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lizer 조회 수 : 2977

2017.10.10 06:52

tony1.jpg

토니 퍼거슨의 스타일에 대해 말하기는 어렵다. 스타일이라는 의미 자체가 어떠한 양식이나 형식, 틀, 의도나 인과 같은 것들을 의미하는데, 퍼거슨의 경기 스타일에는 그런 것이 잘 보이지 않는다.

코너 맥그리거의 스타일은 사우스포 스트라이커고, 카운터가 주무기이며, 카운터를 맞추기 위해 상대의 선제공격을 끌어내는 방식이 대단히 적극적이다. 즉, 가드 내리고 뚜벅뚜벅 걸어가서 "이렇게까지 왔는데도 공격을 안해? 네 주먹은 밴디지 감을 때만 쓰는 거야? 발은? 무좀약 바르려고 달고 다니나?"같은 식의 도발을 건다. 그 도발에 넘어간 상대가 공격을 내면 그것을 측면으로 흘리거나 거리를 벌려 아슬아슬하게 닿지 않도록 만든 후 카운터로 매우 강하게 때린다.

이렇게 맥그리거는 양식, 형식, 틀, 의도, 인과가 명확하게 보이므로 그의 스타일은 어그레시브한 사우스포 카운터 타격가라고 규정되고, 비슷한 유형으로 로비 라울러를 거론할 수 있기까지 하다. 디테일을 따지면 한도 끝도 없이 다르지만 전략전술의 기본 틀 면에서 일치하는 부분이 많다는 의미다. 

페더급의 일인자 맥스 할로웨이는 언뜻 보면 퍼거슨과 비슷해 보일 수 있다. 동체급대의 최대급 사이즈, 스탠딩에서의 높이와 길이를 십분 활용하며 스위치 스탠스에 능숙하고 대단히 공격적으로 운영한다는 점까지는 비슷하다. 그러나 할로웨이에게는 분명한 스타일이 있다. 할로웨이는 들어가며 펀치 컴비네이션을 퍼붓고 상대의 카운터를 뒤로 빠져 피하고 즉시 다시 인스텝 컴비네이션으로 연결하는 패턴의 무한반복이 주력이다. 즉 인아웃 압박타격이 할로웨이의 스타일이라는 것. 경기의 페이스를 본인이 주도하면서 부가적으로 체력전도 함께 건다는 특징도 있다.
 
tony2.JPG

■ 자세의 해석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퍼거슨의 스타일을 알아보는 가장 첫 단계는 자세다. 자세 자체가 굉장히 많은 정보를 포함하고 있기 때문이다. 

두 다리 사이의 간격이 좁은, 즉 다리를 펴고 선 자세는 첫 스텝을 크게 밟으며 레인지나 앵글을 활용한 공격을 하겠다는 의도를 나타낸다. 미르코 크로캅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다리 사이가 넓게 벌어져 있는 경우는 그 자리에서 언제든 큰 것 한방을 지를 수 있는 자세다. 코너 맥그리거가 좋은 예다. 

다리가 앞뒤로 많이 벌어진 경우는 상대에게 측면을 보여주어 피격면적을 줄이고, 상대의 앵글 변환(사이드 투 사이드 스텝)에 조금 더 쉽게 대응할 수 있으며, 뒷손을 상대가 보지 못하게 감춰뒀다가 불시에 내지르는 옵션을 사용할 수 있다. 스티븐 톰슨을 떠올려 보면 된다. 발을 좌우로 많이 벌리고 있는 경우는 앞발, 앞손에 힘을 더 실을 수가 있다. 타이슨이 대표적인데, 종합격투기에서는 그다지 권장할 수 없는 자세다. 정면이 너무 오픈되어 버리기 때문에 킥에 취약하다. 

본인이 상대보다 그라운드에서 확고한 우위를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면 높은 커버링을 취해 타격에 대한 대응을 강화할 수 있다. 상대가 테이크다운을 걸어올 확률이 낮기 때문이다. 테이크다운을 걸어오면 고마울 따름. 반대로 타격에 자신이 있는 선수들은 커버링을 내리고 테이크다운 디펜스를 보강해도 나쁠 게 없다. 상대가 커버링 없다고 타격전으로 받아주면 역시 고마울 따름. 손을 가슴 정도에 두는 건 이쪽저쪽을 두루 고려한 타협적 선택이다. 

