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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스포츠는 남성으로부터 시작돼 여성으로 이어지는 것이 일반적일 정도로 스포츠에서 남성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다. 어떤 종목이든, 세계 최강을 가리는 대결이 펼쳐진다고 했을 때 남성 부문에 쏟아지는 관심이 상대적으로 훨씬 높은 편이다. 물론 피겨스케이팅 같은 일부 종목은 제외하고 말이다.

그러나 격투기가 그렇게 될 줄은 몰랐다. 더 냉정히 말하자면, 격투기에 여성 부문이 생기는 것 자체를 생각하지 못했을 시절도 있었다. 그만큼 '남성의 전유물'로 분리되던 종목이 격투기였다. 특히 그냥 격투기도 아닌 싸움에 가장 가까운 스포츠인 '종합격투기'와 여성은 정말이지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다.

허나 결과적으로 격투기도 결코 예외가 아니었다. 경기가 조금씩 열리더니 소규모 여성 전용 대회가 등장했고, 이후 메이저 여성 종합격투기 대회사도 출범했다. 급기야 세계 최대 종합격투기 무대인 UFC에 여성부가 도입되며 본격적으로 시장이 형성됐다.

UFC 여성부를 탄생시킨 역사적 매치, 로우지 vs. 테이트

UFC 옥타곤에서 여성들이 싸우는 것을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 UFC 측 역시 처음엔 부정적이었다. 데이나 화이트 대표는 "무슨 일이 있어도 옥타곤에서 여성경기가 열리는 일은 없을 것"이라는 확고한 입장을 보였다. 선수층이 얇기도 하지만 대표 본인부터 여성의 싸움에 반감이 있을 정도로 사회적인 정서와 맞지 않았다. 그러나 한 때 라이벌 단체였던 스트라이크포스의 인수가 확정된 뒤 스트라이포스에서 여성 경기가 흥행하는 것을 보며 마음이 바뀌었다.

그때 화제가 됐던 인물이 바로 현 UFC 여성부 밴텀급 챔피언 론다 로우지다. 당시 스트라이크포스 여성부 밴텀급 타이틀 결정전으로 치러진 론다 로우지 대 미샤 테이트의 대결은 종합격투기의 색다른 재미를 선사하며 여성격투기의 무궁한 가능성을 보여준 경기로, 훗날 매우 역사적인 순간으로 남을 전망이다. 그 경기가 있었기에 지금의 UFC 여성부가 있다고 해도 크게 틀리지 않을 정도다.

'그래봤자 여자일 뿐이지'

많은 남성들은 신체 능력을 요하는 스포츠에서 활동하는 여성에 대한 선입견이 있다. 아무리 신체능력이 좋고 기술이 뛰어나도 여성이 가진 한계가 명확하다고 생각한다. 로우지와 테이트의 대결도 '얼마나 하겠어?' 정도로 바라봤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녀들의 대결은 수많은 남성들에게 제대로 카운터펀치를 날린 격이었다.

매우 화끈하면서도 기술적이었고 1라운드를 넘기지 않았던 승부. 재미있을 수밖에 없는 경기였다. 초반 미샤 테이트의 러시부터 로우지의 유도식 테이크다운, 치열한 그라운드 공방, 로우지의 암바와 테이트의 그라운드 반격, 로우지의 화려한 메치기와 암바까지 쉴 새 없이 전개된 그녀들의 투쟁에 많은 이들이 열광했다.

특히 테이트가 로우지의 암바에 완벽히 걸려 팔이 꺾였음에도 버티는 장면은 남성들에겐 적지 않은 충격으로 다가왔다. 남성 경기에서도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많은 팬들은 '웬만한 남성 경기 저리 가라네' 라는 생각을 하며 입을 '쩍' 벌렸다. 아울러 두 선수 모두 섹시하다는 것은 플러스 알파의 재미 요소였다. 분명 여성 격투기도 충분한 매력이 있었다.

UFC의 새로운 흥행 돌파구

스트라이크포스에서의 활약으로 주최사로부터 UFC 초대 타이틀을 받은 로우지는 시작부터 UFC 흥행의 최전선에 섰다. 올림픽 유도 동메달리스트 출신으로 무결점 격투 커리어를 이어가고 있고, 뛰어난 실력에 섹시함까지 갖춰 세간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또 남성 선수를 능가하는 화끈하고 시원한 언변도 놀라울 정도였다.

