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9회 월드시리즈(WS) 3차전과 4차전의 결과는 그 어떤 유명한 야구 전문가나 혹은 운명철학가도 예상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3차전은 주루 방해로 결승점이 나면서 끝이 났고 4차전은 타석에 동점 타자가 나선 가운데 주자가 견제사로 잡혀 끝이 났습니다. 결과적으로 보스턴 레드삭스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는 2승2패를 기록하며 승부는 원점으로 돌아갔습니다. 4차전은 유독 양 감독의 수싸움이 치열했고 결과적으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든 교체와 실패도 있었습니다만 결국은 의외의 영웅이 탄생한 레드삭스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 빅토리노의 허리 통증으로 막판에 대신 기용된 곰즈는 역전 결승 3점포로 보스턴의 영웅이 됐습니다. 레드삭스가 4-2로 승리하며 2승2패가 됐습니다. >

경기 전 라인업이 발표됐을 때 외야수 조니 곰스의 이름은 없었습니다.
그런데 경기 직전 레드삭스 라인업에 교체가 있었습니다. 2번 우익수로 나설 예정이던 셰인 빅토리노의 허리 통증이 심해지면서 존 패럴 감독은 라인업을 다시 짤 수밖에 없었습니다. 5번에 써 넣었던 좌익수 다니엘 나바를 우익수 2번으로 올렸고 당초 예정에 없던 조니 곰즈를 5번 좌익수로 투입했습니다. 곰즈는 경기 후 인터뷰에서 "타격 훈련을 마칠 무렵에 감독이 다가와서 경기에 뛸 준비를 하라고 말해줬다. 오늘 선발 출전할 줄은 몰랐다."라고 말했습니다.

이날 4차전의 극적인 순간을 장식한 6회초로 먼저 가 봅니다.
5회까지 2안타 1실점하던 카디널스 선발 랜스 린은 6회도 1,2번 타자 엘스버리와 나바를 쉽게 처리했습니다. 5회에 선두 오티스에게 2루타를 맞은 후 제구력 난조로 연속 볼넷, 그리고 7번 드루에게 희생플라이를 맞고 동점을 내주기는 했지만 린의 구위는 상당히 좋았습니다. 정규 시즌에 148.7km이던 강속구의 평균 구속은 포스트 시즌에 150.5km로 더욱 빨라졌습니다.
그런데 3번 페드로야가 초구 151.3km의 강속구를 때려 중전 안타를 만들면서 카디널스가 꼬이기 시작합니다. WS 들어 4경기에서 7할2푼7리에 2홈런 5타점을 기록한 4번 오티스를 상대할 이유는 없었습니다. 거의 고의 볼넷으로 오티스가 진루하며 주자는 1,2루. 그런데 여기서 마이크 마테니 카디널스 감독은 투수 교체를 선택했습니다. 강속구의 린을 내리고 싱커볼의 매네스를 선택했고, 린은 강판되면서 가득 담긴 불만을 숨기지 않았습니다. 볼카운트 2-2에서 매네스와 포수 몰리나는 145km 싱커를 선택했고, 곰즈의 방망이는 이 싱커를 예상하고 있었습니다. 앞선 4개의 공도 모두 싱커였습니다. 맞는 순간 곰즈는 공이 좌측 담장을 넘어갈 것임을 직감했습니다. 좌익수 홀리데이가 끝까지 추격해 도약해봤지만 담장을 훌쩍 넘어간 공은 원정팀 레드삭스 불펜에 떨어졌습니다. 1-1은 순식간에 4-1이 됐습니다.

곰즈는 실은 올 가을 잔치에서 레드삭스의 복덩이입니다.
WS 1,2차전에도 선발 출전했던 곰즈는 ALCS 2차전에서 9회 결승 득점을 올리는 등 그가 선발 출전한 경기에서 레드삭스는 7승1패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이날로 8승1패가 됐습니다. 그러나 사실 성적은 그다지 좋지 않았습니다. PS 타율은 1할5푼2리에 그쳤고 WS 들어서는 단 한 개의 안타도 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당초 자신이 뛰지 않았을 경기의 가장 중요한 타석에서 생애 최초의 PS 홈런을 치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습니다.

여기서 메네스 기용이 다소 의외였던 것은 곰즈 공략법이 바로 강속구였기 때문입니다. 2회에 병살타를 끌어냈을 때도 린이 2구 모두 강속구 승부를 했고, 5회 10구 승부 끝에 볼넷을 내줬지만 9구까지 모두 평균 151km의 강속구만으로 승부를 했습니다. (마지막 공만 슬라이더로 볼넷) 그런데 강속구에 약점을 지닌 곰즈를 상대로 강속구나 아닌 싱커볼 투수인 메네스를 투입했다가 결승 홈런을 맞았습니다. 결과론에 불과하고, 잘 막았더라면 성립되지 않을 추론이지만 상대 약점을 알고도 내준 결승 홈런은 아쉬울 수밖에 없습니다.

