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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미국 버지니아주 노포크 타이즈(볼티모어 오리올스 트리플 A팀)의 홈구장인 하버파크를 방문한 날은 운 좋게도 윤석민이 볼티모어 입단 후 여덟 번째 마이너리그 등판을 앞둔 시점이었다. 5월 15일 노포크 타이즈(볼티모어 산하)와 루이스빌 배츠(신시내티 레즈 트리플 A팀)전 선발 투수로 마운드에 오른 윤석민.

그런데 미국 국가 연주 때 모자를 벗어 예를 표한 그의 헤어스타일이 눈에 띄었다. 왜냐하면 머리카락이 하나도 없는 삭발 상태였기 때문. KIA 시절에도 성적 부진으로 인해 단체 삭발을 한 모습은 본 적이 있지만, 미국에서 한국 선수가 삭발을 하고 나타난 건 정말 드문 경우라 윤석민의 민머리를 보는 내내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날 경기에서 윤석민은 5회까지 3-1로 리드하며 10타자 연속 범퇴 처리를 하다 6회초 펠릭스 페리즈로부터 3점 홈런을 맞는 바람에 2승이 불발됐고, 팀은 5-6으로 패했다.

때마침 경기장에는 윤석민의 부모님이 관전 중이었다. 윤석민의 부모님은 그날 미국에 도착했고, 시카고에서 노포크로 환승 후 내리자마자 곧장 경기장으로 직행했다고 한다.

노포크에서 두 남자의 동거 생활

“부모님이 미국에는 처음 오셨다. 영어도 안 되고, 길도 잘 모르시는 탓에 경기장 오실 때까지 불안한 마음이 컸었다. 오죽했으면 워밍업을 하면서도 휴대폰을 손에서 놓지 못했을까. 저스틴(통역)이 공항으로 부모님을 모시러 갔었는데 서로 다른 장소에 있느라 쉽게 만나지 못했다. 마운드에 오르기 직전까지 부모님이 무사히 도착하시는지의 여부로 인해 마음이 초조했었다.”

윤석민은 그렇게 힘든 여정을 거쳐 노포크에 도착한 부모님을 마운드에서 확인했다고 한다. 부모님이 포수 바로 뒤쪽 자리에 앉아계셨기 때문이다. 

“부모님이 앉아 계시는 걸 본 후 비로소 마음이 놓였다(웃음). 내가 고생한다고 두 분이 멀리서 오시긴 했지만, 앞으로는 부모님이 고생하실 것 같다. 이곳 지리를 전혀 모르시고 의사소통도 쉽지 않아 내가 원정을 떠나면 두 분은 아마 집에만 머무실 것이다.”

윤석민은 통역 저스틴 유와 함께 노포크 공항 근처에 위치한 아파트를 렌트해서 살고 있다. 윤석민보다 나이가 어린 저스틴 유는 오로지 통역 업무만 보는 존재라고. 같이 살면서도 식사준비, 빨래, 청소 등은 전적으로 윤석민의 몫이기 때문이다.

“빨래를 시키면 세탁물을 5시간이나 돌리는 바람에 옷을 망가트린 게 한두 벌이 아니다. 설거지를 하면 깨끗이 치우질 못한다. 불안해서 시킬 수가 없다. 아마 일부러 더 그러는 것 같다. 일 시키지 말라고(웃음).”

KIA 시절, 윤석민은 SK로 이적한 진해수와 ‘동거’를 한 적이 있었다. 워낙 깔끔한 성격의 진해수 덕분에 윤석민은 모든 걸 진해수에게 의지하며 살았단다. 지금 그 벌을 받고 있는 것 같다며 활짝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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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삭발, 지금은 후회!”

윤석민에게 왜 삭발을 했느냐고 물었다. 그는 처음에는 “그냥 시원하게 깎은 것”이라고 대충 대답을 하다가 나중에는 “야구가 안돼서 자른 건 절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어머니가 삭발한 내 모습을 보자마자 눈물을 흘리셨다. 속상하셨던 모양인데, 야구와 별다른 연관이 없기 때문에 울지 말라고 말씀드렸다. 삭발하고 다음날 야구장으로 출근했다가 아주 뜨거운 반응을 접했다. 코치부터 선수들까지, ‘왜 그런 헤어스타일을 했느냐’ ‘저스틴이랑 내기해서 졌느냐’며 궁금증이 폭발하더라. 머리숱도 적어지고 해서 자른 건데, 지금은 무척 후회하고 있다. 불쌍한 놈이 더 불쌍해 보이는 듯 해서.”

