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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스터짐=편집부] 불과 사흘 앞으로 다가온 UFC 209는 올 상반기에 열리는 대회 중 가장 눈에 띄는 이벤트다. 타이틀전이 메인이벤트로 치러지는 관례 때문에 웰터급 벨트가 걸린 타이론 우들리와 스티븐 톰슨의 2차전이 가장 마지막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점이 다소 미덥지 못한 팬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에 앞선 경기들-이를테면 하빕 누르마고메도프와 토니 퍼거슨의 빅뱅 매치, 그리고 K-1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킬 법한 알리스타 오브레임과 마크 헌트의 맞대결 등은 격투 팬들의 원초적 본능을 일깨우는 꿈의 매치업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대회의 디테일을 잘 뜯어보면 의외로 우들리와 톰슨의 대결에서 보다 많은 흥미거리가 숨어있음을 파악할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별다른 이슈가 없는 웰터급 강자들의 평범한 타이틀전으로 보이지만, 그들이 걸어온 길을 겹쳐본다면 이 둘은 절대 데칼코마니가 될 수 없는 운명을 타고 났다.

많은 이들이 과소평가하고 있지만, 실제로는 이 두 파이터의 대결은 메인이벤트로 걸기에 더없이 좋은 대진이다. 과연 우들리와 톰슨에게는 무슨 일이 있었을까? 두 파이터가 걸어온 길부터 서로의 목을 노리는 비장의 최종병기들까지 집중조명해본다.


■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난 레슬링 모범생이자 운동 바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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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미국 미주리주의 대도시인 세인트루이스에서 조금 떨어진 퍼거슨에서 태어난 우들리는 대단히 가정적인 환경에서 자랐다. 무려 13남매 중 11번째로 태어났는데, 어린 시절 아버지가 일찍 세상을 떴지만 홀로 남은 어머니가 무한한 애정으로 자녀들을 잘 길러냈다. 다행히 기대에 부합하듯 우들리는 나쁜 길로 빠지지 않고 운동 바보가 되어 학창시절을 온전히 보낼 수 있었다.

우들리는 고교시절 미식축구에서도 꽤 두각을 드러냈다. 하지만 가장 좋은 성적을 냈던 종목은 바로 아마추어 레슬링이었다. 48승 무패라는 어마어마한 연승 행진을 기록하며 두 번이나 주 챔피언에 올랐고, 우들리는 이 빛나는 타이틀을 단 채 2000년에 맥클루어 고등학교를 졸업했다.

제왕의 면모를 아낌없이 보여준 그의 레슬링 능력에 무수한 러브콜이 쏟아졌다. 네브래스카 대학교와 북아이오와 대학교에서도 코치 제의가 들어왔다. 하지만 우들리의 행선지는 레슬링 팀의 리빌딩이 시급했던 미주리 대학교였다. 이곳에서 우들리는 코치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돈을 벌 수 있었다. 또한 본인도 좋은 성적을 냈는데, 100승을 넘게 쌓으면서 NCAA 디비전1에서도 두 번의 올 아메리칸에 올랐다. 동시에 학업도 소홀히 하지 않았던 그는 농업 경제학을 전공하며 주경야독을 몸소 실천했고, 2005년에 성공적으로 학사 과정까지 모두 마쳤다.

하지만 대학을 졸업한 우들리의 진로는 전공을 살린 것도, 레슬링 코치의 경험을 살린 교육자의 길도 아니었다. 그는 졸업과 동시에 종합격투기라는 생각지도 못한 업계로 접어들었다. 마침 그 당시 세계 종합격투기의 흐름은 레슬링의 중요도가 점차 높아지고 있던 시기였고, 이에 우들리는 “아마추어 레슬링 기반의 파이터들이 승승장구하는 것을 보고 MMA 파이터가 되기로 마음먹었다”는 뜻을 UFC.com을 통해 밝히기도 했다.

아마추어 레슬링에 이어 종합격투기에 뛰어든 우들리는 MMA 무대에서도 연승 행진을 이어갔다. 아마추어 무대에서만 7승을 올렸다. 모든 경기를 KO와 서브미션으로 마무리 지으며 100% 피니시율을 자랑한 것은 덤이다.


■ 네이트 마쿼트와의 타이틀전까지 10연승 무패 행진을 달렸던 괴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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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근차근 아마추어 전적을 쌓아가던 우들리는 마침내 2009년 2월 7일 역사적인 프로 MMA 데뷔전을 치른다. 미주리 주 콜롬비아에 있는 헤드헌터 프로덕션즈(Headhunter Productions)라는 조그마한 지역 소규모 프로모션이었지만, 인터넷을 통해 생중계가 되는 대회였다. 레슬러 출신이지만 엄청난 파워의 강타로 상대를 처참하게 박살내는 우들리의 한방 펀치 능력은 이미 데뷔전에서부터 입증됐다. 당시 상대였던 스티브 슈나이더는 우들리의 주먹을 결국 견디지 못한 채 항복을 선언했는데, 1라운드가 시작된 지 채 70초가 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프로 데뷔전 이후 두 달 만에 또다시 지역 프로모션에 나서서 1라운드 초살승으로 2연승을 거두자 기회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왔다. 아마추어 레슬링 토너먼트 대회에서 우연히 마주친 로비 라울러와 인연이 닿은 것이다. 당시 우들리는 라울러에게 스트라이크포스 출전 여부를 타진했고, 이에 라울러는 하비에르 멘데즈에게 흔쾌히 연결을 해줬다. 멘데즈에게 전화를 건 우들리는 자신을 올 아메리칸 출신의 레슬러라고 소개했고, 이를 계기로 프로 MMA 2경기, 데뷔 4개월 만에 스트라이크포스에 상륙하는 행운을 얻게 된다.

