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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조형규 기자] 기회를 잡기 위해선 가장 먼저 그에 상응하는 실력이 뒷받침되어야 한다. 하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것이 바로 ‘천운’이다. 부산팀매드의 주장이자, ‘스턴건’ 김동현(34, 부산팀매드)의 오랜 스파링 파트너로도 유명한 배명호(30, 부산팀매드)는 바로 그 모든 것을 다 갖췄지만, 마지막 하나인 ‘천운’이 부족했다.

홍콩의 MMA 단체인 레전드 FC(Legend Fighting Championship, 이하 LFC)의 웰터급 챔피언 시절, 연승 가도를 달리던 배명호는 UFC로부터의 러브콜을 받았다. 하지만 LFC 측에서는 단체와의 계약으로 배명호를 묶어둔 채 놔주지 않았다. 그렇게 아까운 기회를 날린 배명호는 결국 병역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2년간 공백기를 가졌다.

하지만 이미 지나간 일은 어쩔 수 없는 법. 그 누구보다도 낙천적인 성격을 가진 배명호는 현재에 충실했다. 과거에 크게 개의치 않기로 했다. 지난 6월 30일 소집해제와 동시에 복귀에 시동을 건 배명호는 만나자마자 “제가 드디어 돌아왔습니다”라며 싱글벙글 웃었다. 이제 다시 앞으로 나아갈 일만 남았다고 했다.

前 LFC의 웰터급 챔피언이자 파이터로서의 두 번째 챕터를 시작하는 배명호를 서울 시내의 한 카페에서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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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동료들도 감탄한 배명호의 여전한 기량, "전혀 녹슬지 않았다"
 
배명호는 지난 6월 30일 소집해제 후 민간인의 신분이 됐다. 한동안은 자유의 몸(?)이 된 기분을 마음껏 누렸다고. 하지만 지속적으로 훈련을 해왔던 터라, 그 기분이 생각보다 오래가진 않았다고 했다.

“팀매드 동료들은 오히려 너무 빨리 나왔다며 핀잔을 주더라고요. 어쨌든 그렇게 운동을 계속 해왔습니다. 그러다가 허벅지 부상을 입어서 한 3주 정도 훈련을 못했어요. 그리고 다시 운동 복귀했는데 이번엔 스파링 도중 코가 부러졌어요. 한 달 가량은 스파링 금지령이 떨어졌죠.”

이처럼 민간인의 신분이 되자마자 배명호는 부상을 입을 정도로 강하게 다시 자신을 채찍질했다. 지난여름에는 우연히 좋은 기회가 닿아 같은 팀의 함서희, 최두호, 손성원, 김동현(B) 등과 함께 베트남으로 1주일간 전지훈련도 다녀왔다. 당시 훈련이 이뤄진 베트남 사이공 스포츠클럽의 규모와 시설에 혀를 내두른 배명호는 실제로도 많은 성과가 있었다고 했다.

“그곳에서 LFC 시절에 같이 뛰었던 친구들을 만났어요. 오랜만에 좋은 대화도 나누고 같이 스파링도 했죠. 그리고 복싱, 무에타이, 주짓수 등 종목마다 전문 코치와 선수들이 따로 있어서 훈련을 하다 보니 긴장도 되고 배울 점이 너무 많았습니다. 정말 다시 가고 싶을 정도예요.”

그때의 느낌을 생생하게 전한 배명호는 특히 많은 자신감을 얻었다고 했다. 특히 같이 스파링을 하며 주먹을 섞은 LFC의 옛 동료들은 “실력이 그대로다, 전혀 공백이 느껴지지 않는다”라며 여전히 건재한 배명호의 기량을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 케이타로에게는 본받을 점 많아···리 징량과는 다시 싸워도 이긴다
 
LFC 동료들 이야기가 나온 김에 그에게 옛 기억을 되물었다. 한창 프로무대에서 연승 행진을 달리던 그는 지난 2011년 열린 LFC 5에서 로드니 맥스웨인(29, 뉴질랜드)을 꺾고 웰터급 챔피언에 올랐다.

