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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에 이런 강심장을 가진 파이터가 있었나 싶다. 너무 여유가 넘쳐 아무것도 모른 채 생각 없이 출전하는 선수로 보일 정도였다. 세계 최대의 종합격투기 단체 UFC에서의 경기, 그것도 부담이 큰 데뷔전이었지만 최두호(23·구미MMA)에겐 보통의 경기와 다르지 않았던 모양이다. 긴장감을 떨쳐내고 침착히 임하는 것만 해도 대견할 텐데 최두호는 상황을 즐기고 있었다.

'실력은 좋지만 UFC 데뷔전이라는 점이 걸린다'는 주위의 우려는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했다. '조그마한 동네 놀이터에서 놀던 아이가 처음 간 대형 놀이터에서 한바탕 신나게 놀았다'고 표현하면 적절할지 모르겠다. 긴장감, 부담감, 걱정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입장할 때부터 싱글벙글 웃더니 옥타곤에서 18초 만에 상대를 눕혔다. 그동안 UFC에 진출한 국내 선수 중 최단시간에 데뷔전 승리를 따냈다.

'그래도 조금은 걱정이 되고 긴장을 했겠지' 하는 생각에 계속해서 데뷔전에 임하는 마음가짐과 생각을 들추려 했으나 돌아온 대답은 한결같았다. "별로 개의치 않았다", "특별한 것이 없었다", "일본에서 싸울 때와 같았다", "기분이 좋고 신이 났다" 등이었다. 비슷한 답변을 반복해서 듣고 있는 본 기자가 나중엔 무안해지기까지 했다.

최두호의 UFC 데뷔전은 그렇게 끝이 났다. 순식간에 경기가 끝나버려 화끈할 틈도 없었다. 2010년 WEC(현 UFC) 데뷔전에서 세기의 난타전을 벌여 화제가 됐던 정찬성과는 또 달랐다. 그야말로 순간적으로 번쩍인 '불꽃'으로 끝내버린 싱거운 승부였다.

이하는 최두호 인터뷰 전문.

- 경기 후 몇 시간이 지났다. 마음을 좀 가라앉혔을 것 같은데, 다시 한 번 소감 부탁한다.
▲ 일단 무사히 데뷔전을 끝냈다는 것 자체에 만족한다. 결과가 좋고 부상도 입지 않아 기쁘다. 예상보다 빨리 끝난 점이 조금 아쉽지만 그래도 내가 계획했던 것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다음엔 더 멋지고 보다 많은 모습 보여드리겠다. 걱정해주시고 응원해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드린다.

- 실력은 이미 정평이 나있었다. 하지만 무대가 UFC고 이번이 데뷔전이었으며 서양 선수와 처음 상대한다는 것에 대해 우려하는 분들이 많았다. 실제 그런 점이 부담되진 않았나?
▲ 왜 우려하시는 지는 잘 알지만, 솔직히 별로 개의치 않았다. 특별히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무대나 분위기가 어떻든 어차피 둘이서 싸우는 것은 어디든 똑같지 않나. 규모나 선수의 인종은 눈에 보이는 외적인 것일 뿐이다. 그런 부분 때문에 마음이 약해질 필요가 없다는 말이다. 중요한 것은 내가 어떻게 싸우느냐다.

- 꽤 오랜만의 감량이었다. 또 장소가 미국인 만큼 시차적응이 필요하며 음식도 입에 맞지 않았을 수 있을 것 같다. 컨디션 조절에 어려움은 없었나?
▲ 감량은 항상 힘들다. 약 1년 반 만에 하는 것이라 이번이 조금 더 힘들게 느껴졌지만 어차피 해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잘 끝낼 수 있었다. 관장님과 (김)진민이가 신경을 많이 써준 덕에 무난히 통과할 수 있었다. 계체 후 회복도 순조로웠다.

- UFC 데뷔전을 앞두고 잠을 제대로 못 자는 선수들이 있는데, 계체를 마치고 수면은 잘 취했는지 궁금하다.
▲ 미국에 도착한 뒤 며칠간 시차적응 때문에 새벽에 일어나는 일이 많았지만, 경기 전날에는 잠을 잘 잤다. 긴장되거나 설레서 잠을 설치진 않았다. 물론 계체 후 잘 먹기도 했다. 경기를 치를 때 90% 컨디션은 됐던 것 같다.

- 계체 때 처음으로 상대와 맞섰다. 악수와 포옹을 하는 모습으로 봐선 상대 성격이 괜찮아 보였다. 본인은 어떻게 느꼈나?
▲ 솔직히 그런 생각까진 하지 않았다. 그냥 '인터넷에서 봤던 대로 생겼구나' 정도? 그게 전부였다.

- 경기 당일 아침 기분이 어땠는지, 어떤 생각을 했는지 알고 싶다.
▲ 일본 경기 때와 다를 게 없었다. 경기장에 도착했을 때도 마찬가지로 편했다. 링이 아닌 케이지에서 싸운다는 점이 가장 다르게 느껴진 부분이었다. 사실 최근 일본 원정 땐, 지면 UFC를 못 간다는 생각에 압박감이 컸는데 이번엔 부담도 없었다. 계약을 했고 경기를 치르게 됐으니 마음껏 싸워보자는 생각만 했다.

