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은 단 6안타에 그쳤고, 그 중에 3개가 이 사나이의 몫이었습니다. 그리고 그 안타 3개가 모두 홈런이었습니다. 정규 시즌 마지막에 기적의 역전극을 만들었던 탬파베이 레이스의 시즌은 그렇게 한 사내에 의해 끝났습니다.
텍사스 레인저스 3루수 아드리안 벨트레가 바로 그 주인공입니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포스트 시즌 한 경기에서 홈런 3개를 친 것은 이번에 통산 7번째입니다.
1926년 '홈런의 전설' 베이브 루스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처음 이 대단한 기록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년 후 루스는 같은 팀을 상대로 다시 한 번 대기록을 세웁니다.
그 후 40여 년간 볼 수 없던 이 기록은 1971년 피츠버그의 봅 로버츠가 자이언츠를 상대로 3번째 이뤘습니다. 그리고 1977년 양키스의 레지 잭슨이 다저스를 상대로 한 경기 3홈런을 때려 '미스터 옥토버'라는 별명을 얻었습니다.
바로 다음 해인 1978년에는 캔자스시티의 조지 브레트가 양키스를 상대로 통산 5번째 PS 3홈런 경기를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2년 후인 2002년 에인절스의 애덤 케네디가 미네소타를 상대로 깜짝 기록을 만들어냈고, 2011년 10월 5일 텍사스 레인저스의 벨트레가 7번째 대기록을 작성했습니다.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처음 나온 기록이었습니다.

(ALDS 4차전에서 3개의 홈런을 친 맹활약으로 텍사스를 AL 리그챔피언십에 올려 놓은 아드리안 벨트레)

이날 세인트피터스버그 트로피카나필드에서 열린 ALDS 4차전에서 레인저스는 1회초 선두 타자 킨슬러의 홈런으로 1-0으로 앞섰고 2회초 벨트레가 좌월 126m 홈런을 터뜨려 2-0으로 점차를 벌였습니다.
2회말 레이스가 조이스의 적시타로 1점차로 따라 붙자 벨트레는 4회초 우측 담장을 넘기는 115m 밀어치는 홈런으로 레인저스는 다시 2점차로 달아났습니다. 생애 처음 한 경기 3홈런을 허용한 레이스 선발 제레미 헬릭슨의 마지막 이닝이 됐습니다.

그러나 레이스는 특유의 끈질김을 발휘했습니다. 4회말 코치맨의 적시타로 션 로드리게스가 이날 두 번째 득점에 성공, 다시 3-2. 그리고 매든 감독은 1차전 승리 투수인 맷 무어를 5회부터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6타자 연속 범타로 레인저스 타선을 압도하던 무어가 7회초 만난 선두 타자는 바로 벨트레. 1차전에서 3타수 무안타로 벨트레를 묶었던 무어는 초구 150km 하이 패스트볼을 던졌습니다.
'아, 좀 높다!' 싶은 순간 이미 벨트레의 물오른 방망이는 먹이를 채는 매의 날카로운 발톱처럼 공을 향해 매섭게 날아들었습니다. 115m를 날아 좌중간 관중석에 떨어진 이날 자신의 세 번째 홈런.

벨트레는 이날 세 번의 스윙으로 공을 356m를 날려 보냈고 매번 담장을 넘기면서 진기록을 만들었습니다. 8회초 다시 한 번 벨트레가 타석에 서자 레이스 홈 관중까지 술렁일 정도였지만 우측 평범한 뜬공을 잡히면서 PS 한 경기 4홈런의 대기록을 만들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ALDS를 9타수 무안타로 시작했고 3차전까지 11타수 1안타에 그쳤던 벨트레의 원맨쇼로 레인저스는 2년 연속 레이스를 꺾고 ALCS에 진출했습니다. 9회말 반격으로 레이스가 1점차까지 추격했으니 벨트레의 홈런 3방은 하나 하나가 대단히 소중한 가치였습니다.

90년대 말 다저스 취재 시절 봤던 어린 벨트레는 말이 없고 수줍음마저 타던 비교적 조용한 성격의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항상 눈이 살아있었고, 티내지 않는 자신감이 느껴지던 그런 신인이었습니다. 기자와 생일이 똑같다면서 농담하고 웃던 생각이 납니다.
1998시즌 중반에 빅리그에 데뷔했을 때 벨트레는 만 19세, 당시 메이저리그에서 최연소 선수였습니다. 영어도 아직 서툴렀고 대부분 활달하고 조금은 소란스러울 정도인 중남미계 선수들의 스테레오 타입은 전혀 아니었습니다. 어려서 그런 점도 있었겠지만 그 나이에도 자신의 중심을 확실히 가지고 있던 선수로 기억합니다.

