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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파이트] 세계의 10억 인구가 지켜보는 가운데 모든 것을 초월하려 했던 코너 맥그레거의 무한도전이 수포로 돌아갔다. 체력고갈 상태였던 맥그레거가 10라운드에 접어들자 기동력을 잃은 채 메이웨더의 화망에 갇혔고, 레프리는 주저하지 않고 TKO를 선언했다. 도박사들과 복싱전문가 집단의 다수 예상대로 메이웨더는 맥그레거를 스톱시켰고, 스스로 자초한 위기에서 복싱을 지켜냈다. 


■ 기대 이상의 복싱 선보인 '미스틱 맥'

양 선수에 대한 평가는 전반적으로 일치했다. '맥그레거는 기대 이상이었다'는 언급이 영-미 현장 중계진의 멘트 및 주요매체의 기사에 공통적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가장 위대한 복서 중 한 명으로 기억될 메이웨더를 능가하기엔 역부족이었다는 결론도 일치했다. 그리고 메이웨더가 평소에 키높이 신발을 신고 다니는 것 같다는 의혹에 대해서도 말없는 공감이 이루어졌다. 

오프닝 라운드에 맥그레거는 왼손 바디샷을 연이어 적중시키며 순항을 개시했다. 경쾌한 원투가 메이웨더의 방벽을 두드리더니, 그 틈을 비집고 레프트 하나가 적중되기도 했다. 메이웨더도 잽과 라이트 오버핸드로 어느 정도 균형을 맞추고 있었다. 그러다 라운드 후, 본인을 향해 뻗어 나와있는 맥그레거의 오른손을 자신의 왼손으로 쓸어내리며 전진해 라이트를 던졌지만 맥그레거의 머리는 이미 움직이고 있었다. 

이런 식으로 오른손잡이 선수들은 왼손잡이 선수들에게 공격을 감행할 때 본인의 앞손으로 상대의 앞손을 쓸어내리는 동작이 선행되는 경우가 많다. 그 손을 그냥 둔다면 들어가는데 방해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신장과 길이 차이가 클수록 왼손 선수의 앞손은 성가신 방해물이 된다. 그런데 우수한 왼손잡이 선수들은 오히려 오른손 선수의 앞손 쓸어내리기 동작을 마치 공격을 미리 감지하는 센서처럼 활용하는 경우가 있다. 기예르모 리곤도가 대표적이며, 그는 상대의 앞손에 본인의 앞손이 눌려지는 경우 거의 자동으로 중심을 낮추며 방어기동을 시작한다. 

맥그레거도 본인의 앞손이 메이웨더의 왼손에 의해 쓸려 내려감과 동시에 무릎을 굽히고 허리를 반시계 방향으로 틀었다. 그리고 메이웨더의 공격은 맥그레거의 왼쪽 어깨를 때리게 되는데, 이게 정말 흥미로운 장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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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웨더의 시점에서 맥그레거의 머리는 공격이 시작되던 순간에 비해 오른쪽 아래로 움직였다, 공격 당시의 머리위치라면 메이웨더의 오른손 주먹은 맥그레거의 오른쪽 어깨 쪽으로 향하는 게 정상이다. 그러나 주먹의 탄착지점은 맥그레거의 머리위치보다 더 오른쪽, 더 아래인 왼쪽 어깨였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메이웨더는 맥그레거의 머리가 향할 방향을 예측하고 미리 탄착지점을 조정하는 타격을 했는데, 맥그레거의 머리 움직임이 메이웨더가 생각한 것에 비해 적어서 빗나가게 된 것일 수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의 가설은 조금 무서운 구석이 있는데, 공격을 내던 도중 맥그레거가 그것을 이미 간파했다는 것을 확인한 후 펀치의 타깃을 맥그레거의 머리가 아닌 어깨로 바꾸었다는 것이다. 이유는 당연히 맥그레거의 카운터를 방해하기 위해서다. 

메이웨더가 맥그레거의 앞손을 쓸어내리던 순간 맥그레거는 몸통을 반시계 방향으로 돌리며 무릎을 굽혔다. 이것으로 머리의 위치가 움직여 방어기동이 이루어진 셈인데, 그와 동시에 몸통이 꼬이며 왼손으로 강한 타격을 낼 수 있는 준비가 이루어진 것이다. 

