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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서희(27·팀매드)의 UFC 진출은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계 최고의 실력을 갖춘 것은 이미 충분히 증명했으나 UFC엔 그녀의 체급이 없다. 소속팀인 팀매드 측도 얼마 전까지만 해도 아직 실력을 더 보완해야 한다는 입장이었으며, 여성 격투단체인 INVICTA FC 진출을 고려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갑자기 UFC 진출을 타진한 것은 나이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약 10년 동안 선수로 활동한 함서희도 어느덧 서른을 바라보고 있다. 남자일 경우 아직 한창일 시기지만 여자 입장은 다르다. 결혼을 준비해야 하고, 결혼 후엔 활동이 어려워진다. 이에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에 승부수를 던졌다. 앞으로 5년간 활동하며 끝을 보겠다는 각오다.

UFC에 계약돼있는(계약됐었던) 국내 선수는 총 8명이다. 이들 모두 열악한 환경을 이겨내고 세계 최고의 무대에 입성했다. 하지만 함서희의 UFC 진출은 또 다르다. 그녀의 지난 10년은 함께 훈련할 여성 파트너가 전혀 없고, 경기 기회조차 잡기 어려울 정도로 힘든 여건의 연속이었다. 막막한 미래에 많은 남성들이 링을 떠났는데, 그들보다 먼저 포기를 했어야만 하는 선수가 있었다면 그 인물이 바로 함서희일 것이다. 이런 내용의 질문을 던지자 함서희는 감정이 복받쳐 한동안 흐느끼며 말을 하지 못했다.

인터뷰를 하는 내내 비장한 각오가 느껴졌다. 이전의 함서희에게 느끼지 못한 부분이었다. "지난 10년간의 함서희는 죽었다. 함서희는 새롭게 태어난다"고 했다. 선수로서 세계 정상에 서고, 그동안 자신을 도운 이들에게 보답하기 위한 함서희의 '파이터 인생 제 2막'이 시작됐다.

이하는 함서희 인터뷰 전문.

- 그동안 고생 많았다. 정말 축하한다.
▲ 몸 둘 바를 모르겠다. 아직 실감이 잘 나지 않는다. 기분은 좋은데 축하를 많이 받는 게 부담스럽고 민망하기만 하다.

- 정말 반응이 뜨겁더라. 데뷔 이래 이렇게 많은 관심은 처음일 것 같다.
▲ 정말 그렇다. 지난 10년 동안 누구의 축하를 받거나 관심을 받고 싶어 운동한 적은 한 번도 없다. 물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은 있었지만 이 분위기가 적응이 안 된다. 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뿐이다. 솔직히 이런 관심도 부담이 된다.

- UFC 계약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 어떻게 진행된 것인가?
▲ 몇 개월 전부터 계속 접촉하고 있었으나 구체적인 과정은 나도 잘 모른다. 난 감독님께 항상 전해만 들었다. 계약서는 어제 작성했다. 쥬얼스 타이틀 방어전이 끝난 다음날 새벽 계약서가 도착했고, 낮에 작성해서 보냈다.

- 구두로 계약이 확정된 상태에서 방어전을 치르는 경우는 의외다. 어떤 마음으로 이번 경기에 임했나?
▲ 내가 알기로는 이번 경기에 계약이 달려있었다. 지면 계약이 안 되는 것으로 들었다(편집자 주: 확인 결과 사전에 경기 결과에 따른 계약여부는 논의된 바 없다. 다만 에이전트가 복잡한 상황을 만드는 것을 원치 않아 함서희에게 패하면 끝이라고 전했다). 중요한 경기였지만 오히려 너무 긴장이 되지 않아 문제였다. 이미 두 번이나 이긴 터라 자신이 있었고, 특히 이시오카는 결혼 후 한동안 육아에 전념했기에 방심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1라운드를 말아먹었다. 말아먹다가 체할 뻔했다(웃음). 전혀 이긴 기분이 들지 않았다.

- 최근에만 해도 양성훈 감독은, 아직은 실력을 더 쌓아야 한다며 단기간 내의 큰 무대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이었다. 이번 계약 소식에 놀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 나 역시 항상 그 생각을 했다. 하지만 아시아권에서 오래 활동하며 일본의 웬만한 선수와는 다 붙어봤다. 인빅타FC를 가면 좋지만 애써 그곳을 거치지 않아도 더 큰 무대에 갈 수 있는 상황이 만들어져 과감히 결정했다. 무엇보다 나이란 부분이 가장 컸다. 여자 나이 28세면 결코 적지 않다. 더 이상 물러설 수 없다는 생각이 들더라. 남은 선수시절을 멋지게 보낸 뒤 앞으로는 여자로 살아가야 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해 승부수를 던졌다. 33세까지만 뛸 계획이다.

- 인빅타FC에서 이전부터 계약을 원했던 것으로 안다. 여성 단체로 본인의 체급이 있다는 점이 장점일 것 같다. 그러나 체급을 올리는 것을 감수하고 UFC를 택했는데.
▲ 빠른 계약만 보고 체급을 올린 것은 아니다. 그냥 이젠 물러설 곳이 없고 끝을 봐야한다는 생각에 크게 맘을 먹은 것일 뿐이다. 무리란 것은 알지만 마지막을 멋지게 장식하고 싶은 마음이다. 인빅타는 맘에서 지웠다(웃음).

