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시즌 반란의 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는 카펜터라는 성을 가진 유명 선수가 있습니다. 돌아온 에이스 크리스 카펜터로 워싱턴과의 디비전 시리즈에서도 승리 투수가 되며 건재를 과시했습니다. 그런가하면 타자 중에는 맷(Matt)이라는 이름을 쓰는 유명 선수도 있습니다. 팀의 중심 타자인 맷 홀리데이입니다.
그런데 이 투타의 두 간판선수의 이름을 합쳐 놓은 선수가 있습니다. 맷 카펜터라는 26세의 루키 유틸리티맨입니다. 1985년 11월 26일생인 카펜터는 텍사스의 TCU 대학을 다니다 지난 2009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드래프트됐습니다. 13라운드에 뽑힌, 400번째도 넘게 후반 라운드에 지명된 무명의 신인이었습니다.

<백업 루키 유틸리티맨인 맷 카펜터는 3차전 벨트란의 부상으로 출전해 결승 홈런을 쳤습니다.>

올 시즌 전까지 카펜터의 빅리그 경험은 딱 7경기. 작년에 15타수 1안타에 4볼넷, 4삼진이 성적의 전부였습니다. 그런데 올 시즌을 앞두고 알버트 푸홀스와 닉 푼토가 떠난 데다 알렌 크렉까지 부상을 입자 스프링 캠프에서 그에게 경쟁 기회가 생겼습니다. 특히 1루와 3루는 물론 외야까지 맡을 수 있는 다양한 수비 재능으로 결국 그는 개막전 로스터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었습니다.
주로 대타나 대수비로 기용되는 백업 요원이었지만 맷은 114경기에서 2할9푼4리에 6홈런 46타점으로 탄탄한 기여를 했습니다. 특히 시즌 막판 7경기 중 6경기에서 안타를 치는 좋은 타격감을 과시했고 역시 수비력을 인정받으며 포스트 시즌 로스터의 한 자리도 차지했습니다. 그리고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디비전 시리즈까지 6경기에 모두 대타와 대수비로 출전했습니다. 10월6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와일드카드 단판 승부에서는 대타로 나서 안타와 타점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자신의 첫 포스트 시즌 타석에서 올린 안타와 타점이었습니다. 그러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NLCS 1,2전에서는 출전 기회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18일 세인트루이스서 벌어지는 3차전을 앞둔 새벽. 텍사스 주 프로스퍼에 사는 한 부부는 거의 잠을 이루지 못하다가 새벽 2시부터 일어나 분주했습니다. 1000km쯤 떨어진 세인트루이스까지 자동차로 이동한다는 계획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정오까지는 도착해야 여유가 있고 운전만 적어도 7시간 이상은 걸리니 일찍 떠나야 했습니다. 새벽 3시 그들은 집을 떠났습니다. 큰 아들을 보러 먼 길을 떠난 그들은 릭과 태미 카펜터, 바로 맷 카펜터의 부모님이었습니다.
카펜터家는 그야말로 야구 가족입니다. 아버지 릭은 대학 야구 선수였고 오랫동안 고교 팀 야구 감독으로 활동했습니다. 맷은 텍사스 주 엘킨스 고교의 스타 플레이어였는데 바로 아버지 릭이 감독이었습니다. 어머니 태미는 소프트볼 선수 출신입니다. 동생 타일러는 뉴욕 메츠의 마이너리그에서 뛰었습니다.
먼 길을 운전해 세인트루이스에 도착한 이들 부부는 며느리 매킨지와 만났습니다. 고교 시절 매킨지는 맷의 영웅이던 랜스 버크만의 대형 포스트를 정성스럽게 포스터로 만들어 남자 친구에게 선물했고 오랜 연애 끝에 결혼한 하이스쿨 '스윗 하트'였습니다.

카펜터 가족이 이날을 선택한 특별한 이유는 없었습니다. 1,2차전이 벌어진 샌프란시스코는 운전해서 가기에는 너무 멀었습니다. 그리고 1,2차전에는 기용되지 않았으니까 아마도 3차전에는 경기 후반 대타라도 나오지 않을까 하는 막연한 기대는 있었습니다. 꼭 그렇지 않더라도 카디널스 유니폼을 입고 포스트 시즌 경기장에 설 아들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할 것이기에, 하루라도 빨리 그나마 제일 가까운 부시스타디움을 경기장을 찾기로 했습니다.

매년 10월이면 야구의 신은 전혀 예상치 못한, 누구도 기대할 수도 없는 기적 같은 드라마를 펼쳐내곤 합니다. 그러나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카펜터 가족 역시 그런 기적 같은 드라마를 원하거나 바라고 야구장을 찾은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저 아들이, 남편이 포스트 시즌 경기에서 한 타석 정도는 직접 뛰는 것을 보리라는 소박한 소망은 있었습니다.
경기 초반 포스트 시즌 사상 가장 뛰어난 타자 중의 하나인 카를로스 벨트란이 무릎 부상으로 쓰러졌습니다. 부시 스타디움의 카디널스 팬들의 근심이 깊어가는 가운데 카펜터 가족은 탄성을 질렀습니다. 맷 카펜터가 대신 기용된다는 문구가 대형 스크린에 뜬 것입니다. 그들이 기대하던 순간은 예상보다 훨씬 일찍 찾아왔습니다. 맷은 2회초 우익수로 경기에 투입됐습니다.
3회초 자이언츠는 무사 주자 2,3루에서 산도발의 내야 땅볼로 먼저 1점을 얻었습니다. 카디널스는 포지를 거르는 만루 작전을 폈고 펜스가 병살타를 치며 간신히 1실점으로 이닝을 막았습니다.

