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을 뜨고나니 어제 일이 잘 기억나지 않는다. 피곤함에 오전을 전부 잠으로 소비하고 꿈벅꿈벅 눈을 비비며 되새겨보지만 내가 어제 그곳에 있었던게 맞나? 눈으로 귀로 피부로 그 열띠던 공간에 함께 했던 것이 맞나? 의아하다. 지난밤 꿈을 눈 깜짝할 새 까먹을 듯 해 지금 바로 필사적으로 기억해내며 어제를 추억해본다.


  처음 파포를 개최한다는 소식을 접하고는 고민이 많았다. 추운 날 이 겨울 밖에서 덜덜 떨어야겠지. 실시간으로 중계도 해준다잖아. 11시쯤 끝날 것 같다는데 엄마한테는 뭐라고하지? 그러나 다시 없을 기회다. 이번 기회를 놓치면 학업과 취업으로 이런 자리엔 참석하지 못할 것 같았다. 2월 5일 전날밤, 파포에 가기 전 설렌 마음을 부둥켜 안고 일찍 잠에 들었다. 하지만 너무나도 부푼마음 때문이었을까, 간신히 눈을 붙였다 뗀 수준이었다. 찌뿌둥한 몸을 애써 추스르며 현장으로 출동했다. 조금은 늦은 도착이었다. 오랜시간 줄 서 있을 각오를 하고 간 터라 완전무장을 하고 갔기 때문에 추위는 느끼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얼마지나지 않아 체감온도가 급격히 떨어졌다. 다리는 아프지, 손은 빨갛게 얼어붙어 떨어져나갈것 같지..
  중간에 지나가던 아저씨가 어이없다는 듯 말을 걸었다. '그렇게 게임이 좋아요?' 순간, 따뜻한 집을 두고 내가 왜 여기 있는거지? 의문이 들었다. 몸이 피곤하니 마음이 약해진거다. 어찌어찌 입장시간이 되고 나자 아무 생각이 안나더라. 언제쯤 내 차례가 되려나.. 하는 마음뿐.
  그리고 드디어 입장.


  파이널포라고 적힌 주황색 팔찌를 받고나자 오기 전 긴장 설렘 초초했던 감정이 상기됐다. 1층에 가서 앉으려고 했는데 스텝 분이 혼자오셨어요? 라고 물어서 끄덕끄덕했더니 지금은 2층가시는게 더 나을거에요. 라고 해 2층으로 올라왔다. 지금와서 생각해보면 사진을 찍을 예정이었기 때문에 1층이 더 나았을 거란 생각이 들지만 뭐. 전체적인 상황이 잘 보여서 좋았다. 1층에 앉아있었으면 사람들 머리에 가려서 안보였을 것 같으니까. 스텝분 감사해요.


  또다시 길게만 느껴지는 시간이 지나고 경기 시작됐다. 해설진의 재치있는 해설, 팬들의 열띤 함성소리, 선수들의 깨알같은 채팅과 과거를 연상시키는 재밌는 경기들. 그 무엇하나 놓칠새라 눈과 귀에 집중하고 셔터를 누르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하나!둘!셋! ㅇㅇㅇ화이팅!' 응원도 하고 예능을 선보이는 강민선수와 박정석 선수의 깨알 채팅과 표정을 선명하게 실시간으로 보면서 마치 옛 스타의 전성기를 함께하는 듯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감격 또 감격이다. 시간이 어떻게 흘러간지 모르겠다. 밖에서 기다리던 시간은 그렇게 길게 느껴질수가 없었는데 경기장 안에서 흘러간 시간은 딱히 한 게 없는거 같은데도 금방 지나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이렇게 현실감이 없는건가.


  게임과 만화만 접하면 큰일이라도 난 것 마냥 혼을 내시는 부모님덕에 집에서 게임을 자주할 순 없었다. 때문에 학원을 빠지고 몰래 가던 pc방 조차도 마음 굳게 먹고 한 일탈이었다. 그저 오빠가 집에서 엄마 없을때 몰래하던 스타를 구경하고 유즈맵에서 노는게 낙이었다. 전술? 전략? 그런건 몰랐다. 줄창 방어만 하다가 ㅈㅈ치는게 나의 스타였으니까. 너무 어렸다. 대충 경기를 보고 엉망으로 따라하기만했지 게임을 '제대로' 즐길 줄 몰랐던 나이였다. 그런 나에게 경기장을 찾아가라고? 무리. 그건 그당시 마치 천지개벽과도 맞먹는 엄청난 일이었다. 지금와선 그런 안타까움도 든다. 조금만 더 일찍 태어날껄. 그럼 그 당시의 생생함을 함께할 수 있었을 텐데.


 그래도 이번에 조금이나마 그 한을 풀었다. 모두가 웃었던 축제의 장에 함께했으니까. 아이돌 팬싸인회 같은 뜨거운 열정, 안타까운 탄성, 아쉬워하기도 즐거워하기도 하는 목소리들. 그 모든 것이 새로운 경험이었다.



경기를 기다리며 길게 늘어서있는 행렬을 보며 행인 중 한명이 말하더라.
'미친놈들.'
울컥하지 않았다. 맞다. 나뿐만이 아니라 모두 미쳐서 그자리에 갔다.
그 미친놈들은 바란다. 파이널 포가 파이널이 아니기를.


또 열어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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