그해 6월에 열린 대회에서 정작 연결고리였던 라울러는 패배했지만, 우들리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1라운드 종료 버저가 울리기 전 살바도르 우즈에게 브라보 초크 그립을 완성시켰고, 3연속 1라운드 승리로 무패 행진을 이어간 것이다. 우들리는 단 한 번의 기회를 완벽하게 낚아챘고, 그가 보여준 엄청난 임팩트 덕분에 스트라이크포스 측도 곧바로 여섯 경기가 보장된 계약서를 내밀었다.

한번 흐름을 타기 시작한 우들리의 기세는 멈출 줄을 몰랐다. 스트라이크포스에서 8연승을 이어갔는데, 그의 살생부에 적힌 리스트 또한 화려했다. 2010년에는 주짓수의 귀재 안드레 갈벙을 1라운드 KO로 꺾는가 하면, 이듬해에는 위험한 타격가 폴 데일리를 심판 전원일치 판정으로 압도했다. 훗날 스트라이크포스의 마지막 웰터급 챔피언에 오르게 되는 타렉 사피딘 또한 그의 희생양이었는데, 특히 우들리는 이 승리를 두고 “상대를 압도적으로 제압한 가장 기억에 남는 경기”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아쉽게도 우들리의 무패 행진은 네이트 마쿼트와의 스트라이크포스 웰터급 타이틀전에서 제동이 걸렸다. 3라운드에 마쿼트를 케이지로 몰아넣은 우들리는 엄청난 펀치와 파운딩을 몰아치며 벨트를 거의 반 이상 가져왔다. 하지만 4라운드 클린치 상황에서 터진 마쿼트의 정확한 펀치와 엘보 5방이 승부를 갈랐다. 경기장을 찾은 어머니의 열광적인 응원에도 불구하고 우들리는 그렇게 챔피언의 문턱에서 생애 첫 패배이자 치욕스런 녹아웃을 당하게 된다.


■ 가장 과소평가 받아온 언더독 챔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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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하게도 우들리는 커리어를 통틀어 줄곧 과소평가되곤 했다. MMA 10연승을 하다가 챔피언인 마쿼트와의 타이틀전에서 고작 1패를 했을 뿐인데, 팬들의 기대치가 꽤나 낮아져 버린 것이다. 그 상태에서 UFC에 입성한 우들리로서는 다소 멋쩍은 입장이 돼버렸다.

옥타곤에 입성한 뒤로는 조쉬 코스첵과 카를로스 콘딧에게 타격으로 피니시를 뽑아냈다. 하지만 제이크 쉴즈와 로리 맥도날드에게는 판정패했다. 특히 그중 지난 2014년 UFC 174에서 패배한 맥도날드전은 일방적인 원사이드 게임으로 진행됐다. 이쯤 되자 사람들은 당시 웰터급 4위였던 우들리에게 “랭킹에 거품이 있는 것이 아닌가”라며 갑론을박까지 벌어졌다. 빅네임 파이터를 수도 없이 잡아오며 13승 3패라는 전적을 남긴 우들리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법한 이야기였다. 

맥도날드전의 패배로 우들리는 다시 길을 돌아가야 했다. 자신보다 랭킹이 낮은 콘텐더와의 대결하라는 압박이 주어졌고, 우들리는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는 UFC 파이트 나이트 48에서 상승세의 김동현을 저지하며 반등을 시작했다. 2015년 열린 UFC183에서는 켈빈 가스텔럼에게 3라운드 종료 스플릿 판정승을 거뒀고, 이때부터 우들리는 본격적으로 웰터급 타이틀샷을 요구한다.

가스텔럼전 승리 이후에도 우들리는 우여곡절을 여럿 겪었다. 조니 헨드릭스에게 1라운드 초살승을 거두며 급작스럽게 치고 올라온 스티븐 톰슨에게 타이틀샷을 빼앗길 뻔 했었고, 라울러와의 웰터급 타이틀전까지는 많은 관계자 및 팬들에게 언더독 취급을 받으며 과소평가를 당했다. 그러나 우들리는 뚝심 반, 우격다짐 반으로 타이틀샷을 받아낼 때까지 버텼다. 그리고 마침내 UFC 201에서 라울러와의 타이틀전이 성사됐다.

2016년 7월 30일, 전운이 감돌던 조지아 주 애틀란타 필립스 아레나의 옥타곤에서 우들리는 라울러의 가드가 떨어진 사이 안면에 융단폭격을 퍼부으며 UFC 웰터급 벨트를 빼앗았다. 그해 11월에는 17년 만에 뉴욕으로 돌아온 UFC 205의 성대한 현장에서 스티븐 톰슨을 상대로 타이틀도 지켜냈다. 5라운드 종료 무승부로 비록 결과의 뒷맛은 개운치 않았지만, 벨트는 여전히 우들리의 허리에 감겨있다.


