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하는 야구, 달리는 야구, 긍정의 야구를 하겠다.' -염경엽 넥센 히어로스 감독

현재 오키나와에서 실전 훈련에 여념이 없는 넥센 히어로스의 미국 애리조나 주 서프라이즈의 스프링 캠프는 다소 독특했습니다. 외견상으로 보기에는 단체 훈련 시간이 타 프로야구 팀에 비해 짧아 보였습니다. 대신에 선수와 코치가 1대1 내지는 소수의 선수와 코치가 어우러져 펼치는 소규모 훈련이 유난히 눈에 많이 띄었습니다. 각 조에 따라 점심 식사 시간도 차이를 둬서 훈련 일정 소화의 운영의 묘를 살리는 면이나, 이른 아침의 훈련을 없애고 오후에는 대부분 자율 훈련을 하는 방법 등도 차이가 났습니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주전과 비주전의 차별성이었다고 봅니다. 모든 선수가 똑같은 방식의 똑같은 훈련 일정을 소화하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감독으로는 루키인 염경엽 감독은 "주전들은 작년의 경기력을 유지시키는 선에서 훈련을 해도 좋지만 이제 올라오는 신인이나 재기를 노리는 선수는 같은 훈련 량으로는 힘들다. 주전들은 떨어지지 않게 하고, 후보군들은 능력치를 최대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캠프 초반에 선수들의 보직과 주전인지 후보군인지, 선발인지 불펜인지를 모두에게 통고했습니다. 어디의 야구 캠프에서도 보기 드문 일입니다.
어찌 보면 독특한 캠프이자 훈련 방식이라고 할 수 있지만 상당히 오랜 기간 준비된 염감독만의 방식 도입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98년부터 기록한 자신만의 야구 노트가 6권을 넘어섰습니다. 그만큼 오래 쌓아온 노하우가 있습니다. 프로 데뷔 초기 반짝 스타를 거쳐 자신의 말을 빌면 자만감과 노력 부족으로 안타깝게 보낸 프로에서 좌절한 경험, 한때 이민을 시도했을 정도의 시련을 거친 아픈 경험도 선수들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됩니다. 스카우트, 수비코치, 운영팀을 두루 거친 다양한 시각도 팀 운영을 이해하는데 큰 몫이 됩니다. 그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온 것 중의 하나가 선수들의 '1일 휴식권'으로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캠프 중간에 선수가 정말 오늘만은 쉬고 싶다고 느낄 때는 캠프 기간 중 하루는 쉴 수 있는 권리를 주었습니다.

< 박병호와 장기영이 심재학 코치의 도움으로 베이스에서 기민한 스타트 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민기자닷컴 >

그러나 새로운 시도에는 과감한 용기만큼이나 또 실패할 수 있다는 부담감이나 주위의 반신반의하는 눈초리도 따르게 마련입니다. 결국 2013형 넥센 히어로스가 기대하는 만큼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투수진, 특히 선발진의 구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두 외국인 투수에 강윤구, 장효훈, 김영민 등의 기대주들과 구위가 눈에 띄게 좋아진 김상수, 그리고 김병현 등이 선발진 진입 다툼을 벌입니다. 작년 16승에 평균자책점 2.20으로 프로 데뷔 후 자신의 최고의 시즌(마이너 시절 한 시즌 13승이 최다)을 보낸 브랜던 나이트에게 그 이상의 성적을 기대키는 쉽지 않습니다. 38세인 나이트는 좋은 컨디션으로 시즌을 준비하고 있는데 작년 정도의 꾸준함만 유지한다면 성공입니다. 오히려 2년차인 앤디 밴 헤켄(11승8패 3.28)이 1년 내내 대단히 많은 이닝을 던진 2011시즌 후 한국에서 보낸 첫 해인 작년보다 2013시즌이 더욱 기대가 됩니다.
작년 후반기부터 강윤구는 투수로서 눈을 뜨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어설픈 강약조절보다는 젊음과 체력을 바탕으로 초반부터 밀어붙이는 피칭을 하면서 자신감을 얻었습니다. 구위나 자질로만 보면 MLB도 넘볼 정도의 선수라 기대가 되는데, 늘 그래왔든 '올해는 될 것이다.'라는 전망만 반복해서는 곤란합니다. 김영민과 장효훈은 구위로 보면 이미 프로에서도 높은 수준입니다만 작년까지 투수로서 성숙도에서는 중하위 그룹이었습니다. '멘탈'이 이들이 깨치고 나갈 벽인데, 친선 경기에서도 볼넷을 남발하는 모습이 나와 아직은 아쉬움이 있습니다. 스스로의 공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가운데만 보고 전력투구를 한다는 자세로만 해도 크게 두드려 맞지 않을 구위를 지녔는데 아직 그 벽을 넘지 못한 아쉬움이 있습니다. 이들이 캠프에서 그 벽을 깨버린다면 올해 주목할 투수들입니다. 여기에 김상수의 가세는 선의의 경쟁을 펼치는 자극제가 될 것입니다.

