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 그를 직접 만나 것은 2003년 봄이었습니다.
당시 박찬호가 뛰던 텍사스 레인저스가 스프링 캠프를 플로리다에서 애리조나의 서프라이즈로 옮긴 첫 해, 시애틀 매리너스가 시범 경기를 위해 서프라이즈 스타디움을 방문했습니다. 경기가 끝나고 매리너스 버스에 선수들이 승차하는데 앳된 동양계 청년이 눈에 띄었습니다. 눈이 부리부리하고 어린 모습이 청년이라기보다는. 씩씩하면서도 약간은 수줍음을 머금은 소년에 가까웠습니다. 선한 웃음이었지만 앙다문 입술에서 의지를 느끼게 했습니다.





< 28일 알링턴 홈구장에서 입단식을 하면서 추신수는 공식적으로 텍사스 레인저스의 일원이 됐습니다. 사진 좌부터 다니엘스 단장, 추신수, 워싱턴 감독, 에이전트 보라스. 사진=MLB.com캡쳐 >

당시 만 20세의 프로 3년차이던 싱글A 선수였지만 이미 메이저리그 시범 경기에 불려가 함께 했을 정도로 기대를 끌던 유망주였지만 빅리그의 길은 참 멀고도 험했습니다. 두드려도 두드려도 좀처럼 메이저리그의 문이 열리질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마이너 시절 추신수는 참 대단한 타자였습니다. 루키이던 첫 해, 그러니까 미국이라는 생소한 나라에 처음 발을 디뎠던 18세 때 추신수는 3할1푼1리의 타격을 기록했습니다. 싱글A 3경기 포함해 총 54경기를 뛰면서 4홈런 34타점 14도루도 기록했습니다. 당시 그는 중견수로 뛰었습니다.

2002년 19세 때는 싱글A와 하이 싱글A에서 총 130경기를 뛰었고 3할3리에 7홈런 57타점 37도루를 기록했습니다. 미국에서도 생소한 위스컨신 주의 소도시에서 홀로 야구에 인생을 걸었던 19세 야구 소년은 참 놀라운 능력을 과시했습니다.
2004년에는 어느덧 더블A까지 진출을 했습니다. 미국프로야구에서도 제대로 야구를 시작한다는, 그래서 경쟁이 정말 치열해지는 리그가 바로 더블A. 여기서 많은 선수들이 좌절합니다. 그러나 21세의 추신수는 샌안토니오의 더블A 팀에서 중견수와 우익수로 132경기를 뛰면서 3할1푼5리의 데뷔 후 최고 타율과 함께 15홈런, 84타점, 40도루라는 극강의 활약을 펼쳤습니다. 시즌이 끝난 후 베이스볼 아메리카는 추신수를 마이너 전체 유망주 랭킹 51위에 올렸습니다. 7000여명 중에 51위였습니다.

그러나 빅리그는 좀처럼 추신수에게 눈길을 주지 않았습니다.
2005년에도 추신수는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시작했습니다. 빅리그와 큰 기량 차가 없다는 AAA 리그에서 추신수는 115경기에 나서 2할8푼2리 11홈런 54타점 20도루로 활약했습니다.
그러다가 기회가 왔지만 지극히 제한적이었습니다. 한국 시간 2005년 4월 22일에 추신수는 처음으로 메이저리그 운동장을 밟습니다. 그런데 대타로 딱 한 타석 선 것이 전부였습니다. 곧바로 도로 마이너로 갔다가 5월초에 또 불려가 두 경기를 뛰었습니다. 두 경기라고 하기도 쑥스러운 게 모두 대타로 한 타석씩 나선 것이 전부였습니다. 그렇지만 드디어 5월 3일 자신의 세 번째 MLB 경기이자 생애 세 번째 MLB 타석에서 당시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마무리 스캇 쉴즈를 상대로 첫 안타를 치며 타점도 함께 올렸습니다.
그러나 그 타석을 끝으로 추신수는 또 마이너로 갔습니다. 그리고 4개월도 훨씬 지난 9월 중순이 지나서야 다시 빅리그에 호출됐고 그해 총 10경기를 뛰었습니다. 그러나 모두 합해서 18타수가 전부였으니 경기당 2번 정도 타석에 섰습니다.

마이너 5시즌 중에 3번을 3할 이상을 쳤고 46홈런에 129도루를 기록했던 선수.
그러나 만 23세가 되던 2006년 프로 6년째에도 추신수의 시즌 시작은 트리플A 타코마였습니다. 그리고 94경기에서 3할2푼3리 13홈런 48타점 23도루의 분노의 활약을 펼친 끝에 추신수는 2006년 7월 하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로 트레이드됩니다.
그 후 팔꿈치 수술을 받고 좌절했고 가족을 위해 당장 몸값을 받을 수 있는 국내야구 선회를 고민했다가 '어떤 고생을 감수하더라도 당신의 꿈을 끝까지 돕겠다.'라는 부인 하원미씨의 격려를 듣고 부둥켜안고 참 오래 울었다는 이야기는 늘 가슴에 울림을 줍니다. 클리블랜드에서 드디어 빅리그의 정상급 타자로 발돋움하면서도 공에 맞아 손가락이 부러지는 불운과 음주 운전이라는 순간 잘못된 판단 등으로 참 많은 어려움을 겪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던 추신수.





< 내년에 자주 보게될 모습. 추신수의 레인저스 합성 사진입니다. >

그가 걸어온 길을 보면 두 가지를 늘 느낍니다.