■ 가족에겐 누구보다 따뜻한 남자...인권과 사회 문제에도 관심 많은 지성파 파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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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우들리는 유독 실력에 비해 과소평가를 받아왔다. 커리어상 패배가 단 세 번뿐인데도 유독 ‘거품’이나 ‘하락세’같은 단어가 종종 언급됐다. 그래서일까. 그는 과거에 당했던 설움을 풀려는 듯, 최근 들어 코너 맥그리거와의 슈퍼파이트를 원한다는 발언을 던지거나 무리하게 트래시토크를 거는 등 이슈몰이에 최대한 공을 들이고 있다. 물론 상대나 팬들에게까지 별다른 반응이 없다는 점은 보는 이로 하여금 안타까움을 자아내게 만드는 부분이다.

하지만 최근 격투업계에서의 행보와는 달리, 우들리는 실제로 굉장히 가정적인 면모를 지니고 있다. 특히 홀어머니 밑에서 13남매의 대가족이 부대끼며 자란 배경이 컸다. 어머니의 헌신적인 사랑과 많은 형제들을 둔 덕분에 그는 어린 시절부터 일찍 가정의 소중함을 깨달았고, 이러한 배경 덕분에 우들리 본인 또한 슬하에 네 아이를 두고 있다. 아내인 아베리 우들리와도 좋은 금슬을 유지하며 화목한 가정생활을 이어오고 있다.

그의 부드러운 면모는 가정이라는 울타리 밖에서도 그대로 드러난다. 지난 2014년 마카오에서 열린 UFN 48에서는 마침 경기 날짜가 본인의 결혼기념일인데도 불구하고 패자인 김동현에게 인터뷰를 권하기도 했으며, 가스텔럼전에서는 체중을 맞추지 못해 벌금을 지불한 가스텔럼에게 그대로 돌려준 적도 있다.

한편 어머니와 함께 무하마드 알리를 제일 존경한다고 밝힌 우들리는 인권 문제에 대해서도 관심이 많다. 지난 2014년 자신의 고향인 퍼거슨에서 경찰의 과잉 법 집행으로 사망한 흑인들을 애도하며 미국 내 인종차별에 가장 강하게 문제를 제기한 파이터 중 한 명이다. 또한 은퇴 후에는 환경이 어려운 청소년들을 위한 비영리 시설을 운영하고 싶다는 뜻을 밝혔을 정도로 사회 문제에도 관심이 많은 지성파이기도 하다.


■ 재앙의 지배자에서 만인의 격투 은사가 된 톰슨의 아버지, 레이 톰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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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 톰슨은 18세이던 1974년 카라테에 입문했다. 신장 185cm의 강골이었던 그는 70년대 후반부터 프로 파이터로 활동했는데, 주로 킥복싱 무대에서 싸웠지만 1980년 '사우스 캐롤라이나에서 가장 터프한 남자'라는 NHB[1] 대회에 출전해 우승을 한 적도 있다. 첫 대회 이후 당국은 다시는 그러한 형태의 무규칙 격투가 개최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면서 톰슨은 처음이자 유일한 사우스캐롤라이나주의 NHB 챔피언이 된다. 

미국 대표팀의 일원으로 프랑스에서 열린 국제 대회에 출전한 적이 있고, 프랑스 사람들은 그에게 '재앙의 지배자(The master of disaster)'[2] 라는 별명을 선물했다고 전해진다. 총 아홉 가지 무술에서 도합 30단을 취득했고, 힉슨 그레이시[3]에게 블루벨트를 받을 만큼 그는 다양한 무술을 두루 섭렵했다.

동양무술에는 놀라울 정도의 다양성이 존재한다. 개중에는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혹은 보는 사람의 손발이 돌돌 말려서 큰일인 것들도 있다. 그러나 보기가 여하하든 간에 무술이 아시아권 사회 전반에서 배척보다는 환대에 가까운 대접을 받았던 이유로는 초식의 현란함이나, 정묘한 운기식 같은 아리송한 개념 덕이라기보다는 사실상의 모든 무술가들 사이에서 공유되는 친사회적 일반성을 꼽을 수 있다. 타인에게 위협적일 만큼 강한 대신 그들에게는 도덕관념과 예의의 측면에서 평균 보다 매우 높은 기준이 적용되는 점과 지역사회를 위협하는 어떤 위기가 닥쳤을 때 그에 대응하기 위한 무력이 필요해진다면 그때 그들이 총대를 멜 사람들이라는 기대감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불과 한두 세기 전만 해도 무와 협은 항상 함께 거론되는 개념이었다. 협이 없는 무는 고도의 폭력일 뿐이며 무가 없는 협은 문약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물론, 치안의 수준이 고도화된 현대의 제1세계 국가에서는 더 이상 황비홍이나 방세옥 같은 협기로 중무장한 무술인의 필요성이 특별히 없고, 덕분에 무술인에 대한 특별한 환대나 배척도 흘러간 얘기다. 하지만 제 한 몸 스스로 지킬만한 무력을 확보하고 승리와 패배의 맛을 골고루 보는 과정에서 자신감을 배양시키며 동료들과 서로 돕고 경쟁도 하면서 사회인으로서의 품성을 도야하는데 좋은 환경이 되어주는 도장이란 공간은 여전히 우리 사회의 필수 구성요소다.

1983년 장녀에 이어 큰아들이 태어났을 때 그는 싸움을 멈추고 문하를 열었다. 그는 본인의 가족부터 자신이 걸어온 길 위에 올려놓기로 했다. 톰슨가의 3남2녀는 모두 세 살 때부터 아버지의 '업스테이트 카라테 패밀리 마샬아츠 센터'에서 도복을 입고 띠를 묶는 법을 배우기 시작했다.