재미있는 점 하나는 6회가 시작되기 직전 레드삭스 더그아웃의 풍경이었습니다.
5회에 가까스로 동점을 만드는 중심에 섰던 오티스가 선수들을 모두 불러 모았습니다. 그리고 뜨거운 열정으로 선수들에게 이야기를 쏟아냈습니다. 소위 'pep talk' 즉 격려의 연설 정도로 볼 수 있는데 참 묘하게도 바로 다음 이닝에서 레드삭스는 경기를 뒤집는 장면을 연출합니다. 누가 뭐래도 데이빗 오티스는 레드삭스의 심장이자 정신적 지주임을 보여준 장면이었습니다.

하지만 역시 투수 교체는 정말 어렵습니다. 특히 실패하면 그 아쉬움 때문에, 뻔히 결과론일줄 알면서도 늘 지탄의 대상이 되니 더욱 그렇습니다.
레드삭스 패럴 감독도 7회말에 패착을 둘 뻔 했습니다. 진통제를 맞고 등판한 선발 벅홀츠가 4이닝 1실점(비자책점)으로 호투했지만 5회초 추가 득점 기회에 타석이 돌아오자 미련 없이 대타를 기록했던 패럴 감독. 정규 시즌에 27번 선발로 나섰지만 PS에서는 구원 투수로 기용되고 있는 2번째 투수 좌완 듀브론트가 8타 연속 범타의 호투 끝에 7회말 투아웃에 대타 로빈슨에게 좌중간 2루타를 맞자 또 다른 좌완 브레슬로로 마운드를 교체했습니다. 브레슬로는 2차전에서 카펜터에게 희생 플라이를 맞고 나서 3루 악송구로 결승점을 내주며 블론세이브를 기록했던 아쉬운 기억이 생생한 투수. 게다가 카펜터는 바로 전 타석에서 듀브론트에게 공3개 만에 꼼짝 못하고 서서 삼진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브레슬로는 카펜터에게 적시타를 맞고 2-4로 쫓긴 후 벨트란에게도 볼넷을 내주고 아웃 카운트를 잡지 못하고 다시 교체됐습니다.

상황은 참 묘하게 흘렀습니다.
주자 1,2루에서 카디널스에서 가장 까다롭고 장타력이 있는 3번 맷 홀리데이의 타순이 돌아왔습니다. 전날 7회말 거의 같은 상황에서 패럴 감독은 타자와를 선택했고, 홀리데이는 좌측선상 2타점 2루타를 터뜨렸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패럴 감독의 선택은 타자와였습니다. 큰 경기일수록 평소의 믿음을 그대로 밀고 가는 것이 가장 중요한데, 바로 전날의 실패에 개의치 않고 밀어붙인 '타자와 카드'는 2구만에 2루 땅볼로 끝이 났습니다. 카디널스는 거기까지였습니다.

< 9회말 카디널스의 마지막 기회는 대주자 웡이 우에하라의 견제에 잡히면서 끝났습니다. 사진=레드삭스SNS >

타자와 카드로 일단 불을 끈 패럴 감독은 8회말 다시 한 번 의외의 카드를 뽑아듭니다. '8회 타자와- 9회 우에하라'의 공식이 미리 깨져버리자 8회의 디딤돌로 2차전 선발이었던 존 래키를 마운드에 올린 것입니다. 3일전 6⅓이닝 동안에 95구 투구를 했던 래키가 PS에 구원으로 나선 것은 2002년, 그러니까 자신의 루키 시즌 에인절스에서가 마지막이었습니다. 정규 시즌 324경기에서도 2004년에 딱 한 번 1이닝 구원 등판이 있었습니다. 11년 만에 가을 잔치, 그것도 WS에서 8회말 구원 등판한 래키는 1사 후에 5번 몰리나에게 3루 강습 안타에 야수의 송구 실책, 그리고 폭투로 주자를 1사 3루까지 보내며 고전했지만 제이를 유격수 뜬공, 프리스를 유격수 땅볼로 처리하며 이닝을 마쳤습니다. MLB에서는 좀처럼 보기 드문 래키의 구원 등판은 팀을 위한 희생정신과 투혼의 발현으로 레드삭스 분위기에 상당한 자극이 될 것으로 보입니다.

9회말 1사에 타격은 가능하지만 뛸 수는 없는 대타 크렉이 보스턴 마무리 우에하라에게 우익수 머리 위를 넘어가는 단타를 치고 대주자 윌턴 웡으로 교체된 후 타석에는 이날 첫 타점을 기록한 벨트란이 타석에 섰습니다. 올 가을에만 14타점을 올렸고 득점권에서 10타수 8안타 12타점의 '가을 사나이' 벨트란은 그러나 방망이를 휘두를 기회를 잃었습니다. 대주자 웡이 우에하라의 재빠른 견제구에 잡히면서 경기가 끝나버린 것입니다. 전날 PS 사상 최초로 주루 방해로 경기가 끝나더니 이날은 견제구로 경기가 마무리되는 진풍경이 이틀 연속 나왔습니다.

올 PS 선취 득점을 한 경기에서 8연승을 달리던 카디널스는 첫 역전패를 당했고, 레드삭스는 적어도 한 경기는 다시 펜웨이파크에서 치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29일 부시스타디움에서 열릴 5차전은 존 레스터와 애덤 웨인라이트의 1차전 선발 매치업의 재대결로 펼쳐집니다.

이 기사는 espn.com, MLB.com, baseballreference.com, fangraphs baseball, Wikipedia, baseballprospectus.com, Bleacher Report, minkiza.com 등을 참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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