- 계체량 때도 그랬지만 경기장에 입장하는 모습에서 여유가 넘쳤다. 즐거워 보이기까지 했다. 전혀 데뷔전에 나서는 선수처럼 보이지 않았다. 특이한 경우다.
▲ 드디어 경기를 한다는 생각에 정말 기분이 좋았다. 더군다나 입장할 때 관중들이 호응을 해 주니 신기하기도 하고 신이 나더라. 정말 기분 좋게 경기에 임했다. 계체량 때는 그냥 아무 느낌이 없었다. 어차피 체중 체크 하는 것이니까.

- 이창섭 관장과 포옹을 하지 않고 옥타곤에 들어선 이유가 뭔가?
▲ 원래 얼굴에 바세린을 바르기 전 포옹을 했어야 했는데 착각했다. 바세린을 바른 뒤 옥타곤으로 들어가라는 듯한 신호를 보내더라. 그때 아차 했다. 그리고 사부님께 들어간다고 말하고 옥타곤에 들어섰다.

- 이창섭 관장은 긴장을 많이 한 모양이더라. 계체량 때도 그랬지만 경기가 시작하기 직전에도 자신이 있어야 할 위치를 못 찾아 허둥지둥 대는 모습이었다.
▲ 사부님은 항상 긴장을 많이 하신다. 오늘 특히 그러신 것 같았다. 오히려 내가 다독여주는 입장이다. 경기 후 눈물을 터트리실 것처럼 보여 울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자리를 못 찾아 어리바리 하신 건 로드FC 케이지와 다른 게 원인이라고 하셨다. 로드FC 때는 선수소개 때 케이지에 올랐다가 바로 내려가면 코너맨 자리가 있는데, UFC는 내려와 이동해야 한다. 그걸 몰랐다고 하셨다.

- 이창섭 관장의 물개박수가 화제가 되고 있다.
▲ 영상을 보시고 많이 놀라시던 모습이 떠오른다. 사부님껜 죄송하지만 듣고 보니 정말 물개 같긴 하더라(웃음).

- 보너스가 기대됐는데 결과가 아쉽다.
▲ 솔직히 조금 기대는 했지만 크게 실망하진 않았다. 어차피 보너스를 바라보고 싸운 것은 아니었으니까. 데뷔전에서 이긴 것만 해도 어딘가. 그것에 감사하자고 생각 중이다. 앞으로도 기회는 많다고 생각한다.

- 처음 경험한 UFC 경기장, 옥타곤, 대회 시스템, 분위기 등 데뷔전을 치르면서 전반적으로 느낀 점이 있다면?
▲ 그냥 '멋지구나' 정도? 그것 말곤 없다. 경기장이 크고 사람이 많아 이전보다 확실히 신이 난 것은 있다. 싸울 맛이 나는 느낌이랄까. 메인이벤트에 출전하면 정말 기분이 좋을 것 같다.

- 경기는 초반에 끝났다. 상대가 왼손 잽을 내며 타격전을 구사할 때 어떤 생각을 했나?
▲ 어떤 생각이라기보다 잽이 나오자 연습한 라이트가 자연스럽게 나왔고, 같은 방식으로 또 나오기에 과감히 뻗었다. 하지만 언제 태클이 들어올지 몰라 속으로 경계를 했다.

- 푸이그는 경기 중단이 빠른 것에 아쉬움을 나타냈다. 본인의 생각은 어떤가?
▲ 적절했다고 본다. 파운딩을 치고 있을 때 방어를 제대로 못하고 있었다. 더 때리면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시간이 더 주어졌어도 결과는 바뀌지 않았을 것이다.

- 경기 후 매체메이커 조 실바가 좋아하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혹시 조 실바가 해준 말이 있다면?
▲ 솔직히 누가 조 실바인지 모른다. (경기 후 옥타곤에 들어와 악수를 청한 사람이라고 말하자)아... 자세히는 모르겠지만 칭찬을 좀 했던 것 같다.

- UFC 데뷔전 승리. 어떤 의미를 부여할 수 있겠나?
▲ 사실 말만 UFC 기대주지 계약을 하고 1년 동안 경기를 하지 못해 맘이 썩 편하지 않았다. 성공적인 데뷔로 아팠던 이빨이 드디어 빠진 기분이다. 가장 중요한 데뷔전을 이겼으니 이제부터는 치고 나갈 일만 남았다.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이곳에서도 조금씩 정상을 향해 올라가겠다.

- 에드가 대 스완슨의 대결에 관심을 나타냈었다. 혹시 경기를 봤는가?
▲ 에드가가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보다 더 끈적이고 강해진 것 같다. 하지만 스완슨과 붙고 싶은 마음은 여전히 변함이 없다. 사실 아직은 아무 생각이 없다. 앞으로의 계획 같은 것은 쉬면서 구상해볼 것이다.

- 바쁜 시간에 인터뷰에 응해줘 고맙다. 마지막으로 할 말이 있다면?
▲ 최두호가 드디어 UFC에 입성했다. 앞으로 한 계단씩 밟고 올라가는 것을 지켜봐주길 부탁드린다. 내년 안에 톱10에 진입하고 머지않아 타이틀까지 노릴 것이다. 옥타곤에서 파이터로서의 끝을 보겠다. 정말 자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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