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람 조회 수 : 1307

2016.01.30 21: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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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로서 MMA가 가지는 가장 별난 점을 꼽자면 아무래도 룰의 다양성이다. 기본적으로 한 종목을 가르는 기준이 룰 그 자체라는 것을 생각하면 한 종목 안에서 룰이 갈라진다는 점에서 MMA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에 속한다. 물론 레슬링이 그레코 레슬링과 자유형 레슬링으로 나뉘는 등 여타 종목에서도 분파가 존재하지만 하위 종목으로 분류되어 엄연히 다른 영역으로 구분한다는 것을 생각하면, 어지간히 괴상한 룰이 아닌 이상 통합 전적을 인정해주는 MMA는 그야말로 별종인 셈이다.

 

물론 현대 종합격투기에서는 눈 찌르기나 박치기 등의 하드코어한 공격의 금지와 파운딩의 허용 등에서는 대부분 어느 정도 합의가 이루어진 상태다. 언더그라운드 무대나 무규칙 발리투도 대회에서는 예외가 있을 수도 있지만 적어도 일정 수준 팬층을 확보한 단체라면 이 합의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그라운드에 있는 상대에 대한 킥 공격과 업킥의 허용 여부, 엘보우의 허용 여부 등은 단체마다 다르며, 심지어 경기장도 사각 링, 8각 링, 8각 케이지, 작은 사이즈의 케이지 등 일정하지가 않다. 결정적으로 가장 중요한 채점 기준은 한 단체 내에서도 오락가락하고 있으니 그야말로 난장판이다.

 

MMA의 룰이 이렇게 다양하게 갈라진 데는 앞서 화끈함의 딜레마에서 언급한 폭력성과 대중성의 충돌에 있다. MMA의 발생에 기준을 놓고 본다면 무규칙 발리투도가 가장 합리적인 형태일 것이다. 하지만 이에 스포츠의 개념이 끼어들면서 재단이 이루어져야만 했고, 현재의 룰들은 그 흔적들인 셈. 문제는 그 재단의 주체도 기준도 중구난방이었다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종목의 최고 협회가 없이 지금까지 성장한 만큼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이는 결과적으로 굉장히 흥미로운 양상을 만들어냈다. 긍정적인 부분에서도, 부정적인 부분에서도 말이다.

 

긍정적인 부분은 크게 두 가지로 생각할 수 있다. 첫째는 온전히 흥미의 관점에서다. 단체 별로 갈라지는 MMA에 있어 이 다양한 룰은 그 단체가 차별화 될 수 있는 요소를 제공한다. 이는 다시 말해 마이너 단체들에게 관심이 몰릴 여지가 있다는 것이며 동시에 아직 룰이 정립되지 않은 이 종목에서 팬들에게 선택권을 주는 것이 된다. 두 번째는 실험적인 측면이다. 현재 어느 룰이 가장 MMA의 통합 룰로 적합한가는 여전히 논란거리인데, 앞서 언급한 대로 대중들이 직접적으로 단체의 PPV와 티켓을 선택함으로서 자연스레 의견 반영이 된다. 어찌 보면 굉장히 민주적인 형태이기도 한 것이다. 이에 따라 룰만으로도 자연스러운 적자생존이 이루어지며, 단체들이 대중의 폭력성에 대한 수용 능력을 가늠할 뚜렷한 기준이 생기는 것이다. 프라이드 도산 이후 한동안 침체기였던 아시아 MMA 시장에서 엘보우는 물론 그라운드의 상대에게 킥을 허용하는 케이지 무대라는 보기 드문 룰을 가진 ONE Championship이 빠르게 치고 올라와 최대의 무대로 자리 잡은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다.