로우지가 메인이벤트로 나선 옥타곤 데뷔전, 2013년 2월 UFC 157은 45만건이라는 준수한 PPV 판매를 기록했고, 그해 말 UFC 168에선 테이트와의 2차전으로 100만 이상의 PPV가 팔리는 데에 크게 일조했다(당시 또다른 메인이벤트는 실바 vs. 와이드먼 2). 이후 로우지가 출전하는 대회에는 평균 약 40만의 판매율을 보였다.

이 결과가 말해주는 것은 브록 레스너 정도의 파급력은 아니었지만, 인지도가 높은 대부분의 UFC 선수보다 흥행력이 있다는 것이다. 타이틀매치가 열리는 UFC 정규대회의 경우 40만건 미만의 PPV 판매율을 나타내는 경우가 생각보다 많다. UFC에서의 커리어 없이 이정도 흥행력을 보인 것은 꽤 놀라운 결과라 할 수 있다.

UFC는 로우지의 등장으로 분위기를 탄 여성부에 꾸준히 투자하며 활성화시켜나갔다. 강하다고 알려진 많은 선수들을 꾸준히 영입하며 선수층을 늘렸다. 처음엔 몇 명 되지 않던 밴텀급도 이젠 약 30명에 달한다.

그리고 지난해 여성부 스트로급을 신설했는데 'TUF 20'에 초대 타이틀을 거는 전략으로 빠르게 체급의 기반을 다질 수 있었다. TUF 20에 출전한 스트로급 선수들은 단순한 기대주가 아닌 세계적인 강자들이었고, 토너먼트가 끝나자 챔피언부터 해서 모든 서열이 정리됐다. 국내 최강의 여성 파이터 함서희는 쥬얼스 챔피언으로 UFC와 계약해 TUF 피날레에서 스코틀랜드의 스타 조앤 칼더우드를 상대했다.

스트로급엔 현재 약 20명이 계약돼있는 상태. 앞으로 UFC에 여성부 체급이 추가될 지는 아직 알 수 없으나, 대부분의 여성 선수들이 UFC가 채택하고 있는 두 체급에 해당하고, 단체가 선수를 꾸준히 영입하는 중이기에 UFC 전체에서 여성이 차지하는 비중은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쥬얼스·인빅타FC·UFC…여성격투 단체의 탄탄한 결속력

현재 세계에서의 여성 격투무대는 전용 단체인 쥬얼스와 인빅타FC, 두 체급을 도입한 UFC가 사실상의 전부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성 부문을 도입한 단체가 제법 생겨났지만 계약된 선수는 소수고 경기도 간헐적이다. 남성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한 인프라를 방증하는 부분이며, 종목의 특성상 앞으로도 이런 비율이 크게 바뀌진 않을 전망이다.

인상적인 점은 현재 세 곳의 단체가 전부 좋은 관계를 맺고 있다는 것이다. 일본에 거점을 둔 쥬얼스는 선수층이 두터운 일본 경량급 여성 선수들의 주무대로, 선수의 메이저 대회 진출에 개방적이다. 단체의 강자나 챔피언을 인빅타FC에 꾸준히 진출시키고 있고, 지난해엔 아톰급 챔피언 함서희를 UFC에 양보했다. 쥬얼스는 인빅타FC와 협력 관계에 있다.

또 인빅타FC는 UFC와 공조관계를 구축, 인빅타FC 소속 선수들이 UFC로 넘어갈 수 있는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두 단체의 관계는 실제 그 이상이다. UFC의 모회사 주파의 로렌조 퍼티타 회장이 인빅타FC의 운영에 상당부분 관여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인빅타FC를 부분 접목시킨 UFC 행사가 눈에 띄며 인빅타FC의 경기 영상이 UFC 파이트 패스에 등록되기도 했다.

정황을 고려하면 인빅타FC는 독자적으로 운영되면서 여성 격투기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UFC 여성부의 발전을 위해 밑바탕이 되는 든든한 리그가 될 전망이다. 또 여성 파이터 세기의 대결이라 할 수 있는 '사이보그 vs. 로우지'의 실현 역시 시간문제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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