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필자는 대학원 박사과정을 졸업하고 정들었던 학교를 떠나 새로운 시작을 하게 되었다. 다사다난했던 학교를 돌아보며 문득 “졸업을 했으니 이제 난 무엇을 해야 할까”라는 고민이 제일 먼저 머릿속에 들어왔다. 주변에서도 “그래서 이제 뭐할 거야?”라는 질문이 끊이지 않고 있다. 

필자뿐만 아니라 학교를 마치거나 팀에서 은퇴한 대부분의 선수들이 그렇듯 은퇴를 하면 무엇을 할까 막연한 마음이 든다. 지금은 조금 달라졌지만, 우리 이전 세대까지만 하더라도 엘리트 체육이라는 명목하에 운동에만 전념해야 했고, 학교 공부는 항상 후 순위로 밀려있었다. 

그러다 보니 은퇴한 후 오로지 본인의 분야에 대한 전문지식만을 갖고 혹독한 사회에 진출하게 되면서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심한 경우 선수들은 자칫 잘못하여 유혹에 빠져 사기를 당하거나 몰락한 인생을 살지 않을까 하는 우려도 생긴다. 

필자는 현재 대한체육회 진로교육 강사로 활동하면서, 한국프로스포츠협회 스포츠윤리교육 강사로 활동 하고 있다. 두 교육 모두 운동선수를 대상으로 하는 교육이기 때문에 선배로서 그들을 마주했을 때 느꼈던 부러움과 아쉬움, 그리고 박사과정을 졸업하며 느꼈던 운동선수의 은퇴에 관한 것들을 2020년 임다연의 첫 칼럼에서 풀어내려 한다.

■ 은퇴 이후엔 무엇을 해야할까

지난해 12월, 최윤희 전 수영선수는 문화체육관광부 제2차관에 임명되었다. 요즘에야 유명 락그룹 보컬리스트의 아내라는 사실이 더욱 잘 알려져 있지만, 과거 수영선수로서 그의 이력은 너무나도 화려하다.

1982년 뉴델리아시안게임과 1986년 서울 아시안게임에 걸쳐 총 5개의 금메달을 획득하며 아시아의 인어로 불렸으며, 당시 국민들에게 뜨거운 사랑을 받은 국가대표 수영선수 출신이다. 

최윤희 차관 이외에도 수영선수 생활을 마친 후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여 전문직의 길로 나아간 사례는 적지 않다. 1990년 베이징 아시안게임에서 혼계영 400m 동메달을 획득한 현 국민대학교 스포츠산업레저학과 김동현 교수와,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남자 자유형 400m에서 금메달을 따낸 방승훈 실업팀 감독은 지도자 외 방송해설위원으로 활약하고 있다. 

1996년 애틀랜타 올림픽 여자 배영 200m에서 한국 수영 사상 첫 준결승에 진출했던 이창하씨는 2004년 대한체육회 공채에 합격해 현재 스포츠클럽부 부장까지 승진하여 수영 국가대표 출신 행정가로 자리매김했다.

자신의 분야를 오랜 시간 걸어오며 스포츠계 내에서 진로를 발견한 사람도 있는 반면, 자신의 분야와 전혀 다른 진로를 선택한 사람도 있었다. 수영선수 출신 성훈과 유이, 수구선수 출신 소지섭 등이 대표적인 예다. 이들은 자신과 다른 분야에서도 최선을 다해 최고의 자리에 올랐고 대중들에게 인정을 받는 스타가 되었다.

하지만, 이러한 사례들만 나열해서는 은퇴 선수에게 제2의 인생 설계 기회가 적다는 문제에 대한 답이 될 수 없다. 운동선수 출신 중에서 위와 같은 사례처럼 성공하는 경우는 낙타가 바늘구멍을 통과하는 것만큼이나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2019년 12월 30일 기준, 대한수영연맹에 등록된 엘리트 선수는 3390명이며, 은퇴 후 바로 원하는 직업을 갖게 되는 경우는 극히 일부에 불과하다.