자연히 UFC에서도 배명호를 집중했다. 그가 챔피언에 오르자 오퍼도 들어왔다. 하지만 그의 UFC 진출을 막은 건 바로 자신이 몸담고 있던 LFC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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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FC 대표가 미국 사람이었는데, UFC 오퍼가 들어오자마자 바로 부산역으로 달려오더군요. 진짜 그때 ‘나 이번엔 죽어도 이거 무조건 가야 된다’고 엄포를 놨어요. 그런데 조금만 더 뛰어달라며 도통 놔주질 않더라고요. 파이트머니도 두 배로 올려주고, 경기도 더 많이 뛰게 해줘서 나중에 더 좋은 조건으로 UFC에 진출하게 해주겠다고요.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저한테 이렇게 이야기 해놓고선 단체를 팔려고 했다네요.”

그렇게 어렵사리 찾아온 기회가 허무하게 날아가 버리고 말았다. 더욱 아이러니한 사실은 LFC 웰터급 챔피언 시절 배명호의 1차 방어 제물이 된 리 징량(28, 중국)도 현재 UFC 웰터급에서 활동하고 있다는 점이다. 전적도 3승 2패로 나쁘지 않다. 분명 아쉬운 부분도 있을 터. 지난 기억을 떠올린 그는 “정말 그때는 다 엎어버리고 싶었죠”라고 말했지만, 이내 껄껄 웃어 보였다.

“제가 특이하게 UFC 경기는 랭킹에 있는 톱 레벨 선수가 아니면 잘 챙겨보는 편이 아닌데, 웰터급에서 뛰는 아시아 선수들의 경기는 무조건 다 찾아봐요. 사실 리 징량 경기도 다 챙겨봤는데, 최근에 USADA 약물 테스트에서 적발됐거든요. 생각해보니 ‘나랑 경기할 때도 약물을 쓴 건가’ 싶기도 하고···그래봤자 다시 붙어도 저한텐 안됩니다. 2차전을 해도 완벽하게 이길 자신이 있어요."

하지만 배명호는 이처럼 자신감을 내비치면서도 동시에 자만에 빠지는 것을 경계했다. 특히 나카무라 케이타로(32, 일본) 같은 선수들을 보면서 아직 더 많이 노력해야 한다는 것을 느낀다고.
 
■ 복귀전은 무조건 올해 안으로···KO 피니시 예고

지난 7월부터 경기를 뛸 수 있는 몸이 됐지만, 아직 배명호는 종합격투기 복귀전을 치를 무대를 확정 짓지 못 했다. 이미 국내 단체는 물론이고, 일본의 판크라스를 비롯해 중국, 미국 등 다양한 무대에서 오퍼가 들어온 상태다. 자연히 몸값도 뛰었다. “UFC 진출을 위한 교두보적인 성격의 단체가 필요하지 않을까요”라며 질문을 던진 필자에게 배명호는 ‘오히려 그만큼 걱정이 많다’며 고민을 털어놨다.

“사실 예전에는 UFC로 진출할 수 있는 단체를 찾았어요. 그런데 이제는 그 단체들에서 승리를 거둬도 UFC 진출이 어려울 수 있겠다 싶더라고요. 지금은 뭘 중심으로 잡고 결정해야 할지 고민 중이에요. 게다가 지금 몸 상태를 끌어올리는 훈련에 집중하다 보니 정작 경기 오퍼들을 신경 쓰지 못했어요. 아무래도 신중해질 수밖에 없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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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그래도 배명호는 올해가 가기 전에 무조건 복귀전을 치를 것이라고 장담했다. 3년에 가까운 공백도 문제없다는 입장이다. 그 기간 동안 경기를 뛰지 못 했을 뿐이지, 계속 팀매드에서 훈련을 해오며 동료들을 지켜봤기 때문이다.