톰슨가 3부자가 운영하는 도장은 1144sqm(345평)의 대형 시설이다. 24피트 케이지와 풀사이즈 킥복싱 링이 있고, 매트 면적만 325sqm(약 100평)에 매점과 용품점까지 딸려있다. 여러 무술관련 매체들이 업스테이트 카라테를 북미-유럽-오세아니아 권에서 가장 우수한 교육을 제공하는 기관 중 한곳으로 꼽고 있다. 


■ 격투계의 로열 패밀리...아버지와의 특별한 유대감, 그리고 크리스 와이드먼

스티븐 톰슨은 1995년 12세 때 풀컨택 카라테를 시작했다. 3년 후 ISKA라는 단체에서 아마추어 킥복서로 데뷔했다. (이 ISKA, 인터네셔널 스포츠 카라테 어소시에이션이라는 조직은 대단히 흥미롭다). 레이 톰슨은 이 시기부터 현재까지 19년간 아들의 코너를 지키고 있다. 부자간의 이런 파트너십이 격투종목에서는 그리 드물지만은 않다. 그러나 두 사람처럼 단단한 유대관계가 여전히 진행되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어떤 비결인지 모르지만 레이 톰슨은 아들과 매우 강한 결속을 오래도록 유지하고 있으며, 이 점은 본안의 경기력에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보인다. 일반적인 코칭 이상의 호흡이 느껴지는 일화 덕분인데, 제이크 엘렌버거전 당시의 상황에 대해 톰슨은 파이트 네트워크(최두호의 마니아로 유명한 로빈 블랙이 소속된 방송사)의 레트로스펙티브 시리즈의 본인 에피소드에서 다음과 같이 밝혔다.

"또 한가지 제가 연습을 해온 건 코치의 지시를 듣는 거예요. 저의 경우는 아버지죠. 옥타곤에 들어서면 저는 다른 건 하나도 듣지 않습니다. 오직 아버지의 말과 상대편 코치의 지시만을 듣습니다. 훈련하기 되게 힘든 부분이긴 한데요, 그게 가능하면 상대방이 뭘 할지 알 수 있게 되는 거죠. 엘렌버거의 코너에서 '왼쪽을 더 앞으로'라는 지시를 하는걸 들었습니다, 그가 그럴 것을 알게 되었고 남은 건 제 아버지의 지시였는데, '돌려!' 였죠. 그래서 바로 뒤돌려차기를 적중 시켰습니다. (엘렌버거가 다운 되고 톰슨이 파운딩을 하려던 중) 그런데 거기가 코너 근처였고, 크리스 와이드먼이 '일으켜 세워, 일으켜 세워(스탠딩 타격으로 마무리 하라는 얘기)'라고 옆에서 막 소리를 지르더라고요. 그래서 일으켜 세웠고 두 번째 뒤돌려차기로 마무리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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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패전의 이유에 대한 복기에도 코치 겸 아버지라는 강력한 포지션의 컨트롤 타워가 있는 게 큰 도움이 된다. 한 영상물에서 함께 우들리전을 보다가 첫 라운드의 테이크 다운 상황이 나오자 레이 톰슨은 "성의 없게 차니까 그렇잖니"라고 묵직한 한마디를 던졌다. 

요즘 국내에서 파이터들이 일찍 독립을 하는 경우가 자주 보인다. MMA 업계가 아직 파이트머니를 넉넉하게 지급할 형편이 되지 않기에, 나이가 있는 선수들은 대개 체육관을 운영해 먹고는 살면서 선수 생할을 이어가려 하는 건데, 중요한 건 체육관의 운영은 불가피 하더라도 훈련 환경이 바뀌고 특히 본인 위에 아무도 없는 상황이 오는 건 조심해야 할 부분이다. 본인의 기량과 경기력이란 기존의 체육관의 환경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주변에 사람이 바뀌고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만으로도 기량 자체가 흔들릴 수 있는데, 그런 디테일을 잡아줄 수 있는 헤드코치마저 없어진 환경이 되면 뭔가가 잘못되어도 인지를 하기가 힘들고 고쳐나가는 것도 어렵다. 체육관을 내고 대부분의 시간을 본인의 체육관에서 보내더라도 원 소속 팀의 선수부 훈련에는 계속 참가하는 게 아마도 현실적인 절충안이 될 것으로 보인다.

스티븐 톰슨이 20세 때 그의 누이가 카를로스 마차도와 결혼했다. 마차도는 브라질리언 주짓수 8단을 보유한 마스터클라스의 무도인이며, 그레이시 가문과 사촌지간이다. 톰슨가의 5남매는 모두 세 살 때 카라테에 입문한 것처럼 그레이시나 마차도 가문의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카를로스 마차도는 네 살 때 주짓수를 시작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매형이 직접 처남의 주짓수를 챙겼음은 두말하면 잔소리다.

위쪽에 크리스 와이드먼이 언급되는데, 그와 톰슨의 관계는 대단히 가깝다. 와이드먼이 앤더슨 실바와의 대전을 앞두고 스파링 파트너를 찾을 때 당시 톰슨이 생피에르의 훈련을 돕고 있던 트라이스타로 연락이 닿았고, 와이드먼의 캠프에서 톰슨이 본인의 역할을 잘 해준 덕에 와이드먼이 실바를 꺾으면서 두 사람의 친분이 깊어졌다. 와이드먼은 엘렌버거전 캠프에서 톰슨을 돕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가 아니었다. 축하 파티장에서 아무도 모르게 무언가 진행되고 있었는데, 톰슨의 남동생과 와이드먼의 여동생이 만나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결국 결혼까지 이어졌다. 