다행스럽게도 최근 들어 운동선수의 진로를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들이 운영되고 있다. 필자 역시 그중 하나인 대한체육회에서 시행하는 찾아가는 운동선수 진로교육에 강사로 활동하고 있으며, 이러한 진로교육은 선수출신의 진로교육 강사들이 후배 학생선수들을 찾아가 진로에 대해 이야기하는 프로그램으로 접하기 쉽게 운영되고 있다.

이뿐만 아니라, 한국 폴리텍대학 내에서는 대한체육회와의 협업을 통해 체육인들을 위한 교육과정을 개설하였다. 또한, 선수경력자를 위한 교육과정 운영을 추진 중이며, 은퇴·현역 선수를 위한 프로그램을 지속적으로 확대할 예정이다. 이처럼 체육계와 정부는 운동선수들의 진로에 대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하지만, 근본적인 의문은 남아있다. 이러한 프로그램들이 과연 실효성을 거두고 있는지 여부다. 이 의문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지금 시행하고 있는 정책들의 허점들을 면밀히 파악하여 더 나은 효율성을 거둘 수 있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 스포츠 최저학력제의 모순

대표적으로 운동선수의 학업병행, 은퇴이후의 삶을 위한 정책 중 하나로 활발히 시행되고 있는 최저학력제는 안타깝게도 실효성면에서 큰 효과를 거두고 있지 않으며, 의미 또한 크다고 볼 수 없다.

실제로 최저학력제는 찬반 여론이 여전히 뜨겁다. 최저학력제를 찬성하는 쪽에서는 최저학력제를 통하여 최소한의 학업을 병행할 수 있도록 해야한다는 입장이다. 이에 반해 최저학력제를 넘긴다고 해서 그 성적으로 진학을 하거나 취업을 할 수 있는 확률은 현저히 적으며, 최저학력제를 받기 위해 공부할 그 시간에 휴식을 취하고, 훈련에 더 몰입하여 선수로서 좋은 실적을 갖추는 것이 미래를 위해 도움이 된다는 반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초등학교부터 대학원생까지 학생과 엘리트 선수 생활을 경험한 바로 볼 때, 이 두 의견을 절충할 수 있는 현실적인 대안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다. 직설적으로 표현한다면 최저학력제와 같은 제도들을 통하여 공부를 강요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는 것이 의견이다. 

일례로 2010년 벤쿠버올림픽 피겨스케이팅 부문에서 김연아가 금메달을 따냈을 당시 동메달을 땄던 조애니 로셰트는 선수 은퇴 이후 맥길대학교 의대에 입학해 의사의 꿈을 키우고 있다. 이를 보며 국민들은 부러움과 동시에 한국은 왜 저런 선수가 나오지 않을까 안타까워한다. 

이 대목에서 우리는 한국의 독특한 특성을 잘 파악할 필요가 있다. 사실 조애니 로셰트의 국적인 캐나다, 그리고 우리가 자주 비교하는 미국의 경우는 대학에 입학하는 것이 한국에 비해 어렵지 않고, 운동과 상관이 없는 학과에 들어갈 때에도 경기실적이 있는 학생선수에게는 가산점을 준다.

한국처럼 학생선수를 위한 제도가 없고, 인식이 부족한 상황에서 단순히 공부를 강요하는 건 큰 의미가 없다. 캐나다, 미국은 한국과 다른 하드웨어를 가지고 있기에 같은 소프트웨어를 적용할 경우 ‘에러가 발생한다.’는 뜻이다.

우리의 현실에서는 강제적으로 공부를 요구하는 것보다는 이들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교육을 제공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최저학력제와 같은 제도로 강제성을 띠게 된다면 오히려 그들의 선택권까지 위협받는 상황에 놓인다.

