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에서 활약하는 국내 헤비급 선수를 본 지가 언제인지 가물가물할 지경이다. 2004년 최무배가 프라이드에 진출한 데에 이어 김민수가 K-1 히어로즈에서 활동했지만 이후 해외 메이저단체에서 활동하는 헤비급 선수는 볼 수 없었다.

실력자로 관심을 받았던 양동이, 김재영, 양해준이 경쟁력을 높이기 위해 미들급으로 내리면서 국내 헤비급은 맥이 끊겼다. 이상수는 라이트헤비급으로 내리고 해외단체 챔피언까지 올랐으나 이후 종합격투기에서 멀어졌고, 기대주로 불린 김희승 역시 프로에 정착하며 미들급을 택했다.

최근 반가운 소식이 들려왔다. 전국체전 2회 우승을 비롯해 각종 전국 대회에서 10회 이상의 우승 경력이 있는 헤비급 레슬러가 종합격투기에 데뷔한다는 것이었다. 그 주인공은 심건오(25·팀피니쉬), 최근 격투 서바이벌 프로그램 <주먹이 운다>에 출연했다가 즉석에서 로드FC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았다.

종합격투기 경력 이제 4개월. 큰 활약을 기대하기엔 수련 기간이 짧고, <주먹이 운다>에서 잠시 스파링을 한 것 외에 보여준 것이라곤 아무것도 없다. 하지만 젊은 헤비급 엘리트 레슬러가 도전하는 것 자체가 반갑고, 격투기 팬으로서 오래전부터 선수의 꿈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에서 시선이 쏠린다.

이하는 심건오 인터뷰 전문.

- 종합격투기 적응은 잘 되고 있나?
▲ 아무래도 타격이 능숙하지 않다 보니 복싱을 집중적으로 배우고 있다. 대전 팀피니쉬에서 운동하며 서울에 갈 때는 싸비MMA에 들려 이재선 감독님에게 상체 움직임이나 펀치 기술 등을 전수받는다.

- 훈련은 어떻게 하고 있는가?
▲ 경기가 잡히기 전인 만큼 오전에는 크로스핏, 오후에는 체육관 훈련을 하고 있다. 시간이 날 땐 로드웍도 한다. 출전이 확정되면 체육관에서만 두 타임 훈련을 실시할 계획이다.

- 레슬링에서 은퇴한 뒤 다른 일을 했던 것으로 알고 있다. 종합격투기에 뛰어든 배경이 궁금하다.
▲ 실업팀이 해체되며 상심이 컸다. 지금까지의 인생 절반을 레슬링에 투자했는데 소속팀이 사라지니 배신감 같은 게 생기더라. 그래서 운동은 절대 하지 않겠다는 생각으로 마냥 놀았다. 술을 많이 마시며 한동안 폐인처럼 살았다. 이후 배운 일도 나름대로 재미는 있었다. 근데 하던 운동을 안 하니 몸이 찌뿌둥하고 짜증까지 나 잠이 오지 않았다. 인생에 낙이 없는 기분이랄까. '아직 운동을 더 할 수 있는데 꼭 다른 일을 해야 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그런 고민을 대환이 형에게 털어놨더니 종합격투기를 추천해주셨다. 그리고 곧바로 대전의 팀피니쉬를 찾았다. 그때가 지난 6월이었다.

- 레슬링을 계속 할 수 있는 다른 방안은 없었나?
▲ 방법이 있긴 했는데 이런저런 문제로 꼬였다. 자세히 말하긴 어렵다.

- <주먹이 운다>에는 어떻게 도전하게 됐나?
▲ 원래 계획은 아마리그부터 밟는 것이었다. 경험을 쌓는 좋은 방법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체급이 높아 신청할 때마다 상대가 없었다. 그러던 중 <주먹이 운다> 지원자 모집을 봤다. 국내 헤비급 선수는 매우 적고, 최근 <주먹이 운다>를 통해 로드FC에 데뷔한 (박)현우 형과, (김)재훈 형을 보니 나도 가능하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혹시나 하는 생각에 한 번 던져봤는데 결과가 좋아 기쁘다.

- 손혜석과의 난타전이 인상적이었다. 노린 것이었나?
▲ 사실 운동을 제대로 하지 못한 상태에서 나선 터라 긴장을 많이 했다. 3분을 버틸 수 있을지 심히 걱정됐다. 어차피 체급 차이가 나는 만큼 스텝으론 고수들을 따라갈 수 없지만, 고수인 만큼 분명 먼저 다가올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때마침 혜석이 형이 먼저 공격을 하기에 발을 붙이고 싸웠다.

