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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 이 대결은 여러모로 불공평하다. 언제 맥그레거가 돌아오는지 목이 빠질 지경인 UFC 라이트급 잠정 챔피언 토니 퍼거슨에게도 그렇고, 웰터급 근처를 어슬렁거리며 메이웨더의 비싼 벨트를 노리던 다수의 빅마켓 파이터에게도 마찬가지다. 난데 없이 UFC가 세계 복싱의 수도 라스베가스에서 21세기 복싱의 정점인 메이웨더를 MMA 4반세기 역사상 최고의 스타라고 하는 맥그레거와 붙이는데, 복싱하면 딱 생각나는 두 방송사인 HBO와 쇼타임이 합동으로 PPV 중계를 하지만 그걸 그냥 입맛만 다셔야 하는 복싱계의 양대 흥행사 밥 애럼과 오스카 델라 호야에게도 역시 그러하다. 오는 9월 17일 드디어 맞붙게 되는 게나디 골로프킨과 카넬로 알바레즈도 홍보를 본격적으로 시작해야 할 시기지만, 하도 위세가 어마어마한 이쪽을 보면서 시계만 쳐다보는 중이다. 

■ 신경이 곤두선 복싱계와 팔자 좋은 MMA계

업계의 반응은 상반된다. 격앙되고 날카로우며 어딘지 안절부절 못하는 쪽은 복싱계다. 반면 MMA계는 여유롭게 현 상황을 즐기고 있다. 복싱계의 입장은 맥스 캘러먼이 대변한다. 오랫동안 HBO의 중계석을 맡아온 수석 해설자 래리 머천트의 자리를 노리는 그는 연일 '0%'와 '네버'를 외치는 중이다.

물론 스포츠에서 그 두 가지 단어를 말하는 건 멍청한 짓이다. 하지만 그가 멍청한 사람이라는 게 아니라, 열이 받아서 뇌가 엉망이 되어버린 것으로 보면 될 일이다. 캘러맨을 위시해 유,무명의 수많은 복싱인들이 악담과 저주에 가까운 멘트를 유튜브가 넘치도록 쏟아냈다. 

MMA 측에서는 네이트 디아즈가 이목을 끌고있다. 그는 "맥그레거를 비판하는 복싱쪽 사람들 많은데, 그런 오만한 짓거리는 집어치우는 게 나을 것"이라고 하며 "맥그레거가 복싱으로 해주는 것과 메이웨더가 MMA 룰로 싸우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창피스럽게 당하겠는가. MMA 룰에서라면 메이웨더는 그냥 장난감일 뿐"이라는 주장을 폈다.

그리고 아마도 방송에서 맥그레거를 강도 높게 비판중인 한 복서를 상대로 하는 말이지 싶은데, 디아즈는 그를 두고 "그 도장에 찾아가서 복싱으로 한 번 혼내주고, 바로 집어 던진 다음에 또 한 번 참교육을 실천할 것"이라는 경고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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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그는 메이웨더에 대해 "이기는 것 하나는 잘한다. 아마추어 스타일이고, 못한다는 이야기기는 아니다. 여러가지로 MMA 파이터보다 주먹 하나는 잘 쓰지. 그런데 서로 욕도 하고 이런저런 게 가능한 진짜 싸움에서라면 그런 1차원적인 방식으로는 망신만 당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뿐만 아니라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그는 전에 없이 진지하고 정상적인 태도로 승부를 전망했는데 내용은 아래와 같다. 

질문: "코너에게 기회가 있을까요? 아니 이건 그냥 안 되는 건가요?"

디아즈: "당연히 기회가 있습니다. 이건 싸움을 바탕으로 한 경기예요. 누구에게나 찬스는 있죠. 복싱계에서는 코너에게 기회는 절대 없다고 큰소리들이 나오고 있는데, 그건 무지예요. 그와 25분간 싸워봤는데, 그가 상대를 지치게 만들고 두들겨 팰 수 있다고 봅니다. 파운드 포 파운드 넘버원과의 대결이라면 좀 다른 얘기긴 하지만 그래도 어떻게 될지 지켜볼 거예요."