< 넥센의 신임 염감독은 독특하고 분업화된 스프링 캠프 훈련을 실시하며 주전군의 기량 유지와 후보군의 분발을 독려했습니다. ⓒ민기자닷컴 >

그리고 어쩜 영웅 투수진의 열쇠는 김병현이 쥐고 있습니다. 캠프에서 만난 BK는 이런저런 사적인 이야기를 나누면서도 정식 인터뷰를 정중히 거절했습니다. 잘 던지게 되면 그때 가서 하겠다고 웃었습니다. 불펜 피칭에서 보여준 밸런스는 작년보다 훨씬 부드러워 보였고 이강철 수석 코치의 긍정적인 영향도 좋아보였습니다. 시범 경기에서도 초반부터 좋은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데 'BK 임팩트'가 긍정적으로 작용해 선발의 한 축을 담당한다면 넥센 선발진은 대단히 다양하고 강력한 힘을 과시할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이 맞아 떨어진다면' 이라는 과정은 이때쯤이면 모든 팀에 해당하지만, 영웅 선발진도 그것이 맞으면 매섭습니다.
불펜은 WBC 대표인 마무리 손승락을 필두로 역시 많은 자원들이 경쟁을 펼치고 있습니다. 문성현을 불펜으로 돌린 것이 다소 의외지만 짧은 이닝을 강력하게 소화하는 것이 더 효과적일 수도 있습니다. 이보근, 한현희 등은 검증이 끝났고 좌완 박성훈은 드디어 1군에서 잠재력을 터뜨리기 시작했습니다. 노장 마정길, 이정훈, 심수창 등도 만만하게 밀릴 투수들이 아닙니다. 양적으로나 질적으로 밀리지 않는 불펜입니다. 이보근, 한현희, 문성현 등의 셋업맨 역할이 중요합니다.

< 두 외국인 투수가 작년만큼 성적을 올려준다는 가정 하에 김병현이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선발진의 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이강철 코치 효과와 포수 박동원의 역할도 눈여겨볼 대목입니다. ⓒ민기자닷컴 >

넥센 타선은 작년에도 강했지만 올해는 더욱 업그레이드될 조짐이 보입니다.
작년 MVP는 박병호는 100타점을 훌쩍 넘기겠다는 각오로 훈련에 매진하고 있고 WBC 출전으로 강정호는 또 업그레이드될 것으로 기대됩니다. 강정호는 이 팀의 심장 역할을 해야할 선수로 빅리그에서 눈여겨 볼 정도의 재능이 있습니다. 이택근이 100경기 이상을 소화해 준다면 중심 타선은 탄탄하게 구성됩니다. 장기영이 NC 다이노스와 친선경기에서 얼굴에 공을 맞아 가슴을 철렁케 했지만 다행히 큰 부상이 아니라 오키나와 캠프에 합류했습니다. 장기영이 서건창과 함께 테이블 세터를 맡는데 역시 두 선수가 얼마나 밥상을 잘 차리느냐가 영웅 공격의 시작입니다.
올 시즌 주목할 두 타자는 이성열과 유한준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년에 팔꿈치 수술을 받고 뒤늦게 합류한 유한준은 사실상 올해가 공수에서 제대로 활약할 수 있는 부상 후 첫 시즌입니다. 그리고 이성열은 무한 파워를 지닌 좌타자이기 때문에 그가 살아준다면 히어로스 타선의 색깔이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염감독의 말처럼 이성열이 컨택트 능력을 키운다면 상대 투수들에겐 대단히 껄끄러운 타자입니다. 여기에 다재다능한 김민성과 그리고 포수 자리면 라인업이 모두 채워집니다. 이밖에 작년 시즌 초반 깜짝 활약을 펼친 노장 정수성과 좌투수에 강한 오윤, 최고참 송지만, 김민우, 조중근, 지석훈, 유재신 등도 전력에 힘을 실어줄 수 있습니다. 전반적으로 빠른 스피드를 앞세운 '달리는 야구'를 효과적으로 구사할 수 있는 구성원들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포수입니다. 국내 프로야구의 판도를 보면 좋은 포수를 보유한 팀과 그렇지 못한 팀으로 양분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입니다. 물론 한 포지션이 모든 것을 좌우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지만 그만큼 포수의 비중이 큽니다.
허도환, 지재옥, 최경철의 기존 포수들은 모두 성실하고 열심이지만 주전 포수를 맡기에는 약간의 아쉬움이 있는 것도 현실입니다. 그런데 이번 캠프를 통해 박동원이라는 포수를 발굴했습니다. 발굴이라기보다는 상무를 거쳐 돌아온 중고 신인인데 지난해 퓨처스리그에서 75경기에 나서 3할2푼6리, 9홈런, 41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공격형이지만 염감독은 수비 능력도 상당히 칭찬을 했는데, 대번 주전 포수감으로 떠올랐습니다. 1군에서 어떤 모습일지는 지켜봐야 하지만 일단 극한 경쟁에서 앞서갑니다.

< 강정호, 박병호, 이택근의 강한 중심 타선을 보유한 영웅 라인업은 이성열과 유한준까지 가세한다면 상대 투수진에 대단히 부담스러워집니다. ⓒ민기자닷컴 >

넥센 히어로스가 애리조나 캠프를 떠난 직후에 서프라이즈를 다시 찾았습니다. 그들이 훈련하던 캠프의 원래 주인인 텍사스 레인저스의 존 블레이크 부사장은 기자와 만나 "와, 한국팀 정말 대단하더라. 오전과 오후에 계속 훈련을 해서 놀랐는데 저녁 식사를 마치고 선수들이 또 나와서 훈련을 하더라."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넥센 히어로스 선수들의 훈련량이 적은 것이 절대 아니었습니다.
그런 점에서 볼 때 과연 염경엽 감독의 새로운 시도를 선수들이 얼마나 몸과 머리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가 그들의 올 시즌 향방에 상당한 영향을 끼칠 수 있습니다. 선수들에겐 생소한 '사고의 전환'이 갑작스러울 수도 있습니다. 프론트와 현장의 소통 방식도 관심을 끄는 가운데 생각하는 야구, 긍정적인 야구를 어떤 식으로 보여줄지, 넥센 히어로스의 2013년이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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