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프로야구의 스프링 캠프는 1월에 이미 시작되는 반면 메이저리그의 스프링 캠프는 이제 그 시작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MLB 30개 팀은 미국 동남부의 플로리다 주와 서남부의 애리조나 주로 나뉘어 스프링 캠프를 벌입니다. 투수와 포수들이 먼저 입소하고 며칠 뒤 야수가 합류하면서 본격적인 캠프가 시작됩니다. 팀마다 입소일이 약간씩 다른데 올해는 한국 시간으로 20일에 투, 포수가 합류하는 것이 가장 빠릅니다. 다른 해에 비해 약간 늦은 편입니다.
MLB 스프링 캠프는 처음 약 열흘 정도 팀 훈련을 한 후에 곧바로 시범 경기에 돌입합니다. 기본적으로 선수들 스스로 겨울 훈련을 하고 오기 때문에 실전 감각을 다듬는데 대부분 시간을 할애합니다.

플로리다에서 캠프를 차리고 3월말까지 시범 경기를 벌이는 리그는 그 지역의 특산과일인 '자몽'의 이름을 따서 '그레이프프루트리그(Grapefruit League)'라고 부릅니다. 그리고 애리조나에서 열리는 리그는 역시 지역 명물인 선인장의 이름을 따서 '캑터스리그(Cactus League)'라고 부릅니다.
올해는 프로야구 팀도 이 지역에 캠프를 차려 앞으로 갈수록 국내 팬에게 더욱 익숙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SK 와이번스가 플로리다에, 한화 이글스와 두산 베어스, 넥센 히어로스, NL 다이노스가 애리조나에 캠프를 차렸습니다. 두 리그의 역사와 특징, 소속팀 등 메이저리그의 스프링 캠프를 2회에 걸쳐 소개합니다. 그 두 번째로 애리조나의 선인장리그입니다.<편집자주>

애리조나는 건조하고 따뜻한 날씨로 겨울이 성수기입니다. 여름에는 40도를 넘는 날도 많을 정도로 덥지만 겨울이 오히려 관광객들을 불러 모으는 계절입니다. 그리고 2월 중순부터 3월말까지 피닉스를 중심으로 한 지역은 그야말로 전성기를 누립니다. 바로 MLB 스프링 캠프를 양분하고 있는 '캑터스리그(Cactus League)'가 열리기 때문입니다.
캑터스 선인장은 여러 종류가 있지만 애리조나의 명물은 키가 훌쩍 2~3미터 이상으로 크고 옆에서 팔처럼 가지가 뻗어져 나오는 독특한 모양입니다. 도시 곳곳은 물론 외곽 지역으로 나가면 수십, 수백 그루의 캑터스가 자라는 장관을 볼 수가 있습니다. 애리조나에서 캑터스는 절대 훼손할 수 없는 보호 식물로 엄격히 보존되고 있습니다.
지역 명물인 대형 선인장 캑터스의 이름을 딴 이 리그는 미국프로야구의 스프링 캠프의 원조인 플로리다 주의 '그레이프프룻리그'에 비하면 역사가 훨씬 짧습니다. 플로리다 주의 캠프장이 1900년대 초반부터 자리를 잡기 시작한 반면에 애리조나 주에서 캠프를 처음 연 것은 1946년입니다.
그러나 갈수록 인기를 끄는 선인장리그는 이제 정확히 절반인 15개 팀이 자리를 합니다. LA 에인절스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텍사스 레인저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콜로라도 로키스, 밀워키 브루어스, 시애틀 매리너스, 캔자스시티 로열스, 시카고 커브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그리고 최근에 합류한 LA 다저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 등이 애리조나에 둥지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 선수 중에는 김병현, 김선우, 백차승, 박찬호 등이 캑터스리그에서 시즌을 준비했습니다. 이제 추신수가 이곳에 자리를 잡았고 마이너리그 한국인 유망주도 꽤 많이 이곳에서 훈련을 합니다.
팀의 면모를 보면 금방 느끼지만 미국 서부지역이나, 혹은 중부지역에 위치한 팀들이 대부분입니다. AL과 NL의 서부조에 속한 팀들은 2년 전 베로비치의 다저타운을 떠난 LA 다저스까지 모든 팀이 애리조나에서 훈련을 합니다. 지리적으로 원 소속팀과 가까우니 당연한 선택이고 팬에게도 고마운 일입니다.
중부조 팀들은 플로리다와 애리조나 중에 선택의 여지가 있는데, 피닉스 인근 지역의 새로운 구장 건설 등 활발한 유치전에 힘입어 점점 캑터스리그의 인기가 올라가고 있습니다.