하나는 인생 새옹지마라는 말입니다.
추신수의 도전사에서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가장 아쉬웠던 점은 마이너에서 너무 오래 시간을 보냈다는 점이었습니다. 능력으로 보면 시애틀 시절 빅리그에 진즉에 오를 수 있었지만 좀처럼 기회가 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같은 우익수 포지션의 스타 스즈키 이치로가 걸림돌이라는 것이 국내 팬들의 원성을 사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궁극적으로는 시애틀 구단의 방침이나 방향이 잘못된 시절이었고, 그래서 추신수는 트레이드의 길을 걷습니다.
그런데 만약 추신수가 2,3년 일찍 빅리거가 됐더라면 과연 오늘의 7년 1억3000만 달러 계약을 맺을 수 있었을까요? 어쩌면 그토록 아쉽게 여겨지던, 더디기만 했던 빅리그 정착이 오히려 지난 수 년간 최고의 호황을 누리고 있는 올 스토브리그에 맞춰 추신수가 FA가 되는 타이밍으로 딱 맞아 떨어졌습니다. 최고의 시장에 최고 상품으로 나온 셈이 됐습니다. 인생은 빠르고 가파르게 앞서나가기만 한다고 꼭 최상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또 하나는 추신수의 의지와 노력과 그리고 꼼수를 부리지 않고 당당하게 도전해온 길이 결국은 최고의 결실로 이어졌다는 아주 기분 좋은 사실입니다.
스프링 캠프 때마다 새벽부터 훈련장에 나가 직원들과 타격 코치를 괴롭힌(?) 일화는 여러 차례 소개된 바 있습니다. 밤에 화장실을 가다가 갑자기 스윙에 대한 개념이 떠올라 연습 스윙을 하다가 날이 샌 줄도 모르고 밤새 계속 방망이를 휘둘렀다는 일화도 알려져 있습니다. 어려서는 코치가 동료들 말고 자신만 가르쳐주었지만 좋겠다고 했을 정도로 경쟁심과 승리에의 욕심이 대단했던 추신수지만 그는 야구를 하면서 쉽고 편안하지만 안일한 길에 눈길을 준 적이 없었습니다. 늘 남보다 더 많이 훈련하고 운동하고 집중하며 오늘까지 왔습니다.

'추신수의 팔꿈치' 이야기는 늘 잊을 수 없습니다.
클리블랜드 이적 후 팔꿈치가 아팠습니다. 그래도 이를 악물고 뛰었습니다. 그에게 큰 기대를 걸었던 인디언스에서는 승격 시기만 가늠하고 있었고 드디어 호출이 왔습니다. 그런데 추신수는 당시 인디언스 AAA 버팔로 코칭스태프에게 팔꿈치가 아프다는 것을 털어놓고 말았습니다. 팔꿈치 수술 후 플로리다에서 재활을 하던 그를 만났을 때 "만약 내가 그냥 숨기고 빅리그에 갔더라면 금방 아픈 것이 드러났을 것이고, 그러면 나를 지도해준 트리플A 분들에게 할 짓이 아니라고 생각했었다."라고 담담히 말했습니다.
만약 그냥 빅리그에 올라갔더라면 잠깐 뛰다가 DL로 가서 수술을 받고 1년여의 재활을 거쳤을 겁니다. 그러면 부상 기간이 모두 빅리그 경력에 포함되므로 아마 2년 전쯤에 이미 추신수는 FA로 따뜻한 겨울을 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악착같이 노력하고 도전하지만 주변이 피해를 줄 수는 없다는 그의 심성은 사실 오늘의 그를 만드는데 가장 큰 힘이 됐습니다. 결과적으로는 더 큰 대박이 보상으로 다가왔습니다.

28일 알링턴의 레인저스 홈구장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인 말은 바로 론 워싱턴 감독이었습니다.
"추신수를 1번에 기용할 생각이지만 그는 우리에게 다양성을 가져다준다. 때론 하위타선에도 때론 중심 타선에도 기용할 수 있는 타자다. 외야 포지션도 우선은 좌익수를 생각하고 있지만 필요하다면 우익수와 그리고 중견수도 맡을 수 있다. 우리 팀에 옵션과 다양성을 안겨주는 선수다."라는 말은 선수로서의 추신수의 재능을 칭찬한 부분.
그러다 더욱 의미심장한 말은 따로 있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그의 성격이고 인간성이다. 추신수는 두려움 없이 도전하는 선수이고 리더의 역할을 하는 선수다. 더그아웃에 돌아오면 상태 투수에 대한 모든 것, 투수의 성향과 생각까지도 알려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타자다. 젊지만 '전통의 야구(old school baseball)'하는 선수이고 그것이 내가 가장 좋아하는 점이다."
선수로서의 강점과 팀 동료로서의 장점, 그리고 인간적인 성숙도까지를 모두 아울러서 극찬을 했습니다. 마약 문제로 한차례 곤혹을 치른 실수도 있었지만 그럼에도 론 워싱턴 감독은 MLB에서 가장 인정받고 그리고 선수들에게도 사랑받는 감독입니다. 추신수는 어떤 감독이라도 선호할 선수지만 특히 워싱턴 감독과의 궁합은 대단히 잘 맞아떨어질 것으로 기대합니다.

이제 추신수에게 바람이라면 텍사스 공격의 선봉장으로서의 활약은 물론이지만 더욱 적극적으로 멘토이자 롤 모델의 역할을 기대합니다. 마이너리그에서 오랫동안 고생을 많이 겪었던 만큼 추신수는 고생하는 후배들에 대한 각별한 마음을 늘 숨기지 않았습니다. 이제 추신수는 13년간의 부단한 노력과 계속된 좌절과 고통을 이겨낸 정신력으로 더욱 많은 것을 베풀고 나눌 수 있는 위치에 섰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 일원으로 월드시리즈 우승을 위한 새로운 야구 인생 도전과 함께 나눔과 베품을 더욱 활발하게 실천할 것으로 기대가 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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