펀칭파워의 근원은 복잡할 게 없다. 큰 백스윙과 길게 끌고 나가는 팔로 스루 두 가지다. 가끔 끊어 치는 펀치가 더 위력적인 거냐는 질문을 받는다.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야구선수들의 홈런 스윙이 끊어 치는 배팅이어야 맞지 않겠는가. 골프의 드라이버샷도 끊어 쳐야 더 멀리 나갈 테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으니 질문에 대한 답은 굳이 할 필요도 없을 것이다. 복싱에서 펀치를 끊는다는 것은 팔로 스루를 억제하는 것이고 그렇게 하는 이유는 타격 직후 최대한 빨리 방어 자세를 회복하기 위해서다. 백스윙을 최소화해야 하는 이유는 당연히 백스윙이 크면 클수록 상대에게 타격정보와 대응시간을 주기 때문이다. 

백스윙이 전혀 없이 펀치를 내면 어떻게 될까. 그것은 메이웨더 시니어가 선수생활의 후반부에 몸소 실험을 했는데 꽤 흥미로운 자료를 남겼다. 레너드와 싸울 당시까지만 해도 시니어의 동작에는 특별한 콘셉이 없었다. 그냥 준수한 레인지 파이터의 전형적인 스타일이었다. 시니어는 레너드전 이후 아마도 변화를 추구한 것 같다. 레너드 같은 선수를 능가하자면 하던 대로 해서는 안될 것이라 판단했을 것이고, 변화의 방향은 문제점의 인식을 기점으로 정해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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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니어의 문제는 파워의 부족이었고, 거기서 시니어는 파워를 늘리느냐 아니면 기왕 없는 파워를 아예 버리고 다른 쪽을 강화하느냐의 기로에서 후자를 선택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레너드와 대전한지 3년이 지난 1981년, 시니어는 매직맨 말론 스탈링과 대전했다. 이때의 시니어는 반동이 많이 절제된 메커니즘을 활용하고 있었다. 그로부터 2년이 더 지난 후 호세 바렛이라는 상대와 싸울 때는 더욱 절제된 모습이었고, 누군지 알 수 없는 상대와의 경기장면 일부에서는 그것이 굉장히 두드러졌다. 물론 백스윙과 팔로 스루가 모두 통제되는 형태였고, 펀치의 회수는 매우 빨랐다. 백스윙이 없이 펀치를 내면 스윙 궤적이 좌우로 퍼지는 것이 최소화된다. 퍼져서 나오는 펀치가 방어하기에 용이한데 시니어의 펀치는 대다수가 인사이드로 파고드는 궤적을 가지게 된 것이다. 종합하면, 

1. 백스윙의 절제로 상대가 공격의도를 파악하기 힘들다.
2. 펀치의 궤적이 중심선에 착 달라붙었기 때문에 방어가 어렵다.
3. 팔로 스루를 최소화 시키고 리턴에 공을 들이기 때문에 카운터 타이밍을 아주 조금만 내주게 된다. 
4. 파워는 부족하다. 그러나 타이밍 포착 면에서는 유리해 카운터 찬스를 잘 살리면 파워손실도 최소화 하는 게 가능하다.

시니어의 이 실험에서 얻어진 결과물은 아들에게 그대로 전해졌다. 

메이웨더 가문의 방식은 아무리 좋아도 따라하고 싶지 않다는 파이터들이 많다. 그런 선수들의 경우라면 어느 정도의 백스윙과 적절한 팔로 스루를 활용해 팬들의 환호를 끌어내고 싶을 텐데, 그럴 경우 맥그레거의 방식이 정답이다. 방어동작간에 백스윙을 하는 것이다.

복싱의 가장 기본적인 방어법인 롤링에 그 원리가 있다. 상대의 왼손을 몸통을 반시계 방향으로 틀며 오른팔로 커버링 하면 본인의 왼손 백스윙이 만들어져 있는 것. 그래서 상대의 왼손을 롤링으로 방어하고 본인의 왼손 훅으로 카운터를 하는데 팔로 스루까지 해서 힘있게 치고 싶다면 펀치&롤을 활용하는 게 좋다. 카운터 훅의 꼬리를 길게 끌고 나온 다음 무릎을 굽히며 허리를 숙이면서 상체를 왼쪽으로 틀면 기본자세로 돌아오는 것이다. 스완슨이 오른손 장거리포를 쏘고 난 이후 이런 식으로 카운터를 피해 빠져나간다. 