네이트 디아즈가 맥그레거의 편을 들고 있는 이 아름다운 국면(?)은 결국 복싱계의 조금 과격하고 어른스럽지 못한 태도가 만들어낸 MMA의 대동단결이라 할 수 있다. 복싱계의 입장이 그런걸 이해하지 못하는 건 아니다. 맥그레거의 패배는 복싱에 아무런 득이 되지 못하지만, 메이웨더가 질 경우 복싱계는 정말 난감해 질 것이다. 메이웨더의 패배 후 밀려들 다양한 쓰나미를 상상해본다면 열 받는 게 당연하다. 

즉, 승부 자체가 메이웨더에게 압도적으로 유리한 만큼 결과의 흑백에 의해 양측이 나눠 갖게 될 보상과 상실의 무게감에서도 비교할 수 없는 차이가 있다는 것. 복싱 쪽 사람들의 속이 편할 리가 없다. 그렇지만. 여기서 존경 받을 자격을 증명한 원로 권투인 슈거 레이 레너드의 일성을 참고해 보자. 세 군데의 인터뷰에서 나온 견해를 종합한 것이다.

"메이웨더 쪽으로 많이 기우는 게 사실이죠. 그러나 맥그레거에게도 기회는 있습니다."

"나이 문제라는 거, 그건 당해보기 전에는 아무도 몰라요. 카마쵸와 싸우러 올라갈 때만 해도 전 나이가 문제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거든요. 그런데 그와 싸우면서 '아차, 내가 예전같이는 못하는구나'라고 그제서야 깨달았죠. 꼭 나이가 아니더라도 맥그레거가 사이즈와 힘을 활용해 메이웨더를 험하게 다루면 의외의 결과가 나오지 말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복싱 순혈주의의 관점에서라면 이 경기는 휴지조각일겁니다. 하지만 팬 여러분들에게 이건 일생일대의 빅쇼라고 봐요."

사실이 너무 길었다. 이제부터 복싱계를 도탄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을 파멸의 시나리오를 구상해 보자. 메이웨더가 이길 가능성이 매우 높고 심지어는 그의 KO승을 전망하는 사람들이 더 많은 상황이긴 하지만,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설마는 사람을 잡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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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웨더 진영의 걱정거리

키와 팔길이, 그리고 근력이다. 복싱이라는 스포츠에서는 스피드와 타이밍 감각의 중요성이 절대적이다. 그 부분에서는 어차피 게임이 안 될 것이 분명하나, 복싱에도 힘과 체격을 이용한 전법이 존재한다. 두 선수간의 체격차는 보기보다 크다. 메이웨더의 평소 체중은 62kg 정도로 알려져 있다. 맥그레거는 75kg 가량으로 경기 당일에 10kg 이상의 차이가 날 수 있다. 종합격투기에서 이정도 차이는 그렇게 드물지 않다. 체급간의 간격이 복싱에 비해 워낙 크기 때문이다. 

메이웨더에게 맥그레거는 지금까지 상대해 본 그 누구보다도 힘이 센 선수일 것임은 분명하다. 그것에 의해 발생할 가장 단적인 문제는 근접전과 클린치에서의 불리함이다. 메이웨더의 근접전과 클린치워크는 완벽에 가까울 정도로, 그는 상대의 공세를 물러나기보다는 오히려 달라붙어 잘라버리고 머리를 맞댄 상황에서 차원이 다른 공-수 스킬로 상대를 괴롭힌다. 

이전에 살펴본 대로 메이웨더는 왼쪽 하이엘보로 상대의 오른손을 견제하고 오른손으로 상대의 왼손을 컨트롤 하면서 상대의 공격 옵션을 하단으로 제약한다. 오른쪽 바디가 오면 몸을 틀어 등을 대주고 라이트 어퍼컷으로 받아 치며, 왼손 바디를 시도하면 그것이 오기 전에 오른손 쇼트 어퍼컷으로 내각을 베어버린다. 몸을 맞댄 상태에서 상대를 밀어 상대의 반발력을 유도한 후 갑자기 몸을 뒤로 빼면 본인의 반발력에 의해 상대의 체중이 앞으로 쏟아지게 만든 후 공격을 퍼붓는 등 그가 밀착 상황에서 보여주는 테크닉은 예술 그 자체다. 