(캑터스리그 스프링 캠프는 팬들에겐 야구 축제이자 지역 경제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합니다. ⓒ민기자닷컴)

캑터스리그의 슬픈 시작
그런데 선인장리그가 형성되는 과정에는 한 구단주와 흑인 선수의 서글프고도 감동적인 뒷얘기가 담겨있습니다. 1946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빌 벡 구단주는 스프링 훈련장을 애리조나로 옮길 구상을 합니다. 그러나 홀로 애리조나로 옮겨서야 제대로 훈련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뉴욕 자이언츠의 호래스 스톤햄 구단주를 적극적으로 설득합니다. 결국 인디언스는 투산에, 자이언츠는 피닉스에 캠프를 차렸고, 1946년 3월8일 기념비적인 캑터스리그 첫 시범 경기가 열려 인디언스가 자이언츠에 3-1로 승리를 거뒀습니다.
그런데 벡 구단주가 캠프장 이전을 결심하게 된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래리 도비라는 선수 때문이었습니다. 1945년에 인디언스의 멤버가 된 도비는 AL 최초의 흑인선수였습니다. 그런데 플로리다로 전지훈련을 갔을 때 도비는 다른 선수들과 한 호텔에 머물 수도 없었습니다. 미국 동남부는 흑인에 대한 차별이 유독 심한 지역이었습니다. 그런 처사에 분노한 벡 구단주는 인종차별이 훨씬 덜하고 날씨도 따뜻한 애리조나에 스프링 캠프를 차리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1950년까지는 이 두 팀만이 애리조나에서 스프링 캠프를 차렸습니다. 그런데 1951년에는 양키스도 애리조나에서 훈련을 했습니다. 당시 양키스 구단주인 델 웹이 그 지역에서 대규모 부동산 투자 사업을 벌인 때문이었습니다. 피닉스 지역 팬들에게는 당시만 해도 뉴욕의 두 강호이자 라이벌인 양키스와 자이언츠가 한 구장에서 훈련을 하는 진풍경을 볼 수 있는 기회였습니다.
특히 양키스에는 은퇴를 앞 둔 조 디마지오와 신인 미키 맨틀이 함께 한 최초이자 마지막 시즌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공교롭게도 그 해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와 자이언츠가 격돌하는 기연도 이어집니다.
다음해 양키스는 다시 플로리다로 떠났지만 시카고 커브스가 가세했고, 1954년 볼티모어 오리올스가 인근 유마에 자리하면서 처음으로 '캑터스리그'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1954년에는 인디언스와 자이언츠가 WS에서 만나 '캑터스 리그 월드시리즈'라는 별명이 붙기도 했습니다.

(애리조나의 명물인 캑터스 선인장은 이렇게 크게 자라기도 합니다. ⓒ민기자닷컴)

