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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반재민 기자] 흔히 보디빌더들을 비유하는 말로 ‘수도승’이라는 말이 있다. 정해진 스케쥴대로 살아야하고 먹는 것과 운동하는 것까지 모두 제약을 두며 몸을 만들어야하는 것이 바로 보디빌더들의 숙명이다,

이러한 수도승 생활은 비단 대한민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전세계 모든 보디빌더들이 이러한 수도승 생활을 통해 자신의 몸을 가꿔나간다. 상대적으로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중국 역시 마찬가지다.

중국은 전통무술의 영향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서양식인 웨이트트레이닝과 보디빌딩에 대한 관심이 다른 국가들 보다는 덜하다. 이런 상황에서 전문적인 보디빌더의 탄생은 요원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불모지에서도 꽃은 피는 법, 열악한 중국의 피트니스 상황에서도 한줄기 꽃은 피었다. 2002 부산 아시안게임, 한국, 중동선수들이 나란히 메달을 가져가는 가운데에서도 그는 5위에 오르며 선전했고, 이후에도 숱한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며 중국 보디빌딩의 영웅으로 떠오른 그 이름. 바로 중국 보디빌딩의 자존심 린페이취(林沛渠)다.

76년 중국 광저우에서 태어난 린페이취는 어린 시절부터 스포츠에 재능을 보였고, 학창시절 단거리 대표로 기록을 경신해가며, 새로운 단거리 유망주로 성장해나갔다.

하지만, 신은 그를 그냥 내버려두지 않았다. 재능을 인정받아 광저우체육대학에 입학한 1997년, 그는 불의의 사고로 다리를 다쳐, 더 이상 육상선수를 할 수 없는 상황이 되었고, 그는 좌절할 수밖에 없었다.

불운의 끝에서 그를 일으켜 세워준 것은 바로 보디빌딩이었다. 예전부터 아놀드 슈왈츠제네거의 근육질 몸매를 동경해오던 그는 당시 미지의 세계였던 피트니스의 세계에 몸담기로 했고, 육상선수 시절부터 혹독한 훈련을 통해 다져온 근육량을 통해 동뇬 6월, 첫 번째로 출전한 대회였던 광저우 지역대회 대회 65kg에 5위를 차지했고 이 성적은 린페이취를 최고 선수로 만든 동기가 되었다. .

그로부터 6년이 지난 2001년, 린페이취는 잠재되어있던 자신의 능력을 폭발시키기 시작했다. 시즌 초 리칭화라는 코치는 중국 선수권 대회에서 눈여겨본 그를 스카웃하기 위해 광저우에서 산둥까지 데려온 수고를 감수했고, 이미 육상을 통해 다져진 근육은 그의 체계적이었고 혹독했던 웨이트트레이닝을 만나 시너지 효과를 냈다.

2002년부터 그는 전성기를 달렸다. 그해 5월 펼쳐졌던 전국 스포츠 대회 75kg 부문에서 1위를 차지한 그는 7월에 있는 전국 선수권 대회에서 그랑프리를 차지, 2002 부산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영광을 안았다. 한국세가 강했던 아시안게임에서도 그는 선전했다. 70kg 급에 참가하기 위해 한달 만에 10kg을 감량한 린페이취는 아시안게임에서 아마추어 신분에도 5위를 차지, 아시안게임에 첫 출전한 중국인 보디빌더라는 이름으로 하나의 이정표를 남겼다.

보디빌더들에게 황혼기로 불리는 40대가 된 현재도 린페이취는 자신의 몸을 만드는데 매진했다. 국내대회 뿐만 아니라 세계 대회에서도 자신의 이름을 알리고 있다. 지난 2016년 홍콩에서 펼쳐진 올림피아아시아에서는 피지크 부문에 출전해 체급 1위를 차지할 정도로 정통 보디빌딩뿐만 아니라 피지크라는 새로운 종목에서도 특출난 근육을 자랑하고 있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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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린페이취의 성공 비결 '20년째 한결같은 자기관리'

린페이취는 97년 보디빌딩을 시작한 이래로 그는 한가지의 스케줄로만 20년째 수도승처럼 자기 자신을 가꿔왔다. 중국 피트니스인들이 그를 ‘웨이트트레이닝계의 소림사’라고 부르는 것은 괜한 이야기가 아니다. 린페이취를 최고의 자리에 올려놓은 루틴은 다음과 같다.