- 차정환에겐 타격을 많이 허용하던데.
▲ 30초 정도 난타전 벌이고 1분 동안 맞았다. 잠시 난타전 하시더니 갑자기 스텝을 밟으시며 거리를 잡고 때리시더라. 맞는 것이 자신 있고 헤드기어도 낀 터라 호기를 부렸다. 체력이 바닥나 30초만 더 진행됐으면 기절했을지도 모른다(웃음).

- 장점인 레슬링 기술은 거의 보여주지 못했다.
▲ 타격을 보여주고 싶은 마음이 앞서기도 했지만 글러브가 너무 컸다. 14온스 글러브는 손에 맞는 게 없어 16온스를 착용했다. 클린치나 태클을 시도했으나 어려움이 있었다.

- 바로 로드FC와 계약을 체결했다.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을 것 같다.
▲ 내 인생 최고의 날이었다. 녹화 후 대표님이 바로 계약서를 보내줄 테니 열심히 운동하라고 말씀하셨다. 전에 문근트 슈즈 난딘 에르덴도 나와 비슷한 경우였다. 다만 그 상황이 방송에 나오지 않았을 뿐이다.

- <주먹이 운다>에는 계속 출연하는가?
▲ 도전자로선 참가하지 않는다. 자세히는 모르겠으나 게스트 정도로 한 번씩 얼굴을 비추지 않을까 싶다.

- 레슬링을 오래 수련했지만 종합격투기는 더 넓은 차원의 종목이다. 특히 그래플링 종목에 몸담다가 격투기를 하는 선수들의 경우 타격에 두려움을 나타내곤 한다. 본인의 경우는 어떤가?
▲ 대학교 때 종합격투기 훈련을 처음 접했고, 이후 1개월에 한 번씩 훈련을 했다. 솔직히 레슬링과 비슷한 부분이 많아 편한 느낌이다. 노래로 비유를 하자면, 처음 듣는 곡인데 멜로디가 어디서 들어본 듯하다. 솔직히 펀치를 허용하는 것이 무섭진 않다. 남들은 타격을 두려워해 고개를 돌리거나 눈을 감거나 한다는데 이상하게 난 그렇지 않았다. 레슬링은 시종일관 상대와 힘싸움을 해야 하기에 너무 힘들다. 하지만 종합격투기는 탐색전을 벌이며 하나씩 만들어 갈 수 있다는 것이 재밌다.

- 어려운 점이 있다면?
▲ 레슬링과 타격을 섞는 것이 어렵다. 조금씩 내 스타일을 만드는 중이다. 감독님이 큰 방향을 정해주시고 선수들이나 타 체육관 지도자님들에게 세부적인 부분을 배운다. 가장 어려운 부분은 주짓수를 활용한 그라운드다. 레슬러들의 공통적인 약점인데 바닥에 깔릴 때 약하다. 특히 나의 경우 체구가 크다 보니 더 힘들다. 깔리기만 하면 체력이 두 세배는 빨리 소진되는 느낌이다.

- 레슬링 경험은 좋은 기반이 되지만 그것에만 의존할 수 없다. 어떤 스타일의 선수가 되고 싶나?
▲ 내가 가장 좋아하는 선수는 피터 아츠다. 화끈한 타격가가 좋다. 종합격투기에서는 맘은 주니오르 도스 산토스 같은 선수가 되고 싶지만, 레슬링 경험이 장점이기에 대니얼 코미에나 케인 벨라스케즈가 가장 이상적이지 않나 싶다. 케인의 레슬링은 정말 기계처럼 깔끔하고 그 흐름을 5라운드까지 똑같이 이어간다는 점이 징그러울 정도다. 개인적으로는 코미에 스타일에 좀 더 정감이 간다.

- 생각보다 종합격투기를 쉽게 받아들이는 느낌이다. 아직 매운 맛을 못 본 것 같은 생각도 든다(웃음).
▲ 그렇지 않다. 훈이 형과 그라운드 훈련을 하다가 목이 부러지는 줄 알았고, 대환이 형에게 두들겨 맞아 턱이 돌아갈 뻔했다. 대환이 형은 끊임없이 압박하고 펀치도 정말 세다. 한국의 케인이다(웃음). 옛날에 내가 레슬링을 가르쳐줄 땐 펀치를 피한 뒤 중심을 무너트리면 넘어가곤 했는데, 이제는 반대 방향으로 나에게 되치기를 하는 수준이다.