캑터스리그의 경쟁력
그 후 보스턴 레드삭스가 몇 년간 캑터스리그에서 캠프를 차리기도 했고, 휴스턴 콜트45s, 오클랜드 에이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등이 가세하면서 캑터스리그는 점점 규모가 커졌습니다. 애리조나에 점점 팀을 빼앗기게 되자 플로리다로 가만있지는 않았습니다. 1980년대 후반부터 플로리다와 애리조나의 스프링 캠프 유치 경쟁이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플로리다는 새로운 구장 건설과 좋은 훈련 조건 등을 내세워 MLB 팀을 유혹했고, 캑터스리그의 원조 팀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가 1993년 플로리다로 옮기는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러자 애리조나의 주지사 로즈 모포드는 '애리조나 베이스볼 커미션'이라는 주정부 기구까지 만들며 캑터스리그 사수에 나섰습니다. 새로운 구장들이 속속 지어졌고, 기존의 팀들과 장기 계약을 체결했습니다. 그리고 파격적인 조건을 내세워 레인저스와 로열스를 영입하는 등 오히려 팀의 숫자가 점점 늘어 이제는 공히 양리그가 절반씩의 팀을 나눠 갖는 양상이 됐습니다.
캑터스리그는 사막 기후인 애리조나 지역의 따뜻하고 건조한 겨울 날씨 등 플로리다에 버금가는 훈련 여건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오히려 강수량이나 바람은 플로리다보다 적은 편입니다. 또 한 가지 결정적으로 유리한 조건은 각 팀들의 훈련장 들이 플로리다에 비해 훨씬 가까이 있다는 것입니다. 모든 팀이 피닉스와 메사, 탬피, 피오리아, 서프라이즈, 글렌데일, 굳이어, 스캇츠데일 등의 인근 도시에 캠프장을 차리고 훈련에 몰두하고 있습니다. 차로 2시간여 거리에 있던 투산에 위치했던 팀도 이제는 모두 피닉스로 넘어갔습니다. 대부분 훈련장들이 자동차로 멀어야 한 시간 이내 거리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팀이나 팬이나 이동 거리가 적기 때문에 시범 경기를 치르는데 훨씬 어려움이 덜해 대단히 좋아합니다.
그래서 요즘 봄이면 수많은 야구팬들로 피닉스 인근은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태양의 계곡(Valley of the Sun)'이라는 별명이 붙었던 이 지역은 어느새 '야구의 계곡(Valley of the Baseball)'으로 변신에 성공했습니다.
작년 봄에도 150만 명 넘는 야구팬이 캑터스리그의 시범 경기를 관전했는데 올 해도 피닉스 지역은 특수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캑터스리그의 경제 효과는 4억 달러, 우리 돈으로 약 4500억 원에 달합니다.
스프링캠프는 선수와 팀은 긴 시즌을 준비하는 과정이지만 팬에게는 그들을 가까이서 보고 만나 사인을 받고 사진도 함께 찍을 수 있는 즐거운 기회이기도 합니다. 또한 지역 사회에는 큰 경제적 효과를 가져다주는 보물이기도 합니다.
어떤 형식으로든 국내에서 스프링 캠프가 열린다면 더 이상 좋을 수가 없는데 기후나 날씨 등 여건이 만만치 않은 것이 아쉬울 뿐입니다.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337 [민기자의 코리언드림 37]MLB 10승 투수 탈보트의 야구와 삶 팀몬스터짐 2013.10.22 1529
336 [민훈기의 Players] 야구 인생의 롤러코스터, 두산 노경은 스토리! (2013.3.14) 팀몬스터짐 2013.10.24 1527
335 [MLB 리포트]91번 퇴장당한 맹장 위버를 기리며 (2013.01.21) 팀몬스터짐 2013.10.24 1519
334 [민기자 리포트]MLB 금주의 선수-보토, 산타나, 버틀러 (2011.08.03) [1] 팀몬스터짐 2013.10.01 1514
333 [민기자 리포트]'쿵푸 팬더' 산도발의 폭발 [1] 팀몬스터짐 2013.10.14 1514
332 [민기자 MLB 리포트]미국의 WBC에 임하는 태도 논란(2013.02.04) 팀몬스터짐 2013.10.24 1512
» [민기자 캠프리포트]스프링 캠프의 신천지 캑터스리그 팀몬스터짐 2013.10.22 1512
330 [민기자 컬럼]MLB 투수의 구질 파헤치기 몬짐문지기 2013.09.10 1510
329 [민기자의 코리언드림]시골 마을 최초의 빅리거 더스틴 니퍼트 몬짐문지기 2013.09.10 1502
328 [민기자 컬럼]메이저리그 홈런 타자 변천 몬짐문지기 2013.09.10 1500
327 [민기자의 코리언 리포트]이대은, 하재훈 메이저 캠프 간다. (2012.1.28) 팀몬스터짐 2013.10.22 1498
326 [민기자 리포트]MLB 2011 트레이드 총 정리 (2011.08.01) 팀몬스터짐 2013.10.01 1496
325 [민기자의 MLB 리포트]악동이던 드미트리 영의 카드놀이 (2012.05.22) 팀몬스터짐 2013.10.22 1494
324 [민기자 MLB 리포트]야구를 조금 더 빨리 진행할 수 있다면 팀몬스터짐 2013.10.24 1493
323 [민기자 MLB컬럼]월드시리즈의 또 다른 의의와 품격 팀몬스터짐 2013.11.12 1492
322 [민기자 MLB 리포트]아쉽게 사그라진 이스라엘의 WBC 꿈 (2012.09.26) 팀몬스터짐 2013.10.24 1479
321 [민기자 칼럼] '불꽃 투수' 최동원의 아리랑볼 [2] 팀몬스터짐 2013.10.07 1477
320 [민훈기 MLB 리포트]결정적인 오심과 조금은 얄팍한 상술 (2012.10.11) 팀몬스터짐 2013.10.24 1470
319 [캠프 포토]추신수 우익수 첫 날 굳이어파크 김별 2013.09.05 1462
318 [민기자의 멕시코리그 7.]MLB를 흔든 멕시코 선수들 (2012.02.23) [1] 팀몬스터짐 2013.10.22 145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