허리를 숙여 얼굴을 상대 쪽으로 내민 자세는 상대의 공격이 낮고 짧은 지점을 향하도록 유도하는 자세다. 상대의 공격이 오면 허리를 세우고 턱을 당기면서 즉시 카운터가 나간다. 네이트 디아즈가 마이클 존슨과 싸우던 당시를 보면 된다. 뻣뻣하게 서서 걸어 돌아다니는 경우는 상대의 조준이 높고 멀리 잡히도록 유도하고, 공격이 올 때 숙이면서 접근해 품속에서 폭탄 같은 펀치를 먹여주겠다는 의도다. 종합격투기에서는 아무래도 니킥이나 클린치 같은 옵션이 있어 이런 타입이 드물다. 
다 떠나서 오소독스냐 사우스포냐, 여기만 해도 얼마나 많은 정보가 묻어있는지는 다들 아는 이야기다. 즉 자세를 보면서 정보수집을 시작한다는 것이다. 정보는 수집해서 뭘 하느냐, 당연히 선수나 지도자들은 분석과 전략 수립에 활용하고 글을 쓰는 입장에서는 정보수집과 분석이 바닥에 깔릴 경우 보다 그럴 듯하게 풀어낼 수 있기 때문에 중요하다. 

tony3.JPG

퍼거슨의 자세는 그럼 무엇이고 어떤 의도를 내포하고 있는가. 리와의 경기에서 퍼거슨의 자세는 계속 바뀐다. 경기 시작 순간에는 그 어떤 의도도 느껴지지 않는 근본 없는 자세로 대충 서서, 근본 없는 걸음걸이로 대충 왔다 갔다 반복한다. 그러다가 갑자기 허리를 세우고 뒤로 두어 걸음 물러나며 뭔가 제스처를 취하고, 그 직후 갑자기 자세를 딱 낮추면서 모타운의 디제이라도 빙의한 듯 손동작을 휙휙 보여준다. 그러더니 이내 다시 몸을 세워 사이드 투 사이드 스텝 이후 어중간한 셔플 스텝을 한번 밟고, 또 자세를 딱 낮추며 왼팔을 앞으로 뻗었다가 맥락 없이 앞발을 뒤로 빼며 스위치. 그리고 또 자세 낮추며 오른팔을 앞으로 휙 내고는 다시 일어나서 오소독스로 돌아갔다. 첫 20초 사이에 그나마 가장 선수다운 자세를 취하고 있을 때는 케빈 리가 라이트-레프트 헤드킥 컴비네이션으로 치고 들어갔다.

어떤 의도도 감지되지 않는 근본 없는 움직임은 계속 이어졌다. 그리고 퍼거슨은 그 와중에 라이트 하나를 먹기까지 했다. 첫 1분 30초 동안 퍼거슨은 레그킥 하나 멋지게 차서 치고 들어오던 리의 축발을 뽑아버린 것, 레너드 풍의 오른팔을 빙빙 돌리다가 왼손잽 지르기 정도가 성공적이었을 뿐이며 리는 좋은 것을 계속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가 퍼거슨은 눈이 찔렸다는 어필을 하며 급히 물러났지만 주심이 보지 못해 속행 상황. 리는 이때다 싶었는지 재빠르게 달려들어 갔는데 퍼거슨이 레프트를 기가 막히게 맞춰서 리를 다운 시켰다. 첫 2분간의 전개인데 이 사이에 퍼거슨이 어떤 '의도'한 뭔가가 있는 '자세'를 취했다고 보기는 어려웠고, 자세만을 관찰하면 퍼거슨이 추구하는 바가 무엇인지 특정하기 힘들었다. 어떤 결과를 내기 위한 포석이었다고 하기 보다는 상대에게 의도를 읽히지 않는다는 목적 정도가 있어 보였다. 

tony4.jpg

■ 무논리, 그리고 일관성의 부재

어떤 공격기를 어떤 방향으로 움직이며 구사하고 상체는 어떻게 흔드는 지를 움직임과 살펴보는 것을 통해서도 선수의 전략-전술상 목적을 추론해볼 수 있다. 예를 들면 잽과 스트레이트, 딥킥(앞밀어차기) 같은 기술과 백스텝, 사이드스텝 등으로 움직이는 방향이 후방 측방을 주로 향하면서 스웨이, 슬리핑 등의 상체 움직임이 많다면 그건 당연히 상대와 거리를 유지한 채 타격전을 하겠다는 의도인 것이다.