이로써 톰슨가는 카를로스 마차도라는 사위를 들였고, 와이드먼의 여동생이 며느리로 왔다. 이정도면 세계적인 웰라운드 패밀리라고 할 수 있다.


■ 킥복싱에서 MMA 전향...우들리와의 1차전까지 톰슨이 달려온 격투 아우토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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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슨은 15세 때부터 25세까지 킥복싱에서 57연승을 했다. GSP의 권유로 MMA로 전향해 5연승을 거둔 후 UFC의 지명을 받았다. 데뷔전을 KO승으로 장식했지만, 다음 경기에서 맷 브라운에게 판정패를 당하며 프로에서 첫 패배를 경험했다. 이후 다시 연승행진을 했고, 2015년 7월 제이크 엘렌버거에게 뒤돌려차기를 두 개나 선물하며-본인도 한 경기에 그걸 두 번 쓴 적은 처음이라고-KO승을 거두었다.

11승 1패의 전적으로 톰슨은 전 챔피언 조니 핸드릭스를 만났는데,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는 업계의 예상을 뒤집고 첫 라운드에 불침함 핸드릭스를 가라앉히는 기염을 토했다. 이 KO승에 대해 톰슨의 입장은 "그는 라울러와 싸우면서 제가 때린 것보다 훨씬 센 것을 많이 맞고도 끄덕하지 않았던 챔피언입니다. 제가 그 정도 해서 그가 쓰러졌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뭔가, 그날 그는 그만 하고 싶었던 거라 생각합니다"였다. 놀라울 정도의 겸손함이다.

타이틀전으로 가는 마지막 관문은 로리 맥도날드였다. 이 경기에서 톰슨이 판정승을 거두는데, 이 경기 직후 맥도날드는 벨라토르로의 이적을 선택했다. 그는 11개월 전에 라울러와 사상 최악의 피바다 매치를 벌였다. TKO패를 당하고 조심스럽게 회복하던 중에 출전 오퍼가 왔다. 자세한 과정을 밝히지는 않았지만 UFC가 자신에게 너무 힘든 스케줄을 제시했으며, 선수를 보호하는데 관심이 없다는 언급으로 이적의 이유를 밝혔다.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지난해 11월 벌어진 UFC 205에 출전한 톰슨은 웰터급 챔피언 타이론 우들리와 대전했다. 1라운드의 실점을 2, 3라운드에 만회하면서 챔피언십 라운드에 돌입했는데, 4라운드 1분 26초 지점에서 우들리가 접근하며 왼손 훅을 시사하는 페인트를 주자 그것을 라이트훅으로 카운터 하려다 역모션에 걸린 상태로 우들리의 주포 라이트 오버핸드에 직격을 당했다. 이후 철망에 몰려 측면으로 움직이다가 뭔가 손발이 맞지 않은 상태로 우들리의 접근을 허용한 후 큰 것을 하나 더 당했다.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톰슨은 투지를 보이며 회복에 성공했고, 5라운드는 본인이 챙겨갔다. 부심 중 한 명은 우들리의 승이라는 결정을 내렸지만, 나머지 두 명이 무승부를 주면서 톰슨의 타이틀 1차시기는 불발이 되었다.

데이나 화이트는 즉각 리턴매치를 결정했다. 바로 오는 3월 5일 열리는 UFC 209의 메인이벤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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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발톱을 숨기며 신중한 만큼 결정력 또한 높은 우들리의 핵탄두 한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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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들리의 경기구조는 상당히 단순하다. 타격의 경우 오른손 큰 것을 터뜨리는데 집중하는 편이고, 그의 대표적 메커니즘은 전진기동을 시작하며 페인트로 커버링을 떨어뜨린 후 오른손 오버핸드를 적중 시키는 것이다. 댄 하디는 인사이드 옥타곤에서 우들리가 철망에 등을 대고 서는 것을 좋아하는 이유를 본인의 스페셜 스킬이 상당한 거리를 요구하기 때문으로 분석했다. 

우들리 스페셜은 대시하며 라이트 스트레이트-레프트스트레이트 페인트를 거는 것으로 시작된다. 대부분의 상대는 우들리의 라이트를 보면 일단 후퇴를 시작한다. 그것을 맞고는 살아남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라이트-레프트 스트레이트의 2-1연계 때문에 그것을 막기 위해 커버링이 앞으로 나오게 되면 우들리의 의도에 말려든다는 것, 방어가 앞으로 나가있는 사이 우들리의 풀스윙 오버핸드가 달려드는 속도까지 더해져 최대출력으로 덮치면 더 이상 터프할 수가 없는 로비 라울러 조차 일격이 떨어지게 된다는 것이다. 

스탯에서 나타나듯 우들리는 공격 시도가 굉장히 적은 편이다. 그의 타격 방어율은 68%로 웰터급 1위인데, 그만큼 안 맞으면서 하는데도 때린 것에서 맞은 것을 빼면 거의0가 되어버린다. 본인 스스로가 무척 방어적인 성격인 것이 주요 원인 중 하나다. 13남매의 11번째, 부친의 부재, 장학금을 타기 위한 노력, 우들리의 삶에 과연 여유가 한치라도 있었을 것인지 의문이고, 이런 인생을 살아온 인물의 성격이 방어적이라는 건 자연스럽다. 