이 장면을 분석하면서 맥그레거의 복싱 실력이 상당하다는 걸 다시 한번 절감하게 되었다. 그러나 메이웨더의 오른손 펀치가 하필 맥그레거의 왼쪽 어깨를 때렸다는 것은 과연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만약, 역사에 만약이란 없다지만, 그래도 메이웨더의 그 오른손이 맥그레거의 어퍼컷 스윙을 방해하지 않았다면, 그래서 맥그레거의 왼손 어퍼컷이 풀파워로 정확히 꽂혔다면 경기 전 어퍼컷이나 훅으로 2라운드 안에 끝낸다는 미스틱 맥의 예언이 또다시 현실화 되었을 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메이웨더는 복싱의 신에게 선택 받은 선수이거나, 혹은 알려진 것보다 더 엄청난 실력을 가진 선수 둘 중 하나일 수 있다. 둘 다인 것 같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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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중세의 초반 흐름과 영악한 메이웨더

메이웨더는 이렇게 맥그레거의 왼손 어퍼를 허용하면서 1라운드의 우세를 맥그레게에게 넘겨주었다. 2 라운드에서도 맥그레거의 공세가 이어졌다. 흔히 보기 힘든 왼손잡이 잽이 좋은 맥그레거의 유용한 무기였다. 첫 두 라운드 에서는 맥그레거가 우위를 점했다.

3라운드에서도 맥그레거의 잽은 여전히 상당한 거리를 커버하며 적중되고 있었다. 레프트 바디 역시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메이웨더도 기어를 변속해 공세를 강화하기 시작했다. 사우스포를 상대할 때 열쇠처럼 사용하는 라이트 바디 스트레이트가 맥그레거의 복부에 누적되기 시작했다. 3라운드는 백중세. 

4라운드 들어서자 맥그레거의 입이 벌어졌다. 잽도, 레프트도 비교적 좋은 적중률을 보였지만 힘이 실려있지 못했고 전반적으로 뒷걸음질이 많아졌다. 반면 메이웨더는 컴비네이션의 연결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지만 오른손 바디 스트레이트로 맥그레거의 호흡 패턴을 교란했고, 맥그레거가 그것을 의식하도록 만들었다. 4라운드부터는 메이웨더가 주도권을 가져갔다.

라운드가 거듭되면서 스테미너의 차이가 완연해 졌다. 멕그레거의 공격에 힘이 줄어드는 만큼 뒷걸음질이 잦아졌으며, 그만큼 메이웨더는 적극적으로 나왔다. 메이웨더의 라이트가 맥그레거의 안면에 강하게 적중되기 시작했다. 4라운드에서 7라운드까지 메이웨더가 우세를 점했다. 개인적인 채점으로는 이 시점에서 메이웨더가 4개의 라운드를, 맥그레거가 3개의 라운드를 가져갔다고 본다. 

8회 초반 맥그레거가 바디샷을 연이어 적중시켰고 흐름을 뒤집기 위한 시도를 감행했다. 그러나 메이웨더의 라이트가 상하단을 넘나들며 맥그레거의 전진을 차단했다. 초반은 맥그레거 후반은 메이웨더가 우세했다. 전반적으로는 백중세.

9라운드 초반, 맥그레거의 라이트 바디샷이 제대로 들어갔다. 메이웨더는 그 순간 로블로를 소명하는 듯한 손동작을 취하며 뒷걸음질을 쳤다. 레프리는 두 선수를 떼어놓으며 맥그레거에게 로블로에 대한 주의를 줬다. 이 장면 직후 맥그레거의 움직임은 눈에 뜨이게 둔해졌다. 메이웨더는 망설임 없이 마무리 모드로 돌입했다. 10라운드, 맥그레거의 연료 탱크는 완전히 바닥을 드러냈다. 레프리의 TKO 선언은 맥그레거의 향후를 고려했을 때 적절한 타이밍에 이루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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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회의 로블로 연기는 경력이 무섭긴 무섭다는 것을 보여준다. 체력이 사실상 바닥난 상태의 맥그레거에겐 라운드 초반에 잠시 힘있는 펀칭이 가능하고 금방 또 힘이 다 떨어지는데, 9회 시작 직후의 그 찬스는 천재일우였다. 그러나 속아넘어간 건 맥그레거가 아닌 레프리였다.