 윤석민이 속해 있는 노포크 타이즈는 버지니아 비치와 가까이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생활한지 2개월 가까이 되는 윤석민은 아직까지 해변 근처에도 못 가봤단다.
“한국에선 9개팀 경기로 치러지면서 9연전을 할 때가 있었는데, 그 당시 9연전 자체가 엄청 ‘빡센’ 일정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러나 여기 와선 단 하루도 경기를 쉬어본 적이 없다. 10연전 15연전은 우습게 생각한다. 장거리 이동까지 고려한다면 이곳 선수들 체력이 정말 대단한 것 같다.”

트리플 A에서 활약 중인 윤석민은 원정 경기 이동 수단이 버스이다. 장거리는 7시간 정도 타고 간다고. 마이너리그 중에서도 가장 레벨이 높은 팀에 있다 보니 더블 A나 싱글 A에 있는 선수들 보다는 그리 고생을 많이 하는 것 같지 않다는 말로 위안을 삼기도 한다.

동료들의 첫 승 선물, 감동 그 자체

윤석민은 지난 10일 인디애나폴리스 인디언스(피츠버그 파이어리츠 산하)와의 경기에 선발 등판해 5이닝 5피안타 2탈삼진 3실점을 기록하고 첫 승을 거뒀다. 마이너리그 7번째 등판에서 거둔 반가운 승리였다. 마이너리그의 첫 승리가 윤석민에게 큰 영향을 미치진 않았을지라도 팀 동료들이 첫 승을 기념하기 위해 선물한 ‘조니워커 블루 레이블’은 감동을 선사했다.

“선수들이 그 술 병 케이스에다 일일이 사인을 적어서 보내줬다. 다른 선수들은 그렇게 챙겨주지 않는 편인데, 아마도 내가 미국에 와서 올린 첫 승이라 선수들이 뜻을 모은 듯 하다. 생각지도 못했던 선물을 받고 살짝 울컥했다. 아마 그 술은 영원히 마시지 못하고 보관만 할 것 같다.”

지난 2월 볼티모어와 3년 계약을 맺고 미국에 발을 들여놓은 윤석민은 올시즌 마이너리그에서 수업을 받기로 예정돼 있었다. 내년부터는 마이너리그 거부권이 적용돼, 무조건 메이저리그로 올라가게 된다. 1년 정도는 미국 야구의 적응기로 삼고 마이너리그에서 경험을 쌓고 있는 그이지만, 사실 첫 승을 올리기까지 험난한 과정을 거쳐야만 했다. 시즌 첫 등판에선 2.1이닝동안 9실점으로 무너졌고, 여섯 번째 등판에선 3이닝 만에 8실점하며 패전투수가 되고 말았다. 더욱이 9번째 선발 등판에서는 타자가 친 타구에 맞아 조기 강판되는 불운을 겪기도 했다.

“지금 속한 팀이 리그 우승을 다투는 팀이 아니다보니 코칭스태프에서는 선수들을 메이저리그로 올려 보내는 데 더욱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래서인지 선발투수도 4회 초가 되면 무조건 바꾼다. 어떤 경우에도 투구수가 100개를 넘기는 법이 없다. 선수를 보호하기 위해서다. 이러한 시스템이 지금의 나하고 맞는 듯하다.”

볼티모어 스프링캠프에 참가할 때만 해도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갖고 메이저리그 로스터에 올라가기를 기대했다고 말하는 윤석민. 그러나 마이너리그로 내려온 후 시간을 갖고 천천히 몸을 만들어 가는 경험 속에서 그는 당시 빅리그가 아닌 트리플 A로 내려온 게 다행이었다는 생각을 갖는다.

“만약 메이저리그에서 시작했더라면 투구 폼은 둘째치고라도 성적을 내야 하기 때문에 좋지 않은 폼으로 무리한 투구를 할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그럴 경우 나한테 미래는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었다. 지금 내 몸 상태에선 메이저리그가 아닌 마이너리그가 맞춤복이나 다름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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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날 위해 투구 폼 수정 중

지난 2월, 윤석민은 미국행 비행기에 몸을 실으며 마음속으로 다음과 같은 다짐을 하게 된다. 

“첫 번째 목표는 어깨 부상 전의 폼으로 돌아가는 것이었다. 팔의 각도가 1cm만 벌어져도 투구시 굉장히 불편해진다. 던질 때 팔의 각도가 10cm는 벌어진 것 같은데 정작 비디오를 보면 아주 미세한 차이밖에 안 날 때가 있다. 팔이 불편한 데도 그 차이가 얼마 안 나는 것이다. 무엇보다 던질 때 팔이 불편하지 않도록 신경을 쓰고 있다. 그런 과정 중에 있다 보니 한국에서처럼 스피드가 나오지 않는다.”