이번 경기에서 퍼거슨이 드러낸 속내 한가지는 테이크다운 기회를 쉽게 내주지 않겠다는 것이다. 퍼거슨은 바르보자나 하파엘 도스 안요스 등 타격 전문 선수와 싸울 때는 긴 호흡의 컴비네이션을 독특하게 조합해 사용했다. 좌우 스탠스의 스위치가 계속 일어나는 전진좌우 연타 같은 것은 정석에서는 다소 벗어난 면이 있지만, 과거의 정찬성도 그것으로 재미를 많이 봤다. 퍼거슨도 도스 안요스와의 경기 3라운드에서 슈퍼맨-빠지고-(오소독스에서)라이트 스트레이트-레프트 어퍼 올리며 스위치-공격 없이 오소독스로 스위치-다시 사우스포로 스위치하며 레프트 어퍼-오소독스로 스위치하며 오버핸드라는 기묘한 연속기로 인상적인 장면을 연출한 바 있다. 

또 경기 도중 몇 차례 버티컬잽-오버핸드-래프트 바디킥-레프트훅으로 연결한 적이 있다. 5라운드에서는 또 라이트 리드-레프트훅-라이트쇼트훅-레프트훅-(안요스가 밀려나고)라이트 페인트-(전진하며)레프트 어퍼로 이어지는 기가 막힌 연속기를 구사한 적도 있다. 흐름을 탔을 때 나오는 퍼거슨의 연계기에는 족보가 있는 경우도 있고 없는 경우도 많은데, 어느 쪽이건 징그럽게 효과적인 게 사실이다. 하지만 리와의 경기에서는 상대의 테이크다운과 그라운드 컨트롤, 초크 능력 등을 존중해서인지 거의 단발 위주에 2콤보 정도의 타격으로 대응했다. 

또 하나, 퍼거슨에게는 클린치 가능거리에서 사용하는 엘보우가 있다. 퍼거슨의 과거 영상 중에는 스피드볼을 엘보우로 치는 장면이 나오는데, 기본적으로 스피드볼에 대한 숙련이 대단히 높지는 않은 상태에서 주먹으로 치는 것만큼 엘보우로도 잘 두들겼다. 즉 퍼거슨은 당시 이미 엘보우 드릴에 무척 공을 들이고 있었음이 간접적으로 드러난 장면으로 볼 수 있다. 퍼거슨이 그 엘보우를 접어두었다는 건 역시 클린치 가능거리에서는 테이크다운 디펜스에 집중했다는 의미일 것이다. 

tony5.png

테이크 다운에 당하지 않기 위해 연속기 구사를 자제하고, 근거리 엘보우 대신 테이크다운 방어를 신경 썼다. 그건 지극히 당연한 것이고 선택의 여지가 없는 부분이다. 본인 스타일이 때려죽여도 컴비네이션에 접근전에서는 엘보우를 돌려야 한다면, 맞아 죽는 수밖에 없다. 이런 경우는 스타일을 양보하고 맞춤 전략을 구사해야 하는 부분이라 이것에 큰 의미는 없어야 정상이다.

그런데 그런 것 치고는 퍼거슨이 킥을 너무 많이 사용했다. 특히 중단 앞차기를 적극적으로 활용했던 부분에 먼저 시선이 간다. 파이트 매트릭의 스탯을 참조하면 퍼거슨이 시도한 바디 타격은 총 13회였고 그중 6개가 적중 되었는데, 그것의 대다수는 중단 앞차기의 형태였다. 

리는 패혈증으로 인한 항생제 처방을 받으며 감량을 했으며 거의 죽을 뻔 했다고 경기 후 인터뷰에서 밝혔다. 1차 감량 실패도 있었고 처음 경험하는 5라운드 경기라는 측면도 있기 때문에 이 바디킥 6개는 리의 체력이 소진되는데 훌륭한 가속재 역할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리와의 경기에서 바디킥의 비중은 전체 타격의 11% 정도였다. 퍼거슨의 UFC 통산 스탯에서 바디 스트라이크의 비중은 3%에 불과했기 때문에 아마도 이것은 전략적으로 준비해 온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레그킥과 바디킥이란 상대의 테이크다운이 의식될 때 사용하기 좋은 기술은 전혀 아니다. 컴비네이션과 근거리 엘보를 절제한 것으로 보면 분명 상대의 테이크다운을 존중한 것으로 해석되는데, 앞서 언급한대로 퍼거슨은 그런 것 치고는 킥을 평소에 비해 굉장히 적극적으로 구사했다.

