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이 야구를?
언뜻 도저히 어울리지 않는 조합으로 보입니다. 사람들마다 이스라엘에 대한 인식이나 느낌이 다를 수 있지만 자신들의 전통을 중시하는 유대교의 랍비나 중동 인근 지역과의 끝없는 분쟁, 그리고 미국에서는 뜨거운 교육열과 자린고비의 대명사처럼 여겨지는 유대인은 야구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물론, 샌디 코팩스 같은 대표적인 유대인 야구 스타가 있기는 하지만 이스라엘과 야구는 언뜻 어울리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에서도 야구를 합니다. 그리고 이번 제3회 WBC를 앞두고 벌어진 지역 예선에서 이스라엘은 지역 예선 통과 일보직전에 탈락하는 선전을 벌이며 아쉬움을 남겼습니다.

지난 24일 미국 플로리다 주 주피터의 로저던 스타디움에서 벌어진 스페인과의 결승전은 연장전까지 가는 치열한 대결이었습니다.
예선에서 이미 4대2로 스페인을 꺾은 경험이 있는 이스라엘이지만 이날 경기는 초반부터 난타전을 벌인 끝에 7대9로 패하면 1차 예선 진출에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1회에 2점을 뽑으며 앞서갔지만 계속 점수를 주고받으며 8회초에는 6-7로 역전을 허용했다가 8회말 동점을 만들었지만 연장 10회초 스페인에 2점을 내주고는 만회점을 얻지 못했습니다. 남아공과 스페인을 연파하며 지역 예선을 1위로 통과했지만 그나마 유럽 무대에서는 오랜 야구 구력를 지닌 스페인을 두 번 꺾지는 못했습니다.

< 이스라엘 대표팀. 코치 겸 선수 션 그린이 동료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습니다. >

물론 이번에 이스라엘 팀이 선전한 것은 WBC의 특이한 출전 규정의 도움을 받은 때문이기는 합니다. 다른 국제 대회의 경우 그 나라의 시민권자인 경우에만 출전을 허용하지만 WBC는 그렇지 않습니다. 국적이 달라도 부모나 조부모가 그 나라 출신이거나 혹은 부인이 그 나라 출신이어도 출전이 가능합니다. 우리 같은 경우도 마음만 먹으면 재일 동포와 재미 동포도 출전할 수 있습니다.
이번 이스라엘 팀을 구성한 28명 중에도 순수하게 이스라엘에서 태어나 자란 선수는 3명뿐이었습니다. 대부분 선수가 이스라엘의 미국 이민자의 후손들로 마이너리그에서 야구를 하는 선수들이 많이 출전했습니다. 이번 대회에서 두 경기 연속으로 2홈런씩을 기록하며 이스라엘의 공격 선봉에 선 네이트 프리맨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가 아끼는 유망주입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이제 야구의 유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현재 이스라엘에서는 7세부터 60세까지 야구를 하는 인구가 약 1000명 정도 된다고 합니다. 정식 야구장은 세 개 있고 대부분 야구 경기는 축구장이나 공터에서 벌어집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 야구가 차근차근 발전하며 자리를 잡아가는 것도 확실히 보입니다. 작년에는 이스라엘에서 유럽 챔피언십이 열리기도 했습니다. 순수 이스라엘 출신의 대표팀이 출전해 영국을 꺾고 승리를 맛보기도 했습니다. 쉴로모 리페츠라는 투수는 영국과의 더블헤더에 연속으로 선발로 나서 1승1패를 기록했는데 총 214개의 공을 던지기도 했습니다.
더구나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이스라엘에는 세미 프로리그도 있습니다. 지난 2007년에 발족해 총 6팀으로 이루어진 팀 당 45경기씩 치르는 리그입니다.

그러나 이번 지역 예선 출전이 쉽지만은 않았습니다.
주최측의 초청을 받기는 했지만 솔직히 이스라엘 대표팀을 출전시키는 것은 무리였습니다. 애당초 전력 차이가 너무 크기 때문에 출전 자체의 의미를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었습니다. 그러나 이번 대회는 예선부터 이스라엘에 생중계될 예정이었고 이스라엘 야구협회 관계자들과 선수들은 경쟁력 있는 팀을 꾸려 승리에 목표를 두자는데 의견이 일치했습니다. 특히 야구를 이스라엘 전역으로 널리 알리는데 주력하고 있는 야구협은 현재 라아나나에 신축 야구장을 건설하기 위해 400만 달러 기금을 모금하고 있어 이번 기회에 야구를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로 여겼습니다.

