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현진에 대한 단독협상권을 위해 LA 다저스가 약 280억 원을 제시했다는 것은 야구계를 떠나 최근 국내 최고 화젯거리 중의 하나였습니다. 한화 이글스에서 포스팅에 응한다는 결정이 나온 후 계속 취재를 하는 과정에서 1500만 달러 정도는 나올 수도 있겠고, 많게는 2000만 달러까지 생각은 했지만 사실 그 정도까지는 좀 어렵겠지 싶었습니다. 그런데 정작 2500만 달러가 넘는 포스팅 머니가 나오자 깜짝 놀랐습니다. 한화도 놀랐고 류현진도 놀랐고 또 팬도 모두 놀랐습니다. 놀란 것은 국내뿐이 아닙니다. 미국 현지에서도 깜짝 놀라는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포스팅에는 10개 가까운 팀이 나섰고 그 중에 2000만 달러 이상을 쓴 팀이 세 팀이나 된다는 정황도 포착됐으니 류현진에 대한 MLB의 기대와 가치 평가는 기대보다도 더 높은 셈입니다.

무한 투자를 시작한 다저스

그런데 LA 다저스라는 점을 또 의외로 받아들이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당초 예상했던 팀의 명단에 다저스는 거의 보이지 않았고 마지막에 살짝 이름을 올린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최근 다저스의 분위기를 보면 다저스의 포스팅 공세가 이해가 되기도 합니다.
요즘 MLB에서는 다저스를 '서부의 양키스'라고 부릅니다. 은근히 비꼬는 투도 섞여있는데 '악의 제국'이라는 말까지 들으면서 무제한 투자로 달러를 퍼붓던 양키스의 방식을 다저스도 택했다는 뜻입니다. 파산신청까지 했던 '짠돌이' 프랭크 맥코트가 팀을 팔고 떠난 후 매직 존슨을 위시로 한 새 구단주 그룹은 거의 무한 투자를 하는 분위기입니다. 21억5000만 달러라는, 우리 돈으로 약 2조3500억 원의 역대 최고 액수에 다저스를 인수한 그룹은 팀 연봉이 얼마나 되든지 개의치 않고 최고의 팀을 꾸리겠다는 의지를 숨기지 않습니다. 올 개막전 당시 다저스 팀 연봉은 9000만 달러 선까지 떨어졌습니다. 그런데 구단주가 바뀐 후 지난 8월 보스턴에서 1루수 아드리안 곤살레스, 외야수 칼 크로포드, 선발 투수 조시 베켓 등 거물을 일제히 데려오면서 단번에 남은 봉급 총 2억6000만 달러를 떠맡았습니다. 현재 기준으로 다저스의 확정된 내년 팀 연봉만 이미 1억8000만 달러가 넘습니다. 양키스의 확정된 내년 팀 연봉은 1억3100만 달러입니다.
최근 네트 콜레티 단장이 ESPN과 인터뷰한 내용을 보면 다저스의 분위기가 얼마나 달라졌는지 알 수 있습니다. 콜레티 단장은 "모든 것이 완전히 달라졌다. 이제 우린 과감한 생각과 과감한 액션을 취할 수 있다. 현명한 선택은 필수지만 공격적이고 발전적이라면 거대하고 전반적인 계획에 착수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그는 'global'이라는 단어를 썼습니다. 물론 '전반적'이라는 뜻이 있지만 '세계적'이라는 의미가 더욱 강한 단어입니다. 그러면서 "과거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선수에 대해서도 우리는 깊이 있게 생각하고 주시하고 토론하고 있다."라는 말도 덧붙였습니다. 바로 그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대한민국 최고 선수 류현진에 대한 투자도 결정된 것으로 보입니다.
선수에 대한 투자는 결국 팬에 대한 투자입니다. 강한 팀을 만들고 시장성이 있는 선수를 영입하는 것은 팬 서비스의 일환이기도 하지만 결국 팬을 야구장으로 불러 모으는 무기입니다. 그리고 전통적으로 MLB의 최고 엘리트 팀 중의 하나였던 다저스의 영광의 시절을 되돌리는 것 역시 팬에 대한 서비스이자 팀의 성공을 위한 투자입니다.
다저스의 새 구단주 그룹은 그런 점에서 확실한 메지시를 전달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가장 자주 하는 말은 '과감해라. 이쑤시개를 보면 그것을 만든 커다란 삼나무를 연상하라.'는 것입니다. 우리말의 뉘앙스로 딱 와 닿지는 않지만 그만큼 큰 틀을 생각하고 공격적으로 투자를 하라는 뜻입니다. 작년 겨울처럼 연봉 400만 달러 이하의 선수만 줄줄이 찾아다니는 것이 아니라 스토브리그의 최고 선수들을 과감하게 끌어들일 계획을 세우라는 지명도 떨어졌습니다.

