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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주일에 한 번씩 쓰는 일기인데 매주 희비가 엇갈립니다. 한 주는 야구가 왜 이렇게 어렵냐고 하소연을 했더니만 그 다음 주에는 3할 7푼의 타율과 아메리칸리그 출루율 1위를 달리는 성적에 한껏 고무된 내용들이 가득했습니다. 그리고 이번 주, 다시 ‘고해 모드’로 들어가야겠네요^^.

오늘은 목에 이상을 느낀 프린스 필더의 결장으로 2년 여 만에 3번 타순에 섰습니다. 필더는 그 전부터 통증을 느꼈지만, 어려운 팀 사정으로 부상을 알리지 못하고 경기 출전을 강행하다가 결국엔 탈이 나고 만 것입니다.

경기 전 선수들에게 전달된 라인업에는 워싱턴 감독님의 고민의 흔적들이 역력하더군요. 오죽했으면 절 3번에 세우셨을까 싶었습니다. 최근 방망이가 어디로 ‘마실’을 나갔는지, 영 힘을 못 쓰는 상황인데, 3번에 제 이름을 올리신 부분은 안타깝기 까지 했습니다.

어렵게 안타 하나가 터지긴 했지만 오랜 갈증을 채워주기엔 턱 없이 부족했습니다. 더욱이 토론토에 2연패, 아니 휴스턴전까지 연결시키면 4연패를 당한 터라 팀 전체가 침체된 분위기를 이어가는 것이 걱정되기도 합니다.

물론 답답합니다. 운동을 안 하는 것도 아니고, 따로 특타도 자청하고, 일찍 출근해서 웨이트트레이닝과 마사지를 받고 발목 치료를 하며 몸 상태를 끌어올리려고 노력도 하는데, 안 될 때는 안 되는 것이더라고요.

3할7푼의 타율이 순식간에 내려갔습니다. 사실 제가 야구를 하면서 3할7푼을 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숫자가 저한테 선물처럼 찾아왔고, 하루 이틀 정도는 그 숫자의 매력에 기분 좋음을 느꼈습니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는 내리막길을 내달리기 시작하더니 마치 고속열차를 탄 것 마냥 정신없이 뻗어 내렸습니다. 3할4푼, 3할3푼…, 그리고 3할3리. 그 숫자들을 떠올리면 절로 헛웃음이 나옵니다. 올라가는 게 쉽지만은 않은 타율이 내려올 때는 브레이크 고장 난 액셀러레이터 마냥 수직하강을 하니 웃음이 나올 수밖에요. 이게 인생이구나 싶었습니다. 어이도 없고, 허탈하기도 했던 것이죠.

그래도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이렇게 엎치락뒤치락하면서 시즌은 지나가게 되고, 시즌 후 개인 성적표를 받아봤을 때는 분명히 3할대의 타율을 유지하고 있을 테니까요. 지금까지 한두 번 경험한 것도 아니고, 이렇게 아픔도 겪고 미친 듯이 웃기도 하고 행복에 겨워하기도 하면서 가는 거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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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저 뿐만 아니라 우리 팀까지 힘든 시기를 겪고 있다는 것이죠. 안 좋은 모든 것들이 한꺼번에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면서 팀 전체가 ‘멘붕’에 빠진 상태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부상선수들은 너무 많아서 일일이 열거하기도 힘들고, 다르빗슈 유 외에는 마운드를 든든히 지켜줄 선발진은 물론 불펜들도 영 힘을 내지 못하고 있고, 그렇다고 해서 타선에서 그 모든 것들을 상쇄할 만한 플레이를 해 보이는 것도 아니고…. 부상에서 회복된 선수가 돌아와 반갑다고 인사를 나누면 바로 다음날 다른 선수가 부상자명단에 올라가는 지금과 같은 상황은 악몽, 그 자체나 다름없습니다.

어제 토론토와의 1차전. 0-2로 패한 후 많은 생각이 교차됐습니다. 무엇보다 이날 선발로 나선 다르빗슈한테 미안했습니다. 그가 다르빗슈라서가 아닌 우리 팀의 에이스를 지켜주지 못했다는 자괴감 때문이었습니다. 에이스가 등판했을 때는 모든 선수들이 더욱 이기려고 하는 본능이 발동됩니다. 에이스가 무너지면 한 게임 이상의 손실을 입기 때문에 타석에선 더욱 악착같이 살아나가려고 하는데 어제는 그조차 효력을 보지 못했습니다. 7회까지 1점도 주지 않는 호투를 펼치고도 패전투수가 됐으니 그 속이 오죽했겠습니까.

조만간 우리 팀의 주장인 벨트레 주도하에 선수들 미팅을 갖고 현재 전력에 포함된 선수들만이라도 이런 환경에 휘둘리지 말고 제 역할을 다하자고 얘기를 나눌 계획입니다. 팀이 어려움에 처할 때는 누군가 영웅이 되고자 하는 마음에 평소 안 하던 스윙을 하고, 출루와 득점 욕심에 방망이를 크게 휘두르는 모습도 종종 연출이 됩니다. 어쩌면 저도 그런 선수 중 한 명이었을지 모릅니다.

심판 판정과 관련해 조금 예민하게 반응하면서 제가 갖고 있던 스트라이크 존이 흔들렸습니다. 그러다보니 이전과 다른 공격 스타일을 보여줬고, 삼진이 속출했고, 팀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심판 고유의 권한에 휘둘리면서 제가 갖고 있던 리듬까지 잃어버린 모양새인 거죠.

이제 다시 털고 일어나야죠. 설령 이 시기가 좀 지나야 한다고 해도 전 실망하지 않을 겁니다. 지금은 어려운 길을 걷고 있어도 텍사스 레인저스는 좋은 팀이고, 곧 괜찮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제 자신에 대한 믿음도 있고요.

*이 일기는 추신수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161627297_082501006_DT8V1161.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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