 

반면 부정적인 부분은 단연 이러한 실험이 30년째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정립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한동안 UFC의 굳건한 독재 체제가 이어지면서 스탠다드 룰이 UFC의 룰로 고정되는 듯한 착각을 일으키기도 했으나 이는 어디까지나 북미 MMA의 전형일 뿐 실상 정리된 것은 하나도 없었다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다. UFC와 로드 FC만을 시청하며 케이지가 이제 MMA의 상징이라고 생각하던 국내 팬들에게 동유럽의 터줏대감 KSW와 내실이 단단한 걸로 유명한 M-1, 그리고 최근 발족한 신() 프라이드 라이진까지 링을 경기장으로 활용하는 단체들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이 그 예시이다. 과거 웹툰 등 대중매체에도 자연스럽게 스탬핑이 나오던 시절부터 근 몇 년간 이어진 MMA=UFC의 공식, 그리고 최근의 인식의 변화까지. 이를 살펴본다면 팬들에게 기억되는 표준 규정이란 것은 종목의 본질과 타협이 아닌 오로지 단체들의 파워게임으로 결정되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대중의 선택'과는 궤가 다르다. 정확히 룰의 차이 때문이라기 보다 MMA가 생소하던 시절 화제성에서 먼저 돋보인 단체들과 그 단체들의 스타들의 이동에 따른 변화이기 때문이다. 프라이드의 미국 진출 당시 싸커킥/스탬핑/4점 니킥의 금지 당시 실망스러운 반응을 표하던 팬들이 프라이드 스타들이 UFC로 이적하고 프라이드 자체는 도산함에 따라 어쩔 수 없이 UFC를 시청하게 된 것이 그 예다.)

 

유행에 따라 종목의 형태가 자꾸만 바뀐다는 것은 결코 긍정적인 일은 아니다. 또한 한 종목 내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장소에 따라 다르다면 그것 역시 우스운 일이다. 재미를 떠나 한 종목으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해서는 고정된 형태를 갖추어야 하기 때문이다. MMA와 가장 자주 비교되는 복싱을 보자. 복싱은 MMA보다 훨씬 많은 단체를 보유하고 있지만 공신력 있는 세계 랭킹이 존재하며 여러 단체의 벨트를 가지고 있는 챔피언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이는 단지 복싱이 경기를 자주 가질 수 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 아니다. 어딜 가더라도 그들은 복서이기 때문이다. ‘복싱이라는 분명한 기준이 그들을 판단할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MMA는 그것이 불가능하다. 물론 지금이야 UFC 소속 선수들이 기량이 너무나 압도적인 탓에 UFC 내 랭킹이 MMA 전체에서도 80% 이상 유효하지만 앞으로 타 단체가 성장한다면 과거 프라이드/UFC 등이 공존하던 시절처럼 어느 무대에서 싸우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지는 상황을 마주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이는 최강자를 꼽는다는 MMA의 존재 이유와도 맞지 않으며 장기적으로는 대중성에도 좋지 못한 영향을 미친다.


이 문제는 룰이 거의 고정되어 있는 북미 MMA 내에서는 그럴 일이 없다는 것을 생각해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프라이드-UFC는 각 단체의 챔피언 및 컨텐터들이 서로의 단체에서 적응하지 못하고 우르르 무너지는 모습을 보이는 경우가 많았던 반면 같은 북미 단체인 WEC-UFC-스트라이크포스끼리는 거의 그런 현상이 없었다는 점에서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 어느 룰이 적절한지에 대한 논의가 아직 이루어지고 있다는 것을 감안해도 NSCA와 같은 명확한 축을 중심으로 최소한 대륙별 통합이라도 이루어져야 한다. 룰에 옵션으로 작용하는 요소가 어느 정도 정리된 만큼 이 정도로 배분하는 것만으로도 이후의 실험에는 충분하기 때문이다.

 

MMA가 올림픽 종목으로 채택되어야 한다는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을 만큼 이제 종합격투기의 위상은 결코 낮지 않다. 이제 진정 메이저 스포츠의 대열에 들어서기 위해서는 오랜 분열을 정리하고 온전한 형태를 갖출 필요가 있다. 룰의 정립은 그 첫번째 키이고 말이다. 그러나 그 온전함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또 다른 규칙을 확실히 할 필요가 있다. 바로 약물이다.

 

더 딜레마 - 약물의 딜레마 2/6


*필자의 개인적인 대회 준비로 시리즈를 잠시 중단하게 됐습니다

조만간 다시 돌아오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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