뿐만 아니라 상대방이 우들리의 앞에서 공격을 하는 게 쉽지는 않다. 한번의 실수가 실신으로 이어질 수 있고 테이크다운의 위협 역시 타격을 시도함에 있어 큰 부담이 된다. 우들리에겐 굉장한 무게의 레그킥이 있는데, 들어오지 못하고 주저하는 상대에게 상단 페인트를 주고 물러나려 할 때 레그킥을 사용할 경우 상당한 효과를 볼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우들리에게 당하는 건 그에 대한 분석이 부족해서라기 보다는 뻔히 아는 테크닉이지만, 너무 빠르기 때문에 '어라' 하는 사이에 걸리고 잠들어버리는 경우가 많다. 실수 하나가 결정타로 연결되는 그림도 자주 나온다. 방어적이고 신중한 만큼 노리고 있던 기회가 오면 곧잘 붙잡는다.

톰슨이 4라운드에 우들리의 오버핸드를 역모션 상태에서 제대로 허용했는데, 한방에 궤멸적인 대미지를 전달하지 못한 점, 그리고 하나가 더 들어갔음에도 톰슨이 버텨낸 점, 여기에는 물론 톰슨의 맷집과 정신력이 주요하게 작용했다. 그러나 폭발적인 동세라는 신체능력의 본질적 특성도 작용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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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속근이라 불리는 백색근은 강력한 수축능력을 발휘하지만, 최대출력으로 몇 번만 수축해도 금세 피로상태가 되어버린다. 피로상태의 속근은 심폐에 부담을 주는 무게추와 같다. 폭발적인 움직임이 눈에 띄는 선수들의 경우 속근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추정할 수 있고, 우들리의 경우도 그런 편에 속한다는 추정이 가능하다. 우들리는 4라운드의 파상공세에서 길로틴 초크를 시도한다. 보기에는 분명 잡힌 것 같았는데 졸라서 탭을 받아내지 못하고 포지션을 내준 채 라운드를 마쳤다. 우들리처럼 힘 좋은 선수가 그립을 제대로 잡고 조르는데 버틴 톰슨이 참 대단하다는 판단이 틀렸다고 하긴 힘들다. 그러나 라이트 두 개를 적중 시켰는데 완전히 떨어지지 않은 것, 그리고 그립이 잡혔는데 탭을 치지 않은 것, 또 5라운드에서 변변한 공격을 한번 못 해보고 라운드를 내준 것, 이 모든 단서들을 종합했을 때 내릴 수 있는 결론은 4라운드의 우들리는 1,2 라운드에 비해 조금은 안전해졌다는 것이다. 

그의 KO 레코드를 살펴 보면 거의 1, 2 라운드에 KO가 집중되어있는 것을 확인 할 수 있는데, 그런 사실이 의미하는 바는 초반의 정면승부는 위험하다는 것이다. 4라운드에도 오른손의 위력이 완전히 죽은 것은 아니기 때문에, 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것과 같다. 우들리와 상대함에 있어서 주요 전략포인트는 그의 오른팔을 젓산에 충분히 절여두는 작업을 1, 2 라운드 사이에 해 두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필요한 것은 주짓수가 될 것으로 보인다. 그를 탑포지션에 두고 파운딩 폭격을 견뎌 내면서 우들리의 오른손에서 폭발력을 빨아내겠다면, 톰슨은 매형에게 전화를 하는 게 최고다.


■ 톰슨의 뒤돌려차기, 그리고 태권도와 카라테의 상관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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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진 공수도의 근거리 난타전 국면과 외곽으로 돌아가는 헤드킥은 펀치에 의한 안면 가격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생겨난 극진 특유의 장면이다. 레그킥과 가슴, 복부를 가격하는 펀치, 니킥, 하이킥 등이 순식간에 고속으로 교환되다가 난데 없이 하이킥을 사각에서 받고 툭 떨어지는 모습이 극진 스타일이다. 어떤 태권도, 어떤 타격계 무술과도 다른 유니크한 특성을 갖고 있다. 

ITF 태권도와 ISKA의 스포츠 카라테는 기본적으로 틀어 서서 팔을 늘어뜨린 자세, 잦은 스위치 스탠스, 앞/뒤 돌려차기의 구사 비율에서 상대적으로 높은 뒤돌려 차기의 비율, 앞돌려차기의 카운터로 뒤차기의 잦은 구사, 그리고 고회전 돌려차기의 사용, 슈퍼맨 펀치의 활용 등을 공유하고 있다. WTF 태권도는 무릎을 깊이 굽히고 팔을 대각선 앞으로 뻗은 낮은 자세가 많이 사용되고 펀치로 안면을 가격할 수 없기 때문에 킥의 비중이 심각하게 높다.

마이클 페이지는 스포츠 카라테 경기에서 540도 돌려차기를 성공 시켰다. MMA에서도 360도 킥을 적중시켰다. 뒤돌려차기 페인트로 시작되어 앞돌려차기 타격이 가해지는 정회전 킥이 360-720-1080이고, 앞돌려차기 페인트로 시작되어 뒤후려차기로 가격되는 것이 540-960인데 이러한 테크닉을 연구하고 실제 경기에서 쓰여지는 종목은 태권도 계열과 ISKA 산하의 여러 스포츠 카라테 기구들에 국한되어 있다. 