그런데 상대가 맥그레거라면 전혀 다른 그림일 수 있다. 하이 엘보의 견제유용성은 상대의 키카 크고 팔이 길수록 낮아진다. 오른손에 의한 왼손견제는 왼손잡이에게 통하지 않는다. 서로의 앞발을 맞대고 뒷발은 빠져있는 근접 대치 국면의 특성상 왼손잡이는 오른손잡이와 싸울 때 밀착 상황에서도 뒷손을 강하게 휘두를 수 있다. 오른손잡이에게도 마찬가지. 그러나 아무래도 거리가 있을 때보다 근접상황에서 맥그레거의 적중률이 높아질 것이다. 

교통사고로 심한 다리 부상을 당했던 팀매드 소속의 차인호 선수는 MMA로 귀환하기 전 한동안 복싱을 했다. 신인왕전에서 우승하고 동양/태평양 랭킹전을 가질 정도로 좋은 결과도 얻어냈다. 그의 언급에 따르면 '클린치에서 더블 언더훅을 잡고 슬쩍 들어서 코너에 가두니까 적잖이 당황하더라'는 것이다. 한두 번 그런걸 당하고 나면 복서들이 근접전을 피하게 되는데, 상대가 어떤 부분에서 명확한 의도나 기피를 드러낸다면 전략적인 면에서 이용 가능하다. 즉, 클린치 피하려다 호랑이 굴로 들어가는 함정을 팔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맥그레거가 이기기 위해서는 클린치에서 메이웨더를 식겁하게 만드는 것 중요하다. 체격과 힘을 이용해 메이웨더의 섬세한 스킬 시스템을 찌그러뜨려야 하고, 그 도중 왼손으로 복부에 묵직한 것을 심어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가장 유효한 전략 중 하나가 될 것이며, 그것을 잘 알기 때문에 메이웨더 진영은 "맥그레거가 더티하게 나오면 XX 해버리겠다"는 엄포를 놓고 있거니와, 복싱계에서 드물게 맥그레거의 승리 가능성을 보고 있는 사람들이 맥그레거에게 더티하고 험하게 다루라는 주문을 하는 것이다. 

메이웨더가 만약 맥그레거와의 밀착 상황에서 부담감을 느낀다면 그가 활용하는 디펜스 시스템 중 달라붙어 끊기는 봉인될 가능성이 크고, 그렇게 되면 맥그레거의 가능성은 다소 상승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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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소한 동작과 다른 리듬

복싱의 기술에 대해서 메이웨더는 너무나 깊고 광범위하게 알고 있고 대응책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 복싱에서 배운 방식으로 메이웨더를 공격해서는 거의 확실하다고 말 할 수 있을 만큼 실패하게 된다. 고수는 하수의 길을 알고 있다. 

그런데 복싱에서 배우는 것, 복싱경기에서 경험하는 것이 무엇인고 하니, 주먹으로 상대를 때려 눕히거나 점수를 쌓아 올리는데 복싱의 기술을 능가할만한 다른 것을 찾을 수는 없다. 다른 종목 선수들의 펀치 활용법은 대개 복싱의 다운그레이드 버전이다. 킥복싱이나 무에타이, 산타 등의 경우 킥의 비중에 따라 자세가 높아지고 중심이 뒷발로 간다. 스텝의 현란함도 그에 맞춰 감소하고 그런 환경에서의 펀칭은 주인공의 자리를 호쾌한 헤드킥과 효율 높은 레그킥에게 내주게 된다. 중점적으로 단련하지 않으니 스킬 레벨에는 한계가 생기는 것이다. 

종합격투기의 경우에는 구도가 조금 달라진다. 상대의 테이크다운이 있기 때문에 킥의 활용에 제약이 따르고, 특히 타점이 높은 킥은 구사 빈도가 낮아진다. 반면 MMA의 스트라이커들에게 펀치기술은 극도로 중요해진다. 그라운드 공방을 전혀 하지 않는 풀타임 스탠드업 스타일의 경우 펀치 기술의 수준은 기량에 직결되며, 맥그레거가 바로 이 유형의 대표자다.

