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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이 지난 신시내티 레즈전에서 올시즌 처음으로 커터를 선보였다. 1회와 5회 조이 보토에게 던진 공들 중 세 개가 커터였다고 말한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지난 신시내티 레즈전에선 이전에 쉽게 보지 못했던 구종이 3개 나왔습니다. 혹시 눈치 채셨나요? 조이 보토에게 1회와 5회에 던진 3개의 공이 커터였다는 사실을요. 어깨 부상으로 부상자명단에 오른 동안 릭 허니컷 투수코치로부터 커터의 그립 잡는 법을 배우면서 조금씩 연습을 했었고, 그립만 달리 잡고 패스트볼처럼 던지면 되는 터라 앞으로 종종 써먹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이 조이 보토를 상대했을 때 던지게 된 것입니다.

어디에선 제가 던진 커터를 놓고 ‘신무기’ ‘새로운 구종’이라고 얘길하던데, 제 입장에선 그 커터가 신무기는 아닙니다. 슬라이더보다는 덜 꺾이지만, 그것보다 빠른 구종일 뿐인 것이죠. 즉 슬라이더가 80마일대 초반의 스피드를 나타낸다면, 커터는 87, 88마일 이상의 공이 슬라이더처럼 꺾여 들어갑니다. 타자 입장에선 슬라이더라고 생각했다가 자신의 앞에서 훨씬 빠른 스피드로 꺾이는 공에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는 것이고요.

조이 보토한테만 커터를 던진 이유는 앞선 타석에서 제가 던질 수 있는 구종이 노출됐고, 커터를 던졌을 때 조이 보토의 반응을 확인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습니다. 솔직히 투수 입장에선 얻어맞지 않으려면 뭔들 못하겠습니까. 체인지업에 대한 상대의 적극적인 공략으로 인해 더 이상 체인지업을 위주로 한 로케이션을 운영할 수 없는 터라 커브, 슬라이더, 패스트볼 외에 커터를 얹으면 상대 타자들로선 조금 혼란스러울 수도 있을 거라 예상했습니다.

앞으로 오른손 타자들을 상대할 때는 종종 커터를 던져볼 계획입니다. 커터는 투구 수를 줄이는데 효과적인 방법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야구하다보면 승리한 경기에서는 실수도 좋게 포장되기 마련이지만, 졌을 때는 잘한 일도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하죠. 그 날 경기 전부터 장대비가 내렸고, 라인업이 바뀌었으며, 경기 초반 맷 캠프가 퇴장 당하는 상황들이 제 경기력에 어느 정도의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얘기는 순전 ‘상상’ 속 뒷담화들입니다. 전 지금도 그런 일련의 상황들이 공을 던지는데 1%의 영향도 미쳤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느 경기에서나 있을 수 있는 일들이고, 선발투수라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단,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에 대해선 약간의 아쉬움은 있습니다. 그 아쉬움이란 다른 것이 아니라 제가 결정구를 던졌을 때입니다. 안타나 볼넷을 만들지 않으려고 유리한 볼 카운트에서 아껴뒀던 체인지업을 던졌는데, 그게 심판의 애매한 스트라이크 존에 의해 스트라이크가 아닌 볼로 선언되면 살짝 당황스럽더라고요. 그때를 제외하곤 심판의 판정에 대해선 무조건 받아들이자가 제 신념입니다. 그날 주심은 저한테도, 또 상대 선발이었던 쿠에토 선수한테도 똑같은 존을 사용했고, 전 6이닝 5탈삼진 6피안타(1홈런) 4실점을 한 반면, 쿠에토는 12개의 삼진을 잡아내며 우리 팀에 한 점도 허용하지 않았습니다.

원래 패한 사람은 말을 하지 않아야 합니다. 자신의 실력 부족으로 패전투수가 된 것 같고, 경기 전후 분위기, 심판의 스트라이크 존 등을 패한 이유들로 거론한다는 건 정말 못난 짓입니다.  

올해 유난히 체인지업에서 피안타율이 높아지고 있는데, 그걸 의식해서 반대로 가려다가 이번엔 제 꾀에 제가 당하고 말았습니다. 투수라면 누구나 자신의 주무기가 있는 법이고, 상대편에선 그 주무기를 공략하기 위해 철저히 준비해서 나옵니다. 더 좋은 투수가 되기 위해선 이런 어려운 상황이나 여건 속에서 한 단계 도약을 꿈꾸며 또 다른 로케이션으로 상대 타자들을 공략해야 하는 겁니다.

신시내티 레즈란 팀은 지난 시즌 신수 형이 속한 팀으로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만났던 팀이라 저로선 그 팀이 낯설지가 않습니다. 지난 홈에서도 그렇고, 이번 원정 때도 마찬가지였죠. 단, 신수 형이 없다 보니 운동장 나가서 인사할 사람도 없고, 경기 후 한국식당에서 삼겹살 먹으며 얘기를 주고받을 상대가 없어 조금 허전했습니다. 신수 형이 없는 상태에서 홈과 원정에서 경기를 치러봤기 때문에 다음에 만나면 다른 메이저리그 팀들을 상대하는 것과 똑같은 기분이 들 것 같습니다. 아, 올시즌에는 더 이상 맞붙을 일이 없네요.

오는 17일(한국시간), 콜로라도 로키스와 올시즌 세 번째 맞대결을 펼칩니다. 저로선 쿠어스 필드가 아니라 다행입니다^^. 이번에도 전, 무조건 ‘최선을 다해 던지겠다’입니다. 한 타임 쉬었으니까, 또 열심히 달려야 되겠죠?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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