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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두호(23·구미MMA)의 UFC 데뷔전 승리에 국내 격투계가 들썩였다. 격투계를 넘어 대한민국의 수많은 남자들이 이 소식에 동요하며 주먹을 불끈 쥐었다고 보는 게 적당할지도 모르겠다. 너무나 인상적인 승리에 국내 수많은 언론도 최두호를 집중했다.

지난 23일 'UFN 57'에서 최두호가 후안 푸이그에게 승리한 직후부터 현재까지 쏟아진 기사는 총 700여개에 이르며, 최두호는 이틀간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를 완전히 장악했다. 엄청난 여파에 독점인터뷰 등 이슈에 대응한 본지의 웹사이트는 두 번이나 마비되기도 했다.

최두호에 앞서 지금까지 7명의 선수가 UFC 데뷔전을 치렀지만 이렇게 강한 후폭풍을 남긴 선수는 없었다. 세기의 난타전을 벌인 정찬성의 WEC 데뷔전은 방송이 되지 않은 영향이 컸고, 마카오 대회에서 인파이팅의 끝을 보여준 남의철의 UFC 첫 경기도 이정도까진 아니었다.

18초 KO승. 이 짧았던 시간은 UFC 역사상 세 번째로 빨리 끝난 승부로 기록되며, 최두호는 데뷔전에서 최단시간에 상대를 KO시킨 선수 2위에 이름을 올렸다. 그만큼 강렬한 임팩트를 남겼음에도 보너스를 주지 않은 UFC가 야속할 정도다.

최두호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운이 좋았다"고 언급했다. 맞는 말이다. 아무리 실력이 우세해도 운이 따라주지 않으면 이런 결과를 내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나 운도 아무나에게 따르진 않는다. 만약 최두호가 아닌 다른 선수가 그 상황에 있었으면 가능했을까. 운도 능력이 있는 자에게 따르는 법이다. 가만히 있는데 상대가 알아서 쓰러지는 말도 안 되는 운을 제외하고는 말이다. 최두호의 역대급 데뷔전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프로 전적 12전…아마추어 전적은 100전?

UFC 데뷔전을 치를 때 최두호의 전적은 11승 1패. 승률이 높긴 하지만 경험이라는 측면에선 결코 특별하지 않았다. 남의철은 17승 4패의 전적으로 UFC에 진출했고 방태현은 16승 7패의 상황에서 데뷔전을 치렀다. 강경호도 UFC에 진출할 당시 18전의 전적을 보유하고 있었다. 반면 김동현, 정찬성, 양동이는 최두호보다 적은 전적으로 UFC에 진출했다. 국내 선수 중에선 딱 중간이었던 셈이다.

그러나 프로 종합격투기를 제외한 경기 경험에서는 최두호를 따라올 선수가 없다. 2007년, 고등학교 2학년 말부터 격투기를 수련한 최두호는 2008년 초부터 닥치는 대로 경기에 출전했다. 아마추어 종합격투기는 물론, 입식격투기를 포함한 다양한 경기에 출전하며 이창섭 관장과 함께 전국 팔도를 누볐다. 1개월에 두 차례 경기를 가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처음에는 패배의 쓴맛도 제법 봤다. 링에 처음 오른 시기는 운동을 시작한 지 불과 1개월 됐을 때 입식격투기였는데, 복부에 펀치를 맞고 KO되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상대는 3~4년 동안 운동을 하며 4~5전의 전적을 쌓은 선수였다. 운동 시작 2개월이 됐을 때는 종합격투기 경기에 출전해 암바로 패했고, 3개월 됐을 무렵에는 삼각조르기로 졌다. 네 번째 경기에서도 지면 격투기는 자신과 인연이 없다 생각하고 그만 두려 했다.

하지만 네 번째 경기였던 슈토 아마추어리그에서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이후 판크라스 아마리그, 킥복싱, 스피릿MC 아마리그에 출전하며 승수를 늘려갔다. 첫 승리 뒤 운동에 더 열중한 결과 성적이 좋았다. 그때부턴 한동안 승리밖에 몰랐다. 최두호 본인도 '20연승 정도'라고 말할 뿐 정확한 기록은 기억하지 못하고 있다.

아마추어 종합격투기 뿐만이 아니다. 아마추어 입식격투기, 프로 입식격투기, 산타, 주짓수 등을 가리지 않고 가능한 많은 경기를 소화했고, 그렇게 쌓은 전적이 약 100전은 된다. 아마추어 종합격투기에서만 20전 이상을 뛰었으며 프로 입시격투기 5승 1패, 아마추어 입식격투기 8승 2패를 기록했다. 토너먼트로 진행되는 주짓수에서는 수차례 우승한 만큼 정확한 전적을 헤아리기가 어렵다.

경험만큼 큰 자산은 없다. 운동을 시작한지 1개월 됐을 때부터 거의 매달 경기를 가진 최두호는 완전히 링과 매트에서 길들여진 경우라고 할 수 있다. 최두호는 그 시절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고 출전할 때였다. 그렇게 링에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긴장감도 사라졌고 실력도 빠르게 향상될 수 있었다. 아마추어 시절 충분히 경험을 쌓은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고 말한다.