앤더슨 실바, 왕년의 주니어 도스 산토스, 도미닉 크루즈와 코디 가브란트, TJ 딜라쇼, 챔피언이 되고 난 이후의 디펜시브 알도 모두 대단히 훌륭한 주먹기술을 가지고 있다. 그중에서 크루즈의 기동간 타격이나 딜라쇼의 스위치 파이팅, 가브란트의 파워 펀칭, 디펜시브 알도의 라이트 스트레이트 등은 태클과 그라운드가 허용되어 그것에 대한 단련까지 병행해야 하는 선수들임을 감안할 때 대단히 높은 수준에 도달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맥그레거의 경우는 위에 열거한 그 누구보다도 테이크다운 디펜스가 약한 것으로 추정해볼 수 있다. 멘데즈와의 경기에서 그 점이 어느 정도 노출되었다. 그만큼 스탠딩에서의 화력과 전법이 탁월하다. 즉 그를 MMA 최고의 주먹꾼 중 한 명으로 칭하는데 무리가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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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의 기술이 복싱에서 통할 것인지는 그가 어디에서 최고인 것과는 무관하다. 중요한 점은 그의 방식이 복싱과 얼마나 다르냐는 것이다. 복싱과 비슷할수록 통하지 않을 것은 당연한 이치다. 정통 복싱과 유사한 펀칭을 사용하는 가브란트의 경우가 오히려 복서와 복싱룰로 싸워서 이기기가 더 어려울 수 있다는 이유는 결국 경험과 근육기억의 측면에서 복서들의 우위가 확연하기 때문이다. 이미 이것에 대해서는 앞서 지루할 정도로 설명한 바 있다. 

맥그레거는 자세 측면에서 19세기 복서들과 유사하다. 두 다리 사이의 간격은 넓고 상체는 직각으로 꼿꼿이 세운다. 넓은 다리 간격은 파워를 위한 베이스이고, 상체를 세운 것은 상대와 본인의 사정거리차를 조금이라도 더 증폭시키기 위한 세팅일 것이다.

일반적으로 선수들은 상대와 본인의 거리를 재기 위해 앞발의 위치를 체크하고 잽을 활용한다. 왼손잡이가 상대일 경우는 앞발의 위치에 서로 굉장히 민감해진다. 공격시 본인의 앞발을 상대의 앞발 바깥쪽에 놓으려 하는데, 그것이 공격의 성패에 끼치는 영향 면에서 대단히 중요하기 때문이다.

맥그레거의 자세는 앞발이 나와있는 것에 비해 머리가 멀리 있다. 그리고 맥그레거는 페더급 치고는 높은 신장과 긴 팔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공격 가능 거리 면에서, 수비가능 거리 면에서 유리함이 있다. 대개의 경우 상대가 맥그레거에게 다가와야 하며, 달려드는 상대를 맞아 양발 스텝으로 거리를 조절하면서 앞굽힘세를 만든 후 본인의 장기인 레프트를 구사한다.

맥그레거에게 메이웨더가 위험한 상대인 이유는 킥과 태클을 하지 않고 순수하게 펀치만을 사용하며, 주먹기술면에서 맥그레거가 처음으로 상대해보는 절대고수라는 점이다. 본인의 장기를 더 잘하는 상대에겐 이기기 힘들다. 그건 다들 아는 얘기고, 메이웨더에게 맥그레거가 위험한 상대인 이유는 맥그레거에게는 비정통적인 움직임이 풍부하다는 부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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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적으로 도발기에 가까운 동작이 많지만, 맥그레거는 때리기 전에 다양한 동작과 말로 상대의 주의를 분산시키고 의도를 감추는데 능하다. 그리고 상대를 현혹시킨 다음 큰 것으로 본전을 뽑는 일반적인 패턴 뿐 아니라 홀리고 잘게 두드려 성질을 긁는 심리전도 잘 사용한다. 현혹 후 큰 것을 실패하면 상대에게 안도감을 주고 본인의 체력이 손실되지만, 현혹한 후 작은 것을 상대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형태로 구사한다면? 예를 들면 영국에서 치른 경기에서 사용한 라보나 킥 같은 것들이 들어가면 상대가 흥분한다. 흥분한 상대가 공세를 강화하면 맥그레거에게 더 많은 카운터 기회가 오는 것이다.; 경기 전에 상대의 성질을 있는 대로 건드려 두는 것과 이어지는 연환독계라고 할 수 있다. 

맥그레거가 이도 포탈이라는 운동동작 연구가를 캠프에 불러들이고 함께 운동하는 것을 즐기는 이유는 아마도 그와 함께 기술과 기술 사이의 동작에 대한 새로운 방식을 찾기 위해서일 것이다. 판에 박히지 않은 형태로 하는 것 자체는 어려울 일이 없다.