류현진의 LA에서 더 큰 시장성


그렇다면 류현진에 대한 5000만 달러 정도의 투자는 '새 다저스'에겐 충분히 생각해볼 수 있는 과제입니다. 그것도 아주 여유 있게.
일단 류현진이라는 매력적인 왼손 투수는 그 자체만으로도 아주 훌륭한 상품입니다. 올 시즌 비록 9승에 그쳤지만 27번의 등판에서 182와⅔이닝이나 소화했다는 점, 피안타가 153개에 불과했다는 점, 삼진을 210개나 잡았다는 점, 삼진과 볼넷의 비율이 4.57:1이나 된다는 점 등 질적으로 대단한 기록을 보였습니다. 그리고 지난 7년간 유사한 능력과 기량을 꾸준히 보여줬습니다.
게다가 류현진은 지옥에까지 따라가서 잡아오라는 뛰어난 좌완 투수입니다. 체격 조건도 미국식으로 6피트3인치에 220파운드 정도로 MLB의 투수들에게도 절대 밀리지 않는 당당한 체구를 지녔습니다. 그리고 MLB 스카우트들이 류현진을 평가할 때 빼놓지 않는 단어가 있으니 '마운드에서의 평정심(composure)과 존재감(presence)'입니다. 투수의 기록만으로 볼 수 없는 마운드에서의 느긋함과 당당함은 사실 류현진의 가장 큰 무기입니다. 류현진의 마운드에서의 경기 지배력과 흔들리지 않는 정신력은 그들이 가장 큰 점수를 주는 요인입니다. 거기다가 류현진은 당장 MLB에서도 정상급인 체인지업과 마음껏 뿌릴 수 있는 제구력의 완급 조절이 아주 좋은 강속구를 지녔습니다. 한국에서보다 미국에서 그의 체인지업은 더욱 빛을 발할 것입니다. 커브와 슬라이더도 결정구로는 아직 약하지만 보여주는 구질로는 충분합니다.
이렇게 투수라는 가치에서도 류현진은 다저스에게 매력적이지만 또 다른 대단히 큰 플러스 요인을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교민 사회입니다.
'코리언 특급' 박찬호를 경험한 다저스는 한국 교민들의 열성과 사랑을 체험했습니다. 그것은 곧바로 티켓 파워로 연결됩니다. 박찬호 전성기 시절 그가 등판하는 경기에는 5000명 이상의 교민, 유학생들이 다저스타디움에 쉽게 모였습니다. 1인당 평균 쓰는 돈을 50 달러만 잡아도 25만 달러입니다. 한 시즌에 17,8번 홈에서 등판하니까 그 수익만 450만 달러 정도 됩니다. 실제로는 류현진 저지나 티셔츠 등의 판매를 예상하면 훨씬 많은 돈을 한국 팬이 쓸 것은 분명합니다. 대략 평균 500만 달러 선으로 기대되는 류현진의 연봉은 거의 다 뽑을 수 있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이 부자팀으로 가는 것이 류현진에게도 나쁠 것은 전혀 없습니다. 팀 연봉이 엄청나게 많아질 테고 수퍼스타들이 즐비할 테니 다시 신인이 되는 류현진이 무거운 짐을 질 일도 없습니다. 타선의 지원은 풍부해질 것이고 3,4,5선발 중에 한 자리를 맡아 착실히 승수를 쌓아 가면 10승도 어렵지 않을 전망입니다. 팀의 전력이 강해지면 포스트 시즌 진출 확률도 자연히 높아지고 미전역의 무대에 노출될 빈도도 잦아질 수 있습니다. MLB에서도 스타로 가는 길이 그만큼 단축될 수도 있습니다.

아직은 갈 길이 멀어






< 보라스가 어떤 전략으로 협상에 임할지 궁금합니다. 무리한 요구는 자칫 협상이 깨질 수도 있는 상황입니다. >

물론, 이렇게 보랏빛 장래만 꿈꾸기에는 아직 갈 길이 멉니다. 우선 다저스와 한 달 안에 서로 동의할 수 있는 계약을 끌어내야 합니다. 스캇 보라스가 에이전트이니 유리한 많은 조건을 요구하겠지만 너무 무리하게 하다가 협상이 깨지는 일이 생기면 곤란합니다. 다저스가 거액의 포스팅 머니를 써냈다고 해서 연봉도 엄청나게 내놓으리라는 예상을 하기는 어렵습니다. 오히려 지금의 자금력과 선수 끌어모으기 추세라면 류현진 측이 과도한 요구를 한다면 접을 수도 있다는 점도 고려해야 합니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 계약이 성사되면 류현진이 잘 정착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제대로 발휘해야 합니다. 전혀 다른 문화와 전혀 다른 환경에서 정말 무서운 타자들과 계속 대결을 펼쳐야 하는 만큼 아주 치밀한 준비와 단단한 각오는 필수입니다. 그러나 한동안 주춤했던 한국 선수의 미국 MLB 진출이 류현진을 시작으로 다시 물꼬를 틀 기회를 잡았습니다. 류현진이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면 한국 프로 선수에 대한 MLB의 러브콜은 더욱 잦아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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