- 레슬링 경험이 종합격투기를 수련함에 있어 어떤 장점이 되는가?
▲ 이런 말을 하면 욕을 먹진 않을까 우려가 되는데, 솔직히 스탠딩이 편하다. 넘어지지 않을 자신이 있기 때문이다. 킥복서들은 보통 중심이 높은 반면 레슬러들은 중심이 낮다. 타격가와 붙으면 내가 맞겠지만 상대가 나를 넘기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 있게 휘두를 수 있다. 레슬링과 복싱을 똑같이 짧은 기간 배운다고 치면 상대적으로 타격 경쟁력이 높은 것 같다. 레슬링은 시간이 꽤 걸린다. 처음에는 종합격투기 스파링에서 내 레슬링을 잘 사용하지 못했지만, 타격을 조금씩 섞다 보니 되는 것을 느낀다.

- 레슬러들을 보면 레슬링에 의존하다 발전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 엘리트 운동을 한 선수들은 자부심이 크다. 그래서인지 새로운 종목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 마크 콜먼이 그런 유형이 아닐까 싶다. 그런 선수들은 종합격투기보단 이종격투기를 하는 느낌이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면서 그런 선수들이 사라졌다. 코미에나 케인만 보더라도 종합격투기에 적합한 선수가 되지 않았나. 자신의 장점을 살리기도 했고. 그들의 경우 타격을 45시간 훈련할 때 레슬링을 2시간 수련해도 실력이 유지된다. 나의 경우 8대 2 정도로 타격에 비중을 두고 있다. 하지만 타격은 여전히 어렵다. 레슬링과는 전혀 다른 세계다.

- 종합격투기에 맞는 체력을 만드는 것도 중요할 것 같다.
▲ 맞다. 그 부분의 차이가 크다. 레슬링은 3분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포인트를 따내야 하기에 조금의 쉴 틈도 없이 밀어붙여야 한다. 종합격투기의 경우 경기를 뛰는 시간은 길지만 쉬거나 생각할 여유가 있다. 레슬링에 비해 덜 지치지만 5분 3라운드를 뛰어야 한다. 나의 경우 그라운드에 처했을 때 체력이 빨리 소진되는 것이 숙제다.

- 데뷔는 언제 할 예정인가?
▲ 주최측의 입장을 따라야 하는 만큼 말하기 곤란하다. 상대도 마찬가지다.

- 본인의 체급에 맞고 위치가 비슷한 선수로 박현우와 김재훈이 먼저 생각난다. 상대로 어떤 것 같나?
▲ 현우 형과는 한번 붙고 싶다. 스치면 간다는데 나에게도 통할지 궁금하다. 그리고 사커킥은 너무 심했다. 재훈이 형과의 대결을 엘리트 스포츠인 입장에서 보자면 개싸움이었다. 추진된다면 체중을 뺄 수도 있다. <주먹이 운다> 선후배 대결이니 재밌을 것 같다.

- 현재 체중이 어떻게 되는가?
▲ 쉬면서 140kg까지 늘었다가 요즘 10kg 줄었다. 경기를 뛸 땐 125kg 정도가 이상적일 것 같다.

- 사실 종합격투기에서 성공하기란 어렵다. 본인이 레슬링 실업팀에서 올린 수익 이상을 벌기도 쉽지 않을 것 같다. 종합격투기를 택한 궁극적인 이유와 경제적인 부분에 대해 어떤 생각이 있는지 궁금하다.
▲ 옛날부터 마지막으로 도전해볼 것이 종합격투기라고 다짐했다. 레슬링을 할 때부터 강한 선수와 붙고 싶었다. 맞으면 어떤가. 어차피 칼을 들고 나오는 것이 아닌 하나의 경기인데 겁을 먹을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 역시 프라이드 때 좋아했던 선수들을 비롯해 세계적인 강자와 겨루고 싶다. 과거 이종격투기가 종목별 최강자간의 대결 콘셉트 아니었나. 내가 어느 정도까지 올라갈 수 있고, 알려진 실력자들이 얼마나 강한지 느껴보고 싶은 마음이다. 부와 명예는 생각하지 않는다. 하고 싶고 목표로 했던 것을 하는 자체에 의미가 있다. 현실로 돌아오기 전 한동안 꿈에 취할 생각이다. 몸이 노쇠해지기 전 3년간 몰입할 계획이며, 서른이 넘으면 체육교사의 길을 걸어야할 것 같다.

- 앞으로 좋은 일이 가득하길 바란다. 끝으로 짧고 굵은 포부 한 마디 부탁한다.
▲ 아시아에 강자들이 여럿 있지만 전부 경량급 위주다. 동양인도 헤비급에서 성공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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