경기가 끝난 후 메이웨더는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잘하는 상대였다. 다양한 앵글을 활용했고 터프했다"며 덕담을 했다. 그리고 초반 라운드의 열세는 의도적인 전략으로, 거기서 힘을 빼두기 위한 태세였다고 말했다.

맥그레거는 마이크가 주어지자 "내가 메이웨더를 멕시칸 파이터처럼 변신시켰잖아요"라며 말문을 열었다. 밝은 표정으로 본인은 원래 체력이 떨어지면 다리가 풀린다며, 사실 펀치에 충격을 입은 게 아니었기 때문에 한 번 정도는 다운 당할 때까지 시간을 줬다면 전열을 정비해 11~12라운드에 한번 더 승부를 걸어 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ESPN 소속의 복싱 전문가 스티븐 A. 스미스는 맥그레거에 대해 매우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던 대표적 인물이다. 경기가 끝난 후 그는 "이렇게까지 버틴 것에 대해 맥그레거를 인정할 수밖에 없죠. 프로 복싱을 해본 적도 없는 선수가 첫 두 라운드를 가져가고, 8~9라운드에서 백중세를 만들어내면서 저렇게까지 버텼기 때문에 그는 충분한 인정을 받을 자격이 있습니다"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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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맥그리거는 이기기 위해 링에 올랐다

끝으로 개인적인 의견을 조금 덧붙이자면, 맥그레거는 진심으로 이기기 위해 링에 올랐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싱계 일각에서는 이 경기를 두고 아일랜드 촌놈이 메이웨더를 이용해 돈도 벌고 인지도도 끌어 올리려고 수작을 부리는 것이며, 결과는 볼 것도 없다는 주장이 나왔다. 사실 그것이 무례한 주장이긴 하나 맥그레거의 과거를 잘 모르는 사람들이라면, 또 메이웨더를 잘 아는 사람일수록 그렇게 생각하는 게 오히려 당연하다.

맥그레거가 홍보행사에서 허풍이나 치고 책임지지 못할 헛소리나 지껄인다고 악담을 퍼부었던 사람들은 어떻게 봤는지 모르겠지만, 맥그레거는 초반에 한 번, 9라운드에 또 한 번 메이웨더를 흔들었다. 메이웨더는 뼈가 깨지고 핏줄기가 솟는 '체스라는 측면에서의 복싱'을 아버지의 집념과 두 삼촌의 헌신 덕분에 사상 최고의 경지로 끌어올린 인물이다. 해도 해도 너무 한다 싶을 정도로 훌륭한 선수인 그를 상대로 복싱 전적이 한 번도 없던 선수가 그 정도까지 해냈다는 사실은 합리적인 추론을 가능케 하는 결과다. 그가 흘린 땀의 양과 참아낸 고통의 크기가 웬만한 수준이 아니었을 것임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맥그레거의 코치 존 카바나는 2016년 초순 다음과 같이 말한 적이 있다.

"맥그레거는 놀라운 재능을 타고났으며, 만약 그의 자질이 그 정도가 아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 못했을 거라는 말들을 하죠. 그런데 전 솔직히 코너를 두고 그렇게 말하는 건 모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의 훈련량은 여전히 제일 먼저 체육관에 나와 가장 늦게 돌아가는데, 제가 그를 강제로 체육관에서 몰아내야 할 정도입니다. 그렇게 10년을 살아왔어요. 이제서야 사람들은 그 결실이 태어나는걸 보고 있죠. 근데 그게 타고난 재능 덕분이라고요? 그냥 웃을 수 밖에 없죠."

