쉬운 땅볼보다 까다로운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더 잘 잡는 선수가 있습니다. 일면 엉성해 보이기도 하지만 잡기 어려운 뜬 공도 끝까지 추격해 기어이 잡아내고 맙니다. 자신은 발도 느리고 수비력이 떨어져 어쩔 수 없이 다이빙을 많이 한다고 너스레를 떨기도 하지만 그는 공수에서 뛰어난 활약을 펼치면서 선두 삼성 라이언스의 핵심 선수로 다시 올라서고 있습니다. 라이온스의 1루수 '채천재' 채태인(31)의 이야기입니다.


지난 7월 26일 넥센전. 3회초 무사 1,2루의 위기에 몰린 가운데 넥센은 발 빠른 장기영이 타석에 섰습니다. "기영이가 워낙 빠르고 번트를 댈지도 모를 상황이라 약간 전진 수비를 했었다. 그런데 강한 땅볼 타구가 날아와 놀랐지만 그냥 무조건 잡겠다고 몸을 날렸다. 아웃시키고 나중에 중학교 동창인 기영이에게 욕먹었다. (웃음)" 채태인은 수비를 할 때 특히 더욱 집중을 한다고 했습니다. 보스턴 레드삭스에 투수로 스카우트돼서 갔다가 어깨 수술을 받고 좌절한 후로 송구에는 아무래도 어려움이 있기에 다른 수비라도 더 잘해야 한다고 늘 스스로에게 다짐합니다. 2010년 8월 뜬공을 잡다가 뇌진탕을 당해 오랫동안 고생한 후로는 주변에서 어려운 뜬 공은 무리해서 잡으려하지 말라고 충고도 합니다. 그러나 일단 뜬공이든 땅볼이든 자기 쪽으로 오면 본능적으로 전력을 다해서 잡아서 팀에 보탬이 돼야 한다는 생각에는 늘 변함이 없습니다.

채태인에게 지난 2년 반은 악몽 같은 시간이었습니다.
뇌진탕 이후 후유증은 상당히 오래갔습니다. 그러나 직전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이해를 구하기는 어려웠습니다. 2011 시즌 개막전에서 만루 홈런을 치면서 기세 좋게 출발했지만 부상에 부진이 이어지며 53경기에서 2할2푼에 그쳤습니다. 2012년은 더 심했습니다. 54경기에서 135타수밖에 뛰지 못하며 2할7리에 단 1홈런이 전부였습니다. 채태인은 "야구선수도 아니었어요."라는 한 마디로 당시 자신을 표현했습니다. 그러더니 "당시는 내가 삐뚤어져 있었다. 코치님을 조언을 듣지도 않고 내 식대로 하면 될 것이라고 고집만 부렸다. 그게 완전히 잘못된 것이었다. 조금만 귀를 기울이고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그렇게 심하지는 않았을 텐데."라며 당시를 회상했습니다.

2013년도 시작은 쉽지 않았습니다.
작년에 팀은 2년 연속 패권을 가져갔지만 채태인은 1억1천만 원이던 연봉이 5천만 원으로 깎이는 굴욕적인 계약을 했습니다. 워낙 성적이 안 나왔으니 할 말은 없었지만 '내 실력이 여기까지인가' 하는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지기도 했습니다. 게다가 팀의 괌 전지훈련에도 제외돼 경산에서 훈련을 했고 오키나와 마무리 훈련 때는 2군 선수들과 괌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전지훈련 제외 소식을 류중일 감독과의 면담에서 직접 들었을 때는 아쉬움보다는 감독님에게 미안한 마음이 더 컸다고 했습니다. 늘 믿음을 주었는데 실망만 안겼으니.
좌절했을 때 그를 잡아 준 것은 부인과 그리고 강기웅 코치였습니다. 부인 김잔디씨는 '자기보다 연봉 못 받는 사람도 많다. 돈 안 벌어와도 되니까 여운이 남지 않게 즐겁게 한 번 야구 제대로 해보라'며 남편을 격려했습니다. 그리고 강기웅 코치는 워낙 허리 회전이나 힘이 좋으니 오른발을 들지 말고 정확히 맞추는 타격 자세를 해보자고 권유했습니다. 새로운 타격자세로 열심히 하면서도 긴가민가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오키나와 훈련 막판에 드디어 1군에 합류했고 실전에도 출전했습니다. 첫 홈런을 치는 순간에 새로운 타격 자세에 대한 자신감이 생겼습니다.