예컨대, 와지마 코지의 개구리 펀치 같은 것, 우악스럽게 밀어붙이며 큰 것을 미친 듯이 휘두르던 상대가 달려들다 갑자기 주저앉는 순간 상대의 근육기억은 작동을 멈춘다. 그 와중에 벌떡 일어나며 어퍼컷 비슷한 펀치를 내면 그런걸 처음 당해보는 선수들은 걸려들 수 있다. 물론 그걸 보고 확인하고 대비한 선수에게는 통하지 않는다 동작이 크고 발동이 느린 기술이기 때문이다. 

와지마 코지의 방식은 현재 맥그레거가 메이웨더를 상대함에 있어 절대적 중요성을 가진다. 그런 숨겨둔 특수기 몇 개는 챙겨 올라가야 승산이 조금이라도 생긴다. 맥그레거가 공개 트레이닝에서 보여준 오징어팔과 잽-훅 변환기의 존재에 대한 주장은 그 예고편으로 봐도 좋을 것이다.

그런데 최고 레벨의 경쟁에서도 통하는 새로운 방식을 찾아낸다는 건, 즉 복싱에서 지금까지는 사용되지 않은 동작으로 펀칭 메커니즘을 살리고 유효타를 적중시키겠다는 건 150년 역사와 기라성같이 늘어선 복싱의 개혁가들 모두에 대한 도전인 셈이다.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지만, 맥그레거가 워낙 그 부분에 심취한 인물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일말의 기대감이 생기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만약 그게 맥그레거가 추구하는 바라면 그 상대로 메이웨더 만큼 적절한 인물은 없다. 맥그레거의 실험이 성공한다면 그의 말마따나 그가 곧 복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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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큰 것 보다는 잔 것, 머리보다는 배

보통 맥그레거의 승리 시나리오에 대해 왼손 큰 것 한방을 터뜨려 메이웨더를 잠재우는 형식을 생각하는데, 개인적으로는 반대다. 메이웨더에게 큰 것 하나를 꽂으려 한다면 승률이 훨씬 더 낮아진다. 복싱에서 그 쟁쟁한 수많은 파이터들 대다수가 경기 도중 어느 라운드에서는 그런 어프로치를 구사했지만, 그럴수록 메이웨더에게 더 말려든다. 크게 휘두르는 건 메이웨더의 공격력을 강화시켜주고 수비능력을 향상시켜줄 뿐이다. 

따라서 평소보다 잘게 나눠 쳐야 한다. 파워보다는, 심지어는 타이밍보다도 적중 자체에 심혈을 기울여야 메이웨더 측의 예측을 피해나갈 수 있다. 즉, 본인의 파워펀치인 왼손을 미끼로 사용하고 오른손을 주공으로 짧고 가볍게 공격하는 운영이 중요하다. 적어도 메이웨더가 그것에 익숙해지고, 맥그레거가 경기 내내 그 전략으로 운영하는 게 게임플랜인가? 하고 생각할 정도로 꾸준하게 밀어붙일 때 왼손이 적중될 기회가 온다. 왼손이 적중되기 시작하면 경기의 흐름도 요동치게 될 것이다. 

오른손은 상대의 머리에 가까이 있고 상대에게 주는 압박감이 덜해서, 잘고 가볍게 쓰면 적중률 자체는 상당히 높다. 특히 공격 옵션의 비중이 왼쪽으로 편중되는 경향이 있는 사우스포가 오른손을 잘 쓰면 상대하는 입장에서는 무척 어렵게 느껴지는 게 사실이다. 

그렇다면 왼손은 당연히 복부를 노려야 한다. 메이웨더의 머리는 정말 맞추기 힘든 과녁이다. 너무나 빨리, 교묘하게 움직이기 때문에 거기를 노리게 되면 펀치 적중률이 대폭 하락한다. 메이웨더와 싸운 선수들은 보통 본인의 통산 적중률에 비해 30~50% 정도 낮은 수치를 기록한다.

빈센테 살디바라는 역사적인 사우스포 챔피언은 "배를 죽이면 머리도 함께 죽는다"라는 보디펀칭의 금과옥조를 남겼다. 오른손잡이 선수들의 보디펀칭의 핵심은 앞손 리버샷이다. 왼손잡이의 경우는 뒷손 명치 타격이다.

