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하람 조회 수 : 1080

2016.01.24 0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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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기에 앞서 밝혀두자면, 필자는 시리즈의 각 파트별로 제시될 문제점들에 대해 분명하게 결론을 지을 생각은 없다. 겨우 MMA 입문 5년차인 필자가 감히 결론을 내리기엔 MMA, 혹은 이 원칙이라는 것은 너무나도 거대하며 복잡하기 때문이다. 일개 아마추어 글쟁이가 혼자 판단하고 결론지을 성질의 것이었다면 1985년 슈토의 설립 이래 31년이라는 세월이 지나도록 커다란 불편함으로 남아있지도 않았을 것이며, MMA가 아닌 다른 영역에서도 대입이 가능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따라서 필자는 그저 넌지시 방향을 제시하다 시리즈의 마지막에서나 소심하게 이들을 포괄한 의견을 피력해 볼 생각이다.

 

우선 비교적 가벼운 소재로 시작하려고 한다. 이후에 다룰 약물, 공정성, 룰의 문제 등은 애초에 다루기도 버겁고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이야기가 될 수도 있는 만큼 도입부에서는 무게를 줄여야 한다는 계산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분명 MMA의 고질적인 부분인 동시에 특정 단체나 선수에 대한 도덕적 논의를 피할 수 있는 두루뭉술한 부분을 노려야 했고, 그 결과 떠올린 키워드가 화끈함이었다.

 

MMA가 대중에게 각광 받는 이유는 굉장히 단순하다. '실전성‘. 그리고 이를 조금 풀어 이야기하자면 속된 말로 맞짱에 가장 가까운 말초적인 감성이 있다는 것이며, 이를 다시 바꿔 말하자면 화끈하기 때문이라는 결론이 나온다. 매니아들과 철학을 가진 선수들은 동의하지 않을지 몰라도 적어도 MMA가 대중을 움직였던 힘은 그 폭력성에 있었다. 여지껏 볼 수 없었던 순도 높은 폭력성. 이는 일방적 구타나 길거리 싸움과 달리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남자라는 달콤한 명분에 의해 정당성이 부여되며 그와 동시에 대중이 즐길 수 있는 폭력으로 탈바꿈했다. 또한 구시대 전쟁에서 사용되던 무술들이 접목되며 국가사와는 전혀 무관한 이 소모적인 싸움은 판타지가 생겨나며 동시에 미화된다. 이 세계를 사랑하는 한 사람으로서 굉장히 속 쓰린 소리지만 유감스럽게도 이 관점은 생각보다 훨씬 보편적인 동시에 굉장한 힘을 가지고 있으며, 그 힘은 뉴욕에서 UFC가 열리는 것을 발목 잡고 있고 태국에서는 MMA 자체를 불법화 하려는 움직임까지 불러왔다. 특히 후자의 경우 무에타이라는 가장 난폭한 입식 타격 종목의 원산지에서 이런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엄연히 전쟁 무술이었던 무에타이와 싸움MMA의 급을 다르게 본다는 것이다. 첫 번째 딜레마는 바로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MMA를 성장시킨 동력원이 동시에 MMA의 발목을 잡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MMA의 근본적인 발생 원인은 강함그 자체에 있다. 실전 격투를 지향했던 그레이시 가문과 일본 프로레슬러들이 각자의 지역에서 각자의 방식으로 세를 키워나갔고 그 과정에서 UFC, 슈토, 판크라스 등의 원시 단체들이 탄생했으며, 그 접점에서 프라이드가 세워졌던 역사는 그를 증명한다. 이 과정을 중시하는, 즉 이 종목의 존재가치를 이해하고 있는 이들이 바로 골수 팬덤이다. 다른 말로 하자면 원칙주의자, 심하게 말해서는 근본주의자(!)라 하겠다. 이들의 시각은 일반 대중들과는 사뭇 다르다. 그들도 화끈함을 좋아하지만 기본적으로 실력과 명분, 즉 원칙에 충실하기를 바란다. 얼핏 꼰대스러울 수도 있는 이들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누구보다도 꾸준히 이 세계에 남아있는 자들이며, 따라서 이들의 규모가 커지고 이들이 단체를 지지해 줄 때 그 근간이 바로 설 수 있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MMA를 지탱해주는 근간이라 하겠다. (얼마 전 칼럼니스트 이용수 씨가 이종카페의 영향력에 대해 역설하여 논란이 된 일이 있는데 사실 화법의 차이일 뿐 논지는 이와 같다. 단지 본 글의 매니아이종카페로 치환됐을 뿐이다. 이렇다 할 거대 세력이 없는 한국 MMA에서 유일하게 한 축을 형성하고 있는 매니아 집단이 인터넷 커뮤니티이고, 이종카페의 규모가 단연 압도적이기 때문에 가능한 공식이라 하겠다.) 문제는 이들의 수효는 지극히 한정적이며 원칙과 화제성이 엇갈리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은 생각보다 양보가 없다. 굳이 근본주의자라는 표현을 쓴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이는 곧 흥행성과의 반목으로 이어진다. 두 번째 딜레마다.