퍼거슨의 통산 스탯에서 전체 타격 적중은 718개이고, 그중 복부와 다리에 들어간 것은 각각 22개와 60개다. 따라서 복부타격을 전부 바디킥으로 보고 계산하면 3%, 다리에 펀치를 꽂는 경우가 없지는 않지만 드물기 때문에 다리는 모두 킥으로 보면 될 테고 8% 정도가 된다. 합은 11%. 

반면 리와의 경기에서 퍼거슨은 57개의 타격을 적중시켰다. 그중 유효타는 54개, 바디에는 6개가 들어갔다. 복부 타격의 비중이 11%였고 레그킥은 9개를 시도해 8개를 맞춰서 전체 적중타격 중 24%의 포션을 차지했다. 바디-레그킥의 합이 무려 34%에 달하는데, 헤드킥도 적잖이 구사했기 때문에 퍼거슨이 리를 상대로 적중시킨 킥이 전체 적중 타격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40%를 훌쩍 넘길 것으로 추측된다. 

40%(+)의 킥 비중과 테이크다운 디펜스상의 난점, 컴비네이션 및 엘보우의 절제를 한번에 보면 일관성이 없다. 기왕 테이크다운에 저항성이 높은 스킬세트를 활용하려면 킥을 절제하는 게 합리적이고, 어차피 테이크다운 신경 안 쓰고 킥을 그렇게 활용할 거라면 본인이 워낙 능숙하게 구사하는 창의적인 연속기라나 엘보우도 좀 써 볼만 했을 텐데, 어딘지 뭔가 개운하게 해석이 되지 않는다.

tony6.jpg

■ 비합리성의 합리성

게임이론을 학술적으로 접근하려면 굉장히 난해하다. 그런데 프로 포커선수인 지인이 최근 수년간 텍사스 홀덤계를 강타하고 있는 GTO(Game Theory Optimization)라는 전략에 대해 설명해주는 것을 듣고 나니 게임이론이 어떤 것인지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내쉬 이퀄리브리엄이라는 개념이 게임이론에서 굉장히 중요하다. 내쉬는 영화 뷰티풀 마인드의 실존 모델이다. 노벨 경제학상을 받은 분이고, 내쉬 이퀄리브리엄이 핵심이다. 이걸 검색으로 이해하려고 하면 솔직히 무슨 소린가 싶을 것 같다. 

언어와 문자와 숫자와 공식 등은 추상적인 관념이나 난해한 원리들을 알아들을 수 있도록 설명하기 위해 활용 되는데, 가끔은 보면 관념이나 원리 자체는 사실 이해하기 어렵지 않은데 그걸 설명한답시고 써놓은 글이 오히려 이해를 방해하는 경우가 있다. 내쉬 이퀄리브리엄과 게임이론에 대한 설명 역시 대개 그랬다. 

포커에서 활용되는 게임이론은 그럼 무엇인가. 게임이론은 기본적으로 지지 않는 전략, 패배를 방지하는 전략이다. 지지 않는 전략으로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그건 지지 않고 버티다 보면 상대가 무너지기 때문에 승리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지지 않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건 비합리적인 선택을 합리적으로 하는 것이 요체다. 

포커(홀덤의 경우)의 고수가 상대의 패를 보지 않고도 알 수 있는 것은 모두가 공유하는 퍼플릭 카드가 가진 포텐셜과 상대의 베팅 패턴을 분석하기 때문이다. 즉 그것이 합리행동일 경우 그 행동의 배경이 되는 원인을 역추론 하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tony7.png