오른손잡이가 상대의 복부에 충격을 주기 위해선 일단 접근전을 걸어야 하고, 약한 손인 앞손을 가지고 데미지를 중첩시켜야 한다. 오른쪽 흉곽의 바로 아래에 위치한 간장은 유용한 급소지만 한가지, 일격에 눕히는 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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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명치는 복부의 주요 타점 중에 즉효성 데미지를 전달하기에 최고의 포인트다. 왼손잡이는 왼손 하단 뻗어치기로 먼 거리에서도 강력한 복부공략이 가능하며, 다양한 앵글과 거리에서 내려찍고 돌려치고 올려치는 입체적 접근이 가능하다.

메이웨더의 머리는 척추라는 봉의 끝에 달려있어 메이웨더가 척추를 휘두르기 시작하면 매우 빠르게 복잡하게 움직인다. 반면 명치의 움직임은 상대적으로 덜하기 때문에 맞추기가 용이하다. 헌데 명치라는 부위는 타점을 정확히 특정하기에 다소 어려움이 있다.

명치는 척수에서 뻗어 나온 신경다발이 소화관과 간, 비장과 췌장, 신장 등 주요 장기로 분기되는 신경의 허브다. 그 방사상의 형태 때문에 명치를 영어로 '솔라 플렉서스'라고 한다. 명치의 위치는 그러나 피부나 근육, 혹은 흉곽의 바로 아래는 아니다. 심장의 아래쪽 뒤편으로 우리 몸의 중앙부분에 자리를 잡고 있는데, 중요한 만큼 아주 잘 보호되고 있는 셈이다. 허나, 척추 뼈로 둘러싸인 척수나 극도로 단단하며 구형인 두개골에 의해 보호되는 뇌화는 달리 명치의 주변은 유동질이다., 복강내에 잘 감추어져 있기는 하지만, 복강내의 장기와 복수라는 유동질 고체와 액체를 격동시켜 충격파가 명치에 닿도록 한다면 즉시 숨통이 컥 막히는 격통을 느끼며 바닥을 구르게 되는 것이다. 누적 유무와 관게 없이 잘 들어간 한방이면 게임 오버다. 

헤드샷이 실신을 초래하는 메커니즘은 관성에 의해 제자리에 있으려는 뇌를 두개골을 후려쳐 찌그러뜨리고 복원력에 의해 진동하게 만드는 것이다. 뇌는 두개골의 수평회전에 의한 변형과 그에 따르는 척수와의 연결부위에 발생하는 비틀림에 가장 약하다고 하는데, 이것을 '로테이셔널 데미지'라 한다. 그리고 전후방의 급격한 움직임에 의해, 즉 차량의 전-후방 충돌 시 받게 되는 혹은 스트레이트 펀치를 정면에서 허용할 때 생기는 뇌의 충격은 리니어 데미지라고 부른다. 머리에서 최악의 급소가 관자놀이이고, 훅으로 관자놀이를 가격해 고개가 좌우로 돌아가도록 만드는 방식에 의해 가장 확실한 KO가 나는 것이 위에서 소개한 해부학적 정보를 참고하면 납득이 된다. 

그런데 '솔라 플렉서스', 즉 명치는 두개골에 비해 훨씬 다양한 층으로 겹겹이 보호받고 있다. 피부와 근육층 아래 가슴뼈가 있고, 복막도 있고, 심장과 소장도 명치의 앞에 버티고 있다. 타격이 가해지는 위치와 각도에 따라 아무래도 다른 결과가 나올 것이며, 임팩트의 방식에 따른 차이도 있을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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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문하고 경험도 없어 알지는 못하지만 분명 명치를 어떻게 때리는지 잘 아는 사람이 있을 것이고 노하우도 존재할거라 생각하며, 맥그레거에게 명치를 제대로 때리는 요령은 크게 도움이 될 것으로 보인다. 타격으로 파동을 일으키는 것이 핵심이기 때문에 북을 치는 것과 유사성이 있을 것으로도 보인다. 드러머들, 특히 오케스트라에서 큰북 연주자들의 노하우에서 단서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상상을 해 본다. 

태국이 낳은 불세출의 챔피언 카오사이 갤럭시는 1980년부터 1991년까지 WBA 슈퍼 플라이급 타이들을 19회 연속 방어하는 대업을 달성한 후 스스로 벨트를 풀었다. 총 전적은 47승 1패 41KO로, 미들급에 가져다 놓아도 압도적인 KO율이다.