- 아무래도 체급의 불리함을 걱정하지 않을 수 없다. 스트로급(-52.5kg)의 경우 플라이급에서 내려오는 선수가 있고, 대부분 거의 60kg에서 감량을 할 것으로 예상된다. 하지만 본인의 평소 체중은 52kg에 불과하다.
▲ 걱정이 안 된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미리 겁먹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런 것에 연연하면 내가 작아진다. 불안해하다가 위축되기가 싫다. 자신 있게, 기분 좋게 시작하려고 그런 것은 생각하지 않은 채 내가 할 것만 열심히 하려고 한다.

- UFC 진출이 본인의 인생에 어떤 의미가 있을까.
▲ 10년간 운동하며 노력한 것도 있지만 감독님을 비롯한 많은 분들의 도움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모든 선수들의 목표인 꿈의 무대가 아닌가. 해냈다는 점에 스스로 대견하고 뿌듯하다. 지난 10년간의 함서희는 죽었다. 함서희는 새롭게 태어난다.

- 중간에 우여곡절이 있었다. 잠시 외도를 했고,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은 상황에서 경기를 치른 적도 좀 되는 것으로 안다.
▲ 부산에 온 뒤로는 운동에 집중했으나 서울에 있을 때는 제대로 운동을 못했던 게 사실이다. 일과 운동을 병행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생계는 이어가야 하고 링에는 오르고 싶고 하니 방법이 없더라. 정상이 아닌 것을 알면서 욕심을 냈다. 잠시 다른 길로 빠졌을 땐 활동하던 단체가 사라져 막막했고 팔 부상까지 입어 어쩔 수 없었다. 돌아와서 이러고 있는 것을 보면 잘 했다 싶다. 역시 격투기를 떠나긴 어려운 것 같다.

- 그런 과정만 아니었으면 꼭 UFC가 아니더라도 큰 무대에 더 빨리 갈 수 있었을 것 같다.
▲ 사실 10년간 열심히 운동만 했다고 떳떳하게 말하긴 어렵다. 지금 UFC에 진출한 것만으로도 다행이라고 본다.

- 개인적으로는 당신의 UFC 진출이 무척 감동적이다. 종합격투기의 경우 몇 년 전만 해도 매우 암울했고 많이 발전했다고 하나 여전히 메인스트림에 있는 종목은 아니다. 많은 선수들이 생계와 싸워야 할 정도로 환경이 여전히 열악하며 전에는 더 심했다. 특히 여성격투기는 말할 것도 없다. 출전 기회 한 번 갖기 어려울 정도였다. 미래가 보이지 않아 포기한 이들도 많았다. 하지만 본인은 그 어려운 과정을 꿋꿋하게 버텨냈고, 결국 여성 파이터로서 UFC에 진출하는 작은 문을 통과했다. 남자 선수가 UFC에 간 것보다 대단하게 느껴진다. 정말 대견스럽다.
▲ (한동안 말을 하지 못하고 흐느낌) 기자님이 그런 말을 하시니 갑자기(눈물이 난다). 가만히 있을 땐 모르겠는데 옆에 있는 분들이 10년 세월을 어떻게 보냈는지 알고 콕콕 짚어주시니 고생한 과거가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간다. 정말 활성화되지 않은 종목인데다 남자들도 살아남기 어려운 바닥이었다. 포기하는 여자들도 많이 봤다. 난 지난 10년간 주위 분들에게 신세를 너무 많이 졌다. 항상 받기만 했는데 보답할 길이 열린 것 같아 기쁘다.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뿐이다. 서희야 포기하지 않길 잘 했어.

- UFC에서도 이전처럼 화끈한 경기를 볼 수 있을까.
▲ 내 스타일은 전혀,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작아지지 않겠다. 오히려 더 미친 듯이 싸울 것이다. 정말이다. 크게 맘먹고 있다. 체격이 불리하고 나이가 적지 않은 것은 운동량으로 극복할 것이다. 남들보다 두 세배는 열심히 할 자신이 있다.

- 로드FC 데뷔전에서 보여준 반더레이 실바의 '샌드스톰' 퍼포먼스가 꽤 인상적이었다. UFC에서도 봤으면 좋겠다(웃음).
▲ 아직 그런 부분까지 생각해보지 않았다. 운동할 생각만 앞선다. 솔직히 UFC 데뷔를 계기로 별명을 바꾸고 싶다. 함실(함더레이 실바)은 오래 써먹었으니 이제 끝내고 미국에서 통할 새로운 별명이 생겼으면 한다. 그리고 난 이전의 함서희가 아니다.

- 결혼은 언제 할 생각인가?
▲ 요즘 들어 왜 만나는 기자님들마다 그런 질문을 하는지 모르겠다. 예전엔 한 번도 안 물어보더니(웃음). 점쟁이 아줌마가 33~34세에 결혼한다고 했다. 그걸 고려해 33세까지 운동할 계획을 세운 것은 아니다. 결혼 후에는 선수생활을 하기 싫어질 것 같다. 가정에 충실해야 한다. 나에게 결혼은 은퇴를 의미한다.

- 데뷔전이 올해 안에 치러질 가능성이 높다고 들었다.
▲ 나도 곧 하게 될 것이라고 들었다. 빠르긴 하지만 문제없다. 기회는 왔을 때 잡아야 한다.

- UFC에서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나.
▲ 당연히 챔피언이 되는 것이다. 사실 지금은 UFC에 갔다는 것만으로 기쁘다. 뒤처지지 않고 최선을 다하는, 항상 열심히 하는 파이터가 될 것이다.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 그게 전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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