맥그레거는 오른손 잽을 전략적으로 활용했다. 그것이 아주 현명한 선택이 되었다. 메이웨더를 상대로 큰 것을 적중시키기 위해서는 작은걸 굉장히 많이 심어둬야 한다. 잽과 라이트 훅이 초반부터 길을 잘 닦아두었기 때문에 맥그레거의 왼손 어퍼컷과 스트레이트가 메이웨더의 안면에 클린히트 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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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그레거의 평소 스타일을 떠올려보자. 그는 앞손을 견제와 거리측정에 주로 사용한다. 잽과 훅의 사용빈도가 높지 않았다. 그러나 그는 이번 경기를 위해 전략적인 고려를 충분히 했다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었다. 

전략적 대비 자체는 어려운 게 아니다. 메이웨더의 자료는 데뷔 전부터 49전째의 모든 경기가 공개되어있기 때문에 분석을 바탕으로 한 방침을 세우기까지는 어느 정도의 시간만 투자하면 될 일이다. 그런데 경기에서 전략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패턴을 자기 것으로 만드는 드릴이 필요하다. 드릴은 끝없는 반복을 의미하고, 성실하지 못하다면 불과 수개월이라는 짧은 시간에 다른 종목에서 다른 방식으로 싸울 준비를 해 낼 수 없다. 

바디 펀치의 비중을 높이 가져간 부분 역시 마찬가지의 의미를 둘 수 있다. 메이웨더를 상대로 헤드샷 위주의 옵션을 채용하는 건 효율적이지 못하다. 맥그레거는 초반부터 부지런히 바디에 공을 들였다. 9라운드 초반 메이웨더의 복부에 충격을 가해 물러나게 만들었던 건 전략의 충실한 수행이 가져다 주는 선물이었다. 비록 그것을 발판으로 삼아 승리를 거머쥐는 데는 실패했지만, 메이웨더에게 복부 강타를 꽂아 물러서게 만든 최초의 파이터라는 타이틀은 챙긴 셈이다. 

5분 5라운드와 3분 12라운드라는 차이는 역시 극복하기 어려운 문제였다. 그것을 위한 대비에는 보다 더 많은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다. 맥그레거의 전체 경기력에서 가장 아쉬운 요소가 체력인 것을 감안할 때, 힘이 빨리 떨어진 부분에 대해서는 초반에 맥그레거의 소모를 유도한 메이웨더 측의 게임 플랜을 칭찬해야 할 것이다.

결과에 따라 -비록 가능성이 매우 낮았다고는 하나- 복싱계에 망신살이 뻗칠 쾌를 내포한 이 사상 초유의 일전에서 메이웨더는 다행히 북을 열심히 두드려댄 만큼 확실한 장구 실력도 보여주었다. 맥그레거는 본인의 가능성에 대해 단정적으로 '네버'를 외치던 주류 복싱계의 존중을 얻어냈다 또 MMA 팬들의 기대에 100% 부응하지는 못했지만, 그래도 부끄럽지 않게 잘 싸웠다는 칭찬을 들을 법한 성적표를 손에 쥐었다. 비록 신이 되지는 못했지만, 인간 치고는 엄청난 퍼포먼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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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 후 두 선수가 훈훈한 장면을 연출하면서 팬베이스의 충돌국면은 진정될 분위기다. 어느 업계에서건 부정적인 영향이 발생할 일도 없어 보인다. 분명 복싱과 MMA 양측에 각각 어느 정도의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을 것이다.

MMA업계는 지난 4반세기 내내 확장-상승 기조를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이제 맥그레거가 돌아와 가질 경기에 대한 기대감이 앞으로의 흥행을 주도할 견인차 역할을 하게 될 것으로 전망된다. 메이웨더는 복싱을 떠나면서 예전같지 못한 복싱의 대중적 관심을 고취시키는 선물을 준 것이라 볼 수 있다. 특히 복싱에 관심이 별로 없었던 사람들에게 복싱 팬으로 전향할 계기를 제공한 점, 한동안 보다가 점점 보지 않게 된 사람들의 마음 속 꺼져가는 불씨에 휘발유를 한 사발 부어버린 부분이 특기할 사항이다. 복싱계가 회심의 카드를 많이 준비해둔 이 시점에서 매우 적절한 결과였다. 여기서 잠시 복싱계가 준비한 회심의 카드들을 몇 개 소개하고자 한다.