그러나 2년 반의 부진에 허덕이던 타자에게 기회는 쉽사리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처음엔 대타로 가끔 나가고 어쩌다 선발 출전하면 4타수 무안타로 헤매고 쉽지 않았다. 그러다가 대타로 타율이 조금씩 나아지면서 안정을 찾았고 경기에 뛰는 횟수도 늘어났다." 그러던 채태인은 지난달 31일 KIA 타이거즈와의 경기에서 마침내 규정 타석을 채웠고 대번 3할7푼4리의 타율로 타격 1위에 올라섰습니다. 윤석민을 상대로 결정적인 3점 홈런을 터뜨렸고 또 타석에서 머리에 공을 맞아 아찔한 순간도 겪었습니다. 채태인은 "그날 석민이 공을 처음 제대로 두 번이나 맞췄다."라고 웃으며 "내가 타격 1위에도 올라보고 또 LG전 볼넷 3개를 골랐을 때는 잠깐 출루율 1위에도 올랐다는 것을 나중에 듣기도 했다. 가문의 영광이다."라고 익살을 부리기도 했습니다.
늘 유쾌한 채태인이지만 타격 자세만큼이나 그를 바꾸어 놓은 것은 타석에서의 마음 자세입니다. "과거에는 무조건 풀스윙만 했다. 후려쳐야 장타가 나온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이제는 공을 끝까지 보고 중심에만 맞춘다는 생각을 한다. 정타로 맞추면 장타도 나올 수 있다는 것도 깨달았다." 이건 보통 큰 변화가 아닙니다. 타고난 파워를 지닌 그가 스위트 스폿에 공을 정확히 맞추면 라인드라이브성 타구를 양상하게 되고 현재 2루타 10개와 홈런 7개를 치면서 4할9푼8리의 장타율로,가장 좋았던 지난 2009년 이후 최고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마음 자세로 훨씬 단단해졌습니다. 남은 시즌 목표는 팀의 우승과 함께 타율 3할을 기록하는 것입니다. "내 최고 타율이 2할9푼3리였다. 아직 3할을 친 적이 없고 어떻게 타율 관리하는지도 모른다. 투수들도 이젠 스트라이크를 잘 안 주고 아주 까다롭게 승부하고 있다. 그러나 3할은 한 번 꼭 쳐보고 싶다." 또 다른 목표는 없는지 묻자 "혹시 그런 상이 있으면 재기상을 타고 싶다. 아님 페어플레이 상도 타보고 싶다. 퓨처스 리그 올스타전 MVP가 유일한 상이었는데 이제 1군에서도 상 하나는 받아보고 싶다."라고 말했습니다.

한때 '채맹구'로 불리던 그는 요즘 '채천재'로 불립니다.
별명은 아주 많습니다. 보스턴 시절부터 친하게 지낸 김선우는 그를 '엽기 태인'이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사연인즉 "한번은 레드삭스 훈련장에 가는데 양키스 옷 입고 모자 쓰고 갔다. 사람들 보는 눈이 이상해 선우형에게 물어보니까 '너 진짜 몰라서 묻냐?' 그러더라. 양키스 옷이 멋있어 보여 입었는데. 또 한 번은 낚시 좋아하는 선우형이랑 바다에 갔는데 선우 형이 망치 상어 잡았다. 박제를 하겠다고 좋아했는데 내가 그걸 갔다 버렸다. 내가 상어를 진짜 싫어한다. 바다에 버리니까 도망가더라. (웃음) 그때부터 선우 형이 나만 보면 엽기라고 불렀다." 그러나 요즘은 김선우가 '수위 타자'라고 부른다며 으쓱해하는 채태인은 미워할 수 없는 캐릭터입니다.

요즘 채태인에게는 고민이 하나 생겼습니다.
긴팔 징크스라고 해야 할까요. 이 더운 여름이 그가 목까지 올라오는 긴팔 언더셔츠을 입고 경기에 나서는 광경을 종종 볼 수 있습니다. 바지 안에도 쫄바지를 입고 나섭니다. 도대체 이유가 뭐냐고 물으니 징크스 때문이랍니다. 지난번 넥센과의 1차전에서 긴팔을 입고 나가 5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둘렀는데 그 다음날은 더워 반팔을 입었더니 4타수 무안타에 그쳤습니다. 다시 긴팔을 입다가 LG전에 너무 더워서 반팔을 입었는데 리즈에게 삼진만 연속으로 당해 중간에 긴팔 언더셔츠로 갈아입었다니 다음 타석에서는 스트레이트 볼넷, 그리고 다음에는 안타를 쳤습니다. "긴팔을 입고 나가면 너무 더워서 미치겠다. 그래도 안타를 치려면 계속 긴팔을 입고 나가야할지 고민이다."

참 먼 곳을 돌아 돌아 이 자리까지 온 채태인입니다.
중학교 때는 야구부 단체로 놀러갔다가 아킬레스건이 끊어지는 사고를 당했고 고등학교 때는 날리다가 보스턴 레드삭스에 스카우트됐는데 가자마자 어깨 심각한 부상이 드러나 수술을 받았습니다. 결국 미국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귀국해서는 병역을 마친 후에도 보스턴이 풀어주질 않아 야구할 길이 막혔다가 극적으로 방출 허가를 받았지만 2년 출전 정지규정으로 암담했습니다. 그러다가 2006년 해외파 특별 지명으로 삼성에 뽑히는 행운으로 다시 야구를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투수에서 다시 타자로 시작한다는 게 정말 어려웠고 처음에는 변화구, 특히 포크볼 던지는 투수가 그렇게 미울 수가 없었습니다. 그 와중에 도박에 연루돼 곤혹을 치르기도 했습니다. 기억하고 싶지도 않은 지난 2년여를 보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도전을 포기하지 않은 채태인은 어느새 KBO의 수위 타자로 우뚝 섰습니다. 남은 시즌 과연 그가 타격 선두의 자리를 지킬 수 있을지는 알 수 없습니다. 자신의 말대로 내야 안타도 거의 없고 타율 관리도 할 줄 모릅니다. 그러나 수비로 나서면 늘 몸을 사리지 않는 플레이와 타석에 서면 묵중한 무게감으로 공을 정확히 노려 때리는 타격 자세라면 못 이룰 것도 없어 보입니다. 사실 그가 남은 시즌 가장 노리는 것은 바로 명예회복인데 이미 채태인은 공수에서의 맹활약으로 새롭게 조명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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