운동선수는 반드시 공부를 해야한다는 강박관념을 주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엘리트 선수 은퇴 이후에 공부를 해 변호사 등 전문 직종으로 성공한 선수들도 여럿 있다. 

그러나 운동선수로서 공부를 하는 것은 본인의 선택이며, 그 선택에 대한 책임은 어디까지나 본인 스스로가 지는 것이다. 이 점은 운동선수뿐만 아니라 어떤 직업을 가진 사람이든 마찬가지다. 

■ 이전보다 더욱 필요해진 은퇴 후 진로교육

또 하나 예를 들어, 필자가 강사로 활동 중인 대한체육회 찾아가는 운동선수 진로교육 프로그램의 경우 은퇴선수의 취업과 학생선수의 진로교육 이라는 좋은 취지를 갖고 있다. 필자가 학생선수들을 만나러 갔을 때에도 선배에게서 듣는 진로 이야기에 눈이 초롱초롱 빛나던 학생선수들의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그러나 진로교육을 할 때에도 서두에서 이야기하던 선배선수들의 성공사례만으론 학생선수들이 은퇴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느끼기 어렵다. 성공사례와 실패사례의 비율을 제시하고, 실패사례에 대해서 알려주고 그들이 직접 느끼게 해주어야 한다.

막연하게 ‘아, 공부를 하면 저렇게 되는구나.’가 아닌, ‘만약 운동을 그만둔다면 무엇을 할까?’ ‘그러기 위해선 어떻게 해볼까?’의 생각을 유도할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 한국식 클럽스포츠 체제가 필요하다

국내 스포츠계를 냉정하게 살펴보면 세계적으로 엘리트 스포츠는 상향 추세인 반면 우리나라는 하향세인 상황이다. 일본도 올림픽을 대비해 엘리트 스포츠로 전환하면서 국제무대에서의 경쟁력을 키워오고 있지만, 우리는 그 반대로 가고 있는 것이다.

최근 들어 성적지상주의가 만연한 현실을 바꾸기 위해 엘리트 스포츠가 아닌 생활체육의 기반을 다지고, 클럽스포츠의 활성화를 기치로 내걸고 있지만 현재의 인프라나 선수층으로는 엘리트 스포츠가 쇠락할 경우 전체적으로 다 무너질 수밖에 없는 구조로 되어있다.

미국과 같이 클럽스포츠의 활성화를 위해 같은 정책을 펼치고 같은 효과를 거두려면,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가 미국대학스포츠협회(NCAA)처럼 프로연맹과 동등한 위치를 가져야 가능한 일이다. 

그러나 KUSF와 NCAA는 규모자체부터가 엄청난 차이를 갖고 있다. 보통 미국 대학스포츠에서 최고를 뜻하는 올 아메리칸은 프로세계에 입문할 때 가장 큰 지표가 되지만 한국은 그런 것들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 또한 클럽스포츠의 수와 인원수 역시 크게 차이나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클럽스포츠를 미국만큼 활성화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 

앞서 말했듯, 한국만의 독특한 특성을 우리는 잘 파악해야 한다. 학교장이 스포츠클럽을 만들어도 보통 스포츠 전문 아카데미나 유스팀으로 가는 것과 같이 사교육을 시키는 학부모들이 대다수다. 이는 스포츠뿐만이 아니라 어릴 때부터 국,영,수를 익히기 위해 무조건 학원에 보내는 한국만이 갖고 있는 독특한 문화인 것이다. 

이제는 한국형 학습권 보장제도, 한국형 엘리트 선수관리제도, 한국형 최저학력제를 내놓아야 한다. 몸매가 다른데 같은 옷을 입힌다고 같은 핏이 나오진 않는다. 우리는 우리 한국인 체형에 맞는 옷을 입어야 한다.

제 2의 누군가를 만들기 위해서는 제 1의 누군가, 바로 그들의 바꾸려는 노력 없이는 결코 바뀌지 않을 것이다.   

 


 

사진=게티이미지
글=임다연
편집=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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