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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구미MMA 소속의 UFC 파이터 최두호입니다. 지난 <파이터 스토리> 3편 [130kg 이둘희와 맞짱 뜬 격투 재능]에 이어 4편을 준비했습니다. 이번엔 무턱대고 시합에 출전했던 운동 초기 시절부터 프로에 데뷔하기까지를 다뤘습니다(^^). 그럼 시작합니다!

시합이란 것을 처음 경험한 때는 2008년 초, 주짓수와 격투기를 배운지 불과 1개월 정도 됐을 때였다. 데뷔전은 아마추어 킥복싱 경기로 기억된다. 운동을 한 경험은 적지만 사부님과 체육관 식구들의 권유에 나가봤다.

4각의 링에서 상대와 겨루는 것은 결코 만만한 게 아니었다. 밖에서는 누구와 붙어도 패하지 않았지만 격투기 데뷔전에서는 복부에 펀치를 맞고 그대로 KO되고 말았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상대는 3~4년 동안 운동을 하며 4~5전의 전적을 쌓은 선수였다. 1개월간 운동한 내가 이기기는 애초에 불가능했던 것 같다.

이후에도 시합 참가는 멈추지 않았으나 첫 승리는 멀고도 멀었다. 운동 시작 2개월 됐을 때 종합격투기 경기에 출전해 암바로 패했고, 3개월 됐을 무렵에는 삼각조르기로 졌다. 사실 네 번째 경기에서도 지면 나와는 인연이 없다 생각하고 운동을 그만 두려 했다. 만화책을 보며 알게 된 것은 타고나거나 주인공이 되는 인물들은 이렇게 연속해서 지는 경우가 없었다는 것이다(^^).

하지만 네 번째 경기였던 슈토 아마추어리그에서 처음으로 승리의 기쁨을 맛볼 수 있었고, 이후 판크라스 아마리그, 킥복싱, 스피릿MC 아마리그에 출전하며 승수를 늘려갔다. 첫 승리 뒤 운동에 더 열중한 결과 성적이 좋았다. 자세히 기억은 안 나지만 그때부턴 거의 지지 않았던 것 같다. 사부님 및 동료들과 함께 시합에 참가하느라 전국을 돌 시기였다.

2009년까지는 스피릿MC 레인저 대회에 꾸준히 출전했다. 그러다 비교적 무게감 있는 토너먼트에서 우승하며 프로 진출을 눈앞에 두게 됐다. 운동한지 8개월 정도 됐을 때 스피릿MC 레인저 토너먼트가 열렸는데, 거기서 우승할 경우 스피릿MC 본무대에 진출할 자격이 주어졌다. 내 입장에선 매우 중요한 경기였다.

지금으로 따지면 로드FC 센트럴리그나 인투리그의 프로경기 정도 되지만 그때가 더 빡셌다. 권배용, 이규명, 김기현이 같은 토너먼트에 출전했고, 프로 선수도 2~3명이나 있었을 정도로 수준이 높았다. 그 토너먼트에서 우승을 차지한 것은 운동 시작 이래 최고의 성적이었다. 물론 칭찬도 많이 들었다.

프로 종합격투기 선수에 데뷔하기 전 킥복싱 경기(프로 포함)까지 합하면 1년에 15전 정도를 쌓으며 약 40전을 소화했고, 그 가운데 20연승을 올린 적도 있었다. 1개월에 두 번의 경기를 치르기도 했다. 아무것도 모르고 출전할 때였다. 그렇게 링에 오르다 보니 어느 순간 긴장감도 사라졌다. 돌이켜 보면 아마추어 시절 충분히 경험을 쌓은 덕을 많이 보는 것 같다.

당시 스피릿MC 웰터급 챔피언이 (이)광희 형이었고 (권)아솔이 형이나 (김)창현이 형도 잘 나갔던 선수였다. 슈퍼코리안 출신 선수들은 전부 좋아했다. 레인저 토너먼트 우승으로 이제 그들과 같은 무대에서 설 수 있다는 것이 마냥 행복했다. 또 TV에 나온다는 자체만으로 기대가 컸다.

프로 데뷔전은 2008년 10월 열릴 예정이었던 '스피릿MC 18'에서 치러질 예정이었다. 참고로 그 대회의 메인이벤트는 광희 형 대 의철이 형의 타이틀매치였으며, 나는 지금의 로드FC 영건스처럼 대회 앞 순서에 배치됐다.

너무나 기다린 데뷔전이라 경기 직전의 수학여행도 포기했다. 8kg의 감량도 해야 했다. 그런데 불과 며칠을 남기고 대회가 취소되는 사태가 발생했다. 감량도 거의 끝내가던 상태였다. 그 시점에 친구들은 수학여행을 떠났다.

선수로서 정말 억울한 일인데, 당시엔 어리고 감량이 힘들었던 나머지 맛있는 것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오히려 기분이 좋았다. 소식을 듣고 곧바로 매점을 찾아가 컵라면을 먹었던 기억이 난다(^^).

대회가 취소되며 스피릿MC도 폐업했고, 어렵게 따낸 프로 진출권도 바람과 함께 사라졌다. 마땅한 국내 대회가 없었기에 언제 프로 데뷔전을 치를 수 있을지 알 수 없었다. 격투기를 시작한 이래 국내에서 종합격투기가 가장 침체됐던 시기였다.

프로 데뷔전은 오히려 입식격투기에서 먼저 치렀다. 물론 이전에도 프로 입식격투기 경기를 가진 적이 있지만, 2009년 6월 출전한 무신이란 대회는 무대도 컸고 방송도 되는 등 누구나 인정할 만한 프로 격투기 대회였다. 이기고 나니 학교에서의 반응이 장난이 아니었다. 부모님도 관람을 오셨었다.

50일 뒤에는 무신의 두 번째 대회에서 오두석 선수와 맞붙었다. 오두석 선수는 킥복싱과 복싱의 챔피언에 올랐을 정도로 입식격투기 강자로 통했다. 당연히 내가 질 것이라는 의견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지긴 했다. 하지만 강자와의 경기를 준비하며 짧은 시간 실력이 크게 상승해 대등하게 싸울 수 있었다. 무승부로 보는 이들도 많았다. 지금 영상을 봐도 바로 이전 경기와 실력 차이가 확연하다.

그리고 4개월 정도 뒤 드디어 종합격투기 프로 경기를 가질 수 있었다. 대회가 크지 않았고 무대도 한국이 아니었으며 TV 중계도 되지 않았다. 그라찬(GRACHAN), 일본에서도 작은 편의 대회였고, 사실 유명 선수가 나오는 무대도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흥분했다. 해외에 나간 적도 없는데, 처음으로 나가는 해외에서 데뷔전까지 치르니 설렐 수밖에 없었다. 그때가 2009년 11월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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