그런 그의 KO펀치는 헤드샷이 아니었다. 태국에서 '창자를 관통하는 레프트'라고 부르는 왼쪽 바디샷 세트가 갤럭시의 KO 메뉴였다. 갤럭시의 하이라이트를 보면 기예르모 리곤도라는 절세의 복싱 마스터도 레프트 바디샷 일격으로 상대의 허리를 접어버리는데 일가견이 있다. 사마트 파야카룬, 매니 파퀴아오, 바실 로마첸코 등, 단편적인 헤드샷 카운터를 노리는 일반적인 왼손잡이 스타일을 탈피해 광범위한 앵글을 커버하는 풋워크와 상하단을 가리지 않고 퍼부어대는 기관포 같은 컴비네이션을 구사하는 스타일의 선수들도 레프트 바디샷을 컴비네이션의 기점으로 활용하는데 능하다. 

맥그레거는 특히 카오사이 갤럭시를 참고할 필요가 있다. 갤럭시는 스피드와 스킬의 열세를 안고 싸우기 시작했다. 무에타이 출신이었기 때문에 당연한 것이었으며, 그는 그것을 내구력으로 커버하면서 점차 극복해 내는, 그 출발점이 바로 근접상황에서의 좌우 쇼트블로우 컴비네이션이다. 흔히 그에 대해 기억을 떠올려보면 풀 스윙의 호쾌한 왼쪽 헤드샷과 상대를 코너에 몰아놓고 퍼붓는 강력한 컴비네이션이 연상되지만, 짧고 정교한 컴비네이션 카운터는 그의 전체 경기력에서 중대한 역할을 했다. 그것으로 머리를 건드려 줘야 바디샷이 먹히는 것이고 바디샷의 맛을 보면 치명적인 헤드샷도 들어가는 것이 갤럭시 특유의 전개였다. 슬로우 스타터고 초반에는 고전을 좀 하는 경향이 있다는 점도 포인트다. 엄청난 것을 끝도 없이 주고받는 대난타전 형국에서도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본인의 게임을 하는 특유의 뚝심도 맥그레거에게 꼭 필요한 요소다. 

카오사이 갤럭시 하면 떡 벌어진 바위 같은 몸매, 그리고 밤길 걷다 마주치면 식겁할 것 같은 인상이 각별했다. 은퇴후 그는 연예계에서 활동했다고 하는데 특히 코메디 작품에 주로 출연했다는 후일담이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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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승패의 분수령

위의 방식이나 혹은 어떤 다른 방식으로든 맥그레거가 메이웨더에게 위협을 가하면, 메이웨더는 아마도 본인의 필승 패턴으로 돌아갈 것이다. 극도로 신중하게 경기의 템포를 통제하며 방어적인 포인트 쟁탈전 국면으로 전개된다면 정말 답이 안 보인다. 그러나 그런 양상이면 메이웨더가 맥그레거를 KO로 잡을 가능성도 극히 줄어든다.

KO가 아닌 메이웨더의 승리는 내용에 따라 맥그레거의 심정적 승리로 치환될 가능성이 있다. 12라운드 모두, 혹은 10개 라운드 이상에서 우위를 점한 원사이드 판정승이라면 할 수 없다. 하지만 맥그레거가 세라운드 정도 가져가면서 메이웨더가 방어적으로 운영해 판정승을 한 거라면 사람들은 메이웨더의 승리를 인정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 경우 차후에 벌어질 복싱대 MMA의 논쟁이 아주 볼만할 것이다. 메이웨더가 다운이나 그로기 등을 한번이라도 당한다면 그 역시 마찬가지의 결과를 초래 할 것이다. 

맥그레거가 4~5개 라운드 정도에서 앞서며 근소한 판정승을 거두는 선에서부터는 복싱에 피해가 발생할 것이며, 복싱계가 보복을 위해 MMA에 도전하는 그림이 나타날 수도 있다. 즉 멕그레거가 초반에 참패하거나 아무것도 못해보고 완봉 당하지 않는 한, MMA와 복싱의 대결국면은 격화 일로를 향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그건 나쁜 일이 아니다.

[사진] ⓒZuffa, LLC
[기사] 이용수 기자(press@monstergroups.com)
[편집] 조형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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