간단한 예를 하나 들자면, 바닥에 깔린 퍼블릭 카드 중 가장 먼저 공개되는 3장의 카드 중에 스페이드가 2장 있었는데, 한 초보 플레이어가 꽤 강한 베팅을 선뜻 따라왔다고 치자. 그리고 다음카드가 한장 공개되었는데 스페이드가 아니었고 다시 강한 배팅을 때리니까 그 플레이어가 한참을 고민하다가 겨우 결심을 한듯 콜을 불렀고, 마지막 카드가 스페이드가 나왔을 때 체크를 했더니 저쪽에서 유혹하는 듯한 액수의 배팅이라던지 혹은 강력한 배팅이 온다면 그의 행동이 의미하는 바를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손에 쥔 두 장이 모두 스페이드라는 자백 혹은 연기인 것이다. 그 때 나는 비록 망패를 쥐고 있지만 하필 내 손에 스페이드 에이스가 있다면, 그리고 거기서 즉각 상대의 배팅을 우습게 보이게 만들 사이즈의 배팅을 때린다면 상대의 머리 속에서는 지진이 난다. 본인의 손에 스페이드 두 장이 있는데 상대의 손에도 그러지 말라는 보장이 없고, 분명한 건 상대가 에이스를 포함한 플러시라면 본인이 진다는 거다. 콜을 받기에는 부담이 너무 크고, 이미 부담감을 느끼며 리버까지 따라왔기 때문에 당장 들어가있는 걸 포기하기도 어렵다. 이런 스트레스를 당하게 되면 강패를 잡고도 돈을 잃게 된다. 

중요한 것은 내가 합리적으로 생각을 하고 고민을 해서 내린 결정이 가장 나쁜 결정이라는 것이다. 특히 인격의 측면에서 흔히 호감형으로 인식되는 사람들은 상식적이고 합리적이고 예측 가능한 행동을 하는 사람들인데, 그렇게 오래 생각하고 이치에 맞게 두루두루 문제 없을 거라고 믿으면서 결정을 내리는 사람들은 절대 노름을 하면 안 된다. 노름을 해도 그냥 상대에게 패를 보여주고 하는 게 좋다. 그러면 적어도 "도대체 내 손에 뭐가 있는지 어떻게 알고 있는 건가, 혹시 카드에 표시가 되어 있거나 몰카라도 설치했나" 이러면서 혼란에 빠지는 일은 없을 것이다. 

착한 사람들은 대개 포커를 잘 못 친다는 게 정설이었다. 그건 한미중일북러 6개국 공통이다. 그러나 GTO를 마스터 한다면 당신이 부처님 가운데 토막이라도 포커에서 이길 수 있다. 아귀, 짝귀 심지어는 지리산에서 고니가 내려와도 GTO에는 답이 없다. 왜일까.

GTO는 배팅 시 본인의 패나 바닥에 깔린 패나 상대의 배팅과 전혀 관계 없이 다른 기준으로 레이즈, 콜, 폴드 사이의 선택을 하는 것이 골자다. 즉 나의 배팅액이나 배팅이 나오는 타이밍에서 아무런 유용한 정보를 추출할 수 없기 때문에 상대의 경험과 통찰력이 무력화 되는 원리다. 상대가 아무리 고수라고 해도, 미친 듯이 화려한 배팅의 정수를 쉴새 없이 퍼붓는다 해도 GTO 플레이는 그 모든걸 무시하고 본인의 예정대로 정해진 배팅만 하면 된다. 그렇다면 '그냥 막 하면 되는 건가?'라는 오해를 할 수 있는데 안타깝게도 전혀 그렇지 않다. 모든 배팅은 본인의 예산과 플레이 횟수에 따라 정확히 레이즈, 콜, 폴드의 균형이 맞게 구사되어야 한다. 그러면서 일정한 패턴이 나타나는 것을 방지해야 한다. 액수와 횟수를 함께 고려한 매크로 포뮬라를 바탕으로 개별 배팅액과 진퇴를 결정하게 되는데, 당연히 매우 습득하기 어려운 경지의 기술이다. 

tony8.png

좀더 단순하게 설명하자면, 가위바위보를 해서 무조건 이길 방법은 없다. 그런데 가위바위보를 3백만 판 정도 하고 상대와의 비긴걸 제외한 승률을 반올림-반내림 한 50%이하의 승률이 나오는걸 방지하는 비결, 즉 지지 않는 방법은 간단하다. 가위와 바위와 보를 100만 번씩 아무런 규칙 없이 철저하게 무작위적으로 내면 된다. 표본이 크면 클수록 자연확률에 근접한 통계상 결과값이 나오기 때문에 당연히 자연확률인 50%를 달성하는데 문제가 없다. 내가 정확히 3분할 랜덤으로 낼 때, 상대는 무조건 가위만 300만 번을 낸다 치면 나의 가위 100만 개는 비김, 바위 백만 개는 전승, 보 백만 개는 전패, 따라서 비긴 것을 제외한 승률 50%가 된다.