대표팀 구성은 의외로 어렵지 않았습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은퇴한 세 명의 선수가 주축이 됐습니다. 어머니가 유대인인 브래드 아스머스가 감독이 됐고 전통 유대인 가족에서 자란 전 다저스의 거포 션 그린과 왼쪽 팔뚝에 다비드의 별을 문신한 게이브 캐플러가 선수 겸 코치로 가세했습니다. 그리고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영입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제는 240개가 넘는 마이너리그 팀에서 뛰는 7000여명의 선수 중에 유대인 혈통의 선수를 어떻게 가려내느냐 였습니다. 유대인 특유의 성이 있기는 하지만 그것이 100% 맞아 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큰 도움을 준 사람이 있었습니다. 지난 수년간 꾸준히 미국 프로야구의 유대인 혈통 선수를 찾아 분류한 사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캇 바란식이라는 한 유대인계 언론인은 jewishbaseballnews.com이라는 웹사이트를 만들고 꾸준히 유대인계 혈통의 선수를 찾아내고 분류해왔습니다. 데이빗 엑스타인이나 매디슨 범가너 같은 대번 유대인 혈통의 이름이라고 생각되던 선수가 전혀 상관이 없다는 것도 밝혔습니다. 반대로 하위 마이너리그에서 뛰는 선수들 중에 아주 생소한 선수까지 추적을 해 혈통을 밝혀내기도 했습니다.

부모 중에 한 명이라도 유대인이고 다른 종료를 선택하지 않은 선수는 모두 이 명단에 포함됐습니다. 아스머스 같은 경우는 유대교의 방식으로 성장하지는 않았지만 유대인인 어머니가 직접 연락을 해서 이 명단에 이름을 올리기도 한 케이스입니다. 그리고 아스머스가 감독으로 내정되면서 이 명단을 토대로 선수 인선 작업에 들어갔습니다. 총 65명의 유대인계 마이너리거가 있다는 것이 밝혀졌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특별 보좌역을 맡은 아스머스는 자체 마이너리그 스카우팅 리포트를 통해 선수를 선별해 선택했습니다.

< 작년 이스라엘에서 열린 유럽챔피언십에서 에이스로 1승을 거둔 리페츠는 이번 WBC 예선에서 0.1이닝을 던졌습니다. >

이렇게 선수 구성은 쉽지만도 않았지만 또 큰 어려움도 없었는데, 이스라엘 대표팀은 대회 일정상의 아쉬움을 토로하기도 합니다. 이번 세 번째 WBC 대회는 더욱 많은 국가의 참가를 유도해 총 28개 팀이 예선에 출전했습니다. 그 중에 챔피언 일본이나 4강국 대한민국과 종주국 미국 등의 12개 팀은 16강에 자동 출전해 내년 3월 1차 예선부터 경기를 치릅니다. 그러나 나머지 16개국은 4곳에서 지역 예선 거쳐 우승팀만이 1차 예선에 합류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을 비롯해 영국, 스페인, 독일, 남아공, 태국, 필리핀, 뉴질랜드 등은 지역 예선을 거칩니다. 캐나다와 대만도 지역 예선부터 치르고 올라와야 합니다. 그런데 팀이 이렇게 많다보니 일부 지역예선의 일정이 앞당겨져 11월이 아닌 9월에 열리게 된 것입니다. 그로 인해 이스라엘은 전력 손실을 보게 됐습니다.

만약 이스라엘이 당초대로 11월에 지역 예선을 치렀더라면 결과는 크게 달라졌을 수도 있습니다. 그때면 메이저리그 시즌도 모두 끝나기 때문에 현재 빅리그에서 활약하는 선수 중에 유대인 혈통이나 혈연관계의 선수를 영입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대표적으로 전년도 NL MVP인 밀워키의 외야수 라이언 브런, 30-30을 달성한 텍사스의 이안 킨슬러와 투수 스캇 펠드맨, 화이트삭스로 이적해 맹활약을 펼치는 내야수 케빈 유킬리스, 뉴욕 메츠의 1루수 아이크 데이비스, 레드삭스 투수 크렉 브레슬로 등은 모두 유대인계 혈통 선수로 출전 의사가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그러나 예선 일정이 9월로 바뀌면서 이들 빅리거들의 출전은 불가능해졌고 이스라엘은 막판 고비를 넘기지 못해 16강 진입에 실패했습니다. 만약 예선이 11월에 열려 빅리그 선수들이 모두 출전했더라면, 그래서 이스라엘이 16강에 진출했더라면 누구도 만나고 싶지 않은 강력한 다크호스가 될 뻔 했습니다.

아쉬운 탈락이었지만 이스라엘 야구의 국제무대 진출은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될 것으로 보입니다. 지난 1989년 이스라엘이 처음 리틀리그 중동 지역 예선에 출전했을 당시 주로 미국인 주재원의 아이들로 구성된 사우디 아라비아 팀에게 51대0으로 진 적이 있습니다. 그 대회에 출전했던 댄 로뎀(35)이 이번 WBC 이스라엘 팀의 순수 이스라엘 출신 선수 셋 중에 하나였습니다. 4년 후에 열릴 제4회 WBC에는 더 많은 이스라엘 출신 선수들이 팀을 구성하게 되기를 이스라엘 야구협회는 소망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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