"동현이 형이나 두호 같은 유명한 선수들은 말할 것도 없죠. 저희 팀에 옥래윤이라는 친구가 있는데, 사실 국내 무대에서 활동한 적이 없어서 사람들이 잘 몰라요. 하지만 우리나라 어느 단체에 데려다 놔도 이 친구 이길 수 있는 선수 많지 않을 겁니다. 팀매드 선수부에만 50명이 넘는 파이터가 있잖아요. 선수층이 두껍기 때문에 항상 스파링을 하다 보면 배울 것들이 넘칩니다."

특히 그는 복귀전을 무조건 타격을 앞세워 KO나 TKO로 마무리한다는 공약까지 세웠다. 스스로도 타격에 자신이 있다고 했다.

"강하게 생긴 상대가 한대 툭 치면 자빠져요. 그런데 제가 바로 그 위에 올라타서 눌러놓으면 거기서 뒤집질 못하더라고요. 이게 너무 편합니다. 그런데 가끔은 그 편안함에 너무 안주한 게 아닐까 싶어요. 그래서 복귀전은 무조건 KO로 끝낸다고 장담합니다. 지난 3년 가까이 이것만 생각해왔어요."

이 말을 전하며 배명호는 "솔직히 국내 파이터 중 날 제대로 맞출 수 있는 선수 얼마 없을 것"이라며 자신했다. 자신의 기량 또한 전혀 녹슬지 않았다는 말을 덧붙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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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래시토크도, 진부한 멘트도 NO···"내가 돌아왔다"

배명호는 사실 국내 종합격투기 파이터 중에서도 흔치 않은 캐릭터를 가지고 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런 흔한 말은 절대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특히 그는 "열심히 하겠다, 발전된 모습 보여주겠다, 다음 경기는 판정 말고 피니시 시키겠다 같은 판에 박힌 대답은 아마추어 선수도 다 한다"며, 차라리 코너 맥그리거(28, 아일랜드)처럼 진한 독설을 한 번 던지고 싶다는 솔직한 마음을 내비쳤다.

"처음에는 맥그리거라는 캐릭터를 싫어했죠. 그런데 계속 지켜보니 단순히 돈을 많이 벌어서 멋있는 게 아니라, 자신이 확고한 콘셉트를 갖고 밀어붙이는 모습이 인상적이더라고요. 그리고 또 재미있게도, 격투 철학도 확실해요. 경기에서도 이겨버리니깐 실력으로도 더 이상 할 말이 없게 되잖아요." 

다만 자신은 아직 그런 이야기를 꺼낼 때가 아니라고 했다. 배명호는 단순한 디스나 트래시 토크를 하더라도 실력이 받쳐준 상태에서 스스로의 이미지를 더욱 높을 수 있는 선에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에 권아솔 선수가 우리나라 격투계 화제의 중심에 있잖아요. 후두부, 권두부 이런 별명으로도 유명한데, 저는 이게 좋은 별명은 아니라고 봐요. 대중에게 어필은 확실히 했지만, 어필 외에는 남는 게 없거든요. 스타트는 좋았지만 결국 결과가 좋지 않았고. 그래서 전 이건 아직 보류입니다. "

대신 그는 누가 자신을 도발하는 것은 무조건 '오케이'라며 크게 웃었다. 아니, 오히려 아무나 제발 먼저 도발을 해줬으면 좋겠다고. 그 기운을 받아 팍팍 치고 올라갈 수 있다면 얼마든지 좋다고 했다.

그래서였을까. 인터뷰를 갈무리하며 그가 남긴 말은 "멋진 모습 보여드리겠습니다"같은 얌전한 멘트가 아니었다. 특유의 거친 목소리로 "이 자식들아, 내가 돌아왔다"라며 호탕하게 내지른 그의 얼굴에선 왠지 모르게 강자의 여유가 느껴졌다.

그렇게 '울버린' 배명호의 파이터 인생 2장이 막을 올렸다.

[사진 촬영 및 보정] 최웅재 작가
[기사] 조형규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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