린페이취의 일과표

아침 7시 기상, 조식(압맥, 달걀, 프로틴)
아침 8시 출근
아침 9시 개인PT 시작
10시 추가식단
11시 훈련
12시 점심 (닭가슴살 끓여서, 해산물, 야채, 과일, 주스 등)

오후 1시 휴식
2시 추가식단
3시 회원들 강의
5시 저녁
6시 회원 강의
9시 집 복귀, 자유시간
11시 취침

이 스케줄을 린페이취는 눈이오나 비가오나 바람이 부나 한번도 어기지 않았다. 최고의 자리에 오른 지금도 그는 여전히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일찍 잠에 드는 규칙적으로 생활을 한다.

또한 밥을 먹을 때는 적게 먹고, 6끼를 먹을정도로 식사의 횟수는 늘렸다. 보디빌더들에게 금기되어야 하는 기름, 설탕, 소금은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절제하였으며, 운동 또한 혹독하게 훈련했다.

이렇게 혹독한 운동을 일주일만 하더라도 웬만한 선수들은 힘들어하거나 포기하기 마련이다. 하지만, 린페이취는 이렇게 말했다.

“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다. 남들보다 운동 강도도 세게 했고, 음식도 조절해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 익숙해졌다. 내가 좋아해서 이 운동을 하는 것이기에 전혀 재미없지 않다.”

물론 기계처럼 운동만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시간이 있을 때면 커피를 마시며 책을 보거나, 친구를 만나서 여행을 가거나 쇼핑하는 것을 즐긴다고 그는 말했다. 즐길 때는 즐길 줄 아는 것이 린페이취의 매력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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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아놀드클래식 오버롤을 차지한 히데타다 야마기시와 함께한 린페이취>

■ 혹독함을 즐거움으로 바꾸는 정신력

그는 언제나 혹독하게 훈련한다. 키가 작은 콤플렉스를 장점으로 승화시키기 위해 그는 근매스와 근질을 향상시키는데 언제나 집중한다. 2002년 아시안게임을 앞두고는 체지방을 8kg이하로 낮추고, 군살도 제거, 심지어 수분도 모두 커팅 했을 정도로 혹독하게 훈련한 끝에 10kg을 단 한 달 만에 감량했으며, 북경에 있는 피트니스 센터 트레이너 구직 면접에서 광둥어 사투리로 인해 탈락하자, 일주일동안 북경어 공부에 매달려 두 번째 면접에 합격할 정도로 하나의 목적을 가지고 있다면 독한 면모도 보이는 선수다. 하지만, 어떤 상황이 닥쳐도 그는 웃으면서 슬기롭게 넘어간다. 대학시절 다리부상으로 육상선수의 꿈을 접었을 때도, 북경에 있는 아파트에서 5명이 월세로 살았던 때에도 그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난관을 이겨나갔다. 북경에서 있었던 힘든 일을 물어보는 기자의 질문에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라며 허허 웃던 그였다. 이러한 그의 정신력은 최고의 선수가 되는 원동력이 되었다.

그의 나이 마흔 둘, 보디빌더로서는 적지 않는 나이다. 이제 차츰 미래를 준비해야할 때에서 린페이취는 어떤 미래를 그리고 있을까? 그는 의외의 답변을 내놓았다. “그때그때 일이 닥치면 생각해보겠다.” 현재에 집중하겠다는 린페이취의 답변이었다. 이후에 그는 이런 말을 남겼다. 


“하지만, 포부가 없는 것은 아니에요. 사람일은 아무도 모르기 때문에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지 예상할 수 없습니다. 다만 저는 헬스를 사랑하고 있는 직업을 하고 있는 것만으로 이미 충분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미래는 그 다음에 생각할 문제라고 저는 생각하고 있습니다.”


중국을 넘어 세계무대에서 자신의 이름을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린페이취, 과연 그는 9월 9일 펼쳐질 올스타클래식 클래식피지크 부문에서 우리에게 어떤 모습을 보여줄까. 린페이취의 올스타클래식의 막이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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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니스를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린페이취의 조언
"제가 추천하고픈 운동은 벤치프레스, 비하인드 넥 프레스, 바벨 컬, 바벨 로우입니다. 일주일에 세 번에서 네 번. 3세트 정도 한다면 어깨와 등, 팔을 키우는데 큰 도움이 될껍니다. 운동이 끝나면 꼭 스트레칭하는 것을 잊지마시고, 초보자들은 안전하게 옆에는 지도 선생님을 두고 훈련해야 부상을 예방할 수 있습니다. 식단은 고단백 음식과 충분한 야채, 과일을 많이 먹고, 지방이 높은 식품을 피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여러분들에게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싶은 것은 규칙적인 생활 습관을 가져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만 열심히 한다면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몸을 만드실 수 있습니다. 규칙적인 운동을 잊지 마세요“


사진=린페이취 SNS
반재민 기자(press@monstergroup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