 

화끈함에 대한 이러한 서로 다른 시각은 기본적으로 원칙에 대한 태도의 차이에서 시작된다. 화끈함이라는 요소가 개개인의 판단이 갈라지는 가장 중요한 분수령일 뿐 실상 단지 말초적으로 즐기는 것인지 이 세계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가 바탕이 됐는가에서부터 갈라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 기본적인 해결은 사실상 어려우며, 이 종목을 제공하기 전에 우선 자체적으로 재단하는 수밖에 없다. 그런데 이 재단을 누가 맡고 있는가? 바로 단체다.

 

앞서 한국 MMA이렇다 할 세력이 없다고 했지만 실은 이것이 한국에만 국한된 일은 아니다. 해외에서는 그래도 전문 매체들이 비교적 강세를 보이고 있지만 여전히 협회와 노조의 부재 등 단체의 힘을 견제하기에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 , 현재 MMA를 이끌어가는 주체는 거의 온전히 단체라는 것이다. , 그럼 이제 단체 입장에서 보도록 하자. 당신은 자의든 타의든 MMA의 발전을 짊어진 단체의 주인이다. 당신은 여전히 불안정한 토양 위에서 몇 안 되는 매니아들을 거느리고 대중을 상대해야 한다. 그들은 이 종목에 열광하는 일부와 이를 혐오하는 일부로 이루어져 있으며, 언제든 격한 반응을 보일 준비가 되어 있다. 매니아, 라이트 팬덤, 안티의 관심사는 서로 다르며 당신은 안티를 달래는 동시에 매니아와 라이트 팬덤을 만족시켜야 한다. 당신이라면 어떻게 하겠는가?

 

필자는 기본적으로는 매니아의 편을 들어야 한다고 보고 있다. 굉장히 뻔한 소리지만, 단체가 사라지면 자연히 떠나는 대중과 달리 그래도 남을 이들이 바로 매니아 층이기 때문이다. 2000년대 중반을 호령하던 K-1, 프라이드가 붕괴되고 국내의 스피릿 MC까지 사실상 문을 닫으면서 2008~2009 시즌은 사실상 한국 MMA의 암흑기였다. 그런데 바로 그 직후인 2010년 로드 FC가 발족해 지금까지 성장할 수 있었던 동력은 대체 어디서 왔을까? 산불에 비해 미약해 보일지라도 그 산불을 일으키는 건 불씨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과 같은 이치일 것이다. 그 불씨 자체가 잘 유지가 되어야 열기가 사그라들더라도 불을 다시 지필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어쨌든 기업인 단체의 입장에서 그 불씨 하나만 지키고 앉아 있으라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당연히 그 사이에서 균형을 잡아야 하는 것이겠지만 기본적으로 상업적인 단체들이 알아서 윤리의식까지 신경 써야 한다? 애초에 한쪽으로 기울 수밖에 없는 일이다. 그런 단체들에게 통제권이 거의 온전히 맡겨져 있는 상황에서부터 문제는 시작된다. MMA에서 유독 선수 홀대 및 명분 파괴가 두드러지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따라서 단체와 별개로 이들을 통제할 수 있는 원칙 수호 세력-, 선수 노조, 공식 협회, 전문 미디어의 발족 및 성장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결론적으로, MMA를 뜨거운 감자로 만들어 준 화끈함-혹은 폭력성이 적절한 성장 동력으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뚜렷한 주체에 의한 원칙 수호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이후에야 올바른 폭력성의 재단이 이루어질 수 있음은 물론이다. 그리고 이 재단이라는 것은 가장 먼저 의 문제로 이어지게 된다.

 

룰의 딜레마 - 1/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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