 맥그리거와 싸우고 싶다는 미시적인 목표를 세우진 않았다. 대신 그보다 더 큰 밑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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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론 맥그리거와도 싸우고 싶죠. 제가 없는 사이에 페더급이 가장 뜨거운 체급이 됐고, 그렇게 만들어준 파이터가 바로 맥그리거니까요. 하지만 맥그리거는 아마 페더급으로 돌아오지 않을 것 같아요. 그래서 그와의 대결에 대한 관심보다도, 제가 맥그리거처럼 체급을 이끄는 선수가 되는 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흥행을 리드할 수 있는 파이터가 되어야죠."

UFC 내의 무수한 변화를 이야기하던 정찬성은 최근 종합격투기 시장에서 부쩍 상승한 한국인 파이터들의 위상에 대해서도 언급을 이어갔다. 

"동현이 형이야 워낙 잘 하는 선수고, 또 항상 우리를 이끌어주는 맏형이죠. 그리고 요즘은 두호가 너무 잘 해주고 있어요. 사실 UFC 입성하기 한참 전부터 '뭘 해도 두호는 무조건 되겠다'고 생각했거든요. 아마 우리나라에서 제가 제일 먼저 그렇게 생각했을걸요?(웃음)"

현재 페더급 내에서 가장 주목받는 신성이 된 최두호(25, 부산팀매드)는 이미 랭킹 5위의 컵 스완슨(32, 미국)과 경기가 잡힌 상황. 그런 모습을 보며 정찬성은 '두호는 나에게 형으로서 뒤처지지 않도록 채찍질을 하게 만드는 고마운 존재'라고 표현했다. 동시에 "두호도 항상 제 시합 영상을 보고 경기에 올라간다고 하더라고요. 볼 때마다 자기도 막 끓어오른다면서요"라며 말을 이어갔다. 서로에게 좋은 동기부여가 되는 존재인 셈이다.

"두호랑은 지금도 종종 연락해요. '꼭 두호를 제쳐야겠다' 이런 게 아니라, 선의의 라이벌로 옥타곤 내에서 정상을 향해 같이 올라가야겠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제가 먼저 뒤처지면 안 되겠죠?(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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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월부터 MMA랩에서 벤 헨더슨과 합동훈련 예정···"복귀전 상대로 BJ 펜 원한다"

이제 공식적으로 옥타곤 복귀가 가능해진 정찬성은 2017년 1/4분기에 복귀전을 치르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이미 UFC 측에도 이러한 뜻을 전해뒀다. 물론 사회복무요원으로 근무하면서 기량이 처지지 않도록 꾸준히 관리를 해왔지만, 경기에 돌입하기 위해선 2~3개월가량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기간이 필요할 것으로 봤다. 이를 위해 정찬성은 소집해제 후 다가오는 11월부터 미국의 'MMA랩' 체육관으로 건너가 벤 헨더슨(33, 미국)과 함께 훈련을 소화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알파메일로 갈까 고민도 했어요. 하지만 알파메일은 이미 한 번 다녀온 적이 있기 때문에 이번에는 MMA랩으로 결정하게 됐습니다. 헤드코치인 존 크라우치와도 성향이 잘 맞을 것 같고요. 무엇보다도 헨더슨과는 WEC 시절부터 오랜 인연이 이어졌는데, 제가 가장 존경하는 선수 중 한 명입니다. 그곳에서 많은 것을 배워오고 싶어요."

특히 정찬성은 헨더슨을 존경하는 이유로 인격적인 부분을 꼽았다. 단순한 실력의 우위보다도 인성을 존경의 척도로 삼았다. 자신의 팀인 '코리안좀비MMA' 선수부에서도 가장 중요한 첫 번째 조건으로 '인성'을 언급한 그는 헨더슨을 향해 '존중을 표현함에 있어서 전혀 부족함이 없는 선수'라고 설명했다.

미국 전지훈련을 거쳐 몸 상태를 끌어올릴 계획을 세운 정찬성은 이후 복귀전 시점으로 내년 2~3월을 희망한다고 밝혔다. 그렇다면 과연 코리안 좀비가 복귀전 상대로 원하는 선수는 누구일까. 이 질문에 정찬성은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두 체급 타이틀 석권에 빛나는 UFC의 전설적인 파이터 BJ 펜(37, 미국)의 이름을 꺼냈다.

"물론 체급 내 모든 선수와 싸우고 싶죠. 하지만 복귀를 선언한 펜이 페더급 도전을 천명하면서 반년 전부터 그와 꼭 싸우고 싶었습니다. 처음에 펜의 복귀전 상대로 리카르도 라마스가 확정되면서 '아, 결국 물 건너갔구나' 했어요. 그런데 이번에 필리핀 대회가 취소되면서 '이 모든 게 나를 위해 돌아가는 게 아닌가' 싶더군요. 물론 모든 선수가 펜을 원할겁니다. 하지만 펜과 제 복귀전 타이밍이 비슷하게 맞아떨어질 것 같아서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펜이 라이트급에서 뛸 때는 체급이 달라서 별 생각이 없었죠. 하지만 페더급으로 온 이상 이야기가 다릅니다. 그의 경기를 보면서 종합격투기 파이터의 꿈을 키워온 선수들이 많잖아요. 그런 선수와 싸울 수 있다면 말 그대로 '대박'이죠. 제 스스로 얻는 것도 많을 테고, 더 큰 발전의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해요. 알도와 싸울 때도 그랬으니까요."

최근 랭킹 5위의 스완슨과 대결이 성사된 최두호는 경기 확정 직후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고 말했다. 그리고 이제는 정찬성의 차례다. 과연 코리안 좀비는 그가 말한 대로 펜을 만나게 될 수 있을까. '생각한 대로 이루어진다'는 코리안 파이터들의 기운을 이번엔 정찬성에게 불어넣어 줄 때다.

▶'코리안 좀비' 정찬성 복귀 특집 인터뷰 2부에서 이어집니다. 

[사진/영상 촬영 및 편집] 박제영 PD
[사진 보정] 최웅재 작가
[장소제공] 코리안좀비MMA / 그레이트짐
[기사]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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