1. 게네디 골로프킨 vs. 카넬로 알바레즈

오는 9월 17일에 게네디 골로프킨과 카넬로 알바레즈가 드디어 외나무 다리에서 만날 예정이다. 이건 놓칠 수 없다. 헤비급에서는 앤소니 조슈아, 타이슨 퓨리, 디온테이 와일더(3인 평균 신장 2미터+, 전적 도합 81승 0패 73KO)와 조셉 파커 대 휴이 퓨리(두 선수 도합 43승 0패 28KO) 간의 승자가 곧 천하통일을 위한 리그를 오픈할 예정이다.

2. 기예르모 리곤도 vs. 바실 로마첸코

잘 알려지진 않았지만 극도로 우수한 두 명의 마스터 클래스 사우스포 기예르모 리곤도와 바실 로마첸코의 대전도 결국 성사됐다. 로마첸코가 체급을 올리면서 물 건너가나 했지만, 최근 두 선수가 어디서 자극이라도 받았는지 하겠다고 나섰다.

각각 올림픽 금메달 2개, 그리고 올림픽보다 어렵다는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2개씩 가졌다. 아마추어 전적은 양 선수 도합 871승 13패다. 리곤도는 프로 9전째에 밸트를 감았고, 로마첸코는 프로 2전째에 첫 도전을 했다가 고배를 든 아픈 기억이 있지만 3전째에 타이틀을 획득하면서 무앙수린의 기록과 타이를 이루었다. 두 선수 모두 우주의 복싱을 구사하며, 이걸 놓친다면 평생 후회할 것이다.

3. 이노우에 나오야 미국 무대 데뷔와 로만 곤잘레스의 리턴 매치

또 일본의 파워 펀처 이노우에 나오야와 로만 곤잘레스의 굴뚝에서도 연기가 피어 오르는 걸 봤다는 증언이 나오고 있다. 현재 13연승 중이며 주니어 플라이-수퍼 플라이급 선수로서는 놀라울 정도의 KO 파워를 과시하는 중이다. 데뷔 6전 만에 주니어 플라이급 챔피언이 되었고, 8전째에 두 체급을 한번에 올려 WBO의 슈퍼 플라이급 왕좌에 앉았다. 현재 5차 방어 달성 중이고, 총 8회의 타이틀전에서 7KO 승을 거두고 있다. 오는 9월 10일 미국 무대에 데뷔하는데, 이날의 헤드라이너가 로만 곤잘레스다. 

곤잘레스는 46연승을 질주하던 중 올 3월에 태국의 시리사켓에게 의문의 1판정패를 당했다. 오는 9월 10일 경기에서 두 선수가 리턴매치를 벌이는데, 미니멈급에서 출발해 4체급을 달성중인 곤잘레스는 '백작' 알렉시스 알게요의 제자다. 니카라과 출신의 슈퍼스타로 최초의 4체급 달성을 위해 노력했지만 아쉽게 돌아섰던 알게요는 모든 것을 다 가진 선수였다. 은퇴 후에는 정계에 입문해 니카라과의 수도 마나구아시의 시장을 역임했다. 그러나 2009년 7월 그의 삶은 스스로의 손에 의해 정리되고 말았다. 

막판에 갑자기 우울해진 점 사과드리며, 곤잘레스는 스승의 방식을 물려받아 상대의 호흡곤란을 유발하는 고성능 압박머신이 되었다. 신체능력도 극도로 우수하지만 테크닉의 종류와 깊이에서는 볼 때마다 감탄을 금할 길이 없을 정도로 비범하다. 이노우에와 곤잘레스가 대전한다면, 그래선 안되지만 왠지 열 받을 것 같다. 일본에는 세계 챔피언이 10명 넘게 있으니깐. 

각설하고, UFC는 이제 바빠질 것이다. 복싱이 아끼고 아껴둔 메가톤급 카드의 연속 출회국면을 MMA 업계에서는 어떤 대진으로 맞설 지 기대가 될 따름이다.

[사진] ⓒShowtime/ ⓒZuffa, LLC/ 플로이드 메이웨더 인스타그램
[기사] 이용수 기자(press@monstergroups.com)
[편집] 조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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