이 종목들의 활발한 스텝과 상대적으로 무거운 극진의 차이를 만든 건 레그킥의 유무다. 레그킥의 배점이 높을 수록 스텝이 사라지는 형태로 진화한다. 무에타이와 극진이 대표적이며, 레그킥이 없다면 복싱이나 태권도처럼 현란한 스텝이 진화를 거듭한다. 태권도의 특징은 현란한 움직임과 화려하고 치명적인 킥, 그리고 페인트와 펀치의 조화, 또한 상대에게 킥 타이밍을 주지 않고 순간적으로 대시하며 지르는 초고속 스트레이트 펀치다. 

이 부분의 증명은 굉장히 긴 지면을 요구한다. 70년 가량의 역사를 거슬러 찬찬히 살펴보아야 하고 그것이 어떤 경로로 스티븐 톰슨과 마이클 페이지에게 정해졌는지를 서술하는 건 그래서 따로 빼서 다음 편에서 논하도록 하고, 다시 톰슨의 스타일 분석으로 돌아간다.

그래서 톰슨의 타격 스타일은 원류의 태권도가 기반이 되며 복싱식 상체사용이 눈에 뜨인다. 톰슨의 시그니처는 사실 본인은 다른걸 내세우지만 뒤돌려차기다. 그의 뒤돌려차기가 위험한 이유는 준비 스텝 없이 갑자기 돌아가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백스핀 스킬은 앞발을 돌아가는 방향으로 놓으며 구사된다. 조금만이라도 발을 그렇게 놓으면 회전을 걸기가 좋기 때문이다. 그런데 방어하는 입장에서 상대의 앞발이 그 쪽으로 움직인다면 백스핀을 염두에 두게 된다. 뒤돌려차기는 스윙 아크가 큰 기술이기 때문에 상대가 미리 파악하면 맞지 않는다. 

톰슨의 뒤돌려차기는 제자리에서 돌아간다. ITF역시 마찬가지. 앞뒤로 다리를 얼마나 별려 두느냐에 따라 타이밍과 거리와 회전궤적을 다양하게 구사할 수 있다. 갑작스럽게 준비동작 없이 돌아가서 적중률이 높거니와, 마치고 나서 밸런스의 회복 면에서도 톰슨의 뒤돌려차기는 특급이다. 임팩트가 일어난 직후 그 자리에서 내려오기 때문에 뒤돌려차기 계열 중 빈틈이 가장 없는 편이다. 란도 바나타의 뒤돌려차기 역시 이런 속성을 나타내고 있다. 뒤돌려차기의 위력은 궁극적이기 때문에 이렇게 준비동작의 간략화, 팔로 스루의 절제라는 양식을 활용해 앞돌려차기 헤드킥의 역궤적을 가진 유용한 기술로 진화신 환경은 태권도, 간단한 얘기다.

톰슨 본인이 꼽는 주특기는 머니메이커라는 컴비네이션이다. 본인과 부친이 작명한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우리에겐 조금 열 받는 테크닉인데, 정찬성 선수가 여기에 당한 적이 있기 때문이다. 오른손 펀치에 이어 나오는 오른발 헤드킥. 조지 루프가 사용한 기술이고, 권아솔 선수도 군에서 제대한 직후 일본선수의 이것에 당해 쓰러졌다. 사각에서 못보고 맞는 하이킥이기 때문에 묻으면 떨어지는 테크닉이다. 체장이 길고 유연하다면 무조건 마스터 해야 할 멋진 컴비네이션이다. TJ 딜라쇼의 스텝 운용에도 이 연계가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것이 워낙 위협적이라 여기에 신경을 쓰다 보면 딜라쇼의 펀치 이후 사선의 움직임을 따라갈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 우들리-톰슨 1차전을 통한 2차전 미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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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들리 1차전에서 기록된 수치들을 참고하면 톰슨의 타격은 낙제점이었다. 타격 시도 자체가 평소보다 30%나 낮았다. 어느 정도는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상대의 레슬링에 대한 부담감은 스트라이커의 공격 시도 자체를 위축시키는 경향이 짙다. 특히 톰슨의 특기인 킥을 내는 것이 어려웠을 것이고, 1라운드에 킥캐치를 당하고 라운드를 내준 게 컸다. 문제는 적중률이 떨어지면서 유효타를 너무 못 맞춘 데 있다.

레슬러를 상대로 타격선수들이 타격을 아끼는 이유는 카운터를 노리기 때문이다. 선제타를 내다가 카운터 테이크다운을 받는 건 피해야 하니 압박을 할 수는 있어도 선제타를 내기가 쉽지 않다. 우들리도 선제타를 내고 난타전을 벌이는 취향이 전혀 아니며, 간을 보다가 허점이 보이면 폭발적인 대쉬+ 페인트를 걸고 오른손 큰 것을 맞추려 한다. 즉 카운터를 하기 쉽지 않다는 것.