이런 원리를 격투에 적용시켜보자. 흔히 사람들은 세상에는 타고난 싸움꾼이 있고 그런 싸움꾼에게는 아무리 격투기 선수라도 이길 수 없다고 믿는다. 그 싸움이 거리에서의 난전이고 무기를 휘두르거나 심하면 크게 다치고 죽을 수도 있는 환경에서의 극단적 상황을 의미한다면, 타고난 싸움꾼이 격투기 선수 치고는 조금 심약한 편인 1~2명 정도를 이길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대개 종합격투기 선수들은 심약하지 않고, 또 너무나 훌륭한 기술과 풍부한 경험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타고난 정도 가지고는 전혀 상대가 되지 못한다. 게다가 상당히 많은 종합 격투기 선수들 자체가 사실 타고난 싸움꾼 출신이다. 보통 동네에서 돈이 나가는 주먹질이나 하고 다니면서 노력은 하기 싫은데 주변에서 종합격투기가 최고라는 소리가 들려오자 이에 발끈한 어떤 형님 정도가 타고난 싸움꾼 최강론을 펴게 되는 것으로 보면 된다.

그런데 MMA 체육관에 가면 그런 형님이 매우 열심히 노력하면 어떻게 되는 지를 알 수 있다. 우리나라의 상황만을 가지고 하는 말이 아니다. 그레이시 가문이 최근 반세기 동안 상대를 가리지 않고 타류의 도전을 받아오면서 발리튜도가 형성되고 NHB 시대를 거쳐 MMA로 정립되고 있는 단계의 역사가 보증하는 거니 의심의 여지는 없다.

tony9.png

왜 MMA의 고수에게는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걸까? 고수는 하수 시절의 기억이 있기 때문에 하수의 행동에서 의도를 미리 파악할 수 있다. 즉 무얼 하고 싶어서 저러는지 뻔히 보인다는 것이다. 혹은 고수가 본인이 원하는 행동을 하수가 할 수밖에 없도록 몰아가는 경우도 있다.

어느 쪽이건 하수가 던진 회심의 일격이 바로 직접적인 패착이 될 수밖에 없다. 고수가 그것을 뻔히 보면서 역이용하기 때문이다. 신체능력과 재능과 체력과 맷집은 나중의 문제고, 당장 경험을 넘어서는 게 불가능하다.(만약 그런 예가 만약 있다면 제보해 달라. 격투 초심자가 종합격투기 도장 깨기에 성공했다는 게 사실이면 그건 국제토픽 감이다. 헤드라인은 "싸움꾼 유전자, 실재 확인, 카이스트 연구시작" 정도일 거다.)

즉 형님의 서 계신 자세가, 형님의 걸음 한걸음 한걸음이, 눈빛 한 가닥과 순간 드러났다 사라지는 찰나의 표정이 고수의 눈에는 '저는 이러저러한 방법으로 한 번 들이대 보려고 합니다'라고 미리 밝히는 제안서 정도로 보이는 것이다.

그런데 만약 타고난 싸움꾼이 괴상한 소리를 지르고 갑자기 누워서 구르다가 벌떡 일어나서 확실히 미친 사람의 표정을 지으며 광태를 부린다거나, 또 가래침을 얼굴에 뱉으면서 동시에 타격을 가한다고 하면 아마 승산이 1% 정도는 올라갈 것이다. 고작 1%라고 할 지도 모르겠지만 1%가 올라간 것은 원래 승산의 100배 정도가 되는지라 이건 엄청난 기술인 셈이다. 가래침 셋업과 타격의 연계, 잘만 들어가면 상대의 시각을 마비시킬 수 있고, 며칠 양치를 안하고 냄새 고약한 음식을 먹은 직후 사용하면 상대의 전투의지를 격감시키는 상승작용도 나타날 것이다.

요는 근본 없고 난데없어야 한다는 것. 의도와 반대로 하거나 의도의 45도 각도로 하는 게 아니라 아예 연관관계 없이 하면서도 거시적 관점에서는 이치에 부합하고 고도의 합리성을 담보하는 방식만이 최소한 고수의 경험과 통찰을 바탕으로 한 구력 플레이에 저항성 정도를 가지게 해준다는 의미다.( 물론 가래침을 뱉는 행위가 이치에 부합한다거나 고도로 합리적이라는 의미는 아니고, 실력차가 워낙 있으면 좀 치사하게라도 안 하면 답이 없다는 그런 이야기다.)