2009년 11월 있었던 프로 데뷔전. 0승 0패의 전적으로 출전했지만 승부의 세계를 이미 충분히 경험한 최두호는 다른 선수들과는 다를 수밖에 없었다. 결과는 1라운드 1분 5초 만의 서브미션 승리였다.

11경기 중 10경기가 일본 '원정에 익숙하다'

아마추어 시절 수많은 경기를 치른 최두호의 데뷔전 무대는 일본이었고, UFC에 진출하기 전 마지막으로 싸웠던 장소도 일본이었다. 12번의 경기 중 11번을 일본에서 싸웠다. 지금까지 UFC에서 경기를 가졌던 국내 선수 중 원정에서 싸운 비율이 가장 높은 선수가 바로 최두호다.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프로 종합격투기에 진출한 뒤 일본에서 두 번의 입식격투기 경기를 뛰었던 경험도 있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말한다. "해외에서는 승리하기가 더 힘들다"고. 비행기를 타고 현지까지 이동해야 하며, 원하는 음식을 먹기도 어려워 컨디션을 조절하기가 한국 경기에 나설 때 같지 않다.

또 익숙하지 않은 환경과 의사소통이 원활치 않은 것에서 비롯되는 보이지 않는 어려움이 많다. 일방적인 응원은 또다른 상대다. 원정 경기일 경우 무엇보다 경기가 판정으로 끝났을 때 불이익을 받는 경우를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었다. 최두호의 유일한 1패도 패배라고 보기 어려웠다.

그러나 그런 어려움을 이겨내고 경기에서 승리했을 땐 얻는 것도 그만큼 크다. 설령 무대가 작더라도 일본에서 싸운 경험은 세계의 다른 대회에 출전했을 때 큰 자산으로 돌아온다. 원정의 환경과 분위기에 적응한 경험이 중요한 것이다.

반면 국내 무대에서 강자로 이름을 알린 선수들이 해외 대회에 출전할 때 고전하는 경우를 볼 수 있었다. 실제 현 UFC 파이터인 남의철은 국내에서 14승 무패를 기록한 반면 해외에서 남긴 전적은 2승 1무 4패로 확실한 비교가 된다.

최두호는 이번 데뷔전에서 승리한 뒤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솔직히 일본 경기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편했다. 무대나 분위기가 어떻든 어차피 둘이서 싸우는 것은 어디든 똑같지 않나.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싸우느냐다"고 말한 바 있다. 해외 경기에 충분히 적응이 된 마음가짐이 잘 드러나는 대목이다.

강한 심장과 기량의 합작품

최두호의 UFC 데뷔전을 보며 경기 결과와 별도로 놀라웠던 점은, '신인이 어떻게 저렇게 여유가 있을까'였다. UFC에서만 무려 14전의 전적을 올린 한국인 최초의 UFC 파이터 김동현보다도 여유가 있는 모습이었다. 너무 여유가 넘쳐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 없이 출전하는 선수로 보일 정도였다. 최두호는 이번 데뷔전을 자신을 위해 만들어진 무대라고 생각하는 듯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밝은 표정으로 관중들과 호흡하며 등장하는 모습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기술은 평소 훈련에서 만들어지지만, 그것을 실전에서 얼마나 제대로 사용하느냐는 멘탈에 달렸다. '기량이 아무리 뛰어나도 링에서 써먹지 못하면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말이 괜히 나온 게 아니다. 그런 면에서 최두호는 타고난 강심장이었다. 긴장감, 부담감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앞서 출고한 인터뷰에도 서술했지만, '조그마한 동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처음 간 대형 놀이터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고 봐도 될 정도였다.

기량 역시 두 말하면 잔소리다. 국내 최초로 국제전 9연승을 달성했다는 사실 만으로 더 이상 설명한 게 없다. 특히 심한 허리 부상으로 전혀 훈련을 하지 못한 상태에서 일본의 강자이자 까다롭기로 소문난 이시다 미츠히로를 KO시켰고, 사실상 한 손만으로 강타자 마루야마 쇼지를 쓰러트렸다. 곧 UFC에 진출할 실력자라는 말을 이미 3년 전부터 들었을 정도로 물건 중의 물건이었다.

최두호는 이번 데뷔전을 앞두고 몇 차례의 전지훈련을 소화했다. 다른 팀에서 운동할 경우 여러 선수들과의 훈련으로 다양한 스타일에 대한 적응력을 높일 수 있는 이점이 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자신감 상승에 있다. 비록 경기는 아니더라도, 강한 선수들과 훈련할 경우 서로의 전력을 파악할 수 있으며, 스파링에서의 만족할 만한 성과는 자신의 기량에 대한 믿음으로 이어진다. 최두호는 UFC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정찬성, 김동현, 강경호, 남의철과의 훈련으로 자신도 충분히 된다는 것을 확신한 채 미국으로 떠났다.

무난히 이긴다는 것은 모두가 예상한 바다. 그러나 최두호가 보여준 모든 것은 예상 이상이었다. 그것은 강한 심장과 실력이 있기에 가능했다. 글쓴이에게 국내 모든 선수 중 뛰어난 기량과 멘탈을 고루 갖춘 선수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가장 먼저 최두호라고 대답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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