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리조나전에서 7이닝 무실점으로 완벽투를 선보이며 시즌 2승을 챙긴 류현진. 지난 번 2이닝 8실점의 악몽이 그한테는 소중한 경험으로 자리했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을 마치고 야구장에서 뒤늦은 식사를 한 후 지금 방금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피곤함이 물밀듯했는데 막상 잠자리에 들려고 하니까 오늘 경기가 파노라마처럼 스쳐지나가네요. 

오늘 경기는 저만 잘한 게 아니라 타석에서 시원하게 점수를 올려주는 바람에 아주 편한 마음으로 이닝을 소화할 수 있었습니다. 1회부터 터진 곤잘레스의 투런포는 저에게 자신감을 심어준 희망의 메시지나 다름없었어요. 제 ‘형님’인 유리베의 호수비도 실점 위기를 잘 넘기게 했었고요.

지난 경기 이후 다소 의기소침해 있을 것을 염려한 나머지 다저스 선수들, 특히 유리베는 일부러 장난을 치고(평소에도 장난을 잘 걸지만) 춤도 추게 하면서 절 자꾸 웃게 만들었습니다. 지난 경기의 악몽을 빨리 잊게 하려는 배려임을 잘 알고 있기에 유리베를 포함해 선수들의 마음 씀씀이가 무척 고마웠습니다.

부상 선수들이 속출하는 상황에서 저까지 무너지면 선수들로선 불안감이 커질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메이저리그 데뷔 2년차인 제가 낙담할까 걱정돼 이런저런 방법으로 위로와 격려를 건넸던 선수들의 도움 덕분에 2이닝 8실점의 악몽은 금세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이전 샌프란시스코전과 오늘 애리조나전을 비교해보면 경기 분위기면에서 상당히 차이가 있었던 것 같아요. 1회 투아웃까지 잘 잡아 놓고 볼넷으로 산도발을 내보낸 후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서 첫 실점하는 것부터 꼬이기 시작했던 반면에 오늘은 공격과 수비, 불펜까지 절묘한 호흡을 나타내면서 무실점으로 경기를 마칠 수 있었으니까요.

저로선 ‘천적’으로 꼽히는 골드슈미트를 2개의 삼진으로 묶고 출루를 허용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스스로 칭찬을 해주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동안 저를 상대로 좋은 성적을 올렸던 선수가 타석에 서면 더 신경 쓰이고 긴장하기 마련인데, 오늘 경기에선 저보다 골드슈미트가 더 긴장을 했던 것 같아요. 다음에는 골드슈미트가 나의 천적이 아니라 내가 골드슈미트의 천적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류현진은 동료들의 도움으로 안좋았던 기억을 빨리 잊을 수 있었다고 한다. 푸이그가 얼음으로 자신을 괴롭히자, 바로 푸이그에게 복수를 시도하며 웃는 류현진의 모습.(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재미있는 것은 한국에서도 2이닝 8실점한 다음 경기에서 9이닝 완투승을 거뒀었는데, 이번에도 같은 상황에서 7이닝 무실점을 올렸다는 사실입니다. 한 번의 실수는 사람이다 보니 이해와 용서가 되는 부분이지만, 같은 실수를 반복하는 건 제 자신조차도 용납이 안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더욱 단단한 각오를 하고 마운드에 올랐고, 우리 수비들을 믿고 자신있게 공을 던질 수 있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오늘 경기 내용과 결과에 대한 만족감이 여느 때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깊고 진합니다.

더욱이 지난해 한 번 밖에 기록하지 못한 무실점 경기를 올시즌에는 벌써 세 경기나 기록했습니다. 이상하게도 불펜피칭을 한 다음에 등판했을 때 모두 7이닝 무실점을 기록하게 되네요. 샌디에이고와의 본토 개막전에서도 불펜에서 30개의 공을 던진 다음에 마운드에 올랐고, 오늘 애리조나전을 앞두고서도 불펜피칭을 소화한 후 등판했다가 7이닝 무실점을 올린 것이죠. 불펜피칭과 7이닝 무실점이 어떤 연관이 있을까요? 휴식일이 길어지다 보면 불펜피칭을 하기 마련인데, 아직까진 4일 쉬고 등판하는 것보다는 5일 쉬고 등판하는 게 익숙하고 컨디션 조절에 여유가 있는 것 같습니다.

혹시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시나요? 2006년 4월 12일 잠실 LG전에서 한화 유니폼을 입고 프로 데뷔전을 치른 날이었습니다. 당시 7.1이닝 동안 3안타 1사사구 10삼진 0실점하며 데뷔 첫 승을 거뒀는데요, 8년 후인 오늘, 한국이 아닌 미국 애리조나에서 비슷한 이닝을 소화하며 무실점 승리를 올린 게 마음에 와 닿습니다.

첫 타자 안재만 선배를 상대로 데뷔 첫 탈삼진을, 마해영 선배를 상대로 데뷔 첫 피안타를, 그리고 9회 박경수 선배한테는 데뷔 첫 4사구를 기록했고 역대 신인 데뷔전 최다 탈삼진 타이기록을 올렸던 그 경기가 어느새 8년 전의 일이라니, 세월 참 빠르죠. 그 선배님들, 모두 안녕들 하신가요?

지난 샌프란시스코전에서 흔들리는 류현진을 위해 마운드로 다가와 류현진을 다독거리는 '형님' 유리베의 모습. 진한 동료애가 느껴지는 장면이다.(사진=순스포츠 홍순국 기자)

*이 일기는 류현진 선수의 구술을 정리한 내용입니다. 류현진 선수에게 팔꿈치 상태를 물었더니, 아주 멀쩡하다고 합니다. 팔꿈치 걱정은 하지 말라며 안심을 시키네요-담당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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