윤석민은 마이너리그 첫 등판과 여섯 번째 등판에서 9실점, 8실점을 했던 상황을 끄집어냈다. 지금은 자신의 성적에 대해 신경 쓰고 있진 않지만, 그래도 9실점이나 하는 경기는 선발투수로서 문제가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 놓았다. 
“폼을 바꾸는 중이지만, 결국엔 그런 얘기도 핑계에 불과하다. 아무리 어려운 상황이라고 해도 8점이나 9점을 내주는 일은 없었어야 한다. 아무리 힘들어도 시즌 종료 후 성적을 계산했을 때 어느 정도 봐줄 만한 숫자는 나와야 한다고 본다. 더 나은 미래를 위해 폼을 바꾼다고 해도 기록은 좋아야 한다.”

스프링캠프 때 야구장 가는 게 불편했다!

윤석민은 그동안 몇 차례 메이저리그로의 복귀 가능성이 점쳐졌다. 빅리그 마운드에 자리가 빌 때마다 윤석민의 콜업이 기대를 모았던 것.

“한국에 그와 관련된 기사가 나갈 때쯤이면 난 이미 우리 팀의 어느 선수가 짐을 싸서 볼티모어로 향했는지 알고 있는 상황이다. 이미 결정된 일인데도 한국에선 마치 내가 곧 빅리그에 올라갈 것처럼 기대를 부풀리는 바람에 난감한 적도 있었다. 지금은 메이저리그에 올라가는 게 중요하지 않다. 솔직히 거기에 갈 만한 실력도 안 갖춰졌다. 물론 한 번이라도 경험을 해보는 것과 계속 이렇게 있는 것과는 차이가 있겠지만, 지금은 마음을 비우고 폼 만드는데 더욱 집중하는 게 효과적이라고 생각한다.”
윤석민은 맨 처음 볼티모어 스프링캠프에 합류했을 때 처음 경험하는 외국 생활과 일면식도 없는 선수들, 그리고 불편한 의사소통 문제 등이 복합적으로 발생되면서 막막함으로 다가왔다고 고백했다.

“스프링캠프에 합류한지 한 달 동안은 아침에 눈 뜰 때마다 ‘오늘은 또 어떻게 보내지?’하는 생각과 함께 야구장 가는 게 불편했다. 선수들이 인사조차 안했다. 그들의 얼굴을 보면 답답함이 물밀 듯 했다. 그러나 지금 여기선 낯가림이 사라졌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몸으로 부대낀다. 장난치고 웃고 떠들고…. (류)현진이가 왜 유리베, 푸이그 선수들과 몸으로 얘기하는지 이해가 됐다(웃음). 지금은 야구장 오는 게 즐겁다. 마음이 편하기 때문이다.”

평소 친하게 지내는 후배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서 성공가도를 달리고 있는 터라 윤석민으로선 류현진의 승승장구에 다소 영향을 받을 법도 하지만, 그는 다음과 같은 얘기로 기자의 상상력에 브레이크를 걸었다.

“지금은 비록 고단한 길을 걷고 있지만, 나중에 이 시기를 돌이켜보면 엄청난 경험과 교훈으로 남을 것 같다. 왜냐하면 메이저리그에서만 뛰는 선수는 마이너리그의 생활에 대해 지식만 있을 뿐 배움은 없는 게 아닌가. 빅리그에만 있었다면 전혀 알 수 없는 색다른 상황들을 체험하면서 내 자신과 내 야구가 함께 성장해 가는 느낌을 갖는다. 그래서 지금은 메이저리그의 선수들이 부럽지 않다.”

미국에 온 후 윤석민은 자신의 트위터를 통해 팬들과 소통하고 있다. 지난 22일 샬럿 나이츠와의 원정경기에 선발 등판했다가 타구에 무릎을 맞고 강판당한 후에는 시퍼렇게 멍이 든 무릎을 찍어선 트위터에 올려놓기도 했다.
“미국에 와서 보니까 나를 응원하고 좋은 메시지를 남기는 팬들이 고마웠다. 그분들의 글을 읽다보면 절로 기분이 좋아지더라. 그래서 트위터에 가끔씩 내 글이나 사진을 올렸다. 팬들에 대한 고마움의 표현이었다.”

윤석민은 옛날로 돌아간다고 해도 일본이 아닌 미국야구를 택했을 것이라고 말한다. 어렸을 때부터 입버릇처럼 말했던 메이저리그가 도전의 대상이고, 눈앞에 있으며, 곧 올라갈 수 있는 무대이기 때문이다. KIA 양현종과 종종 문자를 주고받으며 KIA 선수들의 소식을 전해 듣고 있다는 윤석민은 ‘과거’가 아닌 ‘오늘’을 충분히 즐기고 있었다. 다음은 그가 인터뷰 말미에 남긴 진심어린 메시지이다.

“난 지금 얻어맞는 게 두렵지 않다. 아니 더 맞고 깨지고 넘어졌으면 좋겠다. 그래야 어떤 상황이 닥쳐도 흔들림 없이 내 자신을 지킬 수 있으니까. 비난도 악플도 두렵지 않다. 난 그저 나한테 주어진 길만 바라보고 묵묵히 걸어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