우들리의 인기 비결은 바로 이 부분이다. 대단히 소극적으로 운용을 하기 때문에 팬들은 신체의 형체에 반비례하는 전사적 특성을 마땅치 않게 본다는 것이다. 톰슨은 평소보다 70%의 시도에서 59%의 성공률을 기록했고, 라운드당 적중 유효타가 20에서 8.6으로 급감했다. 반면 맞은 건 비슷하다. 그래서 톰슨은 평소 한 라운드에 20개를 때리고 13.5개 정도를 맞아 6.5정도의 마진을 남겨온 악덕 타격꾼이었지만, 이번에는 제대로 걸려 라운드당 12.75대를 맞고 8.6대를 갚아주면서 -4.15의 적자를 보았다. 결국 레슬러의 테이크다운을 두려워 하지 않으려면 하위에서 서브미션의 부담을 주어야 한다. 테이크다운이 두렵지 않다면 타격면에서 레슬러들이 대개 어렵지는 않다. 

우들리를 상대할 때 그의 테이크다운을 무시하고 강하게 자신 있게 때려주기도 쉽지가 않다. 필살 오버핸드가 언제 꽂힐 지 두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결론은 오버핸드의 카운터 각이 나오지 않는 공격을 위주로 자신감 있게 두들겨야 한다. 그러다 보면 넘어갈 가능성이 크다 그때는 최대한 오른팔을 기무라 그림 등을 활용해 젖산에 절여야 한다. 노골적으로 그런 의도를 보이다가 역이용당할 각오를 하고 노골적으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다. 그럴 경우 우들리는 테이크다운을 시도하면서 부담감을 가실 수 있기 때문이다.

우들리의 숨은 강점은 팔 길이다. 신장차이에 비해 팔 길이는 차이가 그다지 없다. 즉 펀치를 쓰다가 빗나가면 카운터가 보기보다 길게 날아 온다는 것. 따라서 톰슨은 펀치의 사용에 신중한 편이 좋고, 킥으로 마음이 쏠리도록 유도한 다음 역으로 펀치를 내는 것이 좋을 것으로 보인다. 

이 경기의 관건은 1, 2라운드에 우들리가 하나라도 이기고 가느냐에 달려있다. 시간은 우들리의 편이 아니기 때문이다. 톰슨은 매형 마차도에게서 뭔가 좋은 것을 배웠다면 그것을 잘 이용해야 할 것이다. 톰슨이 바닥에서 우들리의 파운딩을 방어하며 그의 오른팔을 위협할 수 있다면 적어도 1, 2 라운드는 그 부분에 집중하는 게 좋은 선택을 수 있다. 또한 그런 형국에서 주짓수를 활용하는 것 또한 중요하다. 

  
■ 하나 빼고 다 가진 톰슨과, 하나 말고 다 없는 우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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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들을 모두 짜맞춰 본다면 챔피언 우들리와 도전자 톰슨은 서로 정 반대의 환경에서 자라온 것을 알 수 있다.

일찍 아버지를 잃고 13남매 중 11번째로 어머니의 헌신을 지켜보며 자라온 우들리는 자연히 방어적인 성격을 갖게 됐다. 많은 자녀들을 돌보느라 정신이 없었을 어머니를 가장 존경한다고 밝힌 그는 대학에서 레슬링 코치 일을 학업과 병행하며 빠듯하게 학사를 마쳤고, 주변의 무관심에도 불구하고 결국 뚝심 하나로 기어이 UFC의 챔피언에까지 오른 파이터다. 경기에서 보여지는 소극적인 태도도 이와 비슷한 맥락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안타깝게도 우들리의 그러한 면모가 팬들에게는 다소 비호감으로 비춰져 왔던 것도 사실이긴 하지만.

반면 톰슨이 걸어온 길은 우들리와 평행선상에 있다. 350평에 달하는 거대한 체육관 '업스테이트 카라테 패밀리 마샬아츠 센터'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격투기를 체계적으로 배웠다. 집안은 유복했고, 격투기로 이어진 아버지와의 친밀한 스킨십을 축적해가며 부자지간 이상의 관계를 쌓았다. 생존을 위한 어머니의 헌신을 보고 자란 우들리의 유대감과는 종류가 다른 성질의 것이다.

제법 유복한 환경에서 고지를 하나하나 선점해가며 케이크 최상단에 챔피언 벨트라는 가장 빛나는 데코레이션을 올리고자 하는 톰슨. 그리고 조금은 팍팍했던 성장과정에서 힘겹게 기어올라, 오로지 내세울 것이라고는 현재 허리에 두른 웰터급 타이틀 밖에 없기에 이를 필사적으로 지켜야만 하는 우들리. 그래서 이 둘의 대결은 일반적인 'UFC 웰터급 타이틀전'으로 치부하기에는 조금 아쉽다. 두 파이터가 극적인 대척점에 서있는, 이처럼 꽤나 흥미로운 디테일이 숨어있기 때문이다.

[몬스터짐 UFC 209 특집 시리즈] 

3월 2일(목)
1. UFC 209의 히든카드는? '괴재' 란도 바나타
2. 하나 빼고 다 가진 톰슨, 하나 말고 다 없는 우들리
3. 인포그래픽으로 보는 우들리-톰슨 2차전

3월 3일(금)
1. 알리스타 오브레임 vs 마크 헌트 종합
2. 알리스타 오브레임 vs 마크 헌트 인포그래픽
3. 하빕의 피어펙터 통계분석

3월 4일(토)
1.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토니 퍼거슨 종합
2. 하빕 누르마고메도프 vs 토니 퍼거슨 인포그래픽

[사진] ⓒZuffa, LLC/몬스터짐
[기사] 이용수/조형규/반재민 (press@monstergroup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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