괜히 쓸데없는 소리를 해서 길어졌는데, 퍼거슨의 움직임과 옵션 전개에서 나타나는 무질서함, 예측이 불가능한 특성은 그냥 봐서는 무척 저렴하게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통산 스탯을 보면 전혀 다른 결과다. 그는 분당 12.11개의 타격시도를 하고 그중 42%인 5.09개를 적중시킨다 그러면서 본인은 상대의 타격 시도 9.67개중 64%를 방어해 3.48개만을 허용하고 있다. 이것을 주요 라이트급파이터들과 비교를 해보자.

photo_2017-10-09_16-49-43.jpg

42%를 마크한 타격의 적중률은 탑랭커 7인 중 공동 5위로 낮은 편이다. 그러나 타격 시도 자체가 분당 12.12회로 (바꿔 말하면 5초에 한 번 꼴로 타격 시도를 하는) 원탑이라서 분당 유효타 적중 수는 1위와 근소한 격차의 2위다. 1위는 더스틴 포이리에. 

놀라운 점은 디펜스다. 퍼거슨이 공격을 많이 하는 만큼 상대에게도 기회를 많이 준다. 그러나 상대의 적중률을 36%에 묶고 있다. 즉 64%의 방어율을 기록 중이라는 것이다. 공동 2위의 기록이고 1위는 하빕이라 직접 비교가 곤란하다. 하빕은 타격시도도 가장 적고 상대의 타격시도를 원천적으로 봉쇄하는 특징이 있기 때문이다. 즉, 타격기반의 선수 중에서 디펜스가 가장 좋다는 건데, 공동 2위의 파트너는 에드손 바르보자다. 그 아래에는 포이리에가 있고 43%로 격차가 다소 난다. 그 아래에는 46%의 디아즈, 그리고 리가 48%로 7위다. 

퍼거슨은 공격과 방어 양측에서 체급 내 선두권의 스탯을 찍고 있다는 것이 결론이며, 타격의 적중수에서 허용수를 뺀 타격 마진이 1.61로 2.32의 하빕과 1.68의 포이리에 바로 아래인 3위다. 맥그리거의 기록은 페더급에서 주로 작성된 것이라 비교에 적절치 않아서 표에 넣지는 않았는데, 1분당 시도 12.38, 적중률 47% 적중 5.82, 상대의 시도 10.58, 상대의 적중률 43% 분당 허용 4.55, 적중-허용 마진 1.27이다. 

퍼거슨의 스탠딩을 보면 어딘가 생경하고 불안정해 보이는데 디펜스가 1급이라는 건 의외다. 퍼거슨의 타격에 게임이론까지 끌어들이고 무리를 하게 된 이유가 바로 이 사실을 확인했기 때문이다. 럭키 펀치라는 말은 있지만 럭키 디펜스라는 개념은 없다. 디펜스율이 높다는 건 그의 방어에 어떤 논리적으로 납득이 가능할 만큼의 비결이 있다는 것이다.  

분명히 그렇다고 주장할 근거가 부족하지만, 퍼거슨의 디펜스가 가지고 있는 보기와는 다른 실속이라는 특징을 생각하면서 그것을 설명하기 위해 게임이론이니, 내쉬 이퀄리브리엄이니 하는 개념을 언급했다. 퍼거슨 본인의 생각이 어떻건 간에, 그 정도로 자유분방한 스타일은 상대의 공격 성공률을 저하시키게 된다는 부분이 요지다.

아시아권, 특히 유교문화의 영향이 강하게 작용한 동북아 국가에서는 기본기의 중요성을 대단히 강조한다. 그리고 개성을 조금 백안시 하는 경향도 있는데, 그 덕분에 뭔가 선수들의 격투 스타일까지 조금 천편일률적으로 되는 것은 아닌지. 만약 그렇다면 토니 퍼거슨의 케이스는 오히려 우리에게 중대한 뭔가를 알려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사진] ⓒZuffa, LLC
이용수 기자(press@monstergroups.com)
[㈜몬스터그룹 몬스터짐 -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br><br>

제품 랭킹 TOP 0 더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