도미니칸 공화국에서 태어난 벨트레는 1994년 15세에 다저스와 계약했습니다.
벨트레는 어려서 아주 체구가 작았습니다. 그러나 뛰어난 재능은 숨길 수 없었습니다. 다저스의 유명한 스카우트 랄프 아빌라는 15세의 나이에 키는 삐죽 컸지만 체중이 50kg 정도이던 깡마른 이 소년을 처음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배트 스피드가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로 빨랐고, 공을 송구하는 어깨 역시 또래 아이들과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강했기 때문입니다.
이 아이를 놓치면 안 된다는 아빌라의 주장으로 다저스는 2만3,000 달러를 주고 벨트레와 계약했습니다. 그리고 이 때문에 다저스의 도미니칸 캠프는 한동안 문을 닫아야 했습니다. 16세 이하 선수와는 계약할 수 없다는 MLB 규정을 어겨 징계를 받은 것입니다.

징계를 감수할 정도로 다저스가 탐냈던 벨트레는 1996년에야 미국에서 마이너리그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2년여 만인 1998년 더블A에서 뛰던 중에 빅리그 호출을 받았습니다.
만 19세의 벨트레는 6월 24일 인터리그 경기에 처음 3루수로 출전, 에인절스의 척 핀리를 상대로 첫 타석에서 투아웃에 적시 2루타를 치면서 데뷔전을 장식했습니다.
나이는 어렸지만 뛰어난 잠재력을 과시하며 벨트레는 공수에서 꾸준히 발전했습니다. 파워도 갈수록 강해졌고, 경험이 쌓이면서 수비 실책도 계속 줄었습니다. 2년차부터 곧바로 주전 3루수로 자리를 굳혔고, 골드글러브급 3루수에 중심 타자로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리고 FA를 앞둔 2004년 벨트레는 3할3푼4리에 48홈런, 121타점으로 폭발했습니다. 겨울 시장의 뜨거운 상품으로 떠올랐고 시애틀 매리너스가 5년 6400만 달러 계약으로 벨트레를 데려갔습니다. 그 시즌 전까지 벨트레는 3할을 친 시즌이 없었고 최다 홈런은 23개, 최다 타점은 85타점이었습니다. 과연 그 정도의 투자 가치가 있으냐를 놓고 시애틀 언론과 팬은 논쟁을 벌였습니다.

시애틀에서의 선수 생활을 쉽지는 않았습니다. 전형적으로 잡아 다니는 오른손 타자에게 아주 힘겨운 시애틀 세이프코필드에서 벨트레는 2004년 이전의 모습을 보이는 정도에 그치며 '먹튀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내용을 찬찬히 살펴보면 나쁘지 않았습니다. 벨트레는 첫 4년간 평균 24홈런에 88타점을 기록했습니다. 그리고 2번의 골드글러브를 수상할 정도로 3루간도 확실히 지켰습니다. 만약 시애틀이 같은 기간 성적이 좋았더라면 벨트레 먹튀 논란은 없었을 겁니다. 늘 부진한 성적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했고 과묵하고 많은 연봉을 받는 벨트레가 늘 지탄의 대상이 됐습니다.
계약 마지막 해인2009년 부상 등으로 111경기만 뛴 벨트레는 2할6푼5리 8홈런 44타점의 저조한 성적을 끝으로 시애틀을 떠났습니다.

FA 직전 시즌의 저조한 성적에도 불구하고 보스턴 레드삭스가 그에게 900만 달러 연봉을 안긴 것을 보면 전문가의 눈에는 벨트레가 분명히 경쟁력이 있는 선수였습니다.
2년째 500만 달러 선수 옵션+ 100만 달러 바이아웃 조항도 포함된 계약으로 레드삭스로 간 벨트레는 펄펄 날았습니다. 3할2푼1리에 28홈런 102타점을 기록한 벨트레는 옵션을 박차고 FA가 됐고, 레인저스와 5년 8000만 달러 계약으로 다시 한 번 대박을 터뜨렸습니다.

자리를 잃게 된 레인저스 간판스타 마이클 영의 불만이 폭발하며 한때 불협화음이 일기도 했지만 결과적으로 벨트레의 영입은 레인저스의 성공적인 판단이었습니다.
벨트레는 2년 연속 올스타에 뽑히는 활약을 펼쳤고 9월에는 레드삭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2,000안타를 치기도 했습니다. 8월부터 부상으로 한 달여를 결장했지만 여전히 2할9푼6리에 32홈런(AL 5위), 105타점(AL 6위)으로 활약했습니다.
특히 홈구장에서 3할2푼6리에 23홈런으로 팬의 사랑을 듬뿍 받았고, 햄스트링 부상에서 돌아온 9월에는 3할7푼4리에 12홈런으로 레인저스가 에인절스를 제치고 AL 서부조 우승을 차지하는데 큰 공을 세웠습니다.

기적의 9월을 선물한 탬파베이가 탈락한 것은 아쉽지만 레인저스의 전력은 그만큼 탄탄합니다. 또한 레이스는 거의 한 달 내내 매 경기가 탈락이나 아니냐의 중압감 속에 치른 혈전이었던 만큼 많이 지친 것도 당연합니다.
이제 벨트레의 3홈런 경기로 레이스는 짐을 꾸렸고 레인저스는 양키스-타이거스의 승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벨트레의 방망이가 뜨겁게 달아오른 가운데 매 경기 다른 영웅을 탄생시키고 있는 레인저스의 기세가 매섭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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