<맷 케인의 슬라이더를 받아쳐 2점포를 터뜨리고 경기를 뒤집은 맷 카펜터가 동료들의 환영을 받습니다.>

그리고 곧바로 카디널스의 반격이 시작됐습니다.
그러나 반격이라기엔 좀 약했던 것이 투아웃 이후에 1번 타자 존 제이가 안타를 치고 나갔습니다. 게다가 타석에는 카디널스 팬에게는 아쉽게도 벨트란이 아닌 교체된 맷 카펜터가 들어갔습니다. 자이언츠의 마운드에는 우완 에이스 맷 케인.
초구와 2구는 연속 스트라이크였습니다. 3구째 바운드 볼이 나오며 폭투로 제이가 득점권인 2루까지 진루하긴 했지만 아직 카펜터의 방망이는 한 번도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4구째도 볼로 볼카운트는 2-2. 5구째 케인은 142km 슬라이더를 선택했습니다. 왼손 타자의 몸을 향해 백구가 급격히 휘어지기 직전 맷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아갔고 제대로 앞에서 맞았습니다. 그리고 127.5미터를 순식간에 비행해 붉은 유니폼으로 물든 우측 관중석에 꽂혔습니다. 순식간에 2-1로 경기가 뒤집어 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이날 경기는 중간에 비가 많이 내려 3시간28분이나 중단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카디널스가 3-1로 승리했고 맷 카펜터는 3차전의 승리 타점을 기록한 영웅으로 카디널스 팬에게 각인됐습니다. 불과(?) 3차전에 지나지 않았지만 이날 카디널스 선발이 34세의 카일 로시였고 자이언츠는 에이스 케인이었다는 점, 그리고 자이언츠의 4,5차전 선발이 결과는 예측하기 어려운 린스컴과 지토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카디널스에겐 대단히 큰 승리였다고 할 수 있습니다.

누가 이런 드라마를 기대했을까요?
박준서의 동점 홈런이나 용덕한의 결승 홈런을 예상할 수 없던 것처럼 맷 카펜터의 결승 홈런을 기대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가 올해 부시스타디움에서 마지막 홈런을 친 것은 5월15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내셔널스와의 NLDS에서는 5타수 무안타에 삼진만 3개 당했고, NLCS 1,2차전에서는 출전 기회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통계의 미학은 결정적인 순간에 한 방을 터뜨린 카펜터의 강점도 극명하게 보여줍니다. 맷은 올 시즌 몸 쪽으로 무릎보다 약간 위 높이로 파고드는 공의 타율이 3할5푼5리였습니다. 87안타 중에 43개를 바로 그 위치로 날아든 공을 때려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투스트라이크를 먼저 먹고 시작한 타석에서 그의 타율은 2할9푼으로 리그 평균인 1할6푼8리보다 월등하게 강했습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맷 카펜터는 올 시즌 맷 케인을 만나 4타수 4안타를 기록했었습니다.

아버지 카펜터는 아들의 극적인 홈런으로 승리하는 장면을 현장에서 목격하는 감동을 맛보면서 지난겨울을 생각했다고 말했습니다. 2011시즌 메이저리그 7경기 맛을 본 맷은 자신의 포지션인 3루에는 데이빗 프리스가 버티고, 1루에는 알버트 푸홀스가 떠난다 해도 알렌 크렉이 있으니 설 자리는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간 그는 매운 겨울바람이 부는 고등학교 운동장을 매일 찾았습니다.
아버지 릭이 공을 던지면 동생 타일러가 외야로 공을 쳤습니다. 그리고 맷은 쉴 새 없이 외야에서 공을 추격했습니다. 그런 겨울을 보내고 맷 카펜터는 내야는 물론 외야 수비로 꽤 잘하는 수비수로 변신했습니다.

이런 극적인 홈런의 궤적은 늘 아주 느린 화면처럼 잔상에 남습니다. 그리고 관중석에서 직접 그 홈런을 지켜보고 감격을 맛본 부모와 부인에겐 그 찰나의 순간이 영구적인 행복한 추억으로 남게 되겠지요. 야구의 신은 또 하나의 가을 동화를 그렇게 써내려갔습니다.

*19일 이 컬럼을 쓰는 현재 진행되고 있는 카디널스와 자이언츠의 NLCS 4차전에서 맷 카펜터는 2번 타자로 출전했습니다. 첫 타석에서는 린스컴에게 볼넷을 골라 팀의 두 번째 득점을 올렸고, 두 번째 타석에서도 볼넷을 골랐습니다. 그리고 세 번째 타석에서는 우중간 펜스 꼭대기를 맞추는 2루타 후에 팀의 세 번째 득점을 했습니다. 6